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1초만 소드마스터 40화
“소문이 사실이었다니.”
“정말 아슬란님이 빛의 기사였던 겁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빛의 기사는 오직 교단에서만 나올 수 있소!”
“그럼 방금 전 그건 뭐라고 설명하실 건데요?”
아슬란이 레길로트의 팔찌를 가지고 나간 뒤로 회장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경매 때 가격이 1억을 넘어 섰을 때도 이 정도로 후끈하진 않았다.
“대체······ 방금 내가 뭘 본 거야?”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지.
상상 이상의 퍼포먼스라고 해야 하나.
레길로트의 팔찌를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목을 끌었는데, 그걸 직접 착용하고 그 안에 깃든 악의 힘을 정화하는 것까지 보여 주다니.
비올레타의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르네도 거들었다.
“방금 그건······ 관람비를 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겠습니다.”
오늘 이 광경을 놓친 사람들은 평생 후회할 것이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것이 정말 사실이었다니.
악마 사냥꾼이자 빛의 기사 아슬란.
백성을 먼저 위하고 악을 처단하는 정의의 사도.
오늘 경매장의 주인공은 누가 뭐라 해도 아슬란이었다.
이제 열국이 그를 더욱 주시할 것이며, 그를 경계할 것이다.
그리고 감히 일라이 왕국이 약국이라며 손가락질 할 사람도 없을 터.
“일라이 왕국에 우리 상단이 들어가 있던가?”
“예. 들어가는 있으나, 활발하진 않습니다. 최소 규모로만 되어 있는 수준입니다.”
망나니였던 아슬란이 갑자기 개과천선을 하면서부터 일라이 왕국도 심상치 않은 성장세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보니, 그 성장의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일라이 왕국에 자금을 더 투입해야겠구나.”
지금 추세라면, 저 아슬란이 계속 우뚝 서 있다면 일라이 왕국은 전례 없는 성장을 이뤄낼 것이다.
“그리고··· 한번쯤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예? 직접 만나러 가신다는 겁니까?”
“왜? 안 될 거라도 있느냐?”
“그게······.”
비올레타는 극도로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길 꺼린다.
그렇기에 정말 큰일이 아니고서는 다른 사람을 보내 실무를 보게 한다.
당장 오늘 경매를 주최하는 샤를렌 가문의 가주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참석자 중 그녀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
아무리 대륙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비올레타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직접 아슬란을 만나러 간다라-.
“아무것도 아닙니다.”
뭐라 할 말이 있었지만, 르네는 그냥 삼키기로 했다.
보이지 않는 손처럼 뒤에서만 모든 걸 관장하던 그녀가 직접 움직일 만큼 아슬란이란 자에게 흥미가 생기신 거겠지.
“그럼 가자.”
“예, 모시겠습니다.”
르네의 뒤를 따라가는 비올레타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
“모두 돌아갈 채비를 하거라. 내일 해가 밝으면 왕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예!”
나는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샤를렌 가문이 참석자들에게 각각 내어 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탁-!
온몸을 지배하고 있던 병적인 허세가 탁! 하고 닫히는 방문 소리와 함께 쓸어 내려갔다
“휴. 진짜 처음에는 무슨 일 나는 줄 알았네.”
경매장에서 처음 레길로트의 팔찌를 차고 있을 때, 갑자기 검은 마기 같은 게 솟구쳐 나오길래 그땐 심장이 철렁였다.
그게 착용 이펙트라는 것을 알면서도 놀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아슬란의 허세 덕분에 남들 앞에서 놀란 티를 내진 않았다.
“이펙트 참 쓸데없이 화려해.”
레길로트의 팔찌가 유독 그렇다.
여기 옵션을 봐라.
[레길로트의 팔찌]
-전설의 대장장이 레길로트가 만든 팔찌입니다.
-모든 공격을 빛 속성으로 전환합니다.
-어둠 계열에 200%의 추가 데미지를 줍니다.
나는 팔찌의 옵션을 살피며 바보처럼 히죽 거리고 있었다.
모든 공격을 빛 속성으로 변경시켜 주는 덕분에 그렇게 이펙트가 화려했던 것이다.
사실 레길로트의 기본 팔찌 옵션은 딱히 나한테 쓸모가 없었다.
모든 공격을 빛 속성으로 전환하는 것도 그렇고, 어둠 속성을 가진 몬스터에게 200% 추가 데미지를 주는 것 역시 따지고 보면 나한테는 크게 필요한 능력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난 악마랑 싸울 생각이 없거든.”
내가 미쳤다고 악마랑 싸운단 말인가.
그건 알렉산더나 아론 같은 네임드들이 해야 할 일이다.
“물론 찰나의 괴력이 2배 세지긴 하겠네.”
그렇다고 악마가 순순히 내 찰나의 괴력을 맞아 줄 거 같진 않았다.
맞기만 한다면 한방컷이 나겠지만, 그놈들이 얼마나 영악한 놈들인데 바보 같이 가만히 앉아서 맞아 주겠는가.
“하지만 이건 대박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토록 팔찌를 얻어서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이것 때문이다.
[수호의 방패]
-15초 동안 수호의 방패가 적용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60초)
-방어력은 시전자의 힘에 비례합니다.
무려 보호막 스킬이었다.
그것도 랜덤으로 부여된 것인데, 수호의 방패는 굉장히 좋은 스킬 중 하나였다.
15초 동안 공격을 막아 주는 수호의 방패가 생긴다.
그것도 노 코스트 스킬로, 마력 같은 거나 다른 것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미친 스킬이었다.
“행운 스텟 때문인가? 왜 이렇게 좋은 게 걸렸지?”
이 미친 난이도 때문에 옵션도 억까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슬란이 가지고 있는 행운 특성이 상쇄를 시키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옵션이 잘 떴다.
보통 이런 1티어 옵션을 뜨게 하려면 뽑기작을 엄청나게 많이 해야 하는데 말이다.
“근데 쪼오끔 아쉽다.”
수호의 방패는 옵션을 사용하기 위해 소비되는 코스트가 없는 대신, 딱 하나 단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시전자의 힘에 비례해 방패의 강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는 팔찌에 옵션을 발현시켜 보았다.
우우웅-.
그러자 내 앞으로 작은 방어막이 생겨났다.
그것도,
“투명한 방어막이잖아?”
방어막에도 급이라는 것이 있다.
그 급을 결정할 수 있는 건 바로 색깔이다.
어떤 색깔의 방어막이냐에 따라 그 강도를 알 수가 있는데,
“투명한 건······ 최고 약한 거 아닌가?”
지금 내 앞에 펼쳐진 방어막은 투명한 색이었다.
즉, 이건 무늬만 방어막이지, 사실 있으나 마나 한 방어막이었다.
“아니. 이런 건 능력치 버프 좀 해주면 어디 덧나냐?”
잊고 있었다.
수호의 방패가 분명 좋은 옵션인 건 맞으나, 그건 네임드 캐릭터를 플레이 했을 때나 좋은 것이었다.
나는 아슬란이지 않은가.
“하아-.”
이놈의 팔찌, 다시 확 환불해 버릴까.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을 이런 쪼가리에 낭비했다니.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잠깐. 이게 내 힘에 비례하는 거라면······.”
찰나의 괴력도 적용이 되는 것일까?
나는 방어막을 거두고 쿨타임이 돌기를 기다렸다.
수호 방패를 사용하는 그 순간부터 쿨타임이 돌기 때문에 사실상 1분도 되지 않는 대기시간이었다.
“수호 방패를 쓰면서 찰나의 괴력을 같이 쓴다면······.”
처음 시도해 보는 거라 긴가민가했다.
이게 과연 될지도 의문이었고,
하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앉아서 생각만 하기 보다는, 직접 해보는 것이 더 나아 보였다.
“한번 해보면 감이 잡히겠지.”
나는 수호의 방패를 펼치면서 찰나의 괴력을 그 안에 불어 넣어 보았다.
그러자,
우우우웅-!!
이전과 다른 진동이 팔찌에서부터 울려 퍼지더니,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은 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 이건."
최고 방어 등급이라는 황금색이었다.
* * *
“경매장에서 우리가 본 건······.”
“자네들도 봤잖아 대기사단장님이 성스러운 빛으로 마기를 정화시키는 걸.”
아슬란이 방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기사들이 수군 거리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자 아론이 미간을 찌푸리며 주의를 주었다.
“너희들은 대기사단장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 하느냐?”
“네?”
“호들갑 떨지들 말거라.”
“아, 넵.”
“그리고 이번 일이 처음도 아니지 않은가? 그분께서 성스러운 라할의 빛을 쓰신다는 건 일라이 왕국의 기사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론의 말에 기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가히 아름다운 힘이었다.
그렇게 느끼는 건 알렉산더도 마찬가지였다.
아슬란의 힘은 감히 예측할 수가 없고, 그의 위상은 자꾸만 높아져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다시 한번 그는 아슬란 곁에 있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단장님. 그런데 저기······.”
“음?”
그때 한 무리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붉은 실크 옷을 휘달리며 요염한 걸음 걸이로 선두에 서 있는 여인.
그 뒤를 동행하고 있는 샤를렌 가문 표식을 달고 있는 호위기사들 숫자만 봐도 여기서 굉장히 높은 사람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멈추시오.”
아론은 그들이 더 가까이 다가오기 전에 막아 세웠다.
그러자 비올레타의 집사 르네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이분은 샤를렌 가문의 가주, 비올레타님이십니다.”
아론은 비올레타의 얼굴을 곁눈질로 살폈다.
가히 소문대로 절세가인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외부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시오?”
“비올레타님은 아슬란 대기사단장님을 만나기 위해 오셨습니다.”
“선약은 하셨소?”
“아닙니다.”
아론은 아슬란에게 이 일을 아뢰려고 하기 전, 집사 르네가 들고 있는 상자가 눈에 거슬렸다.
“그런데 그 상자는 무엇이오?”
“아. 이건 비올레타님께서 아슬란님에게 드리는 작은 선물입니다.”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상자를 열어 보시오.”
“······예?”
“상자 안에 있는 내용물을 확인해야겠으니, 열어 보라는 것이오.”
“지금 우리 가주님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여긴 샤를렌 가문입니다. 흉계 따위를 쓰려고 했다면 이런 조잡한 걸 쓰진 않았을 겁니다.”
“말이 많군. 어서 열기나 하시오.”
르네가 인상을 찌푸리며 한번 더 반박하려는 것을 비올레타가 저지했다.
“하라는 대로 하거라, 르네.”
“······예, 가주님.”
르네는 입술을 깨물며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황금과 보석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비올레타는 부채로 입을 가리며 미소를 지었다.
“조심성이 참 많으시네요. 아슬란 대기사단장님이 아주 든든해 하시겠어요.”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할 뿐이오.”
“그러시구나. 그런데······.”
그러다 그녀는 아슬란이 있는 거처에서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빛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저건 뭐죠?”
“······?”
그녀가 부채로 가리키는 곳에 고개를 돌린 아론도 강렬한 빛이 거처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대기사단장님!!”
그는 혹시라도 아슬란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검을 뽑아 들고 서둘러 거처 안으로 들어갔다.
기사단이 그 뒤를 따랐고 호기심이 극에 달한 비올레타와 그의 기사들도 함께 우르르 따라 들어갔다.
콰앙-!
아론이 먼저 입구를 박차고 들어갔으나,
“대기사단장님! 무슨 일······ 아니?!”
그들 앞에 나타난 건 황금빛을 내뿜는 구체였다.
구체 안에는 마치 별자리처럼 황금색 별빛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그것들이 방 안 전체를 휘감았다.
“이, 이건 대체······.”
이런 기이한 건 건 평생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기사들이 당황하며 조심스레 주변을 살펴보고 있던 중,
“오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르네는 아름다운 그 빛에 이끌려 손가락으로 살짝 구체를 만져 보았다.
그러자,
콰직-!!
“으아아악!”
스파크가 강하게 터지면서 르네는 비명을 지르며 입구를 뚫고 저 먼발치까지 날아가 버렸다.
“!?”
기사들은 그 자리에서 경직되었다.
아론은 르네처럼 누가 또 봉변을 당하기 전에 소리쳤다.
“모두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마라!”
비올레타도 숨이 턱 막히며 제자리에 얼어버렸다.
“······.”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손이 오들오들 떨려온다.
대체 이건 무엇이란 말인가.
르네 같은 실력자가 살짝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인사불성이 되어 버리다니.
괜히 발을 잘못 놀렸다가는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였다.
촤악-!
“어?”
“사, 사라졌다.”
영롱한 빛을 뿜어내며 눈을 매혹시키던 무시무시한 구체가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를 가르는,
“감히-.”
둔중한 음성이 들려왔다.
“내 허락도 없이 누가 들어오라고 했지?”
그곳에는 홀로 꼿꼿하게 서 있는 아슬란이 맹수를 닮은 눈동자로 그들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