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1초만 소드마스터 31화
[간악무도한 아슬란을 죽이고 일라이 왕국을 오메르 왕국 아래에 두어 심판하겠다!]
레베카의 정보대로 오메르 왕국은 일라이 왕국에 전쟁을 선포했다.
문제는,
‘왜 나한테 지랄이야.’
누가 보면 내가 일라이 왕국 왕인 줄 알겠네.
억울하다.
‘이렇게 되면 정석대로 가는 수밖에 없나.’
내게 남은 선택지는 두 개다.
엘버스테인을 따르는 지지 세력과 힘을 합쳐 오메르 왕국과 전쟁을 벌이거나, 아니면 스토리를 따라 루시안을 설득해 리버테일을 몰아내거나.
‘당연히 후자를 택해야지.’
전쟁은 싫다. 무섭다.
난이도는 둘째 치고 사방에서 창칼이 날아오는 곳을 내가 어떻게 가라고.
게임 모니터에서만 즐기던 그 웅장한 전투씬을 직접 몸으로 경험해 보고 싶진 않다.
‘우리 왕국의 피해는 최소화해야 돼.’
자기들끼리 싸우다 죽는 한이 있어도 일라이 왕국의 새우등이 터지게 해서는 안 된다.
‘정 불리하다 싶으면-.’
그땐 엘버스테인을 넘기고 끝내면 된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슬란 대기사단장님.”
나는 때마침 리카르 성주와 함께 들어오는 엘버스테인을 바라보았다.
“어서 오시오. 리카르 공.”
긴장을 한 것인지, 리카르의 안색이 굳어 있었다.
그는 경직된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우선, 저희 왕자님을 그동안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메르 왕국에 언제든 넘길 수 있는데도 끝까지 그리하지 않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감동했습니다.”
리카르 성주는 확실한 엘버스테인의 편이었다.
스토리를 진행함에 있어서도 리카르 성주의 도움은 꼭 필요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저 무엇이 정의이고 불의인지 판단을 했을 뿐. 별거 아니오.”
[리카르]
무력: 68
지력: 72
리카르는 그냥 평범한 기사였다.
어디 하나 특출난 곳이 없는 놈이지만, 영지 개발이라는 특성이 있어서 성에 그냥 쳐박아 놓으면 알아서 개발을 하고 생산량을 뻥튀기시키는 내실용 기사라고 볼 수 있다.
엘버스테인 이놈은 나중에 왕이 돼서 돈 뜯어 먹을 곳이 참 많겠구나.
부럽다.
“군사는 어느 정도 데리고 오셨소?”
“2천입니다. 오메르 왕국은 아마 2만까지 군사를 모을 수 있을 겁니다.”
2만이라.
우리 일라이 왕국이 최소 방어 병력만 놔둔다고 치면 8천 정도밖에 끌어모으지 못한다.
두 배나 차이나는 전력이었다.
“전면전으로 간다면 엄청난 혈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소문대로 오메르 왕국이 테키나 족속을 등에 업고 있다면 굉장히 힘든 전투가 되겠지요.”
“공은 우리가 패배할 거라 생각하시오?”
“······예?”
“단순히 우리의 숫자가 적다고 해서 전쟁에 패배할 것 같소? 전쟁은 숫자 놀음이 아니오.”
리카르 성주는 눈을 껌뻑이기만 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허세가 그런 그를 거만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히려 이걸 묻고 싶군. 그 2만의 군대가 전부 몰살당하면 오메르 왕국은 계속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
“모, 몰살이요?”
“나 아슬란은 진지하게 이 전투에 임할 것이오. 그 말은 즉, 단 한 명의 적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뜻이지. 그럼 우리가 승리를 해도 오메르 왕국은 대부분의 기사를 잃는 것이니, 왕권을 계속 보존할 수 있겠소?”
엘버스테인과 리카르 성주, 그리고 그의 부관들 모두 급격하게 표정이 어두워졌다.
“눈앞에 승리만 보지 말고 그 후의 일을 생각하시오.”
“그럼, 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나는 슬쩍 웃으며 두 사람에게 루시안을 만나 그를 설득하라는 조언을 해주려는 찰나였다.
“대기사단장님! 급보입니다!”
기사 하나가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와 아뢰었다.
“오메르 왕국 루시안 대기사단장이 대군을 이끌고 와 현재 리브레 평야에 다다랐습니다!”
리브레 평야라면 로난 성까지 코앞이었다.
이런 참을성 없는 놈들을 봤나.
그거 잠깐 못 기다려서 금세 쳐들어왔냐.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리브레 평야에서 만나 협상을 하자는 서신을 보내기까지 했습니다.”
엥? 협상을?
‘이거 운이 따라주는 건가.’
우리가 직접 서신을 보내기도 전에 저쪽에서 먼저 협상 요청을 하다니.
원래 스토리와 조금 다르게 흘러가고 있긴 하지만, 루시안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니 일단 좋게 흘러가는 건 분명했다.
“그쪽도 뭔가 생각이 있는 모양이군.”
그러므로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리카르 성주가 다급하게 물었다.
“루시안 대기사단장을 만나시려는 겁니까?”
“그렇소.”
“무슨 흉계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
그러네.
하지만 그건 미리 기사들을 보내 철저히 확인을 한 뒤에 가면 괜찮을 것 같았다.
거기다 흉계든 뭐든 루시안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날로 로난 성과 일라이 왕국은 말발굽에 짓밟혀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를 꼭 스토리대로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만 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깟 흉계로 날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놈들도 알겠지.”
나는 망토를 멋들어지게 펄럭이면서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출정 준비를 하라.”
* * *
‘하- 이렇게 보니까 더럽게 많네.’
오메르 왕국이 이끌고 온 2만의 군사.
그 위용을 보고 있자니 진작 엘버스테인을 돌려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다시 한번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후회하기에는 늦지 않았던가.
“가겠다.”
나 또한 루시안과 마찬가지로 모든 군사를 이끌고 평야 중앙으로 갔다.
그곳에는 천막이 하나 쳐 있었는데, 그 안에는 루시안과 그의 부관들, 거기다 저번에 날 만났다가 도망쳤던 페리마라도 있었다.
[루시안]
무력: 91
지력: 70
대륙 9번째 소드마스터 루시안.
그는 천막 안으로 들어오는 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눈을 떼지 않았다.
난 그 부담스러운 눈길을 받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저건 왜 나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거야.’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시선이었다.
‘뭔가 좀 이상한데.’
원래 스토리대로라면 루시안은 리버테일과 엘버스테인 사이에서 고민하며 누구를 주군으로 모셔야 할지 갈팡질팡한다.
그러다 주인공의 설득과 엘버스테인이 가진 왕의 자질을 보고 결국 그는 마음을 정하게 되고 이 길로 오메르 왕국을 향해 그곳에 있는 리버테일을 왕의 자리에서 끌어 내리는 것이 정석 스토리였다.
그런데 여기 분위기가 좀 묘했다.
루시안은 전혀 고민하는 얼굴도 아니었고, 엘버스테인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있었다.
“여기로 우릴 부른 이유가 뭐지?”
무거운 적막을 깨는 내 물음에 루시안이 답했다.
“너와 담판을 짓기 위해서다.”
“······?”
나와 담판을?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굳이 우리가 머리를 써가며 치열하게 싸울 필요가 있나? 기사라면 마땅히 검과 검을 맞대고 싸워야지. 뒤에서 머리로만 싸우는 게 아니라.”
루시안의 말이 점점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난, 아슬란 너에게 정식으로 청하겠다. 나와 기사의 대결을 펼치자. 내가 진다면 목숨을 내놓지. 하지만 네가 진다면······.”
그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 목을 내놓아라, 아슬란.”
이, 이게 지금 무슨 귀신 호박씨 까는 소리야.
갑자기 왜 나한테 그래?
기사의 대결을 하자고?
그건 말 그대로 일대일로 붙자는 뜻이었다.
쾅-!
하지만 그때 내가 뭐라 답을 하기도 전에 엘버스테인이 상을 내려치며 일어났다.
“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왜 아슬란 대기사단장님을 이 일에 끌어들이는 것이냐! 너희들이 원하는 건 나 엘버스테인이 아닌가?!”
그러자 루시안은 그런 엘버스테인을 한심하게 바라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난 너한테 관심이 없다, 엘버스테인.”
“뭐라?”
“나약한 아비를 닮아 똑같이 나약한 놈인 너에게 무엇을 바란단 말이냐.”
잠깐.
이건 또 뭔 소리야.
루시안이 왜 저렇게 엘버스테인을 무시하고 있는 거지?
분명 스토리상 루시안은 엘버스테인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야 하는데?
“네 아비가 나약했기에 오메르 왕국은 쇠퇴했다. 그래서 난 왕국을 다시 살리고자 새로운 힘을 받아들였을 뿐. 그걸 깨닫게 해준 건 바로 너였다, 아슬란.”
하지만 스토리와 정반대로 루시안은 엘버스테인을 완전히 깔보고 있었다.
거기다 나를 통해 뭘 깨달았다는 거지?
“그러니 넌 거기서 입 닥치고 가만히 앉아만 있거라. 아슬란과의 대결이 끝난 뒤에 네 아비처럼 똑같이 내 칼로 죽여 주겠다.”
“네 아비처럼이라면······.”
“아- 아직 못 들었나 보군. 네 아비를 누가 죽였는지.”
루시안은 음흉한 입가를 보였다.
“네 아비의 숨통을 끊은 건 바로 나다.”
그러자 갑자기 옆에서 엄청난 투기가 느껴지더니,
“루시안!!”
엘버스테인이 루시안을 향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콰앙-!
두 사람이 충돌하면서 천막 안에 있던 모든 기사가 칼을 뽑았다.
엘버스테인의 칼에 앉아 있던 자리에서 밀려난 루시안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칼을 거둬라.”
그런 뒤 자신의 허리춤에 있는 칼을 천천히 뽑으면서 말했다.
“스승에게 도전을 하는 것이냐? 엘버스테인.”
“닥쳐라. 넌 내 스승이 아니다.”
“쯧. 스승에 대한 예의도 없는 놈이군. 어디 덤벼 봐라. 가르침을 주마.”
채앵-!!
엘버스테인은 힘을 다해 칼을 휘둘러 봤지만, 루시안은 그의 공격을 아주 가볍게 막아내고 있었다.
엘버스테인이 최근 성장을 했다는 건 알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루시안이다.
소드마스터라는 위명을 괜히 얻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콰콱-!
“윽!”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 엘버스테인은 루시안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가 없었다.
오히려 옆구리에 상처만 입은 채로 비틀거렸다.
루시안은 그를 향해 비아냥거리듯 말했다.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너는 네 아비처럼 나약하다. 하지만 목숨을 구걸한다면 살려 줄 수도 있다, 엘버스테인.”
“!?”
“네 아비도 죽는 순간까지 내게 목숨을 구걸하더군. 얼마나 그 모습이 처량하던지. 원통함으로 가득했던 그 눈동자가 아직도 선하다.”
“이놈!”
채애앵-!!
엘버스테인은 이번에도 오뚜기처럼 일어나 루시안에게 칼을 내려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엘버스테인의 무력 수치가 실시간으로 계속 올라가더니 마침내,
[엘버스테인]
무력: 90
지력: 85
90이라는 엄청난 수치를 달성했다.
성장 촉진이라는 특성, 그리고 분노라는 특성이 함께 발현되면서 나타난 현상인 것 같았다.
“루시안! 네 죄를 내가 물을 것이다.”
“······!”
루시안도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는지, 그의 표정부터가 달라져 있었다.
콰앙-! 콰아앙-!!
철과 철이 부딪히는 것이 아닌,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엘버스테인의 파상공격에 루시안이 밀리기 시작했다.
벌써 천막은 둘의 충돌에 의해 다 뜯겨 나갔으며 밖에서 대기 중이던 오메르 왕국과 일라이 왕국 병사들에게도 둘의 싸움을 관전할 수가 있었다.
“이 애송이가 감히!”
뒤로 밀려나던 루시안은 몸을 틀어 검을 휘둘러 보았으나,
촤아악-!
오히려 그것을 맞받아친 엘버스테인의 의해 그의 왼쪽 어깨에 피가 솟구쳐 올랐다.
“!?”
엘버스테인과 빠르게 거리를 벌린 루시안은 당황하며 제 몸에 흐르는 피를 살펴보았다.
“엘버스테인. 조금 성장했다고는 느꼈다만······.”
“너를 내 칼로 반드시 벌하겠다, 루시안!”
옳지. 그래! 바로 그거야!
그렇게 루시안의 목을 따는 거다, 엘버스테인!
나는 열심히 속으로 엘버스테인을 응원했다.
“흐흐흐. 우습구나.”
하지만 루시안은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는 이내 광기에 휩싸인 웃음을 터트리기까지 했다.
“설마 네가 나를 이 정도로 몰아붙일 줄은 몰랐다. 어쩔 수 없지. 나도 전력으로 상대해 주는 수밖에.”
그리고 그의 발밑에서부터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뿜어져 나왔다.
저건 바로,
“마, 마기다!”
어느 기사의 외침대로 저건 마기였다.
루시안 몸에서 저런 게 나온다는 건······.
‘설마 마수화?’
콰아아아-!!
내 직감대로 루시안의 몸이 기괴하게 꺾이면서 그 아래 솟구쳐 나오는 마기가 그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회오리처럼 몰아치는 강력한 마기 속에서 그르렁거리는 괴물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건 대체······.”
그 위협적인 마기에 엘버스테인도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우-.”
길고 거센 숨소리가 새어 나오면서 앞을 자욱하게 가리던 마기를 갈라 버렸다.
그곳에는 더 이상 루시안이 아닌, 마수화가 된 괴물이 서 있었다.
[루시안]
*마수화
무력: ???
지력: ???
말도 안 돼.
벌써 이 타이밍에 마수화라니.
마수화는 테키나 족속에게서 받은 마석으로 스스로의 힘을 증폭시켜 괴물이 되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 단계가 나오려면 스토리가 한참은 진행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초기 단계에서는 상대하기가 불가능하니깐.’
플레이어가 스펙업을 하고 착실하게 성장을 하지 않으면 깰 수가 없는 단계이기 때문에 스토리 초중반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초반 단계에서 마수화가 등장했다.
그것도 루시안을 통해서 말이다.
‘아무리 난이도가 극악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건 너무 하잖아.’
이건 개발자들이 선을 넘은 행동이었다.
아무리 고인물들의 플레이가 상식을 벗어났다고 해도 최소한 깰 수는 있게 만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그냥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플레이어를 짓밟아 버리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루시안. 결국 너마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겼구나!”
콰앙-!!
엘버스테인의 일갈에 루시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따라 함께 마검이 되어 버린 검을 내리 찍었다.
“크윽!”
엘버스테인의 무릎이 반으로 꺾였다.
마수화를 통해 키와 몸집이 두 배로 커져 버린 루시안의 칼을 받아내는 것조차 간당간당해 보였다.
“그러니까 네가 나약하다는 것이다. 이런 엄청난 힘을 악마의 힘으로 몰아가며 거부하다니.”
“크으윽-.”
“이대로 죽어라.”
루시안은 칼을 직각으로 휘둘러 엘버스테인의 몸을 단번에 잘라 버리려 했다.
이거 위험해 보이는데.
채애앵-!
하지만 가까스로 그의 칼을 막아낸 사람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아론이었다.
“넌 또 뭐냐?”
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 아론. 엘버스테인과 힘을 합쳐서 저 괴물을 쓰러뜨려!
그러나 그런 기대와는 달리,
콰아앙-!!
아이고. 저 쓸모없는 녀석들.
루시안이 휘두른 검격에 의해 두 사람 모두 저 먼발치까지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역시 저 둘로는 택도 없는 건가.
“루, 루시안 대기사단장님.”
“어째서 저, 저런 모습으로······.”
루시안의 부관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기들이 모시는 상관이 악마가 되어 버렸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자,
퍼억-!
루시안은 검은 마기로 뒤덮인 검강을 쏘아내 그들의 몸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날벌레처럼 왱왱거리지 말거라.”
“히, 히익!”
살아남은 부관들은 겁에 질린 채로 뒷걸음질을 쳤고, 루시안은 자신의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 하는 듯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는 동안 엘버스테인과 아론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흐흐. 이번 일격으로 확실하게 목숨을 끊어 주마.”
루시안은 두 사람을 한꺼번에 죽이기 위해 검에 힘을 불어넣었다.
‘이제 어떡하면 좋지?’
별의별 변수를 다 생각해 보긴 했지만, 설마 마수화가 등장할 줄은 몰랐다.
설마 벌써 마수화의 힘을 넘길 정도로 테키나 족속이 빠르게 부활한 것일까.
모르겠다.
그냥 머리가 멍해진다.
이대로 끝인가.
아론과 엘버스테인까지 죽으면 이제 저놈을 막을 사람은······.
“멈춰라.”
루시안이 칼에 담긴 강력한 마기를 두 사람에게 쏘아 보내려는 때였다.
“음?”
나도 모르게 튀어 나간 목소리에 루시안이 고개를 돌렸다.
미친. 이놈의 허세가 또!
“아슬란. 드디어 나설 마음이 생겼는가?”
루시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저 큰 덩치로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놈이 앞으로 발을 뻗는 것조차 보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스피드였다.
“이 힘을 보거라, 아슬란. 이 힘이라면 누구도 쓰러뜨리지 못할 자가 없다.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놈의 징그러운 얼굴이 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내가 대륙 최강자다.”
마수화로 인해 완전히 비틀려 일그러진 괴물 같은 루시안의 얼굴을 나는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에 숨결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에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대륙 최강자?”
활화산처럼 끓어 오르기 시작한 아슬란의 허세가 저 지독한 마기보다 더 독했다.
“악마의 힘 따위를 빌리는 자가 감히 그 위치를 입에 담는 것이냐?”
“악마의 힘 따위? 인간의 힘은 나약하다. 그러기에 새로운 힘을 담아야 한다. 그것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목소리에 골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러니까 네가 우매하다는 것이다.”
병적인 허세는 고작 저런 것으로 꺾이지 않는다.
“뭐라?”
“네가 인간의 힘을 아느냐? 그 무엇보다 신성하고 강한 힘을 네가 아느냐? 그걸 모르니 악마의 힘을 빌린 것이겠지.”
루시안은 비웃음 젖은 입가를 보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칼을 뽑아 직접 증명해 보이거라, 아슬란. 나의 의지가 무엇인지, 대륙 최강자의 의지가 무엇인지 이 자리에서 보여 주마.”
그러자 바로 그때.
우우웅-!
허리춤에 있던 베라크의 보검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이날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를 얼른 뽑아 달라고.
저 악마를 함께 베어 버리자고 말이다.
하지만,
“대륙 최강자의 의지라······.”
나는 검을 뽑지 않았다.
그저 검집 안에서 진동하고 있는 검을 붙잡은 뒤,
“그 말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도 알지도 못하는 놈이 잘도 지껄이는구나.”
검에 담긴 분노와 의지를 내 손끝에 담았다.
“네놈의 피를 내 칼에 묻히는 건 수치이자 모욕이다. 그러니-”
그리고 손을 들어 놈의 칼끝과 저 거대한 몸을 향해 그어 버렸다.
“꺼져라.”
그 순간.
⎯⎯⎯⎯⎯⎯!
손끝을 타고 흘러나간 검강이 그대로 루시안의 칼끝을 가르고, 그의 몸통마저 가르며 솟구쳐 올랐다.
“?”
루시안은 자신의 칼이 갈라지는 것을, 그것을 따라 흉측하게 변한 제 손과 팔이 갈라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는 곧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어, 어떻게 이런······.”
나는 앉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이제 알겠느냐, 루시안.”
그러고는 경악 어린 눈동자로 서서히 갈라지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이 바로 네가 나약하다 멸시했던 인간의 힘이다.”
"!?"
그와 동시에,
푸확-!
검은 피가 하늘 높이 솟구치며 루시안의 몸이 뒤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