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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6화 (6/200)
  • 6화

    1초만 소드마스터 6화

    막사를 나서던 호레스는 발걸음을 멈추고 슬쩍 뒤를 바라보았다.

    아슬란.

    그가 저런 말도 할 줄 알았던 사람이던가.

    ‘기사는 검으로 살고 검으로 죽는다. 그리고 사람을 살리기 위해 검을 든다.’

    막사에 있던 모두가 아슬란의 말을 듣고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당장 호레스조차도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체 언제부터 아슬란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이젠 모르겠다.

    과거 자신이 알고 있던 아슬란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섞여 혼란스러웠다.

    “군사님.”

    “넬라 기사단장.”

    자신이 추격군을 이끌고 간다고 했을 때 무거운 표정으로 보내줬던 넬라의 얼굴이 지금은 미소로 가득하다.

    오랫동안 험한 미로에 갇혀 있다 마침내 출구를 되찾은 듯, 그의 모습에 알 수 없는 해방감마저 보였다.

    “군사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

    “역시 알고 계셨던 거군요. 대기사단장님이 그렇게 뛰어난 전략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을. 전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대기사단장님께서 그러시더군요. 아군을 속여야 적을 속일 수 있다고 말입니다.”

    호레스는 괜히 헛기침을 터트렸다.

    아군을 속여야 적을 속일 수 있다라.

    설마 저 아슬란에게 그런 말이 나올 줄이야.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명언이었다.

    “할라즈 왕국 놈들이 대기사단장님의 깃발을 보고 얼이 빠졌던 걸 직접 보셨어야 했는데. 하하하!”

    “넬라 기사단장.”

    “아, 예. 군사님.”

    호레스는 무슨 말을 하려다 멈췄다.

    “······아니오. 오늘 노고가 많으셨소.”

    “아닙니다. 적의 눈을 속이기 위해 직접 먼 길을 자처하신 군사님이 대단하시지요.”

    호레스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아슬란의 계획을 미처 알지 못했노라고 직접 입으로 말하기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넬라의 얼굴을 보니, 더는 그에게서 아슬란에 대한 살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 대기사단장님 말씀 들었어?”

    “크- 나도 밖에서 다 들었지. 어찌 그리 말씀도 멋있게 하시는지.”

    “그분이야 말로 기사의 표본이시지 않은가? 한 걸음을 걸으시더라도 결코 품위를 잃지 않으시잖아.”

    “크하하! 맞지, 맞아! 난 한번도 대기사단장님의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다니까?”

    호레스는 군영 안을 돌아다니며 병사들이 나누는 얘기를 조용히 엿들었다.

    그들의 말마따나 호레스도 흐트러진 아슬란의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술을 잔뜩 마셔도 아슬란은 결코 걸음걸이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은 타협이 없었기에 그런 점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거기다 검술도 엄청 뛰어나시잖아! 그 유한을 일격에 죽이셨다고!”

    “아- 내 평생에 우리 왕국에서 대륙 소드 마스터가 나오는 날을 보다니.”

    “그런 분과 같이 싸우는 것도 엄청난 영광이야.”

    아슬란을 향한 병사들의 충성심이 하늘을 찌를 것 같았다.

    중후한 매력을 가진 외모에 평소 어떤 순간에도 잃지 않는 품위를 보이던 아슬란.

    거기에 더해 이제는 소드 마스터라는 후광까지 생겼다.

    소드 마스터의 휘하에서 싸운다는 것만큼 병사들에게는 대대손손 그 후일담을 들려줄 만큼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왕국에서 그런 위대한 인물이 나왔는데, 자긍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정말 우리 왕국의 군영이 맞는 것인가?”

    일라이 왕국은 대륙에서 최약체로 평가되는 약소국.

    그렇기에 전쟁이라도 터지면 항상 막사 안은 어둡고 우울함만 가득했다.

    하지만 보라.

    여기저기서 웃음소리만 들리고 있었다.

    “내가 틀렸던 것일까.”

    아슬란만 사라지면,

    그의 뒤에 있는 베라크 가문만 사라지면,

    일라이 왕국이 강대국으로 다시 일어설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원하던 이상적인 광경이 여기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도 아슬란의 지휘 아래에서 말이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지경이군.”

    호레스는 저 멀리 언덕 꼭대기에 홀로 있을 아슬란의 막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옆에서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네가 정말 그 말을 지키는지.”

    사람을 살리기 위해 검을 든다는 아슬란의 말을 호레스는 영원히 간직할 생각이었다.

    * * *

    “아슬란 대기사단장님께서 네게 남기신 선물이다.”

    옥에 갇힌 아론 앞에 일라이 왕국 병사 하나가 무언가를 던져 놓았다.

    쨍-

    그것은 바로 두 동강 난 아론의 검이었다.

    깨끗하게 단면이 잘린 것이 아닌, 아예 중간 부분이 바스러져 다시 수리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무식하게 저걸 맨손으로 부러뜨렸으니 당연한 결과다.

    아론은 그 검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대기사단장님.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다시 힘을 모은다면 일라이 왕국쯤은 금방 몰아낼 수 있을 겁니다.”

    아론을 위로하고자 그와 함께 포박되어 있던 기사들의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그대들은 이 검을 보고도 모르겠는가?”

    “예?”

    “내 검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한번 봐라.”

    검에서는 푸른 빛이 새어 나왔다.

    그렇다는 건.

    “미, 미스릴!?”

    강철보다 훨씬 더 단단하다는 미스릴.

    아론의 검은 바로 그 미스릴로 만들어진 검이었다.

    “아슬란은 내 검이 미스릴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직 완력만으로 이 검을 부러뜨린 거다.”

    “어, 어떻게 사람이 그런 괴력을···!”

    “완전 괴물이 아닙니까?!”

    “그래. 괴물이지. 그런 자와 너희는 다시 싸우고 싶은 것이냐?”

    “······.”

    아슬란과 다시 싸운다?

    벌써부터 몸이 오들오들 떨리는 것만 같았다.

    아론 역시 누군가에게 이 정도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가 참으로 어리석었다. 잠시 아슬란의 옛 그림자에 속아 그의 힘을 과소평가했어. 그러지 않았다면 이런 실책을 범하지도, 이곳에 붙잡히지도 않았을 터.”

    후회한다고 한들 이미 늦었다.

    하지만 이번 전쟁을 통해 배운 것도 있었다.

    아슬란이라는 인물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으며, 그가 손에 피를 흘리며 외친 기사의 명예가 무엇인지도 알게 됐다.

    ‘아슬란.’

    복수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더 이상 들지도 않았다.

    그만큼 압도적인 그의 힘을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일까.

    100번을 싸워도 이길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자신과 할라즈 왕국을 비겁하고 옹졸하며 명예를 모르는 자들이라 내리깎았지만, 이상하게 거기다 대고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기사로서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대체 넌 무엇이냐?’

    대륙 전체에 퍼진 아슬란에 대한 소문은 전부 거짓이었던가.

    그의 악행들과 치졸한 짓들은 전부 헛소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힘과 저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을 리 없다.

    ‘만약 내가 여길 나간다면-’

    그땐 아슬란을 단순히 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롤모델로서 그가 외친 기사의 정신을 지켜나갈 생각이었다.

    * * *

    “새로운 소드마스터이시다!!”

    “아슬란 대기사단장님!!”

    “와아아아-!!”

    일라이 왕국의 수도, 브릴 도시.

    성문이 활짝 열리기 무섭게 하늘에서 꽃잎이 비처럼 쏟아졌다.

    전부 이곳 백성들이 승전하고 돌아오는 군사들을 위해 뿌리는 찬사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 군중 사이로 지나갔다.

    ‘또 시작이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 없는 것처럼, 아슬란 역시 그러했다.

    근엄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는 것은 기본이고, 꽃가루가 아무리 날려도 눈꺼풀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무리 양옆에서 비명을 지르며 호들갑을 떨어도 절대 표정이 변하는 법이 없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닌, 허세력에 찌든 이 아슬란의 몸이 본능적으로 해내는 것이었다.

    하여튼 대단한 정신병이다.

    푸르르-!

    이놈의 말도 주인을 닮은 것인지, 평소에는 촐싹대게 울어대던 놈이 오늘은 꼭 명마처럼 말발굽이 또각또각 소리가 났다.

    이놈도 주인의 허세력에 전염된 게 분명했다.

    나는 전쟁터의 위대한 지휘관마냥 팔짱을 낀 채 백성들을 지나쳐갔다.

    “아아. 저것이 소드마스터의 품격인가?”

    “어쩜 말을 타실 때도 저렇게 멋있을 수가.”

    “대체 누가 지금까지 우리 대기사단장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렸던 거야?”

    중후한 매력이라는 특성이 발동되면서 아슬란은 백성들의 마음을 금방 휘어잡았다.

    이래서 외모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수상해 보여도 일단 얼굴이 잘났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일단 들어는 봐야 한다는 잔인한 말이 있지 않던가.

    나 같은 아싸 찐따에게는 침이나 뱉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런데 하필 믿어도 아슬란 같은 놈을 믿다니.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싶었으나, 병신 같은 허세력에 장악당한 이 몸은 그런 간단한 동작조차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걸 다행스럽게 여기면 안 되는 건가?

    이 병적인 허세력에 내가 먹혀 버릴까 두려웠다.

    ‘그나저나 여기만 지나면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겠네.’

    가만있자.

    일라이 왕국의 왕이라면 리베르트였나?

    이 게임에서 등장하는 왕 중 제대로 된 놈은 거의 없다.

    중세 시대처럼 첩이 많아서 후계 문제로 매번 피바람이 불고, 별 특이한 성적 취향을 가진 왕족들이 득실거려 한번 플레이를 해보면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다.

    일라이 왕국같이 망국 테크 트리를 타고 있는 놈들이라면 그 왕족 수준이 어떨지 대충 짐작이 간다.

    상대가 대기사단장이건 대마법사건 제 신분만 믿고 날뛰는 놈들이 많다는 것이다.

    ‘뭐, 나한테는 베라크 가문의 빽이 있으니까.’

    일라이 왕국에서 베라크 가문의 위세는 대단하다.

    제아무리 왕족이라도 베라크 가문의 사람을 건드리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 왕실 곳곳에 베라크 가문의 수족이 심어져 있으며, 그들의 감시망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왕도 나한테는 함부로 하지 못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최대한 부딪히지 말자.’

    이 게임이 현재 ‘극악’ 난이도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어디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 * *

    “끄응-”

    일라이 왕국의 왕, 리베르트는 똥 마려운 똥개마냥 안절부절못하며 서성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된다.”

    이 전쟁은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다.

    일라이 왕국의 적폐 아슬란을 제거하고 베라크 가문을 몰아내기 위한 계책이었다는 것이다.

    할라즈 왕국에게 따로 밀지를 보내 협력을 하고 있었을 만큼 완벽한 작전이었거늘.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 버리고 말았다.

    “아슬란이, 그 아슬란이 어떻게 유한을!?”

    백 번을 생각해 봐도 뭔가 잘못된 일이었다.

    문무에 재능이 없으면서 가문을 등에 업고 분수에도 안 맞는 대기사단장이 된 아슬란이 대륙 7번째 소드마스터가 되었다?

    “지나가던 개가 웃겠구나. 하하하! 세상이 미쳐 버린 게 틀림없다. 다 미쳐 버린 거라고!”

    “고정하십시오, 왕이시여.”

    “지금 고정하게 생겼느냐? 네 말을 듣는 게 아니었어. 아슬란의 위세만 높여 준 꼴이 됐잖은가! 이걸 어떻게 책임질 것이냐, 라울!”

    왕의 측근이자 사촌인 라울도 미칠 지경이었다.

    아슬란이 도대체 무슨 술수를 부렸기에 그 유한을 쓰러뜨릴 수 있었던 것인지 그도 알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이럴수록 침착하셔야 합니다. 기회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미 왕을 위해 이번 일에 동참한 기사들과 신하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솔깃해진 왕이 은근하게 물었다.

    “무슨 방도라도 있는 것이냐?”

    “왕께서는 그저 지켜만 봐주십시오.”

    지켜만 봐달라는 건 일이 실패로 돌아가도 왕은 모른 척 잡아떼도 된다는 것이었다.

    밑져야 본전이니, 왕은 헛기침을 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흠. 이번 한번만 마지막으로 믿어 주지.”

    “송구합니다. 이제 그만 전각으로 가시지요. 아슬란이 오고 있습니다.”

    “쯧. 그래야지. 내 언제쯤 그놈 얼굴을 안 볼 수 있는 것인지.”

    리베르트 왕은 아슬란이 오는 것에 맞춰 전각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이미 신하들과 기사들이 모여 있는 상태였다

    왕이 왕좌에 앉자 얼마 안 있어 기사 하나가 안으로 들어와 큰 목소리로 아뢰었다.

    “왕이시여! 대기사단장 아슬란이 왕을 뵙고자 합니다!”

    리베르트는 똥 씹은 표정을 지웠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인자하고 아슬란을 아끼는 왕인 척을 해야 한다.

    “대승을 거둔 자랑스러운 나의 기사다. 그를 성대하게 맞이하거라!”

    웅성웅성-

    술렁이던 신하들과 기사들.

    그들도 의문일 것이다.

    어떻게 아슬란이 유한을 상대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가 7번째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었는지.

    하지만 아슬란이 들어오자마자 순식간에 전각 안이 고요해졌다.

    라울은 느낄 수 있었다.

    아슬란을 바라보는 저들의 눈동자가 달라졌다는 것을 말이다.

    ‘벌써 잊어버린 건가? 이 우매한 놈들.’

    아슬란이 그동안 저지른 악행을, 그 추악한 만행을 전부 다 잊어버린 것인가?

    “오오. 위대한 분이시여.”

    “소드마스터가 되심을 감축드립니다.”

    입에 발린 신하들의 말과 기사들의 경외심 가득한 목소리.

    그저 아슬란의 눈치만 보며 아부만 떨던 과거의 모습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저놈들은 어쩌면 그가 왕국의 희망이 될지 모른다는 미친 생각을 하고 있다.

    그것을 보고 라울은 생각했다.

    ‘저대로 놔두면 안 되겠구나.’

    그렇기에,

    ‘무슨 일이 있어도 아슬란은 죽어야 한다.’

    설사 그가 정말로 왕국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해도 그는 반드시 죽어야만 했다.

    자신의 권력과 왕실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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