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1초만 소드마스터 41화
[수호신의 방패]
-찰나의 괴력을 수호의 방패와 동시 사용시 옵션 효과가 수호신의 방패로 변경됩니다.
-최고 등급의 방어막을 15초 동안 유지합니다.
나는 멍하니 정보창을 바라보았다.
찰나의 괴력과 수호의 방패를 동시에 쓰면 새로운 옵션이 탄생하게 된다.
바로 수호신의 방패.
일단 어떤 스킬이든 ‘신’ 글자가 들어가면 굉장히 좋은 스킬이라는 것을 뜻한다.
그 증거로, 방금 내가 보지 않았던가.
무려 방어막 중에 최고 등급이라는 황금빛이 이곳 전체를 감싸 안고 있었던 것을.
‘찰나의 괴력 쿨타임이 돌아야 다시 쓸 수 있다는 게 흠이긴 하지만.’
내게는 쿨타임을 초기화 시킬 수 있는 펜던트가 있다.
그걸 사용하면 이제 찰나의 괴력을 두 방향으로 쓸 수가 있게 된다.
방어용으로 한 번.
공격용으로 한 번.
상대의 공격을 막아낸 뒤, 곧바로 반격을 가할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었다.
이건 엄청난 수확이었다.
“갑작스럽게 방문을 해서 송구합니다.”
청명한 목소리에 나는 금방 정신을 되찾았다.
나를 매혹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건 샤를렌 가문의 가주, 비올레타였다.
게임 화면에서 본대로 과연 엄청난 미인이었다.
하지만 이 게임에서 주의해야 할 건 예쁜 여자일수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올레타]
무력: 30
지력: 95
저 높은 지력 수치를 봐라.
저게 무력이었으면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는 스텟이다.
그만큼 그녀의 머리가 비상하다는 것을 뜻한다.
‘원래 후계자도 아니었잖아.’
비올레타는 가문의 후계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녀는 자신의 위로 다섯 명이나 있는 형제들을 모조리 쳐내 버리고 당당히 샤를렌 가문의 수장이 되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뛰어난 두뇌가 그녀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날 찜쪄 먹을 수 있고, 뒤통수를 수십 번도 더 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샤를렌 가문의 가주께서 여기까지는 어인 일로 행차하셨소?”
그렇다고 해도 샤를렌 가문의 가주이지 않은가.
이 대륙에 있는 돈이란 돈은 다 가지고 있는 여자다.
당연히 좋은 관계를 가지면 나한테도 좋고 왕국에게도 좋겠다만-.
“호호. 대기사단장님께서는 제가 반갑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귀족들은 한번만이라도 저를 만나고자 큰돈을 걸기도 하는데요.”
“용건만 간단히 하시오.”
한번 발동이 걸린 아슬란의 허세가 예쁜 여자 앞이라고 해서 멍청한 표정을 지을 리도, 좋게 목소리가 나갈 리도 없었다.
“어머나. 냉정하셔라.”
그녀는 부채로 입을 가리며 호호 웃음을 터트렸다.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어요. 아까 그 신성한 빛으로 이루어진 구체는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아무래도 내가 펼친 방어막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비올레타 가주.”
하지만 내 영업 비밀을 쉽게 알려 줄 순 없는 일.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마시오.”
물론, 최대한 순하게 말하고 싶었으나 내 몸을 장악하고 있는 허세가 비올레타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과한 호기심은 항상 화를 불러 일으키는 법이니.”
“······.”
“이제 왜 날 찾아왔는지 말해 주시겠소?”
비올레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에 손을 까닥였다.
그러자 그녀의 부하들이 상자 하나를 가져와 내 앞에 내려 놓았다.
“아슬란 대기사단장님께 드리는 제 작은 선물이랍니다.”
작은 선물?
이윽고 상자가 열리고 그 안에 가득 들어 있는 황금과 보석들이 내게 손짓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아이고. 누님.
이런 진귀한 걸 들고 오시다니.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앞으로 큰일을 하셔야 하니, 이걸로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어휴. 조금이라니요.
왜 그리 황송한 말씀을.
나는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그녀의 호의를 감사하게 받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뭐하는 짓이지?”
아까 전부터 비올레타를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는 병적인 허세가 꿈틀거리며 단전에서부터 뜨거운 분노를 일으켰다.
“네?”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물었다.”
비올레타는 당황해 했고, 이 미친 허세는 더욱 날뛰기 시작했다.
“이따위 돈으로 내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인가?”
안 돼. 이 미친놈아.
저게 얼마짜리인데!
“날 그리 가볍게 보았다니. 건방지구나, 비올레타여.”
나는 더 험한 말이 나가기 전에 간신히 아슬란의 허세를 붙잡았다.
그런데 이미 늦은 거 같다.
비올레타가 두 눈을 부릅 뜨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이 심하시네요. 우리 샤를렌 가문은 대륙 최고의 상단입니다. 관계든, 계약이든, 거래든, 심지어 사랑까지도 우린 돈으로 해결해요. 그것이 저희의 방식이니까요.”
“그렇다면 거절하겠다.”
“왜죠? 이제까지 누구도 제 선물을 거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당신은 거절하는 거죠?”
그 물음에 반응하듯, 애써 붙잡고 있던 허세가 다시 한번 정수리 끝까지 치솟았다.
“난 돈으로 친분을 사지 않는다.”
“!?”
“돈 따위로 산 관계가 오래 갈 리 없지. 난 그런 진실되지 못 한 것을 혐오한다.”
나는 멍하니 날 바라보고 있는 비올레타에게 상자를 밀어내며 말했다.
“그러니 가지고 돌아가라.”
아, 안 돼.
내 돈!
이렇게 내 황금 상자가 사라지나 싶었는데,
“그럼······ 어떻게 하면 당신과 좋은 사이를 맺을 수가 있는 거죠?”
비올레타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신뢰다.”
“신뢰요?”
그녀는 곧 코웃음을 쳤다.
“언제든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그런 가벼운 것을 믿으시는 건가요?
그러나 그런 비웃음에 굴복할 허세가 아니었다.
“명예를 아는 자라면 그 신뢰를 지키겠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면 돈으로 쌓은 관계보다 훨씬 단단할 터. 난 그 신뢰를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
뭔 말도 안 되는 개소리를 하고 있어.
무조건 돈이 최고지!
비올레타 말처럼 신뢰는 언제든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는 것이지만, 돈으로 쌓아 올린 관계는 돈만 준다면 절대 깨질 일이 없다.
하지만 한번 끓어 오르기 시작한 아슬란의 허장성세는 꺾이지 않았다.
내가 꾹꾹 밀어 내려고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럼······.”
그런데 그때 비올레타가 내게 얼굴을 가까이 하며 말했다.
“제가 당신과 신뢰를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뭔가 분위기가 좀 이상하게 변하는 거 같은데.
기분 탓인가.
“그건 나보다 그대가 더 잘 알고 있을 터.”
“호호. 재밌는 분이시네요. 좋아요. 그럼 이건 어때요? 우리 두 사람의 아름다운 신뢰를 위해 제가 제안을 하나 드리죠.”
그녀는 펼쳐 있던 부채를 접으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우리 샤를렌 가문은 일라이 왕국을 최우선 교역 대상으로 삼겠어요. 당연히 왕국에 투자하는 금액도 엄청날 거고요.”
멍하니 황금 상자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비올레타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 내가 뭘 잘못 들었나?
교역을 활발하게 열고, 거기다 투자금까지 아끼지 않겠다는 건 우리 왕국에 엄청난 이익이었다.
저 상자를 받아 황금을 챙기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잠재적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어야 하는 법.
“샤를렌 가문이 내게 원하는 건?”
“뭐, 저희야 아슬란님 같은 분이 든든한 동맹군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요?”
진짜 그거면 되는 건가?
“샤를렌 가문에게 칼을 대는 자가 있다면, 그건 곧 나 아슬란을 향한 도전으로 생각할 것이다.”
“아슬란 대기사단장님 같은 분이 우리 상단을 도와주신다면 아주 든든하겠네요.”
뭐지. 분명 꼬였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일이 잘 풀리는 거지?
“그리고 대기사단장님.”
아직 비올레타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분명 뭔가 더 내게 바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파격적인 제안을 내게 할 리가 없는······.
“듣기로 아직 혼인을 하지 않으셨다는데.”
“······?”
“어쩌면 우린 조금 색다른 방법으로 서로의 신뢰를 쌓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네?
“언제든 저한테 찾아오세요. 그땐 지금보다 우린 더 돈독한 사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비올레타는 특유의 웃음 소리를 내며 방 밖을 나갔다.
“······.”
나는 빠르게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아-.”
기어코 상자를 가지고 돌아가는 그녀의 치밀함에 탄식을 내질렀다.
그 정도는 그냥 놔두고 가셔도 되는데 말이다.
***
“르네는 어때?”
“예. 방금 막 정신을 차렸다고 합니다.”
비올레타는 부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그 뒤에 딸려 나오는 상자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까지 수많은 귀족들을 만나봤지만, 저 상자를 거절한 건 아슬란이 유일했다.
“역시, 괜히 내 흥미를 끄는 사람이 아니라니깐?”
그는 천천히 계단을 타고 내려가다 처소 아래에서 대기 중이던 아론과 마주쳤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아론 기사단장님.”
“왜 그러시오?”
“여기 제가 준비한 선물이 있어요.”
검은 상자를 앞에 내려놓자 아론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아까 아슬란 대기사단장님께 드린다는 그 보석 상자가 아니오?”
“맞아요. 이걸 단장님에게 드릴게요. 여기 있는 분들과 공평하게 나누시면 될 거 같은데. 어때요?”
하지만 그런 달콤한 유혹에 아론과 그의 기사단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보아하니, 대기사단장님께서 그대의 호의를 거절하신 것 같은데, 우리 역시 그분과 같은 뜻이오. 그분의 뜻에 반하는 짓을 우리가 저지를 순 없소. 가져가시오.”
그 주인이나, 그 기사단이나 참 한결 같았다.
이 정도의 황금을 보면 한번쯤은 고민을 할 만도 한데, 주저할 것 없이 거부하는 저 기개가 마음에 들었다.
“일라이 왕국, 참 재밌는 곳이네.”
비올레타는 처소로 돌아가면서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라이 왕국에 투자금을 넣을 수 있는 만큼 전부 넣어라. 각 지부에 통보를 하도록.”
“일라이······ 왕국에 말입니까? 아직 상업적으로 개발이 덜 된 곳이지 않습니까?”
“그래.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가 키워 보겠다는 거다. 오늘 아슬란과 그의 기사단을 보니, 확신이 생겼어. 적어도 돈 때문에 우릴 배신할 사람들은 아니야. 그러니 가능한 최고로 높은 금액을 넣도록 해.”
“예, 가주님.”
오늘 비올레타는 기분이 좋았다.
일라이 왕국이라는 새로운 투자처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고, 무엇보다 기쁜 건 아슬란이란 남자를 알게 된 것이었다.
“흐응. 언제쯤 다시 오려나?”
과연 그가 자신의 마지막 제안을 언제쯤 받아 들일지도 궁금해졌다.
* * *
어수선했던 경매를 끝내고 나는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집이라.
이제 일라이 왕국은 나의 집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그런 집 말이다.
푸르르~!
오늘도 룰루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말을 천천히 몰면서 나는 기쁨을 한껏 만끽했다.
새로운 아이템을 무려 2개나 얻고, 샤를렌 가문에게 투자 약속까지 받았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물론, 아직도 황금과 보석으로 가득 찼던 그 상자가 눈에 아른거렸지만,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마음으로 그 아픔을 꾹 눌렀다.
앞으로도 이렇게 술술 인생이 잘 풀리기를······.
‘그런데-.’
이런 내 평화를 방해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저건 왜 자꾸 따라오는 거지.'
[라파엘]
내 뒤를 은밀하게 따라오고 있는 불청객이 있었다.
바로 다크 엘프 라파엘.
저게 안 보일 거라 생각하는 건가.
아니. 나도 다른 캐릭터의 정보창을 볼 수 있는 플레이어의 눈이 없었다면 그녀가 내 뒤를 따라온다는 걸 전혀 몰랐을 것이다.
아론과 다른 호위기사들도 전혀 모르는 것 같고.
‘그냥 무시하고 가야 되나.’
게임 스토리를 따라 우리의 주인공 알렉산더를 만나기 위해 쫓아오고 있는 것일 터.
괜히 아는 척 하지 말고 둘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지?
그렇게 무시하며 가려고 했는데,
“아론.”
아슬란의 허세가 이걸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예, 대기사단장님.”
라파엘의 이름을 보자마자 등허리를 찌릿하게 자극하는 허세가 머리 끝까지 차올라 나는 그 들끓는 감정에 따라 라파엘이 은신해 있는 수풀 쪽을 가리켰다.
“저기 쥐새끼 한 마리가 숨어 있구나."
"예?"
아론과 기사들은 어리둥절하며 내가 가리킨 수풀 쪽을 살펴보았다.
난 그런 그들에게 말했다.
"베어라."
그러자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라파엘의 이름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