53화
0.01초 소드마스터 53화
“······.”
무거운 정적이 자스트라 숲에 흘렀다.
쿠웅-!!
두 쪽으로 갈라진 데키나콩을 보고도,
펄럭~!
내 뒤로 펄럭이는 망토를 보고도,
“······.”
마치 무언가 믿을 수 없는 걸 목격했다는 듯, 여전히 모두가 침묵했다.
하지만-.
“키루우우-!!”
사파이어 자쿤이 데니카콩의 시체 위로 내려와 두 날개를 펼쳐 울부짖으니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는,
“우와아아-!!”
“우우-!!”
“아슬란 대기사단장님!!”
기사단이, 저 호드들이 크나큰 함성을 내질렀다.
“적을 섬멸하라!!”
“아슬란 대기사단장님을 위하여!!”
“우우-!!”
사기가 하늘을 찌르기 시작한 그들은 몬스터들을 무참히 도륙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활약을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내려다보고 있던 나는,
‘이런 씹······.’
심장이 벌렁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지, 진짜 뒤지는 줄 알았잖아!’
숨을 헐떡이며 이 진정되지 않는 패닉을 가라 앉히고 싶었으나, 이놈의 허세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저놈은 대체 왜 나한테 뛰어들어서 사람을 놀라게 만들어?!’
저 많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나한테 데키나콩이 뛰어들었다.
‘만약 거기서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저 주먹에 으깬 두부가 되었을 것이다.
그만큼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이제 제발 끝내라.’
한 번 더 이 짓거리를 했다가는 가슴 졸여서 죽겠다.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것일까.
콰직-!!
호박을 두 쪽 내듯, 대형 몬스터의 머리를 쪼개 버린 대족장 막투르가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이 언덕에 살아 있는 몬스터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는 곧 도끼를 높이 들며 소리쳤다.
“우리가 이겼다!!”
“우우-!!”
“이겼다!!”
“우리의 승리다!!”
기사단도 호드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드디어 악몽 같았던 몬스터 웨이브가 끝난 것이었다.
‘휴우-.’
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끝이구나.
솔직히 이 정도 똥꼬쇼를 했으면 보상도 더 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뭐야?’
왜.
대체 왜.
‘퀘스트 완료창이 안 뜨는 건데?’
다시 패닉이 올 거 같다.
‘침착하자.’
처음 놈들이 우리를 공격하기 전에 옆으로 빠진 몬스터들.
그놈들이 아직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어딘가 남아 있는 몬스터들이 있을 것이다.
그놈들을 마무리 한다면 퀘스트는 완료다.
‘진짜 더럽게 빡세네.’
보상으로 10골드를 준다고 했을 때 의심부터 해볼걸.
왠지 쉽게 쉽게 간다 했더니.
‘아직 끝이 아니라면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나는 아직도 승리의 함성을 지르고 있는 기사단에게 천천히 말을 몰며 다가갔다.
“푸르르르-!”
내 말이 기분 좋게 울음을 터트리자,
“키루우우-!”
옆에 꼭 달라붙듯이 따라 걷고 있던 사파이어 자쿤도 함께 울음을 터트렸다.
난 그런 자쿤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네 이름을 정했다.”
“······?”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바라보았다.
“앞으로 네 이름은 ‘키루’다.”
놈의 울음소리에서 딴 이름이었다.
“키루우우-!”
마음에 들은 건지 놈은 날갯짓을 몸을 흔들었다.
“키루우~! 키루우우-!!”
하지만 그게 좀 과했다.
“호들갑 떨지 마라.”
내가 미간을 찌푸리자 키루는 흠칫거렸다.
“가서 정찰이나 하고 와.”
“키루-!”
놈은 숲을 향해 높게 날아올랐다.
그래. 얼른 가서 밥값을 해라.
그래야 네 머리에 박힌 보석이랑 비늘을 안 뜯지.
“대기사단장님!”
“저희가 승리했습니다!”
기사단이 내게 달려와 기뻐했다.
대기사단장으로써 기사단을 치하할 때가 왔다.
“고생했다. 오늘의 승리가 너희에게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예!!”
대답하는 모습을 보니, 사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
대족장 막투르와 호드들도 내 곁으로 몰려들었다.
얘네들은 자기 족장한테 갈 것이지, 왜 나한테 왔어.
그들은 내게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 한 마디 해줄까.
“너희는 오늘 스스로 증명해냈다. 너희가 위대한 전사의 후손이라는 것을.”
“우우-!!”
나도 허세에 전염이라도 된 건가.
허세가 들끓지도 않았는데, 아주 뻔뻔스러운 얼굴과 목소리로 이들을 치하했다.
갑자기 조금 무서워졌다.
이러다 설마 나중에 완전히 이 허세에 먹혀 버리는 것은 아니겠지.
그럼 평상시에도, 나 혼자 있을 때도 제대로 눕지도 못 하고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
‘소름 돋는 생각하지 말자.’
난 나를 잃지 않을 것이다.
“얼른 부상병들을 데리고 가서 치료해라. 승리를 만끽하는 것은 좋지만, 아직 전투가 끝난 것은 아니다.”
그 말에 기사단과 호드들의 안색이 굳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건······.”
“어딘가에 몬스터 잔당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것들을 전부 없애지 않으면 이 땅은 영원히 정화할 수 없다.”
정화든 뭐든 사실 그런 건 상관 없었다.
“그러니 어서 다들 준비하거라. 이 땅을 너희 손으로 지켜야 하지 않나?”
그러자 호드들은 가슴을 탕탕 치며 소리쳤다.
“우우-!!”
이 퀘스트를 끝내고 얼른 이 땅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 * *
“흐아압-!!”
콰득-!
하늘을 비행하듯 날아오른 키엔은 대검으로 거대 몬스터의 머리를 찌른 뒤,
“이 역겹고 지겨운 놈들!”
그대로 비틀어 숨통을 끊어 버렸다.
“후우-.”
그렇게 숨을 고르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의 몸에는 몬스터들에게서 튄 검은 피로 가득했다.
“제기랄.”
분명 피가 끓고 치열한 전투를 원한 것은 맞지만, 이런 건 아니었다.
“이 구역질 나는 몬스터들이나 잡자고 여기 온 게 아니란 말이다!”
잔뜩 화가 나 있는 그의 곁으로 라이에르가 다가왔다.
“진정하게.”
그 역시 많이 지쳐 보였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몬스터 웨이브의 습격이었다.
거기다 대형 몬스터들까지 상대하느라 키엔과 라이에르가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기사단의 피해는?”
그의 물음에 단장 하나가 빠르게 알아 와 답했다.
“500명가량이 현재 전투 불능 상태입니다.”
2천에서 500이나 당했다는 것인가.
만약 키엔과 라이에르 둘 중 하나만 없었어도 피해가 얼마나 더 커졌을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이 정도로 끝나는 게 다행인 건가.”
하지만 이대로 돌아갈 순 없었다.
“만약 여기서 우리가 몬스터 웨이브를 막지 않았다면 이놈들은 자스트라 경계선을 넘어 우리 왕국까지 닿았겠지.”
그럼 여러 마을이 그 웨이브에 쓸려나가 쑥대밭이 되었을 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야 한다.”
“동감이다. 이놈들이 갑자기 왜, 어디서 나타난 건지 알아내지 못하면 넋 놓고 당할 수도 있겠어. 거기다······.”
키엔은 입술을 짓씹으며 말을 이었다.
“라이에르 네 말대로 이놈들은 악마가 맞다.”
아카데미에서 스치듯 배웠던 내용들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검은 피에 흉측한 생김새, 여섯 개의 팔.
크록이라 불리는 악마 몬스터였다.
“그걸 이제 알았다니, 유감이군.”
“믿기 어려웠으니까. 차라리 내 착각이길 바랐다. 300년이 지난 지금, 그것도 이곳에서 악마가 나타나다니!”
그래서 믿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악마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가 말해 준다.
테키나 족속이 다시 나타났다는 것을.
“메르 단장.”
“예!”
“부상병들을 이끌고 왕국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지원군을 요청해라. 크라엘과 그의 기사단이 필요하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부장에게 명령을 내린 뒤 키엔은 라이에르에게 물었다.
“크라엘이 올 때까지 대기할 건가?”
“아니. 이곳에 가만히 있는 건 위험해. 어디서 또 웨이브가 쏟아질지 모르니까. 그리고 크라엘이 오기 전에 이 몬스터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내는 것이 좋겠지.”
“그럼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겠군.”
“검의 왕국 ‘만’에게 후퇴란 없지.”
둘은 그리 결정을 내리며 앞으로 전진했다.
수풀을 헤치고 나가자 사방에 널려 있는 몬스터들의 사체가 보였다.
웨이브에 휩쓸려 죽은 것들이었다.
“······.”
둘은 말 없이 계속 길을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음?”
저 멀리 키엔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초록색 피부에 큰 키.
호드들이다.
그런데,
“저 깃발은······.”
“일라이 왕국의 깃발이군.”
호드 무리 옆에 기사단이 함께 있었다.
그들은 서로 동행하며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보였다.
거기다,
“키엔. 저 위를 봐라.”
하늘을 비행하고 있는 푸른 날개.
국경에서 기사단을 공격했다는 바로 그 사파이어 자쿤이었다.
놈도 ‘만’ 왕국의 기사단을 발견한 것인지 키엔과 라이에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촤아악-!!
키엔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칼을 뽑아 검기를 날렸다.
하지만 놈은 약올리듯 재빠른 비행술로 날아오는 검기들을 피해내며 울음을 터트렸다.
“키루우우-!!”
그 울음소리에 저 멀리 행군하고 있던 호드와 일라이 왕국 기사단이 이들의 존재를 알아차리게 됐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키루-! 키루우우-!”
울부 짖으며 비행하는 사파이어 자쿤이 일라이 왕국 기사단 곁으로 돌아가 마치 그들과 한 편이라도 된 것처럼 낮게 비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라이 왕국 기사단도 사파이어 자쿤을 전혀 견제하고 있지 않았다.
“자쿤 같은 흉포한 몬스터는 조련이 불가능하다고 들었는데. 심지어 저건 그 귀하다는 사파이어 자쿤이지 않나?”
“설마······.”
키엔의 눈동자가 분노에 일렁였다.
“놈들이 한패였나?”
호드가 갑자기 경계를 넘은 것도, 사파이어 자쿤이 공격을 한 것도, 전부 일라이 왕국의 소행이었던 것인가.
“억측일 수도 있지만······ 저 둘이 같이 있는 건 매우 수상하군.”
“이런 쳐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상대는 벌써 전투 준비에 들어가는 거 같은데.”
“어떡하긴. 놈들이 정말로 손을 잡고 우리 뒤통수를 친 거라면 그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수적으로 열세인데?”
“너와 내가 있잖아. 이 정도 숫자 차이는 내 힘만으로도 채울 수 있다.”
“만약 아슬란이 저기에 있다면?”
“······.”
아슬란이란 이름에 키엔은 잠시 멈칫거렸다.
하지만 침묵은 길지 않았다.
“오늘 누가 강자인지 우열을 가려 볼 수 있겠군.”
활활 타오르는 키엔의 기세를 보고 라이에르는 미소를 지었다.
“좋은 자세다.”
둘은 저기 멀리서 대형을 갖추고 있는 호드와 일라이 왕국 기사단을 향해 나아갔다.
* * *
‘여기 어디쯤일 텐데.’
나는 기억을 더듬으며 테키나 족속이 봉인되어 있는 입구를 찾고 있었다.
300년 전 만들어진 봉인이라 호드들도 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저 이곳 어딘가에 봉인된 입구가 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나도 모니터 화면으로만 본 지형이라 실물과 매치하며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뒤로 빠져야 할 거 같은데.’
어디서 몬스터가 튀어나올지 모르기에 가급적이면 사방을 경계하며 병사들 사이에 껴서 가고 싶었지만-.
“······.”
나는 거만한 자세로 팔짱을 끼며 가장 선두에 서서 길을 나아가고 있었다.
어디서 공격이 날아 들어와도 괜찮다는 듯, 오만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놈의 허세 때문에 뒤로 갈 수가 없었다.
“키루우우-!!”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키루의 울음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대기사단장님!”
“저곳에 군대가!”
왠 기사단 하나가 수풀을 헤치며 나오고 있었다.
그들이 공격을 하자 키루는 재빨리 우리 쪽으로 날아와 몸을 피했다.
“적군이다!”
“대형을 갖춰라!”
“호드! 전투 준비!”
“우우-!!”
기사단과 호드들은 빠르게 전투 준비에 돌입했다.
나는 점점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만 왕국?’
검의 왕국 ‘만’.
대체 저놈들이 여기에는 왜 나타난 거지?
심지어,
[키엔]
무력: 94
지력: 65
[라이에르]
무력: 94
지력: 76
‘미친.’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의 소드마스터가 한 자리에 있었다.
만 왕국은 검의 나라라는 말에 걸맞게 오직 검만 쓰는 변태 같은 곳이다.
보통 왕국의 병력을 조직할 때 궁병, 방패병, 창병, 마법 병단 등등. 다양한 병종을 만들어 둔다.
하지만 이 미친놈들은 오직 검만 쓰고, 다른 무기는 전부 사파 취급을 해 버린다.
그래서인지 왕국에 무려 소드마스터가 세 명이나 있다.
‘하필이면 저 사이코 같은 왕국을 마주치다니.’
검을 숭배하고, 오직 검을 우선시하는 미친 나라.
당연히 마주치기 싫은 부류였다.
“멈춰라! 너희의 신분을 밝혀라!”
아론이 먼저 앞에 나가 그들의 행진을 막아 세웠다.
그러자 키엔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보면 모르겠나. 나는 만 왕국의 대기사단장, 키엔이다.”
“키엔!?”
“키엔이라면······ 소드마스터?”
기사단이 동요했다.
나는 키엔과 라이에르, 그리고 그들의 기사단 몸에 검은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았다.
저들도 몬스터 웨이브를 뚫고 여기까지 온 것이리라.
“아슬란. 역시 여기 있었군.”
아까부터 키엔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난 너희의 해명을 듣고자 왔다. 아슬란.”
해명?
뭘 해명하라는 거야.
“호드가 우리 국경을 넘고, 사파이어 자쿤이 우리 기사단을 공격했다. 그런데 이곳에 와보니 일라이 왕국과 호드가 함께 있다라······.”
설마 이놈들은 우리가 그런 일을 꾸몄다고 생각하는 건가?
우리가 대체 왜 그런 짓을 한다고?
“수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어디 변명을 해보거라. 그 대답에 여하의 따라 너희의 처우를 결정하겠다.”
하지만 이미 눈이 돌아간 것처럼 보이는 키엔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저놈 혼자 저렇다면 미친놈이라며 비웃었겠지만-.
‘라이에르까지 같이 있으면 위험하다.’
두 사람의 무서운 점은 바로 시너지다.
개인의 무력도 강한데, 이 둘이 힘을 합치면 얼마나 강력하겠는가.
그걸 저 둘도 알고 있으니, 수적으로 열세여도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이었다.
‘눈빛을 보니까 이미 맛탱이가 간 거 같은데.’
이미 상황은 답정너로 가고 있었다.
저놈들이 원하는 해명을 해도 오해를 풀 거 같지 않고, 결국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 같았다.
‘내가 가진 네임드들의 힘을 믿어야지.’
막투르, 아론, 알렉산더, 라파엘, 그리고 호드와 일라이 왕국 기사단.
조금 위험해 보이지만, 방법은 이거 하나였다.
부딪혀 보는 수밖에.
“어디 해명을 해보라니······ 음?”
키엔은 하던 말을 멈추고 고개를 위로 올렸다.
우리 바로 옆에 있는 큰 절벽에 무언가가 있었다.
“캬오오오-!!”
이걸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해야 하나.
저 절벽 위에 크록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저기에 있었구나.’
남은 몬스터 무리가 전부 저 위에 있는 것 같았다.
저놈들을 잡으면 내 퀘스트도 끝이 나는 것이다.
“저놈들이 또 나타났군.”
키엔과 라이에르가 칼을 뽑아 들자 그들의 뒤에 있던 기사단도 함께 칼을 뽑았다.
우리 기사단과 호드들도 절벽 위를 경계했다.
그런데 나는,
“한 초의 상대도 되지 않는 것들이 감히-.”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날뛰다니.”
등허리를 타고 올라오는 허세를 부렸다.
“뭐야!?”
키엔의 성난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에 담긴 힘만으로 귀가 멍해지는 것 같았지만, 나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저 이 들끓는 허세에 따라,
스르릉-.
격조 있고, 품위 넘치는 자세로 천천히 칼을 빼 들었다.
“가소롭구나.”
그리고 그것을 옆쪽 절벽을 향해 가볍게 휘두르는 순간.
⎯⎯⎯⎯!
저 거대한 절벽이 빛의 검강에 의해 균열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