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1초만 소드마스터 13화
“위대하신 분을 뵙습니다!”
저택을 나서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사들이 내게 예를 갖췄다.
그중에는,
“위대하신 분을 뵙습니다.”
아론도 있었다.
저 잘생긴 얼굴을 보고 순간 심장이 철렁였다.
저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아슬란의 병적인 허세가 아니었다면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아론.”
“예.”
“네가 왜 여기 있지?”
“제가 스스로 대기사단장님을 보필하기 위해 지원했습니다. 앞으로 대기사단장님 곁에 머물며 당신이 말씀하신 기사의 긍지와 명예를 배우려고 합니다.”
“······.”
실화인가.
저 군침 나오는 스텟과 능력을 가진 아론이 내 호위기사 노릇이나 한다고?
이 게임을 참 많이도 플레이 해봤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었다.
“그냥 적당한 직책을 받아도 됐을 텐데?”
“호레스 군사가 이러는 편이 좋을 거라는 조언을 해줬습니다.”
역시 그 영감이 연관되어 있는 것인가.
안 그래도 어제 뜬금없이 호레스가 아론을 데려갔다는 보고를 받았다.
거기서 둘이 모종의 거래를 한 건 아니겠지?
의심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
난이도가 극악이라는 점도 있고, 호레스는 원래 아슬란을 죽이려 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으신다면 그만두겠습니다.”
당연히 찝찝한 구석이 있기에 내 곁에서 물리려고 했으나,
“난 한 입으로 두말을 하지 않는다, 아론.”
이미 아슬란의 허장성세에 먹혀 버린 혓바닥은 그걸 용납지 않았다.
“대륙 최강의 곁에서 배우라고 한 것은 나다. 그러니 곁에 있어도 좋다.”
“감사합니다.”
그러고는 태연하게 나는 말 위에 올랐다.
그 뒤로 내 호위 기사들과 아론이 함께 말을 몰았다.
“······.”
뒤통수가 따갑다.
이제부터 언제 아론이 칼이 휘두를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하다니.
‘호레스. 두고 보자.’
그 독사 같은 영감을 결코 용서치 않으리라.
나는 그리 다짐하며 왕궁으로 나아갔다.
일라이 왕국의 수도, 브릴.
다른 왕국의 대도시처럼 휘황찬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갖춰야 할 것은 전부 갖췄다고 봐도 무방한 곳이다.
아무리 약소국이라고 해도 처음 게임 플레이를 하기에는 지장이 없도록 만들어 두었다는 것이다.
“오오. 위대한 분이시여.”
“오늘도 위대한 분을 뵙습니다.”
길을 지나던 행인들은 내게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대기사단장이라는 위치, 거기다 무려 대륙 소드마스터라는 엄청난 타이틀.
이 두 개가 있으니 백성들은 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으로 삼았다.
아무리 도시 치안이 나쁘고, 민심이 좋지 않아도 소드마스터라는 타이틀만 있어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될 정도로 이 게임은 명성이 중요했다.
“신들의 축복이 당신과 함께하기를.”
나는 왕궁으로 똑바로 향하지 않고 일부러 시민들이 몰려 있는 도시 한복판을 지나갔다.
이들이 나를 보고 외치는 칭송을 듣기 위함이 아니다.
물론, 아슬란 이놈은 심취 특성이 발동되어 이 순간을 무척이나 즐기고 있었지만, 나는 다른 목적으로 도심을 거닐고 있는 것이었다.
“위대한 분이시여. 부디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그래. 바로 이런 것 때문이었다.
* 퀘스트 발생!
[일라이 왕국 백성들]
-일라이 왕국 백성들의 크고 작은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총 10번의 부탁을 들어주면 보상으로 1골드를 얻습니다.
1골드.
엄청 짜게 보일 수도 있으나, 백성들이 뭔가 어려운 걸 부탁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한번에 10골드씩 얻었던 건 그만큼 퀘스트 난이도가 말도 안 되게 높았기 때문이다. 사실상 클리어가 불가능했던 퀘스트들을 연달아 깬 것이 기적이었다.
그에 반해 이들이 주는 퀘스트는 간단한 것도 많았다.
거기다 퀘스트 내용에 따라 귀찮은 건 그냥 기사들을 시키면 되고,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면 왕궁에 있는 기사들까지 끌고 오면 되는 거라 상관 없었다.
일일 퀘스트처럼 백성들의 애로 사항을 들어주면 골드를 얻는, 매우 좋은 골드 수급처였다.
‘유한 같이 네임드를 죽여야만 하는 돌발 퀘스트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게 안전하고 낫지.’
목숨을 걸고 10골드를 얻느니, 차라리 이렇게라도 천천히 골드 수급을 하는 것이 훨씬 나아 보였다.
“마차 바퀴가 망가져서 수레를 끌 수가 없습니다!”
“물건을 도둑 맞았습니다. 도와주십시오!”
하루에 10개를 다 몰아서 할 순 없으니, 한두 개씩 퀘스트를 받은 뒤 나는,
“고쳐주거라.”
“예.”
“물건을 찾아주거라.”
“예.”
“치안 책임자가 누구지? 그를 이곳으로 불러라.”
“예!”
열심히 명령만 내렸다.
그냥 일반 네임드 캐릭터로 플레이를 하게 되면 일일이 퀘스트 해결을 위해 뛰어다녀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 왕국 최고의 권력을 가진 아슬란이지 않은가.
내가 직접 뛰어다닐 필요는 없다.
그저 밑에 있는 부하들을 시키면 된다.
“논밭에 몬스터들이 출몰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일을 못 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물론 몬스터를 직접 상대해야 하는 위험한 퀘스트도 등장했다.
논밭에 가보니, 검은 이빨을 가진 맹수들이 그곳을 점령한 상태였다.
[검은 이빨 재규어]
레벨: 55
레벨 55짜리 몬스터.
아슬란의 몸으로는 한 마리도 간신히 상대할까 말까 한 레벨이었다.
그러나 논밭에 깔려 있는 검은 이빨 재규어의 숫자는 족히 15마리는 넘어 보였다.
하지만 이건 내게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게는,
“아론.”
“예.”
“쓸어 버려라.”
“알겠습니다.”
아론이 있기 때문이다.
스르릉-!
그는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런데 검의 상태가 이상했다.
아론은 부러진 검을 쓰고 있었다.
“아론. 그 검은?”
“저번에 주군께서 맨손으로 부러뜨리신 미스릴 검입니다.”
미스릴?
내가 아는 그 미스릴?
그걸 내가 부쉈다고?
왠지 포션을 부어도 손이 더럽게 안 낫더라니.
“그때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기 위해 가지고 다니고 있습니다.”
마음가짐이야 좋다만.
그걸로 어떻게 싸우려고?
그런 생각도 잠시.
화아악-!
아론의 검에서 검기가 흘러나왔다.
푸른 검기는 부러진 검의 절반을 대신하며 그 예리한 날을 세웠다.
“······.”
이것이 바로 압도적인 재능 수저 차이라는 건가.
‘그래. 누가 누굴 걱정하냐.’
특성과 스텟 모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론이다.
무력 50따리 밖에 되지 않는 아슬란 따위가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 네임드에 걸맞게 녀석은 재규어들을 순식간에 썰어 버렸다.
“와아아!”
“몬스터들이 전부 죽었다!”
“대기사단장님 만세!”
재롱은 아론이 부렸는데, 온갖 찬사는 내가 다 받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대기사단장님.”
“우리의 은인이십니다.”
아슬란은 그 상황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며 이들의 환호성에 심취했다.
아론과 기사들이 있어서 이 정도 속도면 금방 퀘스트 10개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도울 건 없는가?”
내가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아론이 조심스럽게 아뢰었다.
“대기사단장님. 국정 회의에 많이 늦었습니다. 지금이라도 얼른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아론의 말에 백성들은 내게 무슨 말을 하려다 우물쭈물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것이 잠들어 있던 아슬란의 허세에 트리거가 되었다.
“아론. 국정 회의가 무엇이냐?”
“예?”
“왕국의 근간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 국정 회의다. 그렇다면 왕국의 근간은 무엇인가.”
“그건······.”
나는 주변으로 모여든 백성들을 가리켰다.
“바로 저들이다. 이 왕국을 지탱하는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들이다. 저들의 노고와 어려움을 들어주는 것이 잠깐 앉아서 떠들어 대는 국정 회의보다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
뻔하디 뻔한 말이었다.
허세에 취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은 것뿐이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나를 보며 감동 어린 눈빛을 띠었다.
“아아. 역시 위대하신 분.”
“이렇게나 우리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계시다니.”
“대기사단장님!”
“당신이 우리 왕국의 희망입니다!!”
사기 증진, 중후한 매력, 군림.
거기에 적절한 허세까지.
군중을 선동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특성이 없어 보였다.
과연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내 이름을 드높이 불렀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찬사와 환호성에 아슬란의 허세와 심취는 더욱 깊어지기만 했다.
“나 아슬란은 항상 그대들을 돌볼 것이다. 나 아슬란이 그러하듯, 그대들이 왕국의 희망이니까.”
“예!!”
“저희는 당신만 믿고 있겠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손도 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격이었다.
퀘스트 진행은 전부 부하들에게 맡기고 온갖 관심과 사랑, 그리고 보상까지 내가 독식하는 이 불합리한 시스템.
아주 마음에 들었다.
“대기사단장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가르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론도 처음 왔을 때보다 표정이 많이 풀려 있었다.
이윽고 그는 먼저 백성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도울 일이 필요하면 뭐든 말씀하시오. 대기사단장님의 뜻에 따라 우리가 힘껏 돕겠소.”
“저희도 돕겠습니다.”
“뭐든 말만 하시오. 나도 위대하신 분의 뜻을 따라 도울 터이니!”
아론과 기사들, 그리고 일반 백성들까지.
전부 동화되어 한마음 한뜻으로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어. 잠깐만.’
저들이 내가 도울 일을 대신 하고 있어 퀘스트 발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건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허세와 심취로 민심을 끌어 올리는 것까진 좋았으나, 이런 걸 바란 것은 아니었다.
“다들 무리하지 말거라. 내가 하면 된다.”
퀘스트가 다 사라져 버리기 전에 뒤에서 명령만 하던 나도 두 손 두 발 벗고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저들이 나를 막아 세웠다.
“아닙니다. 저희도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왕국의 근간이 되는 백성들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까?”
“이제 저도 열심히 돕고 살겠습니다, 대기사단장님!”
“아슬란 대기사단장님의 뜻에 따라 저도 이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항상 찾아다닐 겁니다!”
안 돼. 이것들아.
내가 골드를 벌어야 한다고!
“자자. 음식이 필요한 자는 이곳으로 오시오!”
“고칠 것이 있다면 제가 고쳐드릴게요.”
“아픈 곳이 있다면 내가 치료 마법을 조금 쓸 줄 아니, 줄을 서시오!”
말릴 새도 없이 사람들은 서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것이 마치 전염병처럼 퍼져 몇몇 백성들 위에 떠있던 느낌표의 퀘스트 알림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아아. 내 소중한 퀘스트들이··· 내 소중한 골드들이···.’
이 죽일 놈의 허세.
이놈의 정신병이 또 내 발목을 붙잡는구나.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는 법.
“나도 돕겠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저 하이에나들에게 전부 퀘스트를 빼앗길 것이다.
나는 백성들의 만류에도 끝까지 전투적으로 달려들었다.
퀘스트를 하나라도 더 받아서 골드를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게는 목숨이 달린 일이지 않은가.
“벌써 시간이······.”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있을 생각은 없었는데.’
정신없이 퀘스트만 쫓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다행히 7개는 건졌다.’
오늘 10개는 충분히 할 줄 알았는데, 아론 저 약삭빠른 놈이 내 퀘스트를 다 가져가 버렸다.
‘역시 호레스가 심어 놓은 복병.’
만만치 않은 놈이었다.
그래도 퀘스트 진행에는 쓸모가 많아서 안 데려오기가 참 아쉬운,
그래. 계륵이었다.
‘지금 왕궁에 가봤자 아무도 없겠지.’
나는 왕궁으로 가기 위해 방향을 잡다가 곧 마음을 접었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으니 아마 다들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럼 나도 돌아갈까?
“대기사단장님! 또 오세요!”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사랑해요, 대기단장님!!”
“다시 뵐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나는 백성들의 인사를 받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몸은 힘들었지만 한 가지 좋았던 건, 백성들의 구수하고 훈훈한 정을 느끼는 것이 꽤 힐링이 된다는 점이었다.
처음으로 뜻깊은 하루를 보낸 것 같아 기분은 좋았다.
‘그래. 이게 RPG 게임의 낭만이지.’
그렇게 지나왔던 길을 돌아가며 내게 손을 흔드는 백성들 사이를 지나던 때였다.
그들의 인사를 하나씩 다 받아주고 있다, 저 끝에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
사람들 뒤에 있는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점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점이란, 이 사람들 머리 위에 있는 점을 뜻한다.
그래서 몇 초 동안 한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하면 머리 위에 떠 있는 점이 그의 이름과 능력치로 변해 내게 보여 준다.
나는 상대방의 이름과 능력치를 볼 수 있는 플레이어의 특권이 있지 않던가.
내게는 정말 유용한 능력이었다.
그런데 육안으로는 저 벽에 누가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허공에 떠 있는 점들만 보일 뿐.
그렇다는 건,
‘은신 스킬?’
스킬이나, 혹은 마법 도구로 일부러 은신 상태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약해 빠진 일라이 왕국에 은신 스킬까지 쓰며 정체를 숨기는 사람들이 있다라.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다섯 명이?
뭔가 냄새가 났다.
나는 눈을 부라리며 그들 중 한 명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위에만 찍혀 있던 점이 서서히 바뀌어 갔다.
[하리엘]
무력: 90
지력: 70
“!?”
순간 숨이 멎을 뻔했다.
무력 90에 달하는 엄청난 강자.
그 곁에 있는 놈들도 하나 같이 무력 70~80을 오가는 실력자들.
거기다 하리엘이란 이름은 나도 알고 있는 네임드였다.
‘저 여자가 대체 여기는 왜?’
90이라는 무력에 걸맞는 거물급 네임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저 여자가 여기에 온 건지 궁금했지만,
‘알려고 하지 말자.’
나는 못 본 척 넘어가려 했다.
왠지 알면 다칠 거 같잖아.
은신 스킬까지 썼다는 건 정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건데, 굳이 그걸 까발려서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아무것도 못 본 거다.
아무것도!
“건방지구나.”
하지만,
“그깟 비루한 은신으로 내 눈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나?”
관자놀이를 저릿하게 파고드는 아슬란의 허세가 이걸 그냥 넘길 리 없었다.
"그런 개수작을 부리면서까지 이곳에 숨어들었다는 건 필시 악한 의도가 있을 터."
상대의 누구든, 그 무력이 얼마나 높든, 병적인 허세와 자긍심에 찌든 아슬란에겐 그저 모두가 하찮게 보일 뿐.
“모습을 드러내라. 그렇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
겁대가리를 상실한 내 몸은 이미 하리엘에게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