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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9화 (9/200)

9화

1초만 소드마스터 9화

꿀꺽꿀꺽-

라울과 자객들은 병째로 술을 들이켜고 있는 아슬란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곧 술을 다 마신 아슬란이 바닥에다 병을 던져 버렸다.

쨍-!

바닥에 부딪혀 깨진 병은 물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아슬란은 정말로 한 방울도 남김없이 술을 해치워 버린 것이었다.

“이, 이런 미친놈.”

예전부터 알고 있긴 했지만, 역시 저놈은 단단히 미친 게 틀림없었다.

어쨌거나 잘된 일이다.

저놈이 스스로 약물을 잔뜩 몸에다 넣어 버렸으니까.

라울은 음흉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런데,

“어째서 쓰러지지 않는 거지?”

저토록 강한 미혼약을 다 마셨는데도 아슬란은 멀쩡하게 서 있었다.

휘청거리거나, 눈이 풀리는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설마 베라크 가문에서 이런 것도 보호할 수 있는 마법을 걸어 놓은 것이냐?”

“······보호 마법이라.”

아슬란은 코웃음을 치며 팔을 걷어 보였다.

“보호 마법이 걸린 자는 손목에 그 표식이 남는다. 보거라. 그 표식이 네 눈에 보이느냐?”

그의 손목은 깨끗했다.

어떤 마법의 흔적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는 건 정말로······!

“가능할 리 없다. 보호 마법도 없이 그 강한 약물을 견딜 수 있을 리 없어!”

“우습구나, 라울.”

아슬란은 천천히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그러자 라울을 비롯해 그의 자객들도 동시에 뒷걸음질을 쳤다.

“술에 약이나 타며 음모나 일삼는 네가 뭘 알지?”

그 많은 미혼약을 마셨으면 분명 쓰러져야 정상이지만, 아슬란의 동공은 더욱더 불타오르고 있었다.

“네가 기사의 정신을 알고 있나?”

“······.”

“그 고귀한 정신의 단단함을 알고 있나?”

커지는 아슬란의 목소리에 라울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것을 모르니, 이따위 약물을 쓰는 것이겠지. 멍청한 놈.”

“허, 허세 부리지 말거라. 네가 간신히 서 있다는 걸 난 알고 있다!”

“허세인지 아닌지는······.”

아슬란은 천천히 검집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앞에 있던 크리페를 향해 위에서 아래로 검을 내려쳤다.

콰콱-!!

크리페는 검을 막기 위해 얼른 도끼를 들었지만, 너무나도 가볍게 아슬란의 검이 아래까지 통과했다.

“어?”

거구의 사내는 자신의 도끼가 갈라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시야도 두 개로 멀리 갈라지면서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쿠웅-!!

“!?”

라울이 가진 최고의 무기였던 크리페가 허무하게 쓰러졌다.

그것도 도끼와 같이 몸이 반으로 갈라진 채로 말이다.

“저, 저런···!”

검강을 쓴 것인가?

아니. 그냥 위에서 아래로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휘두르는, 검술이라 부르기에도 아까운 간단한 동작이었다.

그런데 저 큰 도끼와 덩치를 동시에 반으로 갈라 버리다니!

실로 무시무시한 검격이었다.

“이래도 내가 허세를 부리는 것 같나, 라울?”

아슬란은 매섭게 눈을 치켜뜨며 주위에 깔린 자객들을 바라보았다.

“고작 20명. 내 칼에 피를 묻히기도 아까운 숫자로구나.”

“으으-”

“마, 말도 안 돼.”

그 기세에 완전히 압도되어 버린 자객들.

그들은 방금 전 아슬란이 보여 준 기행이 얼마나 괴물 같은 것인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눈빛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뭐, 뭣들 하느냐! 어, 얼른 가서 저놈을 죽여라!”

라울의 외침에 아슬란은 그들을 향해 손을 까닥였다.

“오너라. 내 너희들에게 기사의 검이 가진 무게를 알려 줄 터이니.”

하지만 누구도 감히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겁에 질린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가서 저놈을 죽여! 죽이라니깐!”

라울의 목소리가 더 이상 이들의 귀에 들리지 않는 것만 같았다.

오히려 그의 발악 섞인 외침은 다른 이를 불러들였다.

“이게 대체 무슨 소란입니까!”

밖에서도 크게 들리는 소란 소리에 달려온 것은 바로 넬라 기사단장과 그의 부하들이었다.

“이건······.”

두 쪽으로 나누어진 거구의 사내.

그리고 깨진 술병과 자객들.

넬라는 금방 어떤 상황인지 알아챘다.

라울은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그를 붙잡고 말했다.

“잘 왔소. 넬라 기사단장. 그대라면 지금 저 아슬란을 죽일 수 있을 것이오.”

“예?”

“놈은 지금 미혼약에 취해 간신히 서 있는 게 고작이오. 그러니 지금이라도 칼을 뽑아 저놈의 목을 치시오!”

미혼약?

역시 그랬군.

넬라는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의 칼끝이 향하는 곳은,

“네, 넬라 기사단장! 이게 무슨 짓이오!?”

아슬란이 아닌 바로 라울이었다.

“닥쳐라. 아무리 왕족이라도 일라이 왕국의 검을 해하려 들다니!”

“넬라 기사단장! 정신 차리시게! 지금 나는 옳은 일을 하려는······.”

“한 마디만 더 지껄여 보거라. 단숨에 목을 베어 주마, 라울.”

“······.”

넬라는 사나운 눈빛으로 자객들을 향해 소리쳤다.

“기사단! 아슬란 대기사단장님을 지키거라!”

“예!”

그러자 그의 뒤에 있던 기사들이 쏜살처럼 달려가 자객들을 죽였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자객들은 도망치려 했지만, 기사단에 의해 무참히 도륙당했다.

“아아······.”

라울은 망연자실하며 무릎을 꿇었다.

아슬란은 어느새 앞에 다가와 그를 거만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과 마주친 라울은 느꼈다.

아슬란의 눈동자가 전과 다르다는 것을.

“대체 넌··· 누구냐.”

라울은 지금 눈앞에 있는 상대가 아슬란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넌 내가 알고 있는 그 아슬란이 아니야. 내가 아는 아슬란은······!”

추잡하고 더러우며 치졸하고 허세밖에 모르는 그런 놈이 바로 아슬란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사내는, 이 기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러자 아슬란이 쭈그려 앉아 그와 얼굴을 맞대었다.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그 눈빛에 말문이 턱 막혔다.

“말해 보거라. 네가 나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지?”

“······.”

라울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나오질 않았다.

“넌 아무것도 모른다. 전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라울.”

아슬란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붉은 망토가 화려하게 펄럭였다.

“뒷일을 맡기겠다, 넬라.”

“예.”

아슬란은 그대로 왕궁을 나왔다.

밖에는 자신의 경호 기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맛있는 당근을 먹어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의 말도 함께였다.

아슬란은 그 위에 올라탔다.

“가겠다. 앞장서거라.”

“예!”

그는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동안 꼿꼿하게 세워진 허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말에서 내리고 걸을 때도 격조 있는 발걸음을 유지했다.

궁전만 한 저택에서는 모든 시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위대한 분이시여. 소드마스터가 되셨다는 소식은 진즉 들었습니다. 정말로 감축드립니다.”

아슬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집사를 따로 불러 말했다.

“내가 부를 때까지 절대 그 누구도 내 방에 들이지 말거라. 날 찾고자 불러서도 안 된다. 이건 명령이다. 알겠느냐?”

그의 엄한 명령에 집사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워낙 이상한 명령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 이제는 무슨 명령을 내려도 그냥 이해가 됐다.

“잘 알겠습니다.”

“믿고 있겠다.”

아슬란은 그렇게 혼자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는,

“아-”

쿠웅-!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 * *

상황을 정리하던 넬라는 밧줄에 포박된 라울을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라울 공. 이번 일은 도가 지나쳤소.”

“······.”

“그리고 멍청한 계획이었소. 대기사단장님을 상대로 고작 자객 20명이라니.”

그러자 라울이 개탄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완전히 아슬란의 개가 되었구나, 넬라.”

라울은 여전히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 많은 약을 먹었는데도 어떻게 아슬란은 멀쩡할 수 있었던 것일까.

거기다 그가 자신에게 보였던 그 눈동자와 위세는 도대체···!

“······.”

넬라는 그러한 라울의 표정에서 과거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자신도 라울처럼 저랬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해가 되지 않겠지.”

“뭐라?”

“그분의 강함을 공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오.”

그분의 강함?

거기서 라울의 피가 거꾸로 솟았다.

“너와 난 그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가 ‘문’에서도 ‘무’에서도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 않았나!”

“아니. 전혀 모르고 있었소.”

라울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모르고 있었다고?

넬라는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난 보았소. 대기사단장님께서 가지신 그 놀라운 힘과 적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눈동자를.”

“그게 무슨······.”

“그대는 그걸 직접 보지 못했으니 모르는 것이겠지. 유한이라는 거대한 태산이 아슬란님의 검 앞에 무너지는 것을 말이오. 그때 우리가 느꼈던 떨림과 끓어 오르던 피를 공이 어찌 알겠소이까?”

라울은 넬라가 진심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믿기 어렵지만, 그는 그토록 경멸했던 아슬란을 존경하고 있다.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상상조차 해보지 못 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만약 그 광경을 공이 보았다면 이런 무모한 계획은 세우지 않았을 것이오.”

“······나도 마냥 바보처럼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이 아니다. 분명 그 술을 먹으면 아슬란은 쓰러졌아야 했다. 그런데 놈은···!”

“술?”

상 위에는 아직 잔 하나가 남아 있었다.

아까 라울이 마시지 않고 놔둔 그 잔이었다.

“아까 미혼약이라고 했었지.”

“그래. 그런데도 아슬란 그놈이 그걸 병째로 다 마셔 버렸다.”

“이, 이걸 병째로?”

“거기에 약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정상인이라면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하지만 아슬란이라면 왠지 이해가 갔다.

그런데 멀쩡하게 걸어 나갔다는 건 약 효과가 별로였나?

넬라는 궁금증에 술잔에 손을 살짝 담가 맛을 봐보았다.

그리고,

“헉!”

몸이 저절로 휘청거렸다.

시야는 흔들리고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만 같았다.

혀로 맛만 봤을 뿐인데, 이렇게나 약효가 뛰어나다니.

“이, 이걸 어떻게 버텨내신 거지? 보호 마법 때문인가?”

그걸 라울이 자약하게 바라보며 대꾸했다.

“아슬란은 보호 마법이 없더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보호 마법이 없다니?”

그는 베라크 가문의 가주이며 일라이 왕국의 대기사단장이다.

당연히 온갖 보호 마법이 걸려 있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나도 이미 확인해 본 거니까. 놈에게는 어떤 보호 마법도 걸려 있지 않았다.”

“그, 그럼 대체 어떻게 이걸 견뎌내신 거지?”

“나도 그게 의문이다. 넬라 너도 이 정도인데, 그놈은 대체 어떻게 되어 먹은 것인지.”

이러다가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아 넬라는 얼른 기사들에게 손을 뻗었다.

“라, 라울 공을 감옥에 가두거라.”

“예, 단장님.”

“윽, 그리고 날 부축해다오.”

꼴사납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러다가는 여기서 정신을 잃고 바닥에 드러누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대체 대기사단장님은 어떻게 이런 끔찍한 약을 드시고도······.”

과연 대단한 분이시다.

이것을 마법 없이 버텨내다니.

그만큼 육체를 단련하신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 약을 견뎌냈을 리 없다.

‘그런 분을 내가 그동안 의심하고 경멸했었다니.’

그분은 왕국을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피나는 노력을 하며 지금의 힘을 얻었을 것이다

내가 왜 그런 대단한 분을 무시했던 것일까.

‘난 멀었구나. 그분을 따라가기에는 아직 멀었어.’

넬라는 스스로를 자책하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결국 미혼약에 잠이 들어 버린 것이었다.

이쯤 되니 다른 기사들도 술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대기사단장님은 분명 멀쩡하셨는데.”

“왜 우리 단장님만 저러시지?”

“흠. 한번 맛을 봐볼까?”

“야! 잠깐!”

그리고 그들 중 하나가 살짝 찍어서 맛을 보고는,

“!?”

쿵-!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기절해 버렸다.

“뭐, 뭐야?”

“장난하는 거지?”

“아니. 이게 대체 뭐라고······.”

쿠웅-!

라울은 맛을 보는 족족 나가떨어지는 기사들을 보며 한심하다기보다는 공포심을 느꼈다.

이걸 병째로 마신 그놈은 대체 뭐란 말인가.

‘아슬란.’

넌 괴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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