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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30화 (30/200)

30화

1초만 소드마스터 30화

“하아압-!”

채애앵-!

두 검이 부딪히자 불꽃이 튀는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땀방울이 이마에 맺혀 있는 엘버스테인은 상대의 약점을 찾기 위해 눈알을 굴렸다.

그러다 빈틈이 발견되면 곧바로,

촤악-!

그곳을 향해 칼끝을 찔러 넣었다.

챙-!

하지만 칼이 닿는 곳마다 철저히 막히고 있었다.

바로 저 아론이라는 젊은 기사에 의해 말이다.

“오오.”

훈련장에 모인 기사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대결의 끝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엘버스테인. 오늘따라 칼에 힘이 많이 들어갔다.”

아론은 곧바로 손을 비틀어 엘버스테인의 칼을 쳐낸 뒤 그대로 그의 목에 칼끝을 세웠다.

“아-.”

완벽한 엘버스테인의 패배.

그러나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이제까지 한번도 아론을 이겨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네의 귀신 같은 검술을 도저히 파훼할 수가 없군.”

“오늘은 자네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어서 어디로 칼이 날아올지 다 예상이 되더군.”

“그런가······. 하긴. 그럴지도 모르지.”

엘버스테인이 작게 읊조리자 아론은 그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안 그래도 아까까지 아슬란을 만나고 오지 않았던가.

그때부터 쭉 저 표정이다.

똑같은 나이이기도 하고 말도 잘 통해서 둘은 금방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더 신경이 쓰였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아까부터 표정이 어두워 보이는데.”

엘버스테인은 아론을 바라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오메르 왕국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더군.”

“전쟁? 설마 자네 때문에?”

“맞아. 아슬란 대기사단장님께 아까 전해 들었어. 오메르 왕국이 일라이 왕국을 치기 위해 병사를 준비하는 중이라고.”

“이런. 그놈들이 기어코······. 대기사단장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

“일단 나를 지지하는 세력을 먼저 모으라고 하셨네. 그렇게 다 같이 힘을 합치면 된다고. 하지만······.”

엘버스테인은 아련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는 게 과연 옳은 것일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나 하나만 항복을 한다면 누구도 피를 흘릴 필요가 없네. 대체 내가 뭐라고 무의미한 피를 흘리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보게. 그게 무슨······!”

“자네 생각에도 그렇지 않나? 나 때문에 이 아름다운 일라이 왕국이, 그리고 대기사단장님과 그분의 기사들이 희생해야 하네. 대체 내가 뭐라고?”

“······.”

아론은 침묵했다.

엘버스테인을 위해 일라이 왕국이 희생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네. 이대로 오메르 왕국으로 돌아가 이 모든 싸움을 끝내야 하는 것인지······.”

엘버스테인도 마음을 거의 정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필요 없네.”

“······호레스 군사님?”

“감히 누구 허락을 맡고 여기를 떠나겠다는 겐가?”

호레스는 두 젊은이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런 그에게 엘버스테인이 말했다.

“군사님도 그리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저는 일라이 왕국 출신이 아닙니다. 철저히 남이라는 겁니다. 저만 사라진다면, 저만 포기한다면 두 왕국이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쯧쯧. 앞으로 큰일을 할 사람이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야 되겠는가?”

호레스는 축 처진 엘버스테인의 어깨를 다독이듯 두드렸다.

“어깨 펴시게. 한 왕국의 후계자라는 자는 항상 당당해야 하는 법.”

“하지만 군사님. 저는······.”

“자네는 아직 아슬란 대기사단장님의 뜻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대기사단장님의 뜻?

엘버스테인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그분께서는 언제든지 자네를 오메르 왕국에 넘기실 수 있었네. 심지어 오메르 왕국에서 서신까지 보냈었지. 현상금을 2배로 줄 테니, 자네를 넘기라고 말이야.”

“두 배를요?”

“그래. 참으로 광기가 느껴지는 액수였지. 이미 싸움에서 패배해 쫓겨난 왕자를 하나 잡겠다고 그 많은 액수를 내놓으려 하다니. 정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금액이었어. 하지만······.”

호레스는 나지막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기사단장님께서는 단칼에 거절을 하시더군. 조금이라도 망설이거나, 고민하는 표정은 보이지 않으셨어. 3배, 5배, 아니. 10배를 준다고 했어도 그분께서는 절대 넘어가지 않을 것 같더군.”

“······.”

엘버스테인의 손발이 떨려왔다.

그분께서는 내가 뭐라고 그 많은 돈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런 결정을 내리셨단 말인가?

오메르 왕국이 건 현상금은 엄청난 액수였고, 그것을 두 배나 준다는데도 거절을 했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불러 일으킬 파장이 곧 전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는 것인가?

대체, 대체 왜!?

“그것이 바로 우리 아슬란 대기사단장님일세.”

“······.”

“당신의 품에 들어온 사람은 끝까지 지키는 것. 설령 당신의 뒤에 비수를 꽂는다고 해도······.”

호레스는 잠시 말을 흐리다 마른침을 삼키며 이었다.

“부하를 끝까지 믿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주군일세.”

그의 말에 기사들 모두가 고요해졌다.

거짓 하나 없는 진실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일까.

“아론을 보시게. 그는 우리의 적이었네. 그것도 로난 성을 공격해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려 한 아주 파렴치한 인간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호레스는 아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과거 젊은 혈기만 앞세우던 아론이 아닌, 이제는 듬직하고 늠름한 기사가 서 있었다.

“그는 진정한 기사가 되어 가고 있어. 아슬란님 밑에서 착실하게 기사의 명예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칼을 들어야 하는지 배우고 착실하게 배우고 있지.”

아론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그분께서는 저를 진정으로 수하로 생각하고 계실까요?”

늘 그것이 불안했다.

자신은 왕국의 왕자 출신.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기에는 너무 어려운 신분이었다.

하지만 아슬란을 따르고 싶다는 마음은 진심이었기에, 그 진심이 닿기를 바랐다.

호레스는 그런 엘버스테인의 고민을 알고 있었다는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건 자네가 대답해 보게. 자네도 이미 알고 있는 대답이지 않나?”

사실 엘버스테인도 그 물음의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저 한 자락 남아 있는 이 불안한 마음을 지우고 싶었기에, 이 의심을 없애고 싶었기에 꺼낸 말일지도 모른다.

아슬란, 그분께서는 진정으로 나를······.

“여기서 뭣들 하고 있지?”

바로 그때.

중엄한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앞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오늘도 근엄한 얼굴과 자세로 꼿꼿하게 서 있는 아슬란이 있었다.

엘버스테인은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신분과 관계 없이 나를 진심으로 받아들여 주신 분.

내가 목숨을 걸고 믿고 따를 수 있는 분.

사소한 것까지도 전부 닮고 싶은 분.

자신의 주군이 바로 저곳에 있었다.

* * *

‘이놈들이 여기서 나 몰래 작당 모의를 하고 있었나?’

오메르 왕국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생각과 불안감에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다. 그런데 이놈들이 호레스를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기사들과 검술 수련을 할겸, 여기 있는 엘버스테인과 대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호레스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힐끗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숙였다.

흠. 수상한데.

호레스만 끼면 그냥 다 수상하단 말이지.

거기다 엘버스테인 저놈은 왠지 넋이 나간 거 같고.

“그래서 누가 이겼지?”

아론은 아주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당연히 제가 이겼습니다.”

아직은 엘버스테인이 아론에게 상대가 안 되는 건가.

하지만 아론아.

얼마 안 있으면 엘버스테인이 널 그냥 쳐바를 거다.

지금이라도 그 승리, 많이 만끽해 둬라.

[엘버스테인]

무력: 83

지력: 85

‘오늘도 무력이 또 올라가 있네.’

진짜 어디까지 성장하려는 거지?

정말 저러다 90 넘기는 거 아니야?

저 사기적인 재능에 배알이 꼴려 몸을 비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 엘버스테인. 저 애물단지 같은 놈.’

괜히 놔뒀다가 오메르 왕국과 전쟁을 하게 생겼다.

만약 오메르 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저놈은······.

‘왕이 되겠다고 떠날 거 아니야?’

물론 그렇게 된다면 오메르 왕국이 우리 일라이 왕국의 우호국이 되는 건 맞겠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웠다.

저 능력 좋은 놈을 내가 마음대로 써먹어야 하는데, 이제 자기 왕 됐다고 콧대만 높아져서 내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하면 다행이다.

‘진작 2배에 팔았어야 했거늘.’

이래서 사람이 욕심을 부리면 안 되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3배는 해 주지.

오메르 왕국, 이 쪼잔한 새끼들 같으니.

“대기사단장님.”

그때 호레스가 나를 부르며 말했다.

“오늘 이리 나오셨으니, 대기사단장님의 위대한 검술을 이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어떻습니까?”

뭐, 뭐요? 검술?

“소드마스터의 검술을 직접 눈앞에서 보는 건 기사들에게 큰 영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검술을 조금이라도 익힐 수만 있다면 더욱 강해질 것이고요.”

이 영감탱이가 뭐라는 거야.

검술은 개뿔.

내가 그걸 할 줄 알았으면 이러고 살겠냐.

하지만,

“오오.”

“대기사단장님의 검술이라니.”

모두 너무 기대감이 높아진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봐도 보여 줄 게 없는데.

호레스.

하여튼 저놈이 제일 문제다.

“검술이라.”

그런데 그때 내 발밑에서부터 솟아 오르는 것이 있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 줄 만한 검술은 없다.”

“······?”

“검의 달인이 된다면 모든 검술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지.”

그것은 바로 아슬란의 병적인 허세였다.

“무(武)의 길은 서로 달라도, 그 정점에 달하면 결국 그 끝은 하나로 합쳐진다. 검, 창, 권, 모든 것이 말이지. 그로 인해······.”

나는 검의 의지를 발동시켜 내 몸 전체에 기검사의 효과가 흐르도록 했다.

그것은 날카로운 예기처럼 번뜩이며 마치 아우라 같은 것이 일렁였다.

“이렇게 몸 전체가 무기가 되는 것이다.”

“!?”

푸르게 불타고 있는 기검사의 효과를 보고 기사들은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어, 어떻게 저리도 예기가 흘러 넘칠 수 있단 말인가.”

“닿기만 해도 베이겠어.”

나는 무덤덤한 얼굴로 기검사 효과를 거둬 들였다.

그러자 타오르던 아우라가 사라졌다.

“보았느냐? 이것이 너희들이 가야 할 검의 끝이다.”

“······.”

아론과 엘버스테인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일검합일을 이루고 나아가 온 만물과 하나를 이룬다면 세상 그 어떤 것도 너희들에 베지 못할 것은 없다. 그것이 설령······.”

나는 엘버스테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악마라도 말이지.”

“······!”

엘버스테인의 눈동자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니 너희는 어떤 전쟁도, 그 어떤 싸움도 두려워 할 필요 없다. 너희들의 부족함은 나 아슬란이 채울 것이다.”

고요해진 분위기 속에 나는 격동하며 끓어 오르는 감정을 느끼며 한 번 더,

“내 검술을 보고 싶다고 했지. 그럼, 검을 들어라. 물론 힘 조절이 어려워 살살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병신 같은 허세를 부렸다.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누구든 덤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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