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36화
“오늘도 힘차게 시작해 보자.”
알렉산더는 길게 기지개를 쭉 폈다.
그동안 부모님과 어떤 왕국에도 속해 있지 못 하고 떠돌이 생활만 하다 드디어 정착할 곳을 찾아 들어오게 되었다.
물론, 부모님은 아직도 왕국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계신다.
어쩔 수 없다.
괜히 잘못 왕국에 발을 들였다가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두 분은 대륙에서 금지하는 일을 저질렀고, 그 핏줄을 타고난 것이 바로 알렉산더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친구를 만들어도 속내를 털어 놓을 수가 없고, 연인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저 이렇게 신분을 숨기며 섞여드는 수밖에.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하진 않았다.
그에게도 꿈이라는 것이 있었다.
“드디어 떴구나.”
“하. 내가 이날만을 기다렸지.”
“뭐야. 고작 니 실력으로 감히 이걸 지원하려고 했어?”
“아니. 이거 왜 이래? 나한테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들보단 차라리 내가 낫지!”
알렉산더는 기사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지?’
다가가서 보니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
그것도,
‘호, 호위기사?!’
무려 아슬란의 호위기사를 뽑는다는 내용이었다.
그곳에는 아슬란이 친필로 써 놓은 글도 있었다.
[대륙 최강자의 옆에 늘 서고 싶은 기사가 있다면 누구든 도전하도록.]
짧고 강렬한 문장이었다.
“캬. 대륙 최강자. 이게 우리 대기사단장님이지.”
“만약 여기에 뽑히면 대륙 최강자의 오른팔이 되는 건가?”
수련 기사 중, 아니. 여기 왕국에 있는 기사 중에 아슬란이 대륙 최강이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히 저번에 있었던 입단식 이후로 그를 향한 기사들의 신뢰도는 벌써 하늘을 뚫어 버렸다.
‘나도 하고 싶다.’
알렉산더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날 입단식에서 보았던,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모든 이들 앞에서 당당하게 외치던 그 영웅 옆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런데 우리들한테 기회가 오긴 올까?”
“우린 수련 기사잖아. 애송이들이 뭘 할 수 있다고.”
“분명 위 기수의 기사들이 다 해먹겠지.”
“그래도 신청은 할 수 있다잖아?”
하지만 신청을 하고 나서도 문제였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아슬란의 호위기사를 뽑는 일이다.
즉, 그의 친위대가 되어 항상 그의 곁을 따라다니는 기사가 된다는 것.
당연히 실력이 있어야 하기에 여러 가지로 시험을 본다고 한다.
“체력도 엄청 좋아야 하고 검술도 뛰어나야 돼. 거기다 대련을 펼쳐서 경쟁자들을 모조리 물리치지 않으면 절대 뽑힐 수가 없대.”
“대련도 진검으로 한다면서? 괜히 그러다 죽으면 어떡해?”
“그러니까 개죽음 당하기 싫으면 알아서 빠지라는 거겠지. 이게 보통 일이야? 무려 소드마스터의 호위기사가 되는 일인데!?”
수련 기사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기다,
“뭐야. 햇병아리들이 감히 이런 영예로운 직책에 도전하려고 했던 거였어?”
“이번 기수 놈들은 건방지구먼. 되도 않는 실력으로 감히 아슬란 대기사단장님의 친위대가 되려고 하다니.”
“뭐, 누구든 도전해라. 밑바닥 깔아 주는 놈들이 있긴 해야지. 크크.”
선배 기사들의 조롱에 그들은 더욱 자신감이 하락했다.
그래서일까.
지원 신청을 받는 서관에게 수련 기사 중 누구도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딱 한 사람 빼고.
“저, 저도 지원하고 싶습니다.”
“!?”
알렉산더가 서관에게 다가와 지원란에 이름을 적어 놓자 선배 기사들이 비웃음을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이네?”
“네 얼굴, 기억하고 있다. 대련이 진검인 건 알고 있지?”
“야야. 그러다 울겠다. 아직 수련 기사잖아. 그러니까 딱 팔다리 한 개씩만 베어 버리자고.”
그런 살벌한 조롱에도 알렉산더는 꿋꿋하게 신청서를 냈다.
“야! 괜찮겠어?”
“너 그러다 진짜 죽는 거 아니야?”
“지금이라도 못 하겠다고 말해. 아무리 네가 우리 수련 기사 중에서 실력이 가장 좋다고 해도 이건······.”
동료들도 걱정하며 알렉산더를 만류했으나, 그는 한번 정한 마음을 되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선배 기사들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전 반드시 아슬란 대기사단장님의 호위기사가 될 겁니다!”
“너 같은 애송이가 어떻게?”
“보나마나 본선에는 올라가지도 못 하고 떨어질 거다.”
계속된 조롱에도 알렉산더는 꺾이지 않았다.
“떨어져도 상관 없습니다. 그래도 계속 도전할 거니까요. 반드시, 반드시 그분 곁에 설 수 있는 기사가 될 겁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반드시 해내 보이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도 근엄한 자세로 정무를 보고 있을 아슬란이 있는 왕궁 쪽을 바라보았다.
* * *
“아. 내정 개노잼.”
나는 찢어져라 하품을 길게 하며 배를 긁적였다.
“아효. 게임이었으면 그냥 대충 보고 마는데.”
UI에 나오는 정보창을 스윽 보고 지력 높은 문관에게 일을 맡겨 공장처럼 알아서 돌리는 것이 바로 내정이다.
이런 개노잼 시스템을 플레이어가 길게 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에 개발자들도 나름 배려 차원에서 간단히 만든 것인데······.
“나한테는 이게 게임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
이 서류 쌓인 걸 좀 봐라.
뭐가 이리 할 게 많은지,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렇다고 이걸 다 호레스한테 맡기자니······.
“그 영감탱이가 또 뒤에서 무슨 구린 짓을 꾸밀지 모르잖아.”
왕궁에 들어오는 물자 장부를 조작해서 빼돌릴 수도 있고, 그걸로 군을 만들어 내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
과대망상이라고?
절대 아니다.
이 게임 시스템은 매우 잔혹하다.
조금이라도 무신경한 부분이 있으면 난이도가 어려울수록 그 취약한 부분을 파고 들어 플레이어를 괴롭힌다.
만약 내가 마음 놓고 일을 다 다른 사람에게 맡겨 버리면 그놈들이 언제 딴 짓을 할지 모르기에 오늘도 소처럼 일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신경 쓸 건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곧 있음 경매장도 가긴 해야 하는데.”
샤를렌 경매가 위험한 곳이었다면 고민을 했겠지만, 다행히 여긴 그리 위험이 될 만한 것이 없었다.
무식하게 검만 휘두를 줄 아는 기사들만 오는 곳이 아니라, 귀족들이 모이는 일종의 비밀스러운 사교 모임이기 때문이다.
물론, 네임드 캐릭터가 쟁쟁하게 등장하긴 하겠지만 서로 주먹질을 하며 싸우는 곳은 아니기에 비교적 안전한 곳이었다.
그리고,
[샤를렌 경매]
-경매에 참석하십시오.
-1개 이상의 경매품을 구입하십시오.
-보상으로 5골드를 얻습니다.
이걸 보고 그냥 넘길 순 없지.
거기서 파는 아이템들도 구경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것이 나타나면 하나쯤은 구매를 해볼 생각이었다.
“대기사단장님. 아론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론의 목소리에 나는 배를 긁적이던 손을 멈췄다.
책상 위에 올려 두고 있던 발도 내렸다.
거북이처럼 기울어져 있던 목도 꼿꼿하게 세워졌다.
“들어와라.”
목소리까지 굵게 만드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대기사단장님의 친위대가 되고자 수많인 지원자들이 경쟁을 펼쳤습니다.”
내 친위대, 그러니까 호위기사가 될 인재들을 뽑는 경쟁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당연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내 목숨을 지키는 일이지 않은가.
어정쩡한 놈들을 데려갔다가 도움도 안 되면 나만 곤란해진다.
그래서 일부러 아론을 내 친위대장으로 삼고 물갈이를 시켜 버린 것이었다.
그때 이후로 아론은 꾸준하게 호위 기사들을 새로 뽑고 있었다.
“이번에는 최종 10명의 기사를 대기사단장의 새로운 호위기사로 삼고자 합니다.”
아론은 내게 명단을 건네면서 말했다.
“다른 때와 달리 이번 경쟁은 꽤나 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수련 기사 하나가 의외의 성과를 보여 주어 결국 최종 10인에 이름을 올렸으니까요.”
······수련 기사?
순간 내 머리에 스치는 이름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니. 진짜잖아?’
명단에는 알렉산더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세요.
정말 여기에 못 박으려고 하는 건가, 이놈은?
“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밖에 대기 중입니다.”
우르르 안으로 들이기 보다는 그냥 밖에서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직접 나가 보니, 이제 갓 입대한 신병마냥 기사들이 빳빳하게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나는 그들을 거만하게 한 명씩 내려다 보았다.
다들 평균 무력 스텟이 60 안팎이었다.
엄청 약하지도, 그렇다고 강하지도 않은 적당한 스텟.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물론,
[알렉산더]
무력: 70
지력: 70
마력: 70
노란 머리에 푸른 눈빛.
과연 진주인공.
그 짧은 사이에 벌써 성장해 버렸나.
하도 사기적인 특성만 가지고 있어서 논밭에 굴러도 쑥쑥 자랄 놈이다.
그래서 원래 스토리 라인대로 따라갔다면 놈은 내 호위기사가 아니라,
‘카르만 밑으로 들어갔어야지.’
카르만의 위용 넘치는 모습에 반하여 알렉산더는 황실 기사에 지원하게 되고 종국에는 대기사단장이 되어 활약을 펼치게 된다.
그것이 알렉산더 일대기였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개발자의 음모인지 알렉산더는 카르만이 아니라 내 밑으로 들어왔다.
그것도 타의가 아니라 본인의 의지로 말이다.
‘이놈을 어떻게 하면 좋나.’
주인공의 손에 대륙의 미래가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내가 다른 네임드 캐릭터로 플레이를 했다면 주인공이 뭘하든 크게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됐으니,
‘최대한 스토리대로 잘 따라갈 수 있게 도와줘야겠지?’
내가 살려면, 이 게임의 해피엔딩을 보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맞았다.
거기다 나는 주인공의 엄청난 비밀을 하나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 몇 명 밖에 모르는 그 비밀!
‘알렉산더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
엘프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대륙에서 금지하는 서로 다른 종족간의 사랑으로 태어난 하프.
그것이 알렉산더의 숨겨진 비밀이었다.
그래서 놈은 다른 엘프들처럼 마력을 쉽게 다룰 수가 있고, 마법 성장 속도 역시 굉장히 빠르다.
물론, 이걸 구태여 밝힐 생각은 없다.
지금 밝혀봤자 나한테 좋을 것도 없고.
알렉산더한테 괜한 원한을 살 수도 있다.
하프는 대륙에서 금지하는 일이니, 이 일이 밝혀진다면 알렉산더와 그 부모는 무조건 처형이다.
‘친하게 지내면 나중에 은혜도 갚겠지.’
주인공은 무조건 선한 인물이니, 지금부터 좋게 대해 준다면 나중에 대륙의 영웅이 되어서도 나를 잊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합지졸들을 보는 것 같군.”
이제 막 친위대로 뽑힌 이런 애송이들 앞에서 아슬란의 허세가 좋은 말을 꺼낼 리 없다.
등허리를 타고 전율처럼 퍼져 나가는 강렬한 허세는 거만하고 날카롭게 기사들을 내려다보았다.
“읏.”
알렉산더 역시 나와 눈을 슬쩍 마주치고는 얼른 고개를 숙여 버렸다.
그것이 하필이면 내 눈에 띄고 말았다.
“너희는 나 아슬란의 친위대다. 그런데 누가 겁쟁이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으라고 했지?”
이 미친놈.
또 시작이구나.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끝인가?”
“······.”
나는 내 몸 가득 퍼져 나가는 허세를 따라 아래로 내려왔다.
마른침이 그의 목울대로 넘어가는 것이 훤히 보일 정도였다.
“너희는 나의 얼굴이자, 나의 수족이다. 그에 걸맞는 말투와 행동을 갖춰야 할 것이며, 기사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을 저지른다면 그 목을 칠 것이다.”
나는 여전히 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도 못 하고 있는 알렉산더를 하찮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분명 난 친해지려고 한 건데, 왠지 사이가 더 험악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네놈한테서는 겁쟁이 냄새가 나는군."
이 미친 허세의 발현에 주인공과의 관계가 첫 단추부터 잘못 꿰이고 있었다.
알렉산더의 겁먹은 저 얼굴이 아슬란의 허세를 자꾸만 들끓게 만들었다.
“대륙 최강자가 이끄는 친위대 역시 최강이어야만 한다. 넌 그리 될 수 있는가?”
나의 물음에 알렉산더는 꺼져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대답에서조차 확신이 느껴지지 않는구나. 그런 놈이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난 너 같은 애송이를 곁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 더욱 그를 몰아붙였다.
"지금이라도 자신이 없다면 떠나라."
그러자 알렉산더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되,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뒤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대기사단장님이 바라시는 그런 기사가 되어 보이겠습니다! 당신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고의 기사로 거듭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곁에 있게 해주십시오.”
그런 알렉산더의 번쩍이는 푸른 눈빛을 바라보며 나는 슬몃 미소를 지었다.
“기개는 마음에 드는군.”
그리고 그에게서 몸을 돌리며 말했다.
“친위대에 온 것을 환영한다.”
물론,
펄럭~
붉은 망토를 과장되게 펄럭이며 퇴장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