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1초만 소드마스터 25화
“왕자님. 이렇게 가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기사들은 아슬란을 따라 일라이 왕국으로 가겠다는 엘버스테인의 결정을 우려했다.
하지만 그도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거라. 우리가 가는 길은 내 숙부이신 리카르 성주만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건 페리마라였지.”
“서, 설마 리카르 성주께서 배신을······!?”
“확신하진 못하겠다. 그분도 우릴 돕고 싶으셨겠지만, 일라이 왕국의 경계를 침범하면서 군사를 이끌고 올 순 없었을 테니. 그리고······.”
엘버스테인은 한 치의 흔들림 없는 꼿꼿한 자세로 가장 선두에 서서 가고 있는 아슬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경외심이 가득했다.
“그저 소문으로만 들었던 아슬란이라는 인물을 직접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인데, 어떻게 이걸 놓칠 수 있단 말이냐?”
“최근 아슬란에 대한 정보가 많이 바뀌긴 했습니다만, 결국 그는 적국의 대기사단장이지 않습니까?”
“너는 적국의 왕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 줄 수 있느냐? 그것도 엄청난 현상금이 걸려 있는 자의 목숨을 살려 주기까지 하고?”
“······.”
기사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남이나 다를 바 없는, 거기다 외교 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사안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상대방을 붙잡아 타국에 넘긴 뒤 보상금을 챙겼을 것이다.
하지만 저 아슬란은,
“남들과 다르다.”
엘버스테인은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지금껏 만나왔던 사람들 중, 아슬란에 필적할 자가 없다는 것을.
“그래서 더욱 궁금하구나. 대체 무엇이 아슬란을 저리도 강하게 만들었는지.”
* * *
콰앙-!
“누굴 놓쳤다고?”
페리마라는 역정을 내는 왕 앞에 고개를 조아렸다.
“송구합니다. 생각지 못한 변수가 발생하는 바람에 놈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 리카르 성주의 견제를 대비해 그 수많은 제물을 바쳐서 거인병까지 만들어 보냈거늘. 또 무슨 변수가 있단 말이냐?”
“그것이 갑자기 아슬란이 튀어 나오는 바람에······.”
“뭐? 아, 아슬란?”
갑자기 말문이 턱 막히는 오메르 왕국의 왕, 리버테일이었다.
하필이면 아슬란과 부딪혔단 말인가?
“그, 그래서?”
“저희 공들여 소환한 거인병은 아슬란이 날린 검강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엘버스테인도 그자의 손에 들어간 듯합니다.”
“이런!”
아슬란 그놈 때문에 다 잡은 물고기를 놓쳤다.
씩씩 대는 리버테일에게 누군가 옆에서 진정시키듯 말했다.
“그리 걱정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아슬란에게 정식으로 사람을 보내 우리가 내걸었던 현상금을 주고 데려오면 될 일 아닙니까?”
“흠. 생각해 보니 그렇군.”
“우리가 함부로 일라이 왕국의 경계선을 넘은 것은 사실이니, 그 점에 대해 사과를 하고 값을 치러 엘버스테인을 데려와 사형을 시키면 됩니다.”
사과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리버테일은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굳이 그런 놈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나?”
“그런 놈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아슬란의 입지가 너무 넓어졌습니다.”
“루시안. 자네도 소드마스터이지 않나? 그런데도 아슬란을 두려워 하는 것인가?”
두려워 한다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저는 검의 원탁에서 아슬란의 힘을 직접 목도하지 않았습니까?”
“······?”
“소드마스터를 고작 손가락 하나로 제압하는 자는 드물겠지요. 아마 아슬란이 유일할지도 모릅니다.”
그날 검의 원탁에서 보았던 아슬란의 존재감과 그 힘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성으로 돌아와서도 그는 아슬란의 모습이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았다.
미뉴엘을 날려 버리고 대륙 최강이라 불리는 카르만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그 기개.
기사라면 누구나 흠모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모습이었다.
"그러니 그를 우습게 보면 안 됩니다."
"흠흠. 그, 그런가? 아슬란이 그 정도라니."
"예. 왕께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는 강합니다. 제가 왜 다음 왕위 자리를 이어 받기로 한 엘버스테인을 배신했겠습니까?"
그렇기에 루시안도 오랜만에 피가 끓고 심장이 뛰었다.
소드마스터 자리에 오르면서 더는 위로 올라갈 곳이 없다고 여긴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더욱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에 생겨났다.
“전 더 강해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 그를 몰아낸 겁니다."
그 힘이 비록 모든 대륙에서 금지하는 악마의 힘이라고 해도 상관 없었다.
강해지기만 한다면,
모두를 자신의 발아래 꿇리는 절대자가 될 수만 있다면,
영혼을 팔아서라도 강해지고 싶었다.
아슬란 바로 그자처럼.
* * *
왕국으로 돌아온지 며칠이 지났다.
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나날을 보냈다.
도시를 돌아다니며 자잘한 퀘스트를 깨면서 골드를 수급하는 것이었다.
한 가지 바뀐 게 있다면,
“힘이 닿는대로 도움을 드리겠소.”
“호호. 이 기사님은 참 얼굴이 잘생기셨네.”
“엘버스테인님이라고 하셨죠? 이거 한 잔 드세요.”
엘버스테인이 아론처럼 열심히 잡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하다하다 이제는 엘버스테인을 데리고 퀘스트 매크로를 돌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외모와 특성 영향 때문인지, 백성들은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그에게 호의를 보였다.
[왕좌의 길]
-엘버스테인을 도와 그를 오메르 왕국의 왕으로 세우십시오.
-보상으로 10골드를 얻습니다.
‘하-. 이것만 아니었어도.’
그냥 놈을 넘겨 버리고 현상금을 꿀꺽 했을 텐데.
이런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건 주인공이 받아야 할 퀘스트인데 말이야.’
이 게임의 핵심인 주인공.
플레이어가 없으면 원작대로 게임은 주인공 중심으로 돌아간다.
주인공은 특성을 통해 빠른 성장을 하고 주워진 스토리와 퀘스트를 따라 게임을 클리어해 가는데, 왕좌의 길이 그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아슬란에게 이 퀘스트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확 감옥에 처넣어서 보상금만 빼 먹을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10골드가 눈에 아른 거렸다.
‘엘버스테인을 키워서 써먹는 것도 좋긴 한데······.’
그놈을 키우는 과정이 힘들다는 게 문제였다.
일단 놈을 왕으로 만들어 놓아야 하는데, 그럼 오메르 왕국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
‘주인공으로 플레이 할 땐 그리 어려운 퀘스트가 아니긴 했어.’
죽을 위기에 처한 엘버스테인을 구하고, 리카르 성주와 소드마스터 루시안을 주인공 편으로 끌어들인 뒤 성을 탈환하는 것이 퀘스트의 주 내용이었다.
‘결국 루시안을 우리편으로 끌어 들여야 가능성이 있다는 거네.’
돌아가는 상황을 봤을 때, 지금 루시안은 리버테일의 편에 서서 엘버스테인을 대적하고 있다.
뭐, 이건 루시안의 마음을 돌리는 퀘스트가 따로 있으니 그걸 이용해 돌리면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왜 테키나 족속이 나왔냐는 건데.’
악마의 등장은 꽤나 심각한 일이었다.
놈들이 등장하려면 아직 시간이 한참 더 있어야 한다.
플레이어가 게임을 처음 시작하고, 여러 왕국을 정복하고 나서야 악마가 등장하는 스토리가 나와야 하는데, 이건 뭐 숟가락 뜨기도 전에 튀어나온 꼴이라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난이도에 관련된 거라면 진짜 골치 아프겠군.’
이 대륙을 구원해 줄 주인공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악마가 벌써 출연을 한다면 그건 극악 난이도에 맞는 재앙일 것이다.
‘네임드 악마들이 하나 둘 등장해 버리면 그땐 진짜 헬모드가 되는 거지.’
대륙 전체가 불바다로 변하기 전에 어디 좋은 터 하나 잡고 잘 숨어 있을까?
어차피 그래봤자 악마가 대륙을 휩쓸어 버리면 숨을 곳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방법은,
‘주인공을 성장시켜서 대륙의 멸망을 막아야 한다는 건데.’
그게 과연 쉬울까.
이 아슬란의 몸으로?
“이곳 백성들은 웃음이 끊이질 않는군요.”
그때 엘버스테인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놈은 내 속도 모르고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제가 오메르 왕국에 있었을 땐 일라이 왕국은 당장 망해도 이상할 게 없다고 들었습니다. 민심도 굉장히 좋지 못한 편이었고요. 하지만 글로 보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건 역시 다르군요.”
왜 꼴보기가 싫지.
나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엘버스테인.”
“예.”
“누가 감히 내게 말을 걸라고 했지?”
“······!”
그는 얼른 허리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나는 찰랑 이는 저 금발 머리를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엘버스테인]
무력: 70
지력: 85
기사라는 놈이 지력 빼고는 볼 게 없다고 여길지 모르나, 저 스텟만 보고 엘버스테인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놈에게는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똑같은 특성이 있다.
[성장 촉진]
특정 상황에서 능력이 개방되면 성장이 촉진되면서 스텟이 놀라울 정도로 쭉 오르게 된다. 그 특정 상황이라는 건 주인공을 만나면서 열리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무력 70따리에 불과하지만, 특수 상황을 만족시키게 되면 금방 90을 돌파하는 괴물이 되어 버린다는 것.
거기다,
[의리]
한번 우애를 다진 아군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 특성이다.
상대가 자기 부모든 자식이든 일단 뒤통수부터 때리고 보는 배신 특성과 완전 정반대였다.
그래서 주인공으로 플레이 할 때 엘버스테인을 잘 사귀어 놓아서 든든한 아군으로 삼는 것이었다.
‘골드도 골드지만,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떻게든 내 아군으로 놔두는 게 이득이겠지?’
저놈의 목에 걸린 현상금을 생각하면 지금도 군침이 돌지만, 일단은 참아 보기로 했다.
나중에 정 돈이 필요하면 그때 팔아넘기면 되니까!
“농담이었다. 고개를 들어라.”
“아, 예.”
그럼 이놈이 알고 있는 게 뭔지 알아나 볼까.
“저번 날 내가 죽인 거인병은 분명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건 너도 알고 있겠지?”
“예. 맞습니다.”
“오메르 왕국이 언제부터 악마와 결탁하고 있었던 거지?”
“그건······ 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럼 네가 아는 게 뭐야.
"저 역시 그날 페리마라가 소환한 그 괴물을 보고 처음 알았습니다."
엘버스테인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선왕께서는 무엇보다 올바른 길과 힘을 강조하셨습니다. 라할의 뜻에 따라 오직 선과 빛의 길을 따르는 것이 그분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충성스러웠던 그분의 신하들이 악마의 힘을······!”
그는 크게 분노하며 손바닥에 피가 나올 정도로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걱정이 되시겠군요."
그러다 엘버스테인은 화를 삭히며 내게 말했다.
“그들이 테키나 족속과 결탁해 타락한 힘을 가졌다면······ 당신 이름 아래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왕국이 망가질지 모릅니다.”
그 말은 제 발로 알아서 나가 주겠다는 건가?
“만약 당신이 명령을 하신다면 지금이라도 저희 기사들을 이끌고 이곳에서·나가겠습니다.”
어딜 감히 현상금이 자기 발로 도망을 치려고!
내 속에서 고요한 물결처럼 잠잠이 있던 허세가 들끓기 시작했다.
“너는 그들이 두렵나?”
“······예?”
“자신의 힘이 부족해 고작 악마 따위에게 손을 벌리는 그놈들이, 두렵냐고 묻는 것이다.”
그러자 엘버스테인이 대답했다.
“테키나 족속의 힘은 강합니다. 대기사단장님께서는 그 힘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악마의 힘은 한때 대륙을 멸망시킬 뻔했습니다.”
“그래. 하지만 네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나는 격동하는 감정에 심취하며 말을 이었다.
“300년 전 그땐 나 아슬란이 없었다.”
“!?”
엘버스테인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어이가 없었던 건지, 아니면 정말 놀라서 저런 건지는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번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 허세는 끝을 모르고 달렸다.
“난 오메르 왕국이 두렵지 않다. 그들의 뒤에 있는 악마도 두렵지 않다. 오히려,”
나는 멍하니 날 바라보고 있는 엘버스테인과 눈을 마주쳤다.
“그들이 날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
잘도 지껄이고 있었다.
테키나 족속 중에서 네임드급 하나만 잘못 만나도 여기 성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 버린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역시 당신은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군요.”
왠지 엘버스테인의 눈가가 촉촉해진 것처럼 보였다.
“그 말씀이 절대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전 알고 있습니다.”
허세 맞는데.
“당신의 기개와 그 위상이 존경스럽습니다. 한번 내뱉은 말을 지킬 수 있는 그 힘 역시 부럽습니다.”
그는 주먹 쥔 손을 가슴팍에 올렸다.
“그렇기에 저도 노력할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도록, 내 사람들을 지킬 수 있도록-.”
그리고 다짐했다.
“언젠가 바로 당신처럼 될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 겁니다.”
“······나 아슬란처럼 된다라.”
그런 순진한 엘버스테인을 보며 나는,
“꿈이 크구나.”
병신 같은 허세를 부렸다.
“하지만 네가 가진 재능은 나쁘지 않다.”
“그 말씀은······.”
“어디 따라올 수 있을만큼 따라와 보거라. 지켜보고 있겠다.”
엘버스테인은 감격 어린 목소리로 크게 소리쳤다.
“예!”
귀를 따갑게 하는 우렁찬 목소리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농땡이 그만 피우고 가서 일하거라.”
“알겠습니다!”
그는 다시 백성들을 돕고 있는 무리를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엘버스테인]
무력: 75
지력: 85
엘버스테인의 무력 수치가 갑자기 상승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