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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0화 (10/200)
  • 10화

    1초만 소드마스터 10화

    “음냐. 내 치킨······. 우웅.”

    닭다리를 뜯던 나는 그 바삭바삭함과 부드러운 쫄깃함에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 입가를 축축하게 만들면서 나는 손으로 입을 닦다 정신을 차렸다.

    “아 씨발 꿈.”

    달콤 바삭한 꿈에서 깨어났다.

    내가 닦은 건 눈물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침이었다.

    “으아. 허리야.”

    저 푹신한 침대를 놔두고 나는 바닥에 누워 있었다.

    아무래도 여길 들어오자마자 정신을 잃어버린 탓이리라.

    “젠장. 진짜 꿈에서는 아직도 깨질 않았구나.”

    매번 잠자리에 들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오늘은 꿈에서 깨겠지.

    현실로 돌아갈 수 있겠지.

    하지만 눈을 뜨면 여전히 난 게임 속이었다.

    “으. 머리 아파. 숙취 지리네.”

    대체 내가 여기서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거지?

    나는 답답한 갑옷을 풀고 세수라도 하기 위해 얼굴을 한번 씻었다.

    그리고 거울을 바라보니,

    “······.”

    한번 삶았냐?

    “대체 며칠이나 퍼질러 잤길래.”

    아슬란 이 미친놈은 그 독한 술을 다 마신 것도 모자라 약을 탄 술까지 꿀꺽꿀꺽 다 처마셨다.

    이 모든 게 무슨 큰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병신 같은 허세를 떨기 위해서였다니.

    정말로 어떤 놈이 만든 캐릭터인지 가면 갈수록 가관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넬라 덕분에 살았다는 거지.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시발. 깜짝이야.”

    갑작스럽게 뜬 시스템 창에 나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래. 이게 정상이지.

    이렇게 겁도 많은 놈이 이상하게 허세를 떨기 시작하면 백만 대군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니깐?

    [보상으로 10골드를 얻었습니다.]

    [난이도 설정으로 인해 추가 보상을 받지 못합니다.]

    “아. 그놈의 난이도.”

    이래서 사람이 겸손해야 한다는 건데.

    그때 내가 극악이 아니라 바로 아래 단계만 선택했어도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 이 게임은 이런 퀘스트를 통해 자원을 얻고 새로운 능력치를 얻으며 성장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극악 난이도는 그런 방법을 철저히 봉쇄하면서 오직 오리지날 스텟으로만 게임을 풀어나가게 만들도록 한 것 같았다.

    “하-. 개발자 죽빵 마렵네.”

    누굴 탓하리오.

    이게 다 똥캐를 고르고 극악 난이도를 고른 내 탓이지.

    “으. 울렁거려.”

    크리페가 포션을 먹고 괜찮아졌다고 했던가.

    그럼 나도 술을 깨는 포션을 찾아 먹어야겠다.

    이런 으리으리한 곳에 그런 포션 하나가 없을 리 없지.

    여기 시종들도 많으니, 아무한테나 시키면 될 것 같았다.

    마침 배도 고프니까 밥도 같이······.

    [급한 일이라 하지 않았나!]

    [정말 안 됩니다!]

    그때 밖에서 소란 소리가 들려왔다.

    [그분을 봬야 한다니깐?]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셨다니깐요!]

    [아무리 그래도 일주일이나 방에서 나오지 않고 계시지 않는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일주일?

    내가 그렇게 오래 잠들어 있었다고?

    그 정도면 혼수상태 있다가 간신히 깨어난 거 아니야?

    [안 됩니다! 정말 안 돼요!]

    [그래도 이 사람이!]

    “쯧.”

    저러다 둘 중 하나는 피를 볼 것 같아서 난 문을 벌컥 열었다.

    그곳에는 넬라 기사단장과 그 외 기사들. 그리고 집사가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얼른 고개를 숙였다.

    “위대하신 분을 뵙습니다.”

    내 꼴이 말이 아니긴 한지, 기사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넬라는 얼굴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이며 소리쳤다.

    “송구합니다, 대기사단장님. 설마··· 수련을 하고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수련?

    “이제 막 전투에서 돌아오셨는데도 정신과 육체 단련에 힘을 쓰시다니. 참으로 기사들의 귀감이십니다. 그 자세를 항상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

    얘가 또 뭐라는 거야?

    넬라와 비롯해 기사들의 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굳이 정정해 주진 않았다.

    “무슨 일로 왔느냐? 분명 중한 일이야 할 것이다.”

    “아, 예. 실은 할라즈 왕국에서 답이 왔습니다.”

    “아론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할라즈에서 아론과 포로들을 돌려받기 위해 보낸 돈이 도착한 모양이다.

    그럼 알아서들 처리할 것이지,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난동을 피워?

    “할라즈 왕국에서 아론을 받지 않겠다고 우리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순간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할라즈 왕국이 거절을 했다고?”

    “예. 터무니없는 금액이라며 아론을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하라고······.”

    깜짝 놀라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그럴 만한 힘도 없었다.

    그냥 눈을 몇 번 껌뻑이는 게 전부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가격 측정을 잘못했나?

    그럴 리가.

    내가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한번도 저지른 적이 없는 실수다.

    항상 나는 적당한 가격을 책정해 포로를 풀어 주었고, 그 계산 과정에서 절대 실수를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잠깐. 설마 이것도?’

    머릿속에서 스치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극악’ 난이도.

    ‘설마 이것도 난이도에 영향을 받는다고?’

    이 게임은 포로 교환에 있어서 난이도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하수든, 중수든, 고수든, 포로 해방에 관한 가격 계산은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난이도를 생각하며 가격을 조금 낮췄던 건데······.

    할라즈 왕국이 내 제안을 거절했다.

    즉, 극악 난이도에서는 가격 측정이 훨씬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건 너무하잖아.’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 오로지 내 안위를 위해 쓰려고 했건만.

    할라즈 이 마요네즈에 머스타드 소스를 섞은 것 같은 놈들이 내 계획을 무산시켰다.

    ‘그럼 아론은 이제 어떡하지?’

    아론은 아무짝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

    이제 놈은 그냥 아까운 밥만 축내는 놈이었다.

    * * *

    “대기사단장께서는 뭐라고 하시오?”

    “곧 이곳으로 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대기사단장께서는 괜찮으시오? 대체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방에서 나오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이오?”

    호레스를 비롯해 왕국 내 사람들이 모두 궁금해하던 것이었다.

    “폐관 수련을 하고 계셨습니다.”

    “수련?”

    “예. 수련의 강도가 무척 높았는지, 굉장히 수척해 보이셨지요. 하지만 여전히 건재하셨습니다.”

    “허어- 수련이라······.”

    과거의 아슬란이었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는 수련과는 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고 군림하는 것을 즐기기에 대대적인 군사 훈련에는 항상 참가하곤 했다.

    물론, 참가만 하고 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쩌면 그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외롭게 스스로를 단련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할라즈 왕국에 대한 건 말씀드렸소?”

    “예. 크게 놀라지는 않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입니다.”

    그러자 호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조금 이상한 일이긴 했지. 내가 봐도 대기사단장께서 할라즈 왕국에 제시한 금액이 터무니없이 높다고 생각했거든.”

    “전 이쪽으로는 문외한이라 잘 모르겠군요.”

    “아무리 아론이 할라즈 왕국에서 각광 받는 젊은이라고는 하나, 요구하는 금액이 너무 높았소. 그래서 나도 일이 엎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그럼 다시 협상해야 하지 않습니까?”

    “할라즈 왕국에서는 이미 협상의 여지를 남겨 두지 않고 있소이다. 그리고 넬라 기사단장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동안의 의문이 풀리는 것 같구려.”

    그동안의 의문?

    넬라는 호레스의 말을 따라가기가 어려웠다.

    “대기사단장께서 직접 할라즈 왕국에 높은 가격을 제안하셨소. 그리고 할라즈 왕국은 거절을 했지. 그 소식을 듣고 그분께서는 덤덤하셨고.”

    “예.”

    “그게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소?”

    “혹시 대기사단장님께서는 일부러 높은 가격을 부르셨다는 겁니까? 할라즈 왕국이 거절할 수밖에 없게?”

    “바로 그것이오.”

    “하지만 대체 왜 그런······.”

    호레스는 아슬란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 왕국에 가장 필요한 일을 하시려는 거겠지.”

    “······?”

    “그게 무엇인지는 넬라 단장도 곧 알게 될 것이오.”

    끼이이익-.

    이윽고 회의장 문이 열리면서 아슬란이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따라 유독 그의 붉은 망토가 화려하게 펄럭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근엄해 보였다.

    * * *

    ‘아, 속쓰려.’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할라즈 왕국이 내 제안을 거절한 것도 짜증 나는데, 뒤집어진 속까지 난리였다.

    ‘아슬란. 이 미친놈 때문에 내가 진짜.’

    크리페가 먹었다던 숙취 해소 포션을 찾아 마시려고 했지만, 집사는 그런 것이 집에 없다고 했다.

    그 으리으리한 대저택에 그깟 포션 하나가 없는 것이 말이 되는가?

    우습게도 말이 된다.

    사내대장부가 그딴 걸 먹어야 쓰겠냐며 아슬란이 그런 포션들을 싹 다 치워 버리게 만든 탓이었다.

    이래서 사람이 미쳐도 적당히 미쳐야 하는 것이다.

    “라울은 어떻게 했지?”

    “감히 일라이 왕국의 검을 해한 죄로 왕께서 그를 처형하셨습니다.”

    내가 자는 동안 알아서 잘 처리한 듯싶었다.

    배신자 라울은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꼴 좋다.

    왠지 막혔던 체증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다.

    ‘그나저나 아론. 이놈을 어떡하면 좋지?’

    할라즈 왕국한테 한번 더 협상을 제의해 봐야 하나?

    만약 거기서 거절한다면 더 이상 아론을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는데.

    감옥에서 밥만 축내는 놈을 무슨 이유로 살려 준단 말인가?

    차라리 라울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아론도 처형장으로 보내 줘야 할 것 같았다.

    “······.”

    그때 내 눈에 거슬리는 것이 있었다.

    아까부터 뭐가 그리 좋은지, 실실 쪼개고 있는 호레스였다.

    놈은 나와 눈을 마주치자 빙긋 웃었다.

    ······소름이 끼친다.

    라울이 그러했던 것처럼, 저 영감도 언제 내게 칼을 들이밀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기사단장님. 이제 그만 이들에게 말씀을 해주셔도 되지 않습니까?”

    뭘 말하라는 거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대기사장님께서 일부러 할라즈 왕국에게 큰 금액을 제시하여 거절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확신에 찬 호레스의 목소리에 회의장에 모여 있던 기사들이 웅성거렸다.

    “대기사단장님께서 일부러?”

    “왜 그러신 거지?”

    그건 나도 궁금했다.

    “우리 아름다운 일라이 왕국은 부끄럽지만 대륙에서 가장 약체에 속한 곳입니다. 그렇기에 왕국을 이끌어갈 만한 인재도 부족한 상황. 즉, 왕국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이번 일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입니까?”

    좋은 질문이었다.

    호레스는 아직도 모르겠냐는 듯한 책망의 눈빛으로 넬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에 붙잡혀 온 아론은 매우 유능한 젊은이요. 탁월한 검술 실력과 적의 허를 찌르는 뛰어난 지휘 능력까지 갖췄소.”

    “이번 전쟁에서 아론 때문에 할라즈 왕국이 큰 피해를 보지 않았습니까?”

    “단지 상대를 잘못 만났던 것뿐이오. 그 상대가 모든 계책을 꿰뚫어 보는 우리 아슬란 대기사단장님이라는 걸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지. 만약 그대, 혹은 내가 군을 이끌었다면 지금쯤 우리 왕국의 수도는 아론에 손에 불타 버렸을 터. 내 말이 틀리오?”

    넬라를 비롯해 회의장에 모여 있는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 능력을 대기사단장님께서는 높이 평가하신 것이오. 그렇기에,”

    회의장에 사람들을 모아 놓고 헛소리를 이어가던 호레스는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론 그자를 일라이 왕국의 기사로 등용하고자 그런 수를 쓰신 것이 아닙니까?”

    “오오-”

    “그런 깊은 뜻이!”

    ······오는 무슨.

    이 영감이 뭐라는 거야.

    아론을 등용해?

    어떻게?

    그 잘난 놈이 잘도 내 밑으로 들어오겠다.

    ‘아론은 절대 내 밑으로 들어오지 않아.’

    할라즈 왕국에 대한 충성심도 그렇고, 능력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자긍심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보다 조금이라도 못하다고 생각되면 절대 굴복하지 않거니와, 설령 스텟이 자기보다 높다고 해도 캐릭터마다 만족하는 부분이 달라 무척 까다롭다.

    적국의 기사를 등용하는 건 공략법이 따로 있지 않을 정도로 어렵기 때문에 웬만하면 크게 값을 받고 넘기는 것이었다.

    즉, 아론을 등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말해야만 한다.

    ‘네 생각은 틀렸다, 이 음흉한 영감탱이.’

    라고.

    하지만 그때였다.

    막혀 있던 혈맥이 뚫리는 것처럼 단전에서부터 끓어 올라오는 허세력이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져 나간 것이.

    “여기서 내 의중을 파악한 건 호레스 뿐인가?”

    아슬란의 허세는 아예 한술 더 뜨고 있었다.

    호레스는 자신의 말이 맞았다며 의기양양했고, 나는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 일어나는 순간에도 평범하지가 않았다.

    병적인 허세와 심취라는 특성은 매 순간, 모든 행동에서 내가 최고이며, 나 의외에 다른 것은 하찮다, 라는 것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그 교만한 심성이 그대로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었지만, 놀라운 건 그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격조가 있었고 품위가 가득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저들이 나를 저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리라.

    “그러나 한 가지 너도 틀린 것이 있다, 호레스.”

    상석에서 일어난 나는 호레스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그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왕국은 최약체가 아니다.”

    충만한 허세력에 잠식된 내 몸은 알아서 앞에 걸어 나갔다.

    그리고 전각에 모여 양옆에 도열해 있는 기사들과 신하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 왕국을 수호하는 기사가 누구인가? 이 왕국을 지키는 검이 누구인가?”

    그 물음에 그들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치 답은 정해져 있다는 듯이.

    “대기사단장님이십니다.”

    하지만 내가, 아니. 허세력에 잠식당한 아슬란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너희는 무엇인가?”

    “······?”

    “그 대답은 간단하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나 아슬란은, 최강이다.”

    낯부끄러운 말을, 전혀 사실도 아닌 말을 아주 당당하고 뻔뻔하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절대 부자연스럽거나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대륙 최강자가 이끄는 너희들 역시 최강이다.”

    정말 이것이 세상의 진리라는 듯,

    “나 아슬란의 이름이 함께 하는 한, 너희는 그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내 목소리에는 신념이 담겨 있었다.

    “자긍심을 가져라. 절대 우리 왕국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우린 그동안 하늘 높이 비상하기 위한 때를 기다렸을 뿐, 결코 약했던 적 없다. 그러니 너희에게 다시 한번 묻겠다.”

    모두의 이목이 내게 집중되었을 때, 내 입에서는 인자하면서 강인한 음성이 나갔다.

    “너희는 무엇인가?”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침묵은 길지 않았다.

    “우리는 최강입니다.”

    넬라의 대답이었다.

    그것에 탄력을 받고 나는 더욱더 큰 목소리로 되물었다.

    “너희는 누구인가!?”

    그러자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소리쳤다.

    “우린 최강입니다!!”

    그 우렁찬 목소리에 전각이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항상 그 마음을 잊지 않도록 하라.”

    말하는 나조차 오글거려서 손발이 저릿거렸다.

    그만큼 뻔뻔하고 황당한 언사였다.

    감히 최강이라는 말을 부끄러움 없이 입에 담다니.

    하지만,

    “예!!”

    이게 왜 먹히는 거 같지?

    시들시들했던 저들의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는 것을 보고 나는 느꼈다.

    이들이 아슬란의 허세가 진실인 양 믿고 있다는 것을,

    날조에 가까운 그의 뻔뻔함에 매료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 알겠느냐, 호레스. 네가 무얼 잘못 알고 있었는지.”

    “······예.”

    “다시는 우리 왕국이 약하다 말하지 마라. 나 아슬란이 지키고 있는 한, 우리 왕국은 대륙 최강이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세월이 오래 지나간 호레스의 주름진 눈가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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