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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27화 (27/200)

27화

1초만 소드마스터 27화

“누님. 이게 맞소?”

“괜히 여기 있다가 모가지만 댕겅 잘리는 거 아니오?”

덩치값을 못 하고 겁만 많은 길드원들 때문에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던 여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야. 너희들도 들었잖아. 일라이 왕국에서 우릴 찾지 않는다고.”

“거참. 아무리 그래도 누님이 그······.”

산적 같은 덩치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길드원 하나가 주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슬란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소?”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너도 나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난 처음부터 그거 마음에 안 들었다니깐. 라울, 그놈한테 미혼약을 파는 게 아니었소.”

“누님. 그 미혼약 진짜 효과 있는 거 맞아요? 아슬란이 그걸 마시고 어떻게 살아 있는 거죠? 이거 우리만 잡혀 죽게 생겼네.”

이것들이 진짜 보자보자 하니깐.

여인은 절로 욕설이 튀어 나갔다.

“이런 개호로 새끼들이 돈 나눠 줄 때는 아주 그냥 좋아 죽더니만, 이제 와서 내 탓 하는 거야? 앙?!”

그녀가 상을 쾅 내리치며 성질을 부리자 길드원들도 움찔 거리며 말했다.

“아니. 누굴 탓하자는 게 아니라. 그냥 사실을 말하는 거잖소.”

“괜히 일라이 왕국 땅을 잘못 밟았다가 낭패를 볼까 봐 하는 말이지요. 우리가 언제 누님 탓을 했다고 그러실까?”

여인은 곧 고개를 흔들었다.

“어휴. 내가 이런 개쫄보 새끼들이랑 무슨 영광을 보자고 여기까지 왔는지 원. 그래서 내가 일라이 왕국 수도를 왔냐? 여긴 로난 성이잖아. 아슬란 그놈이 여길 올 거 같······.”

바로 그때였다.

“누, 누님! 누님!”

밖에 나가 있던 길드원 하나가 다급하게 선술집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왜 그래?”

“크, 큰일 났어요, 누님!”

“그러니까 왜 그러는데?”

“아, 아슬란! 아슬란이 지금 여기로 오고 있대요!”

“뭐어-?!”

그 얘기를 듣고 길드원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게 참말이여?!”

“아니. 그 작자가 여기는 왜······.”

“설마 우릴 잡으러?”

“아이고! 우린 다 죽었다!”

아주 그냥 통곡을 하고 있는 길드원들 때문에 도저히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어서 그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좀 닥쳐 봐, 이 돼지 새끼들아!”

"아니. 왜 또 그런 심한 말을······."

"요즘 누님 너무 날카로우시다니깐?"

이상하네.

정말 우릴 잡으러 오는 건가?

아슬란은 라울을 조용히 처형시키는 걸로 사건을 일단락 시켰다고 알고 있는데.

거기다 아슬란이 직접 움직여서 잡으러 올 이유도 없을 테고.

사건을 그렇게 급 마무리 시킨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다.

‘설마 내가 연류된 걸 알고 묻어 버린 건·····?’

문득 든 생각에 여인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럴 리가 있나.

상대는 그 아슬란인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새끼가 그럴 리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이상해.’

일라이 왕국과 베라크 가문의 정보력이라면 충분히 라울과 동조한 범인을 유추했을 것이다. 그리고 약을 판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걸 금방 찾아낼 수 있었을 텐데도 아슬란은 아직까지 현상금도 걸지 않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누님. 일단 빨리 튑시다!”

“네. 여기 있다가는 다 죽겠어요!”

“야. 다들 닥치고 밥이나 쳐먹어. 아슬란이 우릴 진짜 잡으려고 했으면 직접 왔겠냐? 군사를 보냈겠지.”

사실 이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 강력한 미혼약을 먹고도 그는 살아 남았고, 그 이후에도 아슬란은 대륙을 계속해서 충격에 빠뜨리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람이 그렇게 바뀔 수 있단 말인가?

‘아니면 그냥 사기치는 것일 수도 있지.’

여인은 아슬란을 알고 있다.

그가 능력 없고 허세만 부리는 병신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난 절대 못 믿어.’

확인하고 싶었다.

그가 정말로 소문대로 인지, 아니면 여전히 그녀가 알고 있는 아슬란이 맞는 것인지.

“거기다 아직 돈 못 받은 거 있어서 지금 못 간단 말이야.”

“에? 지금 돈이 문제에요!?”

“아슬란이 오고 있는데? 소드마스터 두 명을 박살낸 그 아슬란이 오고 있는데!?”

“싫으면 다 꺼져. 나 혼자 있을 테니까.”

여인은 아슬란이 오고 있다는 성문 쪽으로 나가보았다.

* * *

“어서 오십시오, 대기사단장님. 이렇게 다시 뵈니 영광입니다!”

로난 성의 성주, 세드릭은 미리 기사들과 마중을 나와 나를 맞이했다.

그의 안내에 따라 나는 성 안으로 들어갔고, 구경을 나온 백성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와아아!!”

“아슬란님!!”

“대기사단장님이시다!!”

이곳에서도 아슬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왜 다들 이런 놈을 좋아하는 건지 원.

하지만 생각은 그렇게 해도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은 정반대였다.

아슬란의 허세와 심취가 끓어 오르는 것도 있지만, 나도 한낱 인간인지라 사람들이 저렇게 좋아해 주면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럴 땐 허세가 있어서 참 다행이야.’

헤실헤실 바보처럼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면, 정말 멍청해 보였을 것이다.

아슬란의 허세가 그런 행동을 억제해 주는 건 마음에 들었다.

“위대한 분이시여!”

“우리 왕국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소서!”

언제 어디서 살수가 날아와 공격을 가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한번 심취하기 시작한 이 허세를 끊을 수 없었다.

어디 한번 죽이고 싶으면 죽여 보라는 듯,

나는 덤덤한 얼굴로, 이들의 찬사가 당연하다고 여기며 당당하게 그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래도 진짜 살수가 있으면 안 되니깐.’

나는 눈을 부릅뜨며 인파들의 머리 위로 떠 있는 정보창을 일일이 확인했다.

일반 백성들은 무력과 지력이 뜨지도 않고 이름만 뜨기 때문에 이곳에서 누가 수상한지 가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력 30~60을 넘나드는 사냥꾼이나 용병들이 보였지만 이들은 큰 위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레베카]

무력: 30

지력: 80

“······.”

그래. 내 이럴 줄 알았지.

이럴 때 꼭 네임드 한 명이 끼어 있더라고.

그나마 다행인 건,

‘레베카는 정보 상인이지 않나?’

뭔가 악의적인 이유가 있어서 이곳에 있는 건 아닐 것이다.

그녀는 여러 정보를 사고 팔며, 특별한 아이템을 팔기도 하는 여자니까.

혹시 모른다.

아주 귀중한 아이템을 그녀가 팔고 있을지.

“······.”

그런데 내가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었나.

레베카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내게서 고개를 돌렸다.

‘이따 혹시 기회가 되면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지금 당장 만나기는 그러니, 일단 나는 그녀를 지나쳐 계속 길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귀를 거슬리게 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놈이 또 허락도 없이 여기다 자리를 깔고 있는 거냐?!”

“죄송해요, 아저씨. 이것만 팔게 해주세요.”

“뭐. 이딴 돌조각? 어디 산에서 대충 주워 온 걸 팔려고? 이딴 걸 누가 산다는 거야!”

“제발 한번만 허락해 주세요. 이거라도 팔아야 우리 엄마를 살릴 수 있어요.”

“당장 썩 꺼져!”

이렇게 인파가 우글우글 모여 있고 수많은 목소리에 옆에 있는 기사가 하는 말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지만,

‘잠깐. 이건 설마?’

고인물의 귀신 같은 레이더를 피할 순 없다.

오직 퀘스트와 보상을 쫓아다니는 나 같은 사람은 더더욱.

‘분명 이쪽 부근인 거 같았는데.’

나는 잠시 멈춰 서서 귀를 기울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파들 너머로 한 아이와 상인이 실랑이를 벌이는 게 보였다.

‘찾았다!’

속으로 나는 유레카를 외치며 인파를 헤치고 그 둘에게 다가갔다.

“오냐오냐 하고 봐줬더니, 이 건방진 꼬마가 감히 어른 무서운 줄 모르······ 응?”

아이를 윽박지르고 있던 남자는 자기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를 보고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헉! 대, 대기사단장님!”

그는 나를 올려다 보고는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무슨 소란이지?”

“아. 그, 그것이 이 아이가 허락을 받지도 않고 자꾸만 여기서 물건을 팔려고 해서······.”

깡 마른 몸에 누더기를 걸친 것만 같은 옷에는 검은 먼지가 가득 묻어 있다.

찢어지게 집안이 가난한 아이였다.

보통 플레이어라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선행의 손길 퀘스트!’

히든 퀘스트 중 하나로 이처럼 어려움에 처한 아이를 플레이어가 돕게 되면 감사 의미로 아이템을 얻게 된다.

그것이 어떤 아이템인지는 랜덤이라 알 수 없다.

그냥 잡템일 수도 있고, 정말 운이 좋으면 생각지도 못 한 것을 얻을 수도 있다.

이게 커뮤니티에 알려지면서 한동안 이 히든 퀘스트를 깨기 위해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도시 안을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히든 퀘스트가 그리 찾기 쉬운 게 아니지.’

나처럼 착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플레이어라면 모를까. 후후.

아니나 다를까.

[선행의 손길]

-아이의 부탁을 들어 주십시오.

-보상으로 1골드를 얻습니다.

거기다 보상으로 1골드까지 준다고?

안 그래도 내가 이 히든 퀘스트를 찾아 보려고 일라이 왕국 수도를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그땐 그냥 난이도 때문인 줄 알았는데, 황금이 사실은 로난 성에 숨어 있었다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아이를 상대로 자비를 베풀 줄 모르다니. 넌 이 아이의 어려움을 보고도 외면하는 것이냐?”

“그, 그것이······.”

“내가 언제 너희들에게 충성을 강요했더냐?"

나는 경직 되어 있는 남자와 사방에서 조용히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백성들을 향해 말했다.

“이 왕국에, 그리고 나에게 충성을 다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적의 침입이나, 위협도 너희들이 걱정할 필요없다. 그건 나 아슬란이 해결할 일이니까.”

“······.”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나는 아이 앞에 쭈그려 앉아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며 온정을 나누는 것. 어려움을 보고 못 본 척 하지 않는 것. 그리고 강자가 약자를 돕는 것. 이것이 내가 그대들에게 바라는 것이다.”

오늘도 아슬란의 혓바닥은 열심히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

그토록 시끄러웠던 주변이 일순 조용해졌다.

그 길고 어색한 침묵 속에 나는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야. 내가 무엇을 도와 주면 되겠느냐?”

“저, 저희 엄마의 약값이 필요해요.”

“그렇구나. 그러나 내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돈을 준다면 형평성에 어긋나겠지. 하지만······.”

나는 눈을 반짝이며 아이가 전시해 놓은 돌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있다. 진짜 있다고!’

아이템이 숨겨져 있었다.

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돈을 꺼냈다.

“이 귀한 돌들을 보고 그냥 넘길 순 없지. 여기 있는 걸 전부 내가 사겠다.”

“네? 저, 전부요?”

“그래.”

나는 기사를 시켜 아이에게 돈을 주도록 했다.

두툼한 주머니를 받게 된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이, 이걸 정말로 주시는 거예요?”

“그래. 전부 너의 것이다.”

아이는 돈 주머니를 살펴보다 우물쭈물 거리며 중얼 거렸다.

“우리 엄마 약값도 필요하고, 병을 낫게 할 포션값도 필요하고, 동생들 먹일 빵도 필요한데······.”

이런 욕심 많은 놈을 봤나.

쓰읍. 좀 아깝지만, 그 정도는 내가 챙겨 줄 수 있지.

나는 눈짓을 보내 아이에게 두툼한 주머니를 하나 더 주도록 했다.

“와아! 감사합니다, 대기사단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가족을 잘 챙기거라.”

“예! 꼭 그리 하겠습니다.”

“그럼 이 돌들은 내가 챙기도록 하지.”

그냥 아무 산에 올라가 예뻐 보이는 걸 마구 집어온 거 같은데, 여기 있는 걸 전부 가져갈 필요는 없다.

이미 내가 가져갈 건 정했다.

‘이거다. 분명해. 내 눈을 속일 순 없어.’

겉만 보면 그냥 흙먼지가 잔뜩 묻은 볼품 없어 보이는 돌처럼 보이겠지만,

[잃어 버린 검은 보석]

-아이템의 히든 능력을 열 수가 있게 됩니다.

이건 보석이었다.

그것도 검은 보석!

그냥 쓰레기 잡템이 나올 수도 있기에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있었는데, 설마 이런 횡재를 하게 될 줄이야.

그리고 이건 무려 아이템의 히든 능력을 잠금 해제 시켜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가진 검은 보검이잖아?'

당연히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능력도 엄청날 터.

나는 망설일 것 없이 당장 보석을 사용해 검에 이식했다.

그러자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보석이 순식간에 검 안으로 흡수되었다.

그것을 보고 백성들이 소리쳤다.

“저, 저 빛은?!”

“신성한 빛이다!”

“저건 분명 라할의 빛이야!!”

원래 보석을 흡수하면 이렇게 빛이 나오는 이펙트가 있긴 했는데, 이 정도로 심하게 뿜어져 나왔던가.

하지만 백성들의 웅성 거림을 들을 새가 없었다.

이미 눈앞에 새로운 보석 효과가 생겼다는 알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검의 의지’ 효과가 찬란한 베라크 보검에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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