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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35화 (35/200)

35화

35화.

“칼끝을 똑바로 세워라!!”

“너희는 자랑스러운 일라이 왕국의 기사단이다!”

“예!!”

기사들은 오늘도 대열을 맞추고 열심히 창칼을 휘두르며 훈련에 매진했다.

오늘 훈련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아론이었다.

“그렇게 가벼이 칼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예!”

내가 알기로 아론에게는 군대의 사기를 올림과 동시에 훈련 효과를 증대해 주는 특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괜히 사기캐 중 하나로 뽑히는 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게임을 플레이 하게 되면 어떤 캐릭터가 좋은지 공략글을 보면 알 수가 있는데, 얻어두면 좋은 장수 중에 항상 아론이 포함되어 있었다.

‘근데 기사단만 잘 키우면 뭐하나.’

전략적인 진법과 창칼을 다루는 무력으로 적과 싸워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긴 칼만 가지고 싸우는 중세 시대가 아니다.

마법사들과 그들을 모아서 만들어낸 마법병단이 있는 판타지 세계다.

근접에서는 당연히 기사단이 강하겠지만, 원거리에서는 마법병단을 이길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 왕국도 똑같이 마법병단을 키우면 될 일이겠으나,

‘어휴. 이 병신 같은 왕국은 어떻게 제대로 된 마법사도 없냐.’

네임드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도 최소 마력 75 이상의 마법사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현재 일라이 왕국에서 마력이 제일 높은 마법사의 스텟이 고작 62였다.

‘혹시라도 적국이랑 싸우게 될 때 마법병단이 제대로 안 갖춰져 있으면 곤란한데.’

내게는 마법사가 필요했다.

우리 왕국의 마법병단을 키울 수 있는 마법사가!

‘지금이라도 떠돌이 마법사들을 알아봐서 우리 왕국으로 데려와야 하나.’

속세를 떠나 이리저리 대륙을 방황하고 있는 마법사들이 있다.

당장 방랑자라 불리는 소드마스터도 있는 마당에, 스텟이 준수한 마법사가 없겠나.

문제는 그놈들이 워낙 위치를 자주 바꿔서 쉽게 찾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이래도 방치할 수는 없으니까.’

마법병단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실력 좋은 마법사 하나쯤은 필수였다.

“기사단이 전보다 훨씬 강해지지 않았습니까?”

누군가 했더니 호레스 영감이었다.

“대기사단장님의 위용 덕분에 사방에서 인재들이 모여 들고 있습니다. 우리 왕국의 기사가 되어 대기사단장님 옆에서 싸우고자 지원하는 자들도 넘쳐 나고 있지요.”

호레스는 아주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오메르 왕국과도 교역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경제 상황도 굉장히 좋은 상태입니다.”

적어도 아직은 돈 떨어질 일이 없다는 뜻이었다.

“여러 상단이 우리 왕국을 방문하고 있고, 그에 따라 들어오는 세금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 돈으로 천천히 군비를 올려 신병을 받아들이고 있으니, 우리 왕국의 병력이 전보다 훨씬 더 거대해질 겁니다.”

호레스가 가리키는 곳에는 이제 막 일라이 왕국에 들어와 훈련을 받고 있는 신입병들이 있었다.

그들은 훈련교관의 명령에 따라 제식을 맞추며 걷고 있는 중이었다.

“대기사단장님께서 겉으로 드러나는 기사의 품위와 품격을 강조한다는 걸 알기에 제식 훈련에도 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사단 훈련소에 들어간 훈련병마냥 열심히 딱딱하게 걸음 걸이를 맞추며 힘들게 걷고 있었구나.

이건 내가 아니라 나 이전의 아슬란이 병적으로 허세에 집착하면서 생긴 일 같았다.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여기서 보니 확실히 제식을 맞춰서 걸으니까 보기에는 참 좋았다.

그래. 약하면 저런 거라도 잘해야지.

“오늘도 훈련에 참관하십니까?”

“잠깐 둘러 볼 생각이다. 이따 입단식도 있고 하니.”

내가 이렇게 틈틈이 훈련 상황을 확인하는 이유는 이 게임의 특징 때문이다.

대기사단장이라는 사람이 훈련에 관심이 없고 기사들에게 전부 맡겨 버리면 어느 순간 놈들은 농땡이를 피우면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렇게 한번씩 나와 눈을 부라리며 고삐를 느슨하지 않게 잡아 주는 것이 중요했다. 무엇보다,

‘아슬란의 특성을 잘 활용해야지.’

[군림], 그리고 [사기] 특성을 잘 활용한다면 훈련 효과를 더욱 맛있게 뽑아 먹을 수 있었다.

특히 오늘 있을 입단식에서 그 특성들을 이용한다면 군의 사기를 한동안 높이 유지가 가능하다.

“목소리가 그것 밖에 안 되나!? 우리 일라이 왕국에 너희 같이 썩어 빠진 정신을 가진 놈들은 필요하지 않다!”

“죄송합니다!”

“더 크게!!”

“죄송합니다!!”

갑자기 군대 PTSD가 오는 것 같았다.

나는 이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악마 같은 훈련 교관에게 얼차려를 받는 신병들을 살펴보았다.

‘쓸만 한 놈은 없나?’

신병들 위에 떠 있는 정보를 확인해 봤지만, 일반 백성처럼 스텟은 나오지 않고 이름만 뜨는 경우가 허다했다.

가끔 떠도 무력 스텟이 30을 밑돌았다.

‘아직 성장을 안 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일반 병사들 안에서 금덩이가 나오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긴 했다.

저들은 개개인으로 약할지 모르나, 군대라는 조직으로 모이게 되면 그 힘은 단순히 무력 수치로 가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뭐 하나 건지면 좋을 거 같았는데.’

떡잎이 보이는 놈들을 몇 명 뽑아 내 호위기사로 훈련시킨다면 앞으로 유용하게 쓸······.

[알렉산더]

“······?”

내, 내가 뭘 잘못 봤나?

나는 눈을 껌뻑이며 다시 한번 확인을 해보았다.

[알렉산더]

무력: 65

지력: 65

마력: 65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미친. 저놈이 왜 여기 있는 거야?’

알렉산더.

이 게임의 주인공.

위기에 빠진 대륙을 구할 영웅!

그리고,

‘온갖 S급 특성이란 특성은 다 가지고 있는 사기캐!’

그것이 바로 주인공 알렉산더였다.

이 게임을 무조건 깨라고 개발자들이 만들어 놓은 캐릭터라는 것.

그런 엄청난 분이 지금 저기에 있다.

“26번 훈련병. 그것 밖에 못 하나!”

“죄송합니다!”

“엎드려!”

“옙!”

그것도 훈련 교관의 꽥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흙먼지 속에 얼차려를 받는 중이었다.

* * *

침착하자.

나는 심호흡을 하며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아니.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상하잖아?”

알렉산더가 다른 곳도 아니고 대체 왜 일라이 왕국에?

플레이어가 알렉산더를 고르지 않고 게임을 진행할시, 세 가지 루트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알렌산더가 모험가로써 대륙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이고,

두 번째 루트는 왕국 마법병단에 들어가 대마법사가 되어 대륙을 구하는 것,

마지막 세 번째는 강대국의 일반 병사로 들어가 그곳에서 기사가 되어 그 능력을 인정받아 대기사단장이 되는 것이다.

“지금 루트를 보면 세 번째인데.”

문제는 알렉산더가 들어가는 왕국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었다.

카르만이 있는 ‘칼라’ 왕국과 기사의 왕국이라 불리는 ‘만’.

세 번째 루트를 타게 되면 둘 중 하나에 들어가는 것이 정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전혀 스토리와 관련이 없는 일라이 왕국에 들어왔다.

“이것은 호재인가······ 아니면 악재인가······.”

원래는 스토리 라인에 따라 칼라 왕국으로 들어가 카르만의 인정을 받고 차기 대기사단장이 되어 그 영향력을 대륙 전체에 끼쳐야 한다.

서로 다른 종족끼리의 분쟁을 해결하고 그들을 화합시키면서 힘을 모으는 것이 알렉산더의 역할이라는 것!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져도 너무 달라지는데.”

이걸 어쩐다.

쫓아낼까?

아니다.

내가 별 이유도 없이 쫓아낸다면 알렉산더가 앙심을 품고 나중에 복수할 수도 있잖아. 그렇다고 이대로 놔두기에는······.

“차라리 내 옆에다 두고 지켜봐야 하나?”

지금이야 스텟이 65 밖에 안 되지만, 놈의 특성상 순식간에 성장을 이뤄낼 것은 자명한 일.

만약 내가 놈을 호위기사로 삼아 옆에다 놔둔다면 엄청난 방어 수단을 얻게 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주인공을 호위기사로 삼으려는 건 아마 나 밖에 없을 거다.”

발칙한 상상이긴 했지만, 주인공이 루트에 따라 무사히 대륙을 구해낼 수 있도록 내가 옆에서 도움을 준다면······.

“나도 살고, 이 대륙도 살고 그럼 모두가 해피엔딩이네?”

그런 뒤 난 이 병신 같은 게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으면서 나는 박수를 딱! 쳤다.

바로 그때.

“대기사단장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기사들이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밖에서 들리는 말에, 행복한 상상으로 흐리멍텅하게 풀어져 있던 표정이 굳어지고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갔다.

“곧 나가지.”

“예.”

입단식 준비가 전부 끝난 모양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준비를 마쳤다.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하고 입고 있는 갑옷도 정갈하게 했다.

그리고 절대 빠질 수 없는 망토도 지저분한 곳이 없도록 빳빳하게 세웠다.

‘귀찮긴 하지만.’

왕국의 민심을 항상 주시하며 높은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것처럼, 군의 사기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야 혹시라도 전쟁이 터졌을 때 더 빠른 대처가 가능하며, 반란도 억제할 수가 있다. 그러니 귀찮더라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대기사단장님께 모두 경례!”

“충!”

내가 등장하자 입단식을 위해 모여 있는 수천의 기사들이 검을 높이 들며 예를 차렸다.

하-. 그래.

이 맛이지.

군대 사단장들이 왜 꼭 쓸데없이 사람들을 연병장에 가득 모아 놓고 똥개 훈련을 시키나 했더니, 이 뽕맛 때문인 것 같았다.

수천의 병사가 오직 나를 위해 모이고, 나를 위해 경례를 한다면 그 기억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

나는 잠시 공간을 가득 채운 기사들을 내려다보았다.

기초 훈련을 끝내고 이제 정식으로 일라이 왕국의 수련 기사가 된 신입 병사들을 축하하기 위해 왕국 내에 있는 거의 모든 기사가 모여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심장이 떨려서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 하고 내려오겠지만,

“자랑스러운 일라이 왕국의 기사가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들의 시선과 이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아슬란의 병적인 허세와 심취 앞에서 긴장감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오히려 저들이 나를 보고 더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너희는 앞으로 이 왕국과 대륙의 무한한 영광을 위해 큰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혈맥을 따라 펄떡이고 있는 허세를 거스르려 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그 과정은 절대 순탄치 않을 터. 누군가는 그 과정 속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신입 병사들이 조금 경직된 표정을 지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난 이들을 겁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무의미하지 않다. 너희의 숭고한 희생을 누군가가 기억하는 한, 영원한 별이 되어 남아 있을 것이다. 바로 우리 왕국을 위해 죽은 영웅들처럼 말이다.”

단지, 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은 것이 있었을 뿐.

“그리고 너희를 끝까지 기억하는 건 바로 나 아슬란이 될 것이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자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의 정보가 저들의 머리 위로 나타났다.

“라만, 리펠, 제딘, 루오스.”

나는 한 명씩 눈을 마주치면서 그들 위에 있는 이름을 호명했다.

그러자 그들은 몸을 들썩이며 놀란 눈빛으로 빤히 나를 쳐다보다 대답했다

“네, 넷!!”

그 외에도 나는 계속해서 눈에 보이는 사람마다 이름을 불렀다.

“알리, 로건, 루미네.”

“에, 옙!!”

그들 모두 놀란 목소리로 대답하기 바빴다.

그렇게 몇 명 더 이름을 부르다 나는 다시 기사들을 스윽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여기 있는 너희 모두의 이름을 알고 있다.”

“!?”

왜냐하면 내 눈에는 이들의 이름이 보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너희들 중 누군가 이 왕국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했을 때, 그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 나는 너희들의 이름을 전부 머리에 담아 두고 있다.”

나는 꼿꼿하게 세워진 허리를 따라 올라오는 뻔뻔한 허세를 근엄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담았다.

“세상 누구도 너희를 기억하지 못 한다고 해도 나 아슬란은 그대들의 이름과 그 용맹함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저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그것은 더욱 나의 허세를 자극하며 들끓게 만들었다.

“너희는 나의 분신이며, 나의 칼이다. 어떤 적을 상대해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희들과 함께 하고 있다. 내가 너희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너희는 나 아슬란을 지키기 위해,

“이 왕국과 이 대륙의 미래를 위해.”

나의 안전과 이 게임의 끝을 위해,

“두려워하지 말고 싸워라.”

나는 정점을 찍은 허세로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와 동시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어디선가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망토가 길게 펄럭였다.

“와아아아!!”

그 망토의 펄럭임과 함께 병사들이 전부 칼을 높이 들며 함성을 질렀다.

* * *

“대기사단장님!!”

“우와아아-!!”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그 주체할 수 없는 떨림은 목소리가 되어 알렉산더는 동료들과 함께 외치고 있었다.

아슬란, 그 위대한 이름을.

“으흐흑. 훈련은 진짜 힘들었지만, 들어오길 잘했어.”

“저런 분이 우리의 대기사단장이시라니.”

“이제 그럼 내 이름도 저분이 알아주시는 걸까?”

“당연하지! 이제 우리도 일라이 왕국의 기사니까!”

땅이 흔들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함성이었다.

목소리만으로도 적의 대군을 물리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만큼,

“대, 대단하다.”

고작 말 몇 마디로 이토록 사람의 마음에 불을 지필 수가 있다니.

알렉산더는 후들 거리는 다리가 진정되지 않았다.

과연 아슬란은 엄청난 인물, 아니.

“영웅이구나.”

저것이 자신이 그토록 꿈에 그리던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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