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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8화 (8/200)

8화

1초만 소드마스터 8화

“누님. 그 멀건 놈한테 물건은 전하셨소?”

“응. 아주 마음에 들어 하던데?”

여인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길드원들에게 다가가 뒤집어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덕분에 돈도 두둑이 받았고.”

“오~ 당연히 가격도 잘 후려치셨겠죠?”

“물론이지.”

돈이 든 주머니를 짤랑짤랑 흔들자 길드원들은 그 소리에 이끌리듯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발길질을 날렸다.

“야. 이 씨발. 어딜 더러운 손으로 만지려고.”

“아이참. 누님. 우리도 돈 좀 만져 봅시다.”

“꺼져. 나중에 분배해 줄 때나 많이 만져.”

하지만 돈이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의뢰의 수준에 따라 어떨 땐 이런 돈이 큰 문제를 일으킬 때가 있다.

“근데 이거 괜찮은 거 맞소? 그 멀건 놈이 아슬란을 죽이려고 약을 산 거 아니오?”

“알아서 하겠지. 뭔 상관이야.”

“아슬란이 7번째 소드마스터가 됐다는 건 누님도 알고 계시죠? 괜히 실패했다가 우리한테 불똥이 튀는 건······.”

“풉!”

그 말을 듣고 여인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 개병신 같은 아슬란이 소드마스터? 난 절대 안 믿어. 그리고 내가 준 약은 최상급 미혼약이라고. 진짜 소드마스터라고 해도 한 방울만 마시면 바로 기절이야.”

“누님은 아슬란을 참 싫어하시네.”

“내가 원래 너희들보다 병신인 사람을 싫어하는데, 그놈이 딱 그렇거든. 어휴. 그 정신병자 새끼. 아무튼, 이제 그 새끼 볼 일 없을 거야. 그리고 우린 얼른 여기부터 뜨자.”

“예? 아슬란이 죽으면 우릴 쫓을 사람도 없을 텐데요?”

“야. 아슬란이 죽는다고 베라크 가문이 망하니? 그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싸우려 들걸? 가뜩이나 왕국 상태가 메롱 한데, 내전까지 일어나 봐. 안 봐도 뻔하지.”

아슬란이 죽은 걸 알면 베라크 가문의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을 테고, 그럼 왕족과 베라크 가문끼리의 전쟁이 발발하게 될 것이다.

“가자. 이런 구닥다리 같은 왕국은 역시 나랑 안 맞아.”

어차피 정도 들지 않은 곳이라 아쉬움은 없었다.

그저 다음에 왔을 땐 이 성에 어떤 왕국의 깃발이 꽂힐지 궁금할 뿐이었다.

* * *

“우욱-”

온 세상이 빙빙 돈다.

롤러코스터가 최고 속력으로 원을 그리며 달리는 것만 같았다.

“이런 씹-”

뒤집어진 속을 풀어 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으으. 숙취해소제라도 제발······.”

오늘따라 편의점이 그리웠다.

갈증을 풀어 줄 시원한 물과 모닝땡 같은 숙취해소제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곳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이 고통을 끝내려면 그냥 안에 있는 걸 게워 내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참 동안 화장실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내가 또 술을 마시면 사람 새끼가 아니다.”

이 대사, 왠지 예전 룸메가 했던 소리 같은데.

매번 저러다가 술이 다 깨고 나면 해장술을 처마시러 룰루랄라 나가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래서 난 저 정도로 술을 마시지 말자··· 고 다짐했었는데.

“아오. 아슬란 진짜 이 개 같은······우읍!”

대체 그 허세가 뭐라고,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끝까지 들이키게 만들다니.

차라리 이 아슬란의 몸이 술을 잘 받는 신체면 말도 안 한다.

이놈은 내 원래 몸보다 더 심각하게 술이 안 받는 약체였다.

이 손을 봐라.

저번에 괜히 똥폼 잡는다고 손으로 칼을 부쉈다가 아직도 상처에서 진물이 나오고 있다. 그나마 회복용 포션을 퍼부어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썩어 문드러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많은 술을 퍼마셨다.

웃긴 건 부하들 앞에서는 절대 취한 모습을 보이거나, 속이 뒤집히는 것조차 병적인 허세가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휴. 씨발. 내가 이 정신병자 몸에서 빨리 나가든가 해야지.”

안 그랬다가는 어떤 허세를 부리다 죽을지 모를 판이었다.

“이따 집은 어떻게 가지?”

그나마 여기 방까지 온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꽐라가 된 부하들 앞에서는 맥시멈을 찍은 허세력이 몸을 꼿꼿하게 세워 주고 여기까지 오게 해줬지만, 눈앞에서 사람들이 사라지니 그 후폭풍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아까 누가 온다고 했던 거 같은데.”

내가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이곳 왕궁에 남아 있는 이유가 있었다.

그 바보 같은 경쟁에서 내가 이겼기 때문에 왕이 하사하는 상을 받아야 한다나 뭐라나.

다 됐고, 그냥 이대로 얼른 잠에 들고 싶었다.

속만 뒤집히지 않았어도 그냥 기절했을 것이다.

뚜벅뚜벅-

그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흠흠. 대기사단장. 안에 있으시오?”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닥에 축 늘어져 있던 몸이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났다.

빙빙 돌던 시야도 갑자기 정상으로 돌아왔고, 흔들리던 발걸음 역시 균형이 잡혔다.

병적인 허세가 몸 안에 가득한 취기를 놀라울 정도로 꾹꾹 밀어내고 있는 것이었다.

참 언제 봐도 놀라운 정신병이 아닐 수 없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난 흐트러진 망토끈을 단정하게 하며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라울을 안으로 들였다.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독주를 엄청나게 마셨는데도 이렇게 멀쩡할 수 있다니. 과연 소드마스터다운 정신력이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 꼴이 멀쩡해 보이는 모양이다.

하지만 병적인 허세가 술기운을 억누르고 있을 뿐.

조금이라도 긴장이 풀리면 언제 또 토악질을 하며 쓰러질지 모른다.

라울은 자리에 앉아 시종을 시켜 상자를 위에 올려 두게 했다.

“이게 무엇입니까?”

“왕께서 내리시는 보물이오. 오늘 연회에서 그대가 왕국 최고의 대주가라는 걸 증명하지 않았소? 아아. 물론, 할라즈 왕국을 격파한 전공에 대한 상도 따로 주실 거라 하셨소.”

상자 안에는 황금과 반짝이는 보석들이 들어 있었다.

별로 감흥이 없었다.

안 줘도 되니까 빨리 좀 라울이 꺼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것도 함께 하사하셨다오.”

상자 다음에 나오는 것은 바로,

“국왕께서만 드신다는 매우 진귀한 술이오.”

“······.”

이런 시발.

또 술이었다.

“왕께서 하사하신 것이니, 맛은 봐야 하지 않겠소? 내가 한 잔 따라 주겠소이다.”

“안 그러셔도 됩니다.”

“허허. 거절하지 않으셔도 되오. 얼른 이 맛을 보고 싶지 않소이까?”

라울은 뒤집힌 내 속도 모르고 잔에 술을 쪼르르 따랐다.

“자. 얼른 드시오.”

이제 술은 보기만 해도 뭐가 위로 올라오는 것만 같아 입에 대기가 싫었다.

하지만 저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보고 있으니, 그냥 버릴 수는 없는 노릇.

“저 혼자 마실 순 없지요. 공께서도 받으십시오.”

“아아. 나는 괜찮소.”

“둘이서 마시면 더 술맛이 좋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이 귀한 술을 저 혼자 마실 순 없지요.”

“크흠. 그, 그렇게 말한다면야.”

나는 라울에게도 잔을 따라 준 뒤 그가 잠깐 술잔을 바라보고 있을 때 얼른 내 잔에 있는 술을 바닥에 부어 버렸다.

그는 전혀 눈치를 못 챈 것 같았다.

“자. 쭉 드십시다.”

나는 비어 있는 잔을 입에 가져다 대고 꿀꺽꿀꺽 넘기는 연기를 했다.

라울은 술을 마시지 않고 그런 나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왜 드시지 않습니까?”

“음? 하하. 그거야 나는 마시면 안 되기 때문이오.”

“괜찮습니다. 드십시오.”

“그럴 순 없지. 그랬다가는 나도 자네처럼 잠에 곯아떨어질 것이 아닌가?”

“······?”

그게 무슨 소리지?

“술맛은 어떻소? 내가 직접 맛을 보진 않아서 약물 때문에 맛이 달라진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소이다.”

약물?

그는 품 안에서 작은 빈 병을 꺼냈다.

“이 약 한 방울이면 흉포한 몬스터도 금방 잠재울 수 있다고 하지.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소. 내가 여기 가져오기 전에 몇 번 시험을 해보니, 정말 다들 한 방울만 먹고도 기절을 하더군.”

“······.”

“그런 강력한 약을 병째로 이 술에 넣어 놨소이다.”

그 말은 처음부터 나를 노리고 이런 짓을 꾸몄다는 것이다.

나한테 약을 먹여서 무슨 짓을 하려고?

“베라크 가문이 그대의 몸에 보호 마법을 걸어 독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지. 그래서 다른 방법을 썼을 뿐이오. 이 약은 보호 마법이 지켜주지 못하거든. 그냥 빠르게 잠만 재우는 약이니까.”

“왜 그런 짓을···?”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겠소. 그대를 죽이기 위함이지.”

바로 그때였다.

* 퀘스트 발생!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십시오.]

-크리페 처치, 자객 20명 처치, 라울 처치 혹은 생포.

-보상으로 골드 10을 얻습니다.

-골드는 상점에서 사용이 가능합니다.

라울 이 개새끼가?

야망과 배신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놈이라 조심해야겠다-라는 생각은 전부터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벌써 행동으로 옮긴다고?

거기다 아무런 전조 신호도 없이 퀘스트라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전개가 빠른 거 같은······.

‘아.’

그때 내 뇌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난이도 때문이구나!’

‘극악’ 난이도는 내가 한번도 플레이해본 적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그러니 무엇도 예상할 수가 없고, 예상할 수 있다고 자만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하잖아.

“날 죽인다면 베라크 가문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상관없다. 너만 사라지면 모든 게 해결될 테니.”

그의 신호에 따라 사방에서 자객들이 각자 무기를 들고 나타났다.

그중에는 아까 나와 마지막까지 주량 대결을 하다 쓰러진 크리페가 있었다.

분명 꽐라가 돼서 기절을 했던 거 같은데, 어떻게 일어난 거지?

“흐흐. 그렇게 취한 건 오랜만이라 덕분에 포션을 많이 마셨습니다, 대기사단장님. 지금도 사실 머리가 살짝 어지러울 정도로 취기가 남아 있지요.”

그래. 판타지 세상인데, 술을 깨게 해주는 포션이 없을 리가 없지.

놈은 날이 서 있는 도끼를 어깨에 걸친 채 내게 뚜벅뚜벅 다가왔다.

거대한 몸집 때문인지 바닥이 쿵쿵 울릴 정도였다.

“당신을 죽이면 이제 내가 대륙 7번째 소드마스터가 되는 겁니까? 크흐흐.”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리며 놈은 도끼날을 앞에 내세웠다.

“이제 슬슬 약효가 돌겠군요.”

미안하지만, 약효가 돌 일은 없었다.

난 라울이 준 술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멋모르고 마셨다면 벌써 저 망나니 같은 놈의 도끼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

‘안 마셔도 죽을 거 같긴 한데.’

크리페도 문제지만, 사방으로 모여든 이 자객들도 문제였다.

놈들의 숫자는 대략 20명.

내가 진짜 소드마스터라면 그냥 단칼에 썰어 버렸겠지만, 아쉽게도 난 소드마스터가 아니다.

그냥 어쩌다 이 세상에 떨어져 버려 졸지에 소드마스터가 되어 버린 방구석 여포일 뿐.

그나마 있는 거라고는 300초에 한번밖에 쓰지 못 하는 병신 스킬이었다.

“왜 약효가 돌지 않는 거지? 지금쯤이면 쓰러져야 하는데?”

뭔가 이상함을 느낀 라울이 술잔을 들고 옆에 있던 자객에게 건넸다.

“한번 마셔봐라.”

자객은 그 잔을 받아 들고 한 모금만 마셔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쿵-!

그대로 쓰러져 기절해 버렸다.

약효 하나는 기가 막혔다.

라울은 잔에서 찰랑이는 술과 쓰러진 자객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이렇게 약효가 빨리 도는 게 정상이거늘. 왜 넌 멀쩡한 거지?”

잘 생각해 보자.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일단 찰나의 괴력이 있으니, 크리페 저놈을 단번에 베어 버리고 어떻게든 이곳을 도망치면 되지 않을까?

그래. 차라리 라울 저놈을 노리자.

일격필살의 의지로 달려가 검을 뽑으면 놈의 목 하나는 날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당연한 걸 묻는군.”

아슬란의 몸은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허리가 꼿꼿하게 세워지고 목소리는 굵고 낮게 깔렸다.

기회를 엿봐서 앞으로 달려가기 위해 준비하던 동작도 풀려 버렸다.

“고작 그따위 약으로 이 몸을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꿈틀거리기 시작한 병적인 허세.

그래. 네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지.

이미 허세에 잠식당한 혓바닥은 내 의지에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춤을 췄다.

“어리석구나. 라울이여. 넌 약을 믿을 게 아니라 이 왕국에 있는 모든 기사를 끌고 왔어야 했다. 뭐, 그랬어도 이 몸을 잡기는 어려웠겠지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아주 당당하게 하고 있었다.

“야, 약이 통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아까부터 재수 없게 웃기만 하던 크리페가 안색을 싹 굳히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쳐댔다.

잠깐. 이놈들 봐라?

이거 잘하면 먹힐 수도 있겠는데?

아슬란에게 있는 또 다른 무기는 바로 상대방이 속을 정도로 뻔뻔한 허세가 아니던가?

“약 따위는 이 몸에게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여전히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한번 고삐 풀린 허세가 얼마나 위험한지, 가오에 지배당한 몸이 얼마나 더 미친 짓을 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웃기지 마라. 그 약이 통하지 않을 리 없다.”

라울의 반박에 나는, 아니. 아슬란은 약이 잔뜩 풀어져 있는 술병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 미친놈은 그 술병에 담긴 술을,

“그럼 보여주는 수밖에 없겠군.”

전부 입에 부어 버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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