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0.01초 소드마스터 34화
“······니미. 뭐가 저렇게 빡세?”
왕궁을 나서는 로엔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았다.
그러자 혹시 누가 들었을까, 주변을 살피며 부단장이 말했다.
“단장님. 항상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고 제사장님께서도 누누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빡센 걸 빡세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
로엔은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위에다 이걸 뭐라고 보고해야 하나.”
무슨 일이 있어도 아슬란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데려가진 못할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다시 들어가서 설득을 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 그럼 네가 가서 해볼래? 아까 보니까 한 마디만 더 하면 반갈죽 낼 것처럼 보이던데.”
“그, 그건······.”
기사들의 반응에 로엔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방금 전 그 광경을 본 자라면 누구나 두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으리라.
제 아무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기사라고 해도 말이다.
“아슬란님께 잘 말씀을 드린다면 허락을 해주실 수도······.”
“님? 언제 봤다고 님이야.”
기사들의 말투에 아슬란을 향한 존칭이 아주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검의 끝을 보신 분이지 않습니까. 기사라면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뭐야. 다들 같은 생각이야?”
“······.”
침묵은 곧 긍정을 뜻한다.
그 딱딱한 성기사들이 외인이나 다름없는, 그것도 교단을 겁쟁이라 모욕하는 아슬란에게 존경심을 품는다라.
“하긴. 눈이 돌아갈 만도 하지.”
검의 끝을 본 자는 신검합일을 이루어 검에게 혼을 부여할 수 있다고 했던가.
그건 그저 전설처럼 치부되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전각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상대의 정신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강력한 검명을 방금 이들은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
“검의 끝을 보는 자는 만물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으며, 손가락을 까닥이는 것만으로도 군대를 멸절시킬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검의 끝을 본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참으로 많았다.
물론,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듣기만 했을 뿐이다.
저 옛날 대륙 최강의 검으로 불렸다는 ‘라일라칸’은 검의 끝을 본 유일한 검사로, 그는 300년 전 테키나 족속을 몰아내는 데에 엄청난 공을 세웠다.
그가 검을 휘두르면 천공이 갈라지고 대지는 공포에 떨었으며, 그의 검이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적들은 혼비백산 도망치기 바빴다.
“이거 순 거짓말인 줄 알았더니.”
교단에 올라온 보고 중 로엔의 기억에 강렬히 남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아슬란이,
“악마가 된 루시안을 고작 손가락 하나만으로 거대한 검강을 일으켜 그 몸을 반쪽 냈다는 거. 그게 사실이었나 보네.”
“단장님께서는 그건 헛소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아슬란이라는 사람을 마주하고 나니까 생각이 달라졌다.”
행실은 조금 하자가 있어도 실력 하나만큼은 교단에서 인정해 주었기에 로엔은 어울리지도 않는 성기사단장이 되었다.
뭐,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고는 하나 로엔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강자라는 것을 증명한 것이니까.
그 덕분에 지금껏 그는 여러 강자를 만나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의 떨림은 없었다.
그 유명한 카르만을 마주했을 때도 이 정도로 손이 땀에 축축해지진 않았다.
그렇기에,
“돌아가자.”
아무리 교단의 확고한 명령이라고 해도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저, 정말 이대로 말입니까? 교단에서 엄청난 문책이 있을 겁니다.”
“그럼 여기서 한바탕 전쟁이라도 벌일까? 넌 저 괴물이랑 싸우고 싶어?”
“······.”
“아슬란이 정말 검의 끝을 본 소드마스터라면 지금 우리 군대로는 안 돼. 괜히 이런 곳에서 개죽음당하긴 싫어.”
로엔이 이 정도로 몸을 사리는 건 기사들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그 카르만 앞에서도 감히 고개를 추켜들며 대들다가 겁대가리를 상실한 놈이라는 얘기를 듣지 않았던가.
그런 로엔이 아슬란 앞에서는 한 없이 작아졌다.
“······.”
일라이 왕국 밖으로 나가기 전, 로엔은 뒤를 돌아 아슬란이 있을 왕궁을 바라보았다.
교단과 자신의 힘만을 믿고 함부로 까불고 다니면 안 된다는 걸 오늘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세상에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강자들이 많다.
* * *
“아뢰옵니다. 로엔과 그의 성기사들이 현재 성 밖으로 나가는 중입니다.”
전각 안은 충격으로 휩싸여 있었다.
신하들은 그저 입만 쩍 벌리고 있는 터라 웅성거림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런가. 알겠다.”
그저 아슬란의 목소리만 울림이 남아 전해질 뿐이었다.
“대, 대기사단장님. 방금 그건······ 검명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넬라 기사단장의 말을 시작으로 그들은 하나둘 정신을 되찾으며 거들었다.
“대륙 최강의 소드마스터였던 라일라칸께서도 늘 검명을 일으켰다고 들었습니다.”
“오직 검의 끝을 본 존재만이 검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들었거늘.”
“그렇다는 건 역시 아슬란 대기사단장님께서······!”
그러나 그들의 기쁜 목소리도 잠시.
“호들갑 떨지 마라.”
묵직한 아슬란의 음성에 그들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불쾌한 얼굴로 아슬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칼을 허리춤에 매며 상석에서 내려왔다.
“검의 끝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함부로 운운할 만한 것이 아니다.”
“······.”
“내 힘의 지극히 작은 부분만 보여줬을 뿐. 그러니 고작 이런 거로 시끄럽게 굴지 마라.”
“소, 송구합니다.”
아슬란은 전각 입구 쪽으로 당당하고 격조 있게 걸어 나갔다.
펄럭~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퇴장하는 것 역시 한결같았다.
그제서야 기사들과 신하들은 참았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대기사단장님의 위세가 커져 가는 것 같지 않소?”
“예. 숨을 쉬기 힘들 정도입니다. 어떻게 저리 계속 강해지실 수가 있는 것인지······.”
“저분이야 말로 진정한 소드마스터이지 않습니까. 그에 비해 하찮은 우리들은 감히 바라보는 것조차 힘든 것이겠지요.”
이들의 얼굴에는 아슬란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경외심도 함께 있었다.
그러므로 이건 강압적인 공포가 아니었다.
카리스마.
사람들을 저절로 따르게 만들고 경외심을 들게 만드는 아슬란의 능력이었다.
“그런데 교단이 이제 어찌 나올까요?”
“흐음. 확실히 이번 일로 교단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는 것은 아닐지.”
“교단과 사이가 나빠지면 여러모로 곤란할 텐데······.”
신하들의 걱정에 넬라 기사단장이 말했다.
“무엇을 그리 걱정한단 말이오?”
“······?”
“처음부터 감히 우리 아슬란 대기사단장님께 무례한 모습을 보인 건 바로 교단이오. 그분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은 정작 필요할 땐 오지 않았소. 결국 모든 해결은 우리 위대하신 아슬란님이 하셨지!”
핏대를 세운 넬라의 분노 섞인 목소리에 신하들은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음흉한 속내를 가진 놈들에게 우리가 왜 절절매야 한단 말이오! 우리에게는 아슬란 대기사단장님이 있소. 그분의 힘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으며 저 악마마저도 그분을 두려워하고 있소.”
“옳소!”
“아주 옳은 말씀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시오. 교단이든 누구든 아슬란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한,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없소!”
“오오-!”
신하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호레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한때 아슬란을 죽여야 한다며 작당을 하던 그들이 정말 맞는 것인가.
특히 넬라는 아슬란을 무슨 신처럼 떠받들고 있었다.
지금 상황은 마치 광신도들을 모아 놓고 그들이 따르는 신을 찬양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런 변화는 썩 나쁘지 않구나.’
교단과 척을 진다는 건 무척 발칙하고 위험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호레스는 저들의 뜻을 막고 싶지 않았다.
보아라.
그동안 나약하고 저 밑바닥에서 기어 다니며 서로 싸우기 바빴던 일라이 왕국이 지금은 서로 화합하여 강렬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바로 강대국이 되는 빛을 말이다.
‘그것도 아슬란님을 중심으로 말이지.’
그렇기에 호레스도,
“옳은 말이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없소이다!”
주먹을 높이 들며 저들과 함께 환호성을 내질렀다.
* * *
‘어휴. 이놈의 허세는.’
서둘러 전각 밖을 나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놈의 병신 같은 허세는 전각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도 지랄이었다.
‘지극히 작은 힘은 개뿔.’
나는 전각 안에서 부렸던 손발이 오글거리는 허세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주변에 눈이 많아 속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을 뿐, 겉으로는 아주 꼿꼿하고 품격 있는 발걸음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확실히 갔겠지?’
내가 이렇게 급히 전각을 나선 것은 로엔과 성기사들이 정말로 돌아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놈들은 군말 없이 돌아간 것 같았다.
3천 명이나 끌고 왔길래 정말 성안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걱정했지만, 놈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떠났다.
로엔, 그놈 성깔이 어지간하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잘도 참았네.
하지만 아무 일 없이 돌아갔다고 해서 걱정거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 사사건건 교단이 태클을 거는 건가?’
소환 명령에 불응하는 것에 모자라 비겁한 겁쟁이들이라며 모욕까지 했으니, 앞으로 저놈들이 얼마나 내 일을 방해하려 들지.
‘하여튼 도움 안 되는 광신도 새끼들.’
그래서일까.
하루라도 빨리 내가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국이 멸망해도 나 혼자만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말이다.
‘경매부터 바로 참석해서 쓸만 한 아이템이 있으면 사고, 퀘스트도 깨면 돼.’
그럼 그 보상으로 얻게 될 아이템들을 둘러 강제 스펙업을 시켜 버리면 된다.
‘기다려라, 개발자 놈들.’
너희들이 아무리 억까를 하려고 해도 소용없다.
고인물이 왜 고인물인지 알게 해 주마.
이 게임을 깨고 나서 내가 꼭 너희들 찾으러 간다.
꼭!
‘그런데······.’
그렇게 다짐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려는 때였다.
나는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검을 만지작 거렸다.
‘이 자식은 대체 뭐지?’
전각에서 검이 진동하며 마치 울음을 터트리는 것 같았다.
그걸 보고 사람들은 검명이라 소리쳤다.
‘발동 조건이 대체 뭐야?’
내가 부를 땐 대답도 안 하는 놈이, 오늘도 그렇고, 루시안 때도 그렇고 거기다 레베카 때도 기이한 반응을 보였다.
지금도 봐라.
열심히 속으로 부르고 있지만, 놈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꼭-.
‘아슬란의 병적인 허세와 심취가 맥스까지 치달으면 이놈도 함께 발광을······.’
순간 바닥을 걷고 있던 발걸음이 멈췄다.
‘설마 그건가?’
이 검에게 붙어 있는 또 하나의 효과.
[검의 의지]
-검이 주인의 의지를 따르며 공유합니다.
-검을 다루지 않아도 검의 능력을 일부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설명에 적힌 대로, 찬란한 베라크의 보검은 나와 의지를 공유한다.
하지만 놈은 평소에 내가 말을 걸어도 가만히 있다가 병적인 허세가 발현되는 순간, 그것도 치사량을 넘나들 정도의 허세력이 올라오는 순간에만 갑자기 반응을 한다.
그렇다는 건,
‘의지를 공유한다는 게 아슬란의 허세를 공유한다는 거였어?’
맙소사.
‘몸뚱이도 지랄인데, 이젠 검까지 허세를 부리는 거냐?’
이마를 탁 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이놈은 전설처럼 치부된다는 에고 소드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아슬란의 허세에 물들어 버린,
허세 소드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