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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42화 (42/200)

42화

1초만 소드마스터 42화

내 명령에 따라 아론이 칼에 기운을 불어 넣기 시작했다.

고오오-!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검강이 고요한 울음 소리를 내며 번뜩이는 예기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것을 저 수풀 속에 던져 버리려는 순간.

“자, 잠깐만요!!”

라파엘이 은신을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엇-!”

아론과 기사들은 그런 그녀를 보고 놀란 반응을 보였다.

“정말 저기 누가 숨어 있었잖아······?”

“대기사단장님은 어떻게 아신 거지?”

라파엘은 아직도 무섭게 검강을 발산하고 있는 아론에게 말했다.

“저기요. 이제 그건 그만 거두시면 안 돼요? 항복이라니깐요?”

아론이 눈을 껌뻑이며 내게 고개를 돌렸다.

“거두거라.”

“예.”

그제서야 라파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진짜 변신술도 그렇고, 내 은신술도 들키다니.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나는 라파엘을 한심하게 내려다 보며 말했다.

“저번에 말했을 텐데. 한번만 더 이따위 짓거리를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그래도 이번에는 변신술로 오진 않았잖아요.”

“······아론.”

아론이 거두었던 검강을 다시 만들려고 하자 라파엘이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니. 그러니까 저는 뭐 나쁜 의도로 온 게 아니라, 아슬란 대기사단장님을 만나러 온 거라고요!”

“나를?”

알렉산더가 아니라?

“네! 대기사단장님게 부탁 드릴 일이 있어요.”

“뭐지?”

그러자 그녀는 손을 모으며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를 일라이 왕국 마법사로 써주세요.”

* * *

“여왕님. 이 일은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저희가 라파엘을 무사히 엘드라비까지 데리고 가겠습니다.”

엘프들의 여왕, 엘티히는 거듭 청을 올리고 있는 수하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그래서, 너희가 한 번이라도 그 아이를 제대로 데려온 적이 있더냐?”

“그건······.”

“그 아이가 변신술을 써버리면? 간파할 순 있고?”

“······.”

“은신술도 마찬가지다. 너희들만으로는 그 아이를 절대 찾을 수 없어.”

라파엘은 변신술과 은신술에 무척 뛰어나다.

기본 마력도 강하지만, 저 두 가지는 엘프 중에서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한번 달아나 버리면 찾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엘티히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 어미를 닮아 도통 가만있지를 못하는 구나, 그 아이는. 왜 그리 자꾸 엘프들의 둥지에서 떠나려는 것인지.”

하지만 아무리 변신술과 은신술에 능하다고 해서 마법의 여왕 앞에 도망칠 순 없는 법. 이런 때를 대비해 엘티히도 만들어 준 안전장치가 있었다.

엘티히는 눈을 감고 천천히 마력에 집중했다.

그러자 그녀의 발밑으로 마법진이 생겨나면서 푸른 마력이 하늘 위로 서서히 떠 올랐다.

마치 그것은 하나의 눈동자처럼 변하여 사방을 둘러 보고 있었다.

“그 아이의 마력이 느껴진다.”

엘티히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바로 일라이 왕국의 영토였다.

* * *

콰아아앙-!!

역시 주인공의 네임드 동료답구나.

굉장한 마법의 힘에 기사들도 놀란 눈치였다.

라파엘은 멋쩍게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헤헤. 이 정도면 괜찮나요?”

몬스터 한 무리를 육편처럼 짓이겨 놓았으면서 수줍게 웃고 있다.

[라파엘]

무력: 50

지력: 87

마력: 87

주인공의 깜찍한 엘프 동료이자 훗날 대마법사가 되는 라파엘.

그 네임드에 걸맞게 그녀는 87이나 되는 마력 수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한창 성장 중인 마법사였다.

방금 전 저 몬스터 무리를 마법 한 방에 쓸어 버렸듯, 그녀의 마법 실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일단 마법에 특화되어 있는 엘프이기도 하고, 그녀의 마법 잠재력은 상당히 뛰어나기 때문이다.

괜히 주인공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여자가 아니다.

주인공이 대륙을 안전하게 클리어하도록 만들어 둔 개발자의 안배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어, 엄청난 마법이군요.”

“그런가요?”

“예. 생전 그런 마법은 처음 봤습니다.”

아론과 기사들은 신기하다는 듯 라파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라파엘의 마법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쓰는 마법과 다르다.

엘프는 정령의 힘을 다루는 족속.

이들의 마법은 정령을 소환하는 것을 베이스로 깔기 때문에 엘프의 마법을 모르면 당연히 신기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럼 한번 더 보여드릴게요!”

라파엘이 하늘 위로 손짓하자 놀랍게도 불사조처럼 몸에 불을 가득 휘감고 있는 새들이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며 전방을 휩쓸었다.

“오오-!”

“저것이 정령이라는 건가?”

그들은 아주 신이 나서 라파엘의 마법을 구경했다.

나 역시 모니터 화면으로만 보던 정령 마법을 이렇게 실제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 정도면 일라이 왕국의 훌륭한 마법사가 될 수 있겠죠?”

“이런 마법의 힘이라면 대마법사도 어렵지 않을 것 같군요.”

“하하. 우리 왕국에 첫 대마법사가 나오는 겁니까?”

그렇지 않아도 우리 왕국에 마법 병단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넝쿨째 라파엘이 굴러와 주다니.

라파엘만 있다면 마법 병단 보강 문제는 금방 해결될 것이고, 우리 왕국의 힘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다크 엘프라는 건데.’

엘프와 악마의 피가 섞인 다크 엘프.

물론, 스토리상 그것이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뒤에 있는 사람이 문제였다.

‘엘티히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

개발자들이 라파엘을 주인공 동료로 집어넣은 건 그녀의 뛰어난 마법의 힘을 사용하라는 것도 있지만, 엘프들의 여왕, 엘티히와 연결 고리를 만들어 놓기 위함이었다.

즉, 라파엘은 엘티히와 주인공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라파엘을 통해 주인공은 엘티히를 만나게 되고, 처음에는 갈등을 겪지만 그가 엘프와 인간의 피가 섞인 하프라는 것을 알게 된 뒤, 조금씩 우호적인 관계로 변해 간다.

그렇게 엘프와 인간이 다시 한번 힘을 합치는 역사가 알렉산더, 그리고 라파엘이란 존재를 통해 시작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난 주인공이 아닌데.’

그렇기에 엘티히가 얼마나 개지랄을 떨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엘티히는 라파엘에게 악마의 피가 섞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녀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걸 무척 꺼려한다.

그래서 나도 아직 라파엘을 정식으로 받아들이진 못했다.

“누가 널 마법사로 받아들인다고 했지?”

“계속 동행을 해도 말이 없으시길래 허락해 주신 줄 알았죠.”

요 며칠 동안 라파엘은 우리 일행에 껴서 같이 일라이 왕국으로 가고 있었다.

그 특유의 친화력으로 벌써 아론을 비롯한 기사들과 전부 친해지기까지 했다.

그동안 알렉산더와 무슨 얘기를 나누나 하고 봤는데, 딱히 이렇다 할 발전은 없어 보였다.

“난 널 일행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 그냥 네가 따라왔을 뿐.”

“아이참. 그럼 이제부터 정식으로 동행하게 해주세요!”

그녀가 익살스러운 말투로 내게 애원하고 있을 때였다.

“라파엘-!”

마치 그릇이 깨지는 듯한 목소리에 라파엘은 화들짝 놀라며 몸을 들썩였다.

그건 우리 기사단도 마찬가지.

목소리에서부터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힘에 모두 안색을 굳혔다.

“헉!”

목소리가 들리는 곳에 따라 고개를 돌린 라파엘은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여, 여긴 어떻게······.”

“쯧. 내가 이런 고생을 하게 만들다니.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성난 목소리에 마력을 담은 이의 정체는 바로,

[엘티히]

무력: 30

지력: 93

마력: 99

대륙 최강의 마법사, 엘프들의 여왕, 엘티히였다.

‘이런 미친.’

당당하고 오만하며 도도한 저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숨이 멎을 뻔했다.

호랑이가 제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라파엘 때문에 언젠가 엘티히를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막 방금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엘티히가 나타날 줄이야.

그것도 이렇게 빨리!?

“데려오너라.”

“예.”

그녀의 뒤에 있던 두 명의 엘프가 제자리에서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라파엘 곁으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라파엘의 양팔을 붙잡고 다시 점멸 마법을 써서 엘티히 뒤쪽으로 돌아갔다.

“앗! 이, 이거 놔요!”

“가만있거라.”

“전 그 거지 같은 곳에서 더 이상 갇혀 살기 싫다고요!”

“시끄럽다.”

라파엘이 마력을 끌어올려 달아나려고 하자 엘티히가 어림도 없다는 듯 손을 저었다. 그러자 라파엘의 양손에 푸른 결속구가 생기면서 끌어 올리던 마력도 한순간 사라져 버렸다.

“아니. 진짜 치사하게!”

고작 손가락 한번 튕기는 거로 마력을 봉인시킨 건가?

‘저게 대륙 최강 마법사의 힘이구나.’

아무리 그래도 마력 수치가 87에 달하는 라파엘을 저렇게 간단하게 제압해 버리다니.

“거기 인간.”

그때 엘티히의 앙칼진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네가 이 아이와 뭘 하고 있었는지는 묻지 않겠다. 그러니 너도 여기서 본 일을 잊어라. 그게 네 신상에도 좋을 것이야.”

어휴, 뭐 저야 불만 없습니다.

좋을 대로 데려가십시오.

라고 말할 뻔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말로 잘 구슬려 볼까 했는데, 지금 엘티히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건들면 일라이 왕국을 전부 뒤집어엎어 버릴 기세였다.

아깝지만 라파엘은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엘티히와 싸울 순 없는 노릇이니.

그런데,

“멈춰라.”

단전에서부터 끓어 오르는 병적인 허세가 얼른 말머리를 돌리려는 나를 붙잡았다.

내가 어떻게 제어를 해보기도 전에 강렬한 허세의 파도가 내 몸 전체에 몰아쳤다.

그 충동적이고 오만하며, 병신 같은 허세에 이끌려 나는 입을 열었다.

“여기는 일라이 왕국의 영토다. 감히 이곳을 멋대로 침입하고도 그냥 넘어가려는 것이냐?”

그러자 엘티히의 뒤에 있던 두 명의 엘프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분이 누구신지 알고 그런 소리를!”

그러면 그럴수록 아슬란의 허세는 더욱 콧대가 높아질 뿐이었다.

“당연히 네가 누군지 알고 있다. 엘프족의 여왕, 엘티히.”

그 말에 엘프들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여왕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감히 그따위로 말한다는 것이냐?”

“너희들의 여왕이지, 나의 여왕이 아니다. 손님으로 왔다면 마땅히 대접을 해줬겠다만, 지금은 그저 남의 나라의 영토를 무단으로 침범한-”

나는 거만하게 턱을 올리며 말을 이었다.

“침입자일 뿐이다.”

“!?”

두 엘프가 다시 나서서 뭐라 말을 하기 전에 엘티히가 손을 들었다.

“여왕님.”

“뒤로 물러나 있거라.”

“······알겠습니다.”

그들은 라파엘을 끌고 뒤로 조금 물러났다.

그리고 엘티히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신발을 신지 않고 있는 그녀의 백옥 같은 발에서부터 푸른 마력이 흘러나와 바닥을 물들였다.

“건방진 놈이구나. 내가 누군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눈을 똑바로 뜨고 날 쳐다보다니.”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흉흉해지고 있었다.

아론과 기사단은 아까부터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거 뭔가 잘못 건드린 거 같은데.’

하지만 한번 끓어 오르기 시작한 아슬란의 허세는 엘티히의 마력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내가 침입자 따위를 무서워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들끓는 이 감정이 나를 더욱 충동할 뿐이었다.

“오랜만이구나. 예전에도 너처럼 건방진 놈이 하나 있었지. 그놈과 눈빛이 닮았어. 짜증 나게 말이지.”

촤아아악-!!

몸이 붕 떠오른 엘티히는 어마어마한 마력을 뿜어냈다.

그 압도적이고 파괴적인 마력의 힘에 숨조차 쉬기가 힘들 정도였다.

“우윽!”

“크읍!”

아론과 기사단은 몸을 부르르 떨며 칼을 뽑아 들지도 못했다.

이것이 바로 엘프의 여왕, 엘티히의 힘!

‘조, 좆된 거 같은데.’

이놈의 허세가 언제 한번 크게 사고 칠 줄 알았다.

하필이면 건드려도 대륙 최강 마법사를 건들다니.

쿠우우웅-!!

그녀가 손을 들자 그 위로 푸른 불길이 치솟으며 거대한 창이 만들어졌다.

엘티히의 주력 마법인 심판의 창이었다.

“인간. 오늘 너와 네 부하들이 여기서 죽는 건, 그 오만함 때문이다.”

잠깐. 그걸 정말 나한테 던지려고?

“대, 대기사단장님!”

뒤에서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아론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

온몸을 짓누르고 공기마저 태워 버리는 것만 같은 마력의 열기 때문일 것이다.

“아, 안 돼요. 여왕님!!”

저 앞에 있던 라파엘도 소리쳐 봤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만 봐야 했다.

엘티히의 손에서 떨어지는 푸른 심판의 창을.

콰아아앙-!!

* * *

“끝이군.”

거대한 폭발과 함께 아직도 마력의 열기가 뜨겁게 하늘을 뚫을 듯이 타오르고 있었다. 어떤 생명체도 저 안에서는 살아남지 못하리라.

엘티히, 자신의 분노를 담은 심판의 창이었으니.

“돌아가겠다.”

건방진 인간에게 마땅한 최후였다.

그녀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런데,

“여, 여왕님.”

“뒤, 뒤에!”

수하들의 손짓에 엘티히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음?”

심판의 창이 일으킨 폭발과 그 뜨거운 열기 속에 무언가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저건······?”

신성한 빛으로 이루어진 방어막이었다.

방금 그 공격을 막아냈다는 것인가?

어떻게 그걸 막아낸 거지?

마법을 쓰는 놈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엘티히는 헛웃음이 나왔다.

“제법이구나. 인간 따위가 내 마법을 막아내다니.”

뭐, 상관없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다만, 한번 더 날린다면 그땐······.

콰아아아-!!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

밝은 빛으로 만들어져 있던 방어막이 사라지고 나서, 그 밖으로 하늘 높이 솟아오른 검강이 마력의 열기를 가르며 치달아 오기 시작했다.

“황금빛?”

황금빛으로 이루어진 검강이라니.

“감히!”

엘티히는 마력으로 이뤄진 방어막을 만들어내 다가오던 검강을 막아냈다.

하지만,

콰직-!!

두껍게 펼친 마력 방어막이 너무나도 쉽게 깨져 버렸다.

“흐읍-!”

그녀는 다시 한번 방어막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콰직-!!

그 다음 것도,

콰지직-!!

저 무지막지한 크기의 검강을 막아낼 수가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콰콱-!!

그렇게 마지막 방어막까지 뚫리는 순간.

“아-.”

엘티히는 체념하듯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높이 솟아오른 신성한 빛의 검강이 자신의 몸을 가르려는 것을.

“여왕님!!”

그러나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었던가.

양옆에서 나타난 제 부하들이 그녀의 팔을 붙잡고 빠르게 이동 마법을 썼다.

“너희들······!”

“괜찮으십니까?!”

덕분에 저 검강을 피할 순 있었지만, 그때 엘티히의 눈에 홀로 남은 라파엘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 두 사람이 엘티히의 안위만을 챙기느라 라파엘을 신경 쓰지 못 한 것이었다.

“이런!”

마력을 봉인 당한 채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라파엘은 당장 저 검강을 막을 수단도, 피할 방법도 없었다.

엘티히는 그런 그녀를 향해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라파엘!!”

그러나 그녀를 대피시킬 수 있는 수단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마법을 쓰는 동안 검강이 더 빨리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으-.”

라파엘은 겁에 질린 얼굴로 자신 앞에 치달아 오는 검강을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그런데,

“아니?”

엘티히의 방어막을 우습게 뚫어 버리며 이 세상 모든 걸 갈라 버릴 것처럼 나아가던 저 무시무시한 검강이,

키이이잉-!!

기괴한 소리로 울부짖으며, 놀랍게도 라파엘의 코앞에서 멈춰 섰다.

“이, 이게 대체······.”

라파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숨을 헐떡였다.

엘티히 역시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저 거대한 검강을 멈춰 세웠다는 것인가?

대체 누가?

“제법이구나.”

그때 이 뜨거운 열기를 가르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엘프 따위가 내 검강을 피하다니.”

뚜벅뚜벅 둔중한 발소리를 내며, 뿌연 연기 속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

아슬란은 엘프들과 함께 주저앉아 있는 엘티히를 무심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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