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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7화 (7/200)

7화

1초만 소드마스터 7화

“나의 자랑스러운 기사, 아슬란이여. 그대가 우리 왕국의 명예를 드높였구나.”

일라이 왕국의 왕, 리베르트.

뚱뚱한 몸집이 왕의 망토에 다 가려지지 않을만큼 심각해 보였다.

“먹고 즐기시게. 그대는 충분히 자격이 있으니.”

나는 힐끗 웃으며 술잔을 드는 척만 하고 마시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더럽게 맛없네.’

술이 내 입맛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난 술을 잘 마시지 못했다.

가끔 사람들은 술이 달게 느껴진다고 하는데,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저 양반은 혓바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맥주도 그렇고, 소주도 그렇고 아무리 비싼 양주를 마셔도 술이 맛있다, 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몸이 바뀌어도 입맛은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요리들이 전부 고기 요리라는 것 정도?

“우하하하-!”

“자자. 모두 잔을 드시게!”

어느 술자리나 그렇듯, 무리에 끼지 못하는 아싸가 있고 분위기를 승천시키는 인싸가 있다.

이 자리에도 연회의 분위기를 열심히 띄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라울]

무력: 55

지력: 65

왕의 사촌인 라울이었다.

형편없는 능력치에 나는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저런 놈도 나보다 능력치가 높구나.

아슬란 이놈은 대체 얼마나 똥인 거냐.

“자! 모두 주목! 오늘 승리의 주역인 아슬란 대기사단장을 위해 잔을 듭시다!”

“옳소!”

“새로운 소드마스터를 위하여!”

“위하여!!”

이날만큼은 문무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잔을 높이 들었다.

보통 문관과 무관의 사이는 껄끄러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서로 먹고 마시며 취하는 술자리에서는 그런 갈등도 전부 허물어지는 듯 보였다.

"우리 왕국의 소드마스터가 탄생하다니!"

"무한한 영광입니다!"

이들이 내 스텟을 알게 되면 아마 까무러칠 것이다.

찰나의 괴력.

딱 그거 하나 말고는 볼 게 없다.

저 라울 같은 놈한테도 아슬란은 상대가 안 된다.

이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젠장.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돼?’

저들처럼 난 이 연회를 즐기지 못하는 중이었다.

원래 아싸 기질이 심한 터라, 이런 술자리에 잘 나가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 아슬란의 캐릭터 특성상 같잖은 품위를 지켜야 한다며 이런 자리에서는 실컷 떠들어 대지도 않는 듯했다.

그래서 지루하게 저들끼리 신나게 놀고먹는 걸 지켜보고 있을 때였다.

“대기사단장. 연회가 즐겁지 않소?”

언제 다가왔는지도 모를 라울이 서글서글하게 내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아까 일부러 다른 곳에 술을 버리고 빈 잔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놈이 제 마음대로 술을 채웠다.

인싸는 저기 가서 놀라고.

“얘기는 들었소. 아론이라는 유능한 지휘관을 붙잡아 할라즈 왕국에 거금을 내놓으라고 했다지?”

이놈은 왜 갑자기 내게 다가와서 친한 척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정도의 거금은 할라즈 왕국에서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겠소? 아무리 유능한 지휘관이라고 해도 말이오. 어쩌면 포기를 할 수도 있겠구려.”

할라즈가 아론을 포기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슬며시 미소를 띠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왕이 눈치를 보다 끼어들었다.

“오오. 그렇지 않아도 나 역시 그게 궁금했다. 아슬란 그대가 직접 포로들에 대한 몸값을 책정했다지? 근데 과연 그 정도의 값을 할라즈 왕국이 지불하려 들지 모르겠군.”

값이 그렇게 높았나?

아니. 내가 이 게임을 얼마나 많이 플레이 해봤는데.

나도 선을 넘는 정도의 값을 내놓으라고 하진 않았다.

딱 그쪽에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맥시멈을 계산한 것이었다.

적어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 내 계산이 틀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괜히 고인물이라는 소리를 들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알아서 잘 해결이 될 터이니.”

“흐흠. 그래. 우리 대기사단장이 따로 생각해 둔 바가 있겠지.”

“하하. 그렇겠지요. 그럼 이제 연회도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으니, 여기서 제대로 흥을 띄워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왕이시여.”

“라울. 그것이 네 특기이지 않더냐. 어디 마음껏 해 보거라.”

라울은 왕에게 공손히 예의를 차리며 기사들이 있는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그의 비열한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라울.

저런 쩌리 캐릭터 이름을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놈이 가진 특성 때문이었다.

[야망] [배신]

야망이라는 특성은 좋을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특성이다.

야망은 자신의 힘, 혹은 세력을 넓히고 강성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과하게 되면 무모한 짓을 하게 되고 안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양날의 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라울은 ‘배신’이라는 특성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캐릭터의 낙인 같은 거지.’

이 게임에는 반드시 가져야 하는, 혹은 친해져야 하는 캐릭터, 그리고 반드시 멀리하거나, 죽여야 하는 캐릭터가 있다.

아예 교류를 피하는 것도 방법인데, 이런 목록에서 라울은 항상 부정적인 곳에 들어가 있었다.

본인의 능력이 어울리지 않는 야망이 있고, 또 상대가 누구든 일단 배신부터 치고 보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삼국지의 여포처럼 저놈은 제 부모도, 형제도, 자신이 모시는 주군도 망설임 없이 뒤통수를 치는 놈이다.

그러므로 라울과 같이 ‘배신’ 특성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는 무조건 걸러야 한다.

“이제 시간이 됐소.”

놈은 잔을 들고 연회장에 모인 회중들에게 말했다.

“누가 이 왕국 최고의 술꾼인지 가려야 하지 않겠소?”

라울이 손뼉을 치자 시종들이 사람 키보다 높은 술병을 가지고 들어왔다.

왕과 신하들은 기함을 터트리며 그 안에 잔뜩 담긴 술을 내려다보았다.

“참가할 사람은 누구든 참가할 수 있소. 일라이 왕국 최고의 대주가가 될 수 있는 명예를, 그리고 왕께서 친히 하사하시는 상을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요!”

“참여하겠습니다!”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남자들이 이상한 곳에 자존심을 부리는 건 어딜 가나 똑같은 모양이다.

그들은 각자 술잔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나이가 좀 든 몇몇 기사들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기사들이 이번 경쟁에 참여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우리끼리 하면 재미가 없겠지. 이건 어떻소? 내가 우리 왕국 최고의 대주가라고 보증할 수 있는 시종이 하나 있소이다. 그를 이번 경쟁에 참가하게 한다면 더욱 재밌을 거 같은데?”

“좋습니다!”

“다 덤벼 보십시오!”

기사들의 호쾌한 웃음도 잠시.

남들보다 두 배는 더 큰 덩치에 남자가 안으로 들어오자 모두 마른침을 삼키며 그를 바라보았다.

[크리페]

무력: 75

지력: 30

무력이 75에 달하는, 우리 왕국에는 몇 없는 강자였다.

저런 놈을 라울은 시종으로 데리고 있었단 말인가.

이미 저 몸집과 아우라에서부터 기사들은 주눅이 들어 보였다.

이번 대결은 보나 마나 뻔한 것 같았다.

그런데,

“아슬란 대기사단장.”

라울이 음흉하게 미소를 지으며 나를 도발하기 시작했다.

“오늘 연회의 주인공이 이런 자리에 빠지면 섭섭하지. 대륙 7번째 소드마스터라는 그대가 이런 대결을 피하진 않겠지? 어떻소? 한번 같이 흥을 띄워 보는 것이.”

유치한 도발이었다.

당연히 나라면 그냥 웃어넘겼을 것이다.

문제는,

“흠-”

이 몸은 아슬란의 몸이라는 것이었다.

그동안 잠잠했던 병적인 허세가 기다렸다는 듯이 치밀어 올랐다.

펄럭-!

일어날 땐 망토를 펄럭이고,

"날 실망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래로 내려갈 땐 절도 있고 품격 있는 발걸음을 잊지 않았다.

나는 술병 앞에 우글우글 모여 있는 기사들을 하찮게 바라보며 말했다.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이나마 내 지루함을 달래 줄 정도면 좋겠군.”

그 말에 자극을 받은 기사들의 눈빛에서 불꽃이 튀었다.

* *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호레스?”

“······.”

“그리고 넬라 기사단장도 그렇소. 일이 틀어지면 그대가 직접 나서서 해결한다 하지 않았던가?”

아무 말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두 사람이 라울은 답답했다.

“뭐라 말 좀 해보시오.”

“일이··· 그리되었습니다.”

“그냥 그리되었다?”

“아슬란이 유한을 꺾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이대로 포기하자는 것이오?”

아슬란을 죽이고 무너진 왕국을 재건하자는 것에 뜻을 모은 건 호레스와 넬라 뿐만이 아니었다.

라울도 그중 하나였고, 그 외에도 아슬란의 측근이 아닌 자들이 비밀리에 힘을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아슬란이 대승을 거두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난 그대들을 믿소. 다시 한번 우리가 힘을 모아 계책을 만든다면 아슬란을 제거할 수 있소.”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뭐요?”

“공의 마음은 모르는 바가 아니나, 마지막으로 한번만 아슬란을 믿어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라울은 지금 내가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하고 있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토록 아슬란을 증오하던 호레스에게서 어떻게 저런 말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호레스. 혹시 뭘 잘못 드셨소?”

“공께서는 아슬란이 못마땅하실 수 있지만, 지금 그는 우리 왕국의 희망입니다. 그런 그를 무리해서 제거하려 든다면 어떤 출혈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전쟁을 통해 깔끔하게 제거하려 했던 것이 아니오? 거기다 희망? 저 아슬란이 희망이라고?!”

“진정하십시오. 호레스 군사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넬라 기사단장. 자네까지!?”

“그는 왕국에 꼭 필요한 인물입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오늘 연회가 끝난 뒤에 하시지요.”

“······.”

믿었던 호레스와 넬라가 차갑게 등을 돌리며 연회장으로 돌아가 버렸다.

아슬란은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이라며 피를 끓이던 작자들이 대체 이번 전쟁에서 무얼 봤기에 저토록 변한 것인지.

라울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하지만 막상 아슬란이 죽는다면 저들의 마음도 다시 달라질 것이리라.

그는 어둠을 향해 말했다.

“준비는 되었느냐?”

그의 물음에 후드를 뒤집어쓴 여성이 조심스레 다가와 대답했다.

“후훗. 공께서 지금 제일 필요하신 약이 뭔지 전 알고 있습니다.”

그 여인은 작은 약병을 라울에게 건넸다.

약병 안에는 투명한 물약이 들어 있었다.

“베라크 가문 같이 큰 가문은 주기적으로 큰돈을 들여 독에 면역이 될 수 있는 주문을 가주에게 걸어 둡니다. 그렇기에 웬만한 독으로는 그를 죽일 수 없어요. 하지만 이 약은 독이 아닙니다.”

“독이 아니다?”

“예. 제아무리 흉포한 몬스터라도 이 약 한 방울이면 금세 잠에 빠지게 만들지요. 이 약을 아슬란에게 먹이신다면 그는 세상 모르고 잠들게 될 겁니다. 그럼 그때 스윽-”

여인은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라울의 입가가 저절로 호선을 그렸다.

“마음에 드는군. 약효는 확실하겠지?”

“의심이 가신다면 아무에게나 써보십시오.”

“좋아. 효과가 좋다면 내 또 연락하도록 하지.”

“언제든 공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여인은 라울이 던져주는 돈주머니를 받고 미소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라울은 약병을 품 안에 넣어 놓고 다시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끄으윽······.”

왕국 최고의 대주가라 자랑스럽게 소개했던 자신의 부하가 덩치값을 하지 못하고 쓰러지고 있었다.

“져, 졌습니······.”

놈은 그대로 바닥에 철퍼덕 엎어져 잠에 빠져들었다.

그 외에도 이번 경쟁에 참여했던 기사들 모두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였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꼿꼿하게 서 있는 자가 있었으니,

“한심한 놈들. 고작 이 정도 마시고 쓰러지다니.”

그건 바로 아슬란이었다.

"이제 막 시작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내 상대가 될 자는 없는가?"

그는 술병에 남은 마지막 한 방울까지 털어 마시는 무시무시한 주량을 보여 주었다.

설마 저 많은 걸 다 마신 건가?

라울은 멍하니 눈을 껌뻑였다.

저 술은 그냥 술이 아닌, 굉장히 독하게 만들어진 독주다.

그런데 저걸 정말 다 마셔 버렸다고?

“라울 공.”

그때 자신을 부르는 아슬란의 목소리에 라울은 몸을 들썩였다.

아슬란은 잔을 털어내며 말했다.

“숨겨둔 부하는 더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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