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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5화 (5/200)

5화

1초만 소드마스터 5화

“곧 놈들의 수도가 코앞이다! 진격하라!”

아론의 우렁찬 목소리에 힘을 얻은 할라즈 병사들은 쉬지 않고 뛰었다.

무리한 강행군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론은 유한의 복수라는 명분으로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놓았으며, 그 결과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가 로난 성이다!”

로난 성은 다른 곳에 비해 작은 곳이었다.

그렇기에 공략하기도 쉬웠고, 지금의 사기라면 충분히 공략 가능해 보였다.

“우리의 분노를 똑똑히 보여 주는 것이다. 이곳 로난 성을 불태워라. 포로는 없다.”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에 기사단장들이 소리쳤다.

“포로는 없다!! 로난 성에 있는 것을 모두 불태우고 죽여라!”

성난 병사들의 함성에 평화로웠던 로난 성도 큰 혼란에 빠졌다.

“저, 적이다!”

“아니.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어째서 할라즈 왕국의 병사들이 여기까지······!”

“우리 왕국 병사들은 어떻게 된 거지?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하지 않았어?!”

그들이 도망칠 새도 없이 할라즈 왕국 병사들이 성을 포위한 터라 도망칠 길도 없어 보였다.

남아 있는 수비 병력도 거의 없어서 차라리 성문을 열고 항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사람들도 있었고,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서로 말다툼을 하는 동안,

“저, 적들이 올라온다!!”

할라즈 왕국 병사들은 사다리를 성벽에 걸치는 중이었다.

또한 마법사들은 성문을 부수기 위해 파괴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런 제길. 이대로 가다가는······.”

그렇게 점점 그들의 목을 조여오기 시작할 때쯤.

“잠깐. 저건?!”

저 멀리서부터 푸른 깃발들이 펄럭이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성벽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병사들은 그 깃발을 보고 소리쳤다.

“워, 원군이다!”

“뭐? 원군?”

“진짜야? 정말 원군이 왔어?!”

곧이어 다른 병사들도 저 먼 곳에서부터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오는 기마병을 바라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푸른 깃발이야!”

“그건 아슬란 대기사단장님의 깃발이잖아?!”

“대기사단장님께서 오셨다!!”

“진짜다! 대기사단장님이야!”

그들의 함성은 곧 할라즈 왕국 군사들에게도 닿았다.

그들도 뒤에서 들리는 말발굽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뭐지 저게?”

두두두두-!

아슬란 가문의 상징인 사자 얼굴이 그려진 푸른 사자 깃발을 높이 들고 기마대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럴 수가. 아슬란이다!”

“뭐? 아슬란?!”

아론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분명 자신의 계획은 완벽했다.

도망가는 척 군을 위장시키고 일부러 크게 길을 우회하여 놈에게 걸리지 않도록 진군했다.

그것에 속아 놈들의 군대가 그 뒤를 쫓아가고 있다는 보고까지 받았다.

지금쯤이면 놈은 할라즈 왕국 경계를 넘어 허탕을 치고 있어야 할 터.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아슬란의 군대가 이곳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는 중이었다.

“대기사단장님. 군사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어서 명령을!”

아론은 마른침을 삼키며 넋을 놓고 흙먼지로 가득해진 평야를 바라만 볼 뿐, 어떤 명령도 내리지 못했다.

그럴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대기사단장님!!”

“아······.”

뒤늦게 정신을 차린 아론은 어수선한 얼굴로 말했다.

“이, 일단 모두 지, 진정하거라.”

진정하라는 말을 해봤자 당장 대기사단장부터가 목소리와 표정에서부터 진정이 되지 않았다.

거기다 병사들이 지금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바로 아슬란이다.

아슬란의 깃발만 봤을 뿐인데도 이들은 사시나무처럼 다리를 떨며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위대한 아슬란 대기사단장님의 기사들이여!”

그 기세를 몰아 선두에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려오고 있던 넬라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모든 적을 섬멸하라!”

“와아아아-!!”

“어, 얼른 방어 대형을 갖추어라! 놈들을 막아야 한다!”

기사단장들의 다급한 명령에도 병사들은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공포에 압도된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적의 기마대가 폭풍처럼 휩쓰는 것을 지켜만 볼 뿐이다.

* * *

“헉헉. 여긴가?”

호레스는 말이 지쳐 쓰러질 정도로 달려 간신히 막사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늦었군.”

턱을 괸 채 상석에 앉아 있는 아슬란이었다.

그의 앞에는 할라즈 왕국의 기사들이 밧줄에 묶여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자들은······.”

“보면 모르나. 기사의 자격도 없는 한심한 놈들이다. 거기서 그만 떠들고 앉지.”

“아, 예.”

호레스는 자리에 앉으면서 붙잡혀 온 자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들 중 아는 사람은 몇 없었으나, 유독 눈에 띄는 자가 있었다.

‘저자가 아론이군.’

유한 다음으로 검술과 전술에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는 인재다.

차기 대기사단장이 되는 가장 유력한 후보로 뽑힐 만큼 할라즈 왕국에서도 입지가 좋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밧줄에 묶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슬란이 자신의 계책으로 저 유능한 젊은 인재와 더불어 할라즈 왕국의 병사들을 소탕한 것이었다.

‘결국 나도, 할라즈 왕국도 모두 아슬란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는 것인가?’

아슬란은 사자를 닮은 매서운 눈동자로 아론을 거만하게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도통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단 말이지.’

예전에는 저 어리석은 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아슬란이 멍청했던 것이 아니라 호레스 자신이 멍청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은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지금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 * *

‘좆될 뻔했네.’

겉으로는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만약 내가 군을 회군시키지 않고 호레스 말을 따라 군을 추격했다면 지금쯤 저놈들이 왕국 수도를 털어놓았을 것이다.

일명 빈집털이 전법으로, 이 전략에 한번 당하면 멘탈이 갈려 나가는 것은 물론, 게임 재시작을 자연스레 누르게 된다.

그만큼 플레이어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냥 어느 왕국에 속해 있지 않고 방랑자로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운 좋게 잘 맞아떨어진 건가? 그렇다고는 해도 호레스 저 영감이 살아 있잖아.’

나는 괜히 힐긋 호레스를 한번 째려보았다.

이럴 의도로 군을 철군시킨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었다.

호레스가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말이다.

‘근데 얘네는 왜 저놈들을 여기까지 끌고 온 거야?’

전투에서 승리한 넬라 기사단장은 굳이 아론을 비롯해 여러 기사를 붙잡아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자기를 칭찬이라도 해달라는 듯 우쭐거리며 어깨를 으쓱이기까지 했다.

‘아니지. 이건 잘한 게 맞아.’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이건 꽤 좋은 수완이었다.

‘포로 해방 조건으로 돈을 뜯어낼 수 있잖아.’

어떤 게임이든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자원이라는 건 항상 큰 도움이 되니까.

물론, 일정 수치가 넘어가면 모든 왕국의 표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적당히 조절하거나 숨기는 것도 중요했다.

거기다 하필 붙잡혀 온 것이 아론.

[아론]

무력: 85

지력: 80

입에 침이 고이는 능력치였다.

저게 내 능력이었어야 했는데······!

다시 한번 주먹이 부르르 떨릴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

왜 이런 똥캐를 골라 가지고!

‘거기다 저놈은 스텟만 좋은 게 아니라는 거지.’

아론은 성장형 캐릭터라 저기서 더 성장해 나중에는 무력이 90까지 치솟는다. 거기서 이런저런 무기까지 곁들여 주면 최고 무력을 찍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단순히 무력과 지력으로만 인재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캐릭터마다 특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론은 A급에 달하는 특성들을 여럿 가지고 있었다.

‘즉, 할라즈 왕국한테는 아주 소중한 인재라는 거지.’

유한도 죽은 마당에 할라즈 왕국에서는 이제 믿고 의지할 게 아론밖에 없다.

다른 인재들도 있겠지만, 아론에 버금가는 인물은 없으니 그들은 큰돈을 지불해서라도 돌려받으려 할 것이다.

‘나중에 저놈이 성장해서 복수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먼 나중의 일이니까.’

이번 전쟁으로 할라즈 왕국의 병력은 거의 괴멸 수준에 달했고, 유한도 잃었으니 당분간 힘을 회복시키기에 바쁠 것이다.

아니면 다른 왕국이 먼저 할라즈를 점령할 수도 있고.

설사 어떻게 잘 회복을 해서 내게 복수를 하려고 한다 해도, 그전에 내가 이 지랄 맞은 게임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럼 어디 가격을 잘 책정해 볼까?’

분명 비싼 값에 놈을 팔아 버릴 수 있겠지.

그럼 그 돈으로 내 안전을 위해 최대한······.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때 입술을 짓씹고 있던 아론이 말문을 열었다.

“분명 내 전략은 완벽했다. 분명히 그럴 텐데, 대기사단장의 자격도 없는 아슬란 네가 어떻게······!”

난 미간을 좁혔다.

추하다. 아론아.

그럴 거면 그냥 싸우다 죽을 것이지. 왜 여기까지 잡혀 와서는 입을 털고 있어.

별 들을 것도 없었다.

저놈은 아주 좋은 자원이 될 테니, 더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전에 감옥에 처넣으면 된다.

그런데,

“건방지구나.”

이 주둥이가 그걸 가만히 허락할 리 없었다.

“감히 내 앞에서 그따위 말을 지껄이다니.”

심각한 허세가 내 몸을 금세 장악하는 것이 느껴졌다.

저절로 몸이 의자 뒤에 기대어졌고, 턱은 거만하게 들렸다.

또한 목소리는 다른 때보다 훨씬 더 굵고 낮게 깔렸다.

“네 알량한 머리로 내놓은 계책이라는 것이 고작 힘없는 백성들만 있는 성을 공격하는 것이었느냐?”

“그건 전쟁에서 항상 있는 일이다.”

“아니, 그건 그저 비겁하고 옹졸한 놈들의 변명일 뿐이다.”

난 아론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 기본적인 기사의 명예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놈이 감히 내 이름을 입에 담다니. 한심하구나.”

아론은 한 대 제대로 얻어맞은 듯한 얼굴로 날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긴. 너희 왕국의 윗대가리들이 명예가 무엇인지 알 리가 없지.”

그러자 그는 눈을 희번덕하게 뜨며 소리쳤다.

“우리 왕국을 욕보이지 마라! 그동안 겁쟁이처럼 가신들 뒤에 숨어 있던 건 바로 너 아슬란이 아니더냐!”

아주 지당하고 진실된 말씀이다.

아슬란은 앞에서 허세를 부리다 조금이라도 불리할 것 같으면 뒤로 도망치는 치졸함의 극치였다.

하지만,

“뒤에 숨어 있었다라······.”

지금의 아슬란은 다르다.

찰나의 괴력이라는 특성이 생기면서 치졸함 특성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너에게 묻겠다, 아론. 내가 유한과 싸울 때 비겁하게 뒤에 숨어 있었던가?”

무한한 자신감.

“내가 유한을 죽이고 너희들 앞에 홀로 섰을 때, 내가 한 발자국이라도 뒤로 도망쳤던가?”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

“아니. 난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내게 등을 보인 건 바로 너희들이었다. 내게는 지켜야 할 명예가 있었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 어떤 때라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것. 자신의 등만을 바라보고 있는 병사들을 위해 용맹하게 싸우는 것. 그것이 바로 대기사단장이 갖는 명예이며, 무게다. 네가 그 무거움을 알고 있느냐? 감히 너 따위가?”

병신 같은 허세였다.

“······.”

아론은 떨리는 눈빛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 애니, 만화, 드라마 등등.

일련의 장면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며 그곳에서 나왔던 대사들이 하나로 묶여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그런 놈들이 나를 겁쟁이라 부를 자격이 있느냐? 기사는 검으로 살고, 검으로 죽는다. 힘없는 이들을 죽이려고 검을 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살리기 위해 검을 드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적의 백성들이라 해도!”

원래의 나라면 이런 많은 사람 앞에서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몸 전체에 충만한 허세력은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전부 사라지게 만들었다.

다른 건 다 마음에 안 들어도 이거 하나는 만족스러웠다.

알 수 없는 해방감을 준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거기까지는 좋으나, 항상 그다음이 문제였다.

턱-

머리 끝까지 차오른 허세력이 충동적으로 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밧줄로 묶인 포로들 앞에 놓인 검 중 유독 때깔이 좋아 보이는 검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검집에서 검을 뽑아 검날을 맨손으로 잡자,

콰득-!!

검이 진흙처럼 가볍게 구부러졌다.

찰나의 괴력이 발동된 순간이었다.

“!?”

아론은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난 피가 철철 나는 손을 털어내며 부러진 검을 그의 앞에 던져 놓았다.

“이 동강난 검을 보고 매일 뼛속 깊이 새기거라. 진정한 기사의 긍지가 무엇인지를.”

“······.”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놈들을 투옥시켜라. 명예도 모르는 애송이의 피를 보고 싶지 않으니까.”

“예!”

병사들이 포로들을 데리고 막사 밖을 나갔다.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던 기사들에게도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도 그만 나가 보거라.”

“하지만 대기사단장님. 손이······.”

“이런 상처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가거라.”

“예.”

기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는데, 호레스만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매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였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가, 호레스?”

그는 곧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기사단장님.”

저번과는 다르게 그는 극진한 예의를 차리며 내게 인사한 뒤 총총걸음으로 밖을 나갔다.

그제서야,

“아-”

내 몸을 지배하며 맥스를 찍었던 병적인 허세에서 자유를 얻었다.

모든 감정과 통증마저도 통제하는 허세력이 터진 풍선처럼 한꺼번에 빠져나가자,

“아파. 씨발 아프다고!”

절로 신음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피가 줄줄 흐르고 있던 손에서는 어마어마한 통증이 몰려왔다.

꺄아아악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걸 나는 이를 악물고 간신히 참아냈다.

하지만 욕이 나오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진짜 시발 이 병신 같은 캐릭터!”

그러면서도 아론이라는 대어를 낚아 돈을 벌었다는 안도감이 드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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