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1초만 소드마스터 4화
“이건 자살 행위입니다. 지금이라도 못 하겠다고 말씀을 하십시오!”
출정을 하려고 하는 호레스를 넬라 기사단장이 붙잡았다.
아무리 승리한 전투라고 해도 고작 100명의 병사들로 적의 후미를 공격한다면 처음에야 혼란에 빠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놈들도 깨닫게 될 것이다.
공격하는 상대의 숫자가 턱 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그걸 알게 되는 순간, 그들은 주저 없이 호레스에게 창칼을 휘두르게 될 터.
“넬라 기사단장. 나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오.”
“예?”
“아슬란은, 어쩌면 그는 처음부터 우리의 계략을 미리 꿰뚫어 본 것일지도 모르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놈이 유한을 꺾고 와서 말하지 않았소? 다음에는 더 나은 흉계를 준비하라고. 그게 무슨 뜻이겠소?”
넬라도 분명히 들은 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찝찝했는데, 아슬란이 정말 모든 걸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건가?
“그럴 리 없습니다. 우리가 뜻을 모아 놈을 치려 했다는 걸 어찌 알 수 있단 말입니까. 거기다 오늘 유한과의 싸움도 그놈이 스스로 결정한 일 아니었습니까?”
“그리되도록 만든 건 우리였지. 잠깐이었지만, 나를 바라보던 아슬란의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소. 만약 내가 이번 작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더 끔찍한 방법으로 날 죽이려 했을 것이오. 더불어 내 가문의 가솔들도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테지.”
“······안 되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제가 뜻이 맞는 기사들을 모아서-”
호레스는 흥분한 넬라 기사단장의 팔을 붙잡았다.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이건 어디까지나 나와 아슬란, 둘의 문제이니. 이 늙은 목숨 하나로 끝낼 수 있는 일이오. 그리고 지금 아슬란을 죽인다면 하늘을 찌르고 있는 군사들의 사기가 바닥을 칠 것이오.”
“하지만 군사님!”
“설사 병사들을 모은다고 한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소. 저 유한을 일격에 꺾은 아슬란이오. 그대가 정녕 소드마스터의 칼을 견뎌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시오?”
“······.”
“저자는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아슬란이 아니오.”
그들이 예전부터 알고 있던 아슬란이라면 칼이 없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한을 꺾었던 그 일격을 보여 준 아슬란이라면······.
넬라의 침묵에 호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슬란은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어리석은 자가 아닐 수도 있소. 그 포악하고 망나니 같은 성정은 여전하나,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드는구려. 사실은 처음부터 우리를 갖고 놀았던 것이 아닐까 하는-.”
“구, 군사님.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호레스는 나지막이 웃으며 말했다.
“후후. 아무튼, 그대는 그만 돌아가시오. 혹시 모르지 않소. 내가 기지를 발휘해 대승을 거두고 돌아올지.”
그리 말하는 호레스도, 더 이상 그를 붙잡지 못하는 넬라도 알고 있었다.
이것이 호레스의 마지막 출진이 된다는 것을.
“그럼 또 봅시다. 넬라 기사단장.”
“······.”
넬라는 힘없이 병사들을 이끌고 떠나는 바라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아슬란 이 개자식.”
분노가 치밀어 관자놀이에 핏줄이 곤두섰다.
그래. 지금이라도 당장 놈의 막사로 가서 칼을 뽑는다면, 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내가 아슬란을 상대한다고?’
뇌리에 스치는 장면 하나가 끊어지려 하던 그의 이성을 붙잡았다.
무지막지한 일격에 몸이 반쪽 나 죽어 버린 유한.
그리고 그것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차갑게 내려다보던 아슬란.
지금 감정에 휩쓸려 칼을 뽑아 막사로 간다면 유한의 처참한 모습이 곧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제기랄.”
넬라는 치미는 분노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 * *
행군은 평화로웠다.
푸르르~ 푸르르~
이놈의 말새끼는 뭐가 좋은지 아까부터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뭐, 오늘은 봐준다.
‘근심거리 하나가 줄어드는 날이니까.’
호레스를 죽을 자리에 보냈다.
그는 순순히 뜻을 받아들였고, 왕국 내에서 날 죽일 만한 가장 위협적인 빌런을 내쳤다.
‘거기다 전쟁도 끝났고.’
제아무리 상대가 등을 보이고 도망친다고는 하나, 방심하지 말자.
이건 무려 극악 난이도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에 최대한 전투는 피해야 한다.
내가 그렇게 입을 털어 가며 기사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달랑 호레스만 보낸 것도 이 때문이다.
극악의 난이도.
당장 고수만 해도 숨 막힐 정도로 난이도가 높아지는데, 대체 극악 난이도는 어느 정도일지 감도 잡히지가 않는다.
그리고 호레스를 깔끔하게 죽이기 위해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역시 난 게임 천재야.’
지금 생각해도 참 기가 막힌 전략 같았다.
싸우는 것도 피하고 호레스도 제거하고.
이게 바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거라고 해야 하나.
문제는 이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냐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주 방어진을 쌓아야 하나.’
삼국지에 공손찬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가 역경루라는, 그 당시 우주 방어진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한 진지를 세워 거기서만 칩거를 했다고 한다.
실제로 나도 게임 플레이 중에 역경루와 비슷한 우주 방어진을 쌓아 적의 공격을 버텨낸 적이 있었다.
물론, 내가 상대를 공격할 수도 없어 그냥 오랫동안 버티는 것이 전부인 전략이었다.
‘외부 정세도 조심해야 돼.’
아슬란은 주변에 적이 많다.
아니. 난이도가 난이도인 만큼 내 편이었던 사람도 언제 내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
그렇기에,
‘조심 또 조심.’
말을 타고 갈 때도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근데 시발 이게 조심하는 사람의 태도냐?’
아슬란이란 캐릭터는 참 골 때린다.
말을 타고 가면서도 이 병신 같은 허세가 발동하여 말고삐를 잡지도 않고 팔짱을 낀 채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것도 행군을 시작한 야밤부터 지금까지 말이다.
이런 자세가 보통 힘든 게 아닐 텐데도 병적인 허세와 심취의 발동으로 전혀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피곤하다고 해도 내 마음대로 이 자세를 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대체 이런 강철 같은 정신력과 자제력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모르겠다.
평소에 좀 다른 걸로 이래 보지.
‘진짜 미친 새끼라니깐?’
앞으로 내가 쭉 이런 몸으로 있어야 한단 말이지?
벌써 어지러웠다.
“급보! 급보입니다!!”
앞서 정찰을 나갔던 기사들이 황급히 돌아오고 있었다.
속으로는 놀랐지만, 병적인 허세는 놀란 모습도 겉으로 보여 주지 않는다.
“무슨 일이냐?”
근엄한 목소리로 묻자 그들이 예를 차리며 소리쳤다.
“위대하신 대기사단장님께 아룁니다! 할라즈 왕국의 병사들이 현재 경계선을 넘어 로난 성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로난 성?
잠깐. 거기라면?
“로난 성이라면 지금 방비가 취약한 곳입니다. 그런데 할라즈 왕국 병사들이 어떻게 그곳에서 나타날 수가!”
옆에서 나와 같이 보고를 듣고 있던 넬라 기사단장의 말이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며 의도하지 않게 말이 튀어 나갔다.
“수도를 노리는 것이겠지.”
아. 내가 이 게임을 정말 오래 하긴 했나 보다.
순식간에 머릿속에 맵이 쫙 펼쳐져 각 성의 위치가 홀로그램처럼 나타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수도를!? 지금 왕국 수도는 비어 있지 않습니까?”
보나마나한 일이었다.
이 게임을 오랫동안 하면서 정말 다양한 전술을 경험해 보았고, 수 없이 뒤통수를 맞아 봤다.
그래. 이런 식으로 뒤를 노린다는 거지.
이상한 점은 보통 대기사단장 같은 영향력이 큰 장수를 잃으면 군사들이 잠깐 분전했다가 뿔뿔이 흩어지거나, 아니면 서둘러 왕국으로 퇴각을 하는 것이 정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놈들은 퇴각을 하지 않고 우회하여 경계선을 넘었다.
즉, 전면전을 포기하고 왕국의 수도를 공격하겠다는 의미였다.
‘극악 모드다, 이거냐?’
게임 특성상 사기를 잃은 병력으로 이런 작전을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시스템은 엿이나 먹으라는 듯, 보란 듯이 놈들은 무섭게 일라이 왕국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극악 난이도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인가?
“대기사단장님께서는 마치 이 모든 걸 알고 계셨다는 듯 덤덤하시군요.”
제 3기사단장 넬라의 말이었다.
그는 곧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놀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였던 겁니까?”
······?
“그것도 야밤에, 깃발을 잔뜩 든 소수의 병력으로만 추격대를 구성했던 것이 적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그러신 거였군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는 거야, 얘가.
“할라즈 왕국 놈들이 도망가는 척을 하고 사실은 우회하여 우리 왕국의 수도를 노린다는 걸 미리 간파하셨다니! 미처 몰랐습니다. 여기까지 놈들의 간사한 계책을 꿰뚫어 보셨을 줄은······.”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원래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건데.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병적인 허세가 꿈틀거리며 발동됐다.
“그래.”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꼬리가 휘어졌고,
“정정당당한 싸움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놈들이 하는 짓이 다 똑같지.”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섞였다.
“놈들은 나보다 몇 수 앞서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
날 바라보는 넬라 기사단장의 눈동자에 경악과 충격이 담겨 있었다.
곁에 있던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미리 깨닫지 못한 너희들도 우매하구나. 아무리 아군마저 속여야 적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기는 하나,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니. 실망스럽다.”
그러자 그들은 일제히 내게 고개를 숙였다.
“송구합니다, 대기사단장님!”
“과연 위대하신 분!”
그런 그들의 찬사가 당연하다는 듯, 나는 어깨를 쫙 넓히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넬라는 무언가에 단단히 홀린 눈빛으로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며 내게 청했다.
“대기사단장님. 제 3기사단장 넬라가 청하옵니다. 제게 군을 내어 주신다면 적들을 신성한 일라이 왕국의 이름으로 처단하겠습니다!”
귀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소리치는 넬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넬라]
무력: 75
지력: 60
어중간한 무력 수치에 딱 기사에 맞는 지력이었다.
그나마 하나 알 수 있는 건 그가 일라이 왕국 베타랑 기사라는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진 최고의 카드인가.’
스탯이 좋은 편은 아니기는 하나, 그렇다고 내가 직접 선봉에 나서서 출진을 할 순 없는 노릇.
‘5분에 한번만 쓸 수 있는 병신 같은 스킬로 전투를 한다는 건 자살 행위지.’
운 좋게 얻어걸린 일대일 상황이라면 모를까, 수천의 기사들이 서로 창칼을 휘두르는 전쟁통에 5분도 못 버티고 죽을 공산이 컸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전쟁터에 나서는 일은 없어야 한다.
“넬라 기사단장.”
“예. 대기사단장님.”
“내가 칼을 뽑는 일이 없도록 하라. 고작 저런 놈들을 상대로 말이다.”
난 죽어도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고 싶지 않거든.
“······예!”
내 말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 듯한 넬라는 의기에 찬 목소리로 대답한 뒤, 기사들을 데리고 떠났다.
* * *
“허어-. 대체 이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이냐?”
100명의 자살 특공대를 데리고 출진한 호레스는 죽음을 각오하고 할라즈 왕국 병력의 뒤를 쫓았다.
놈들은 야밤을 틈타 도망을 친 것인지, 막사는 텅텅 비어 있었다. 그래서 더욱 속력을 높여 따라갔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할라즈 왕국 본대는 어디에 있는 것이냐?”
호레스는 자신이 이끄는 병력의 숫자가 많은 것처럼 보여 주고자 일부러 깃발을 많이 챙겨왔다. 하지만 도망치는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수의 병력으로 깃발을 우후죽순 늘리고 텅 빈 수레를 이끌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숫자가 많은 줄 알았으나, 막상 후미를 공격해 보니 가짜였다는 걸 깨달았다.
“말하라. 본대는 어디에 있느냐?”
호레스에게 붙잡힌 지휘관은 피를 흘리며 대답했다.
“크흐흐. 이미 늦었다. 자랑스러운 할라즈 왕국의 형제들이 지금쯤 너희 일라이 왕국 수도를 불바다로 만들었을 것이다!”
“뭣이?!”
유한이라는 거목을 잃은 할라즈 왕국이 이런 기발한 전략을 꾀할 줄이야.
방심했다.
놈들이 사기를 잃고 뿔뿔이 흩어질 거라 생각한 자신의 오만이었다.
만약 아슬란이 철군을 하지 않고 이 가짜들의 뒤를 따라왔다면······.
“잠깐.”
그때 호레스는 둔기로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슬란은 설마 일이 이리될 줄 알았던 건가?”
넋을 놓고 호레스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연···이겠지?”
그러나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다.
다 잡은 승기를 버리고 갑자기 철군을 한다고 했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았던가.
“나를 이곳에다 보낸 것도 혹시?”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깨달으라고?
정말 그런 것이냐, 아슬란.
“얼른 돌아가 봐라. 뭐, 너희들이 돌아갔을 때쯤에는 일라이 왕국 수도가 잿더미로 변해 있을 터. 크크크.”
“쯧쯧. 멍청한 놈. 그러니 네놈이 이런 미끼 역할만 하는 것이다.”
“뭐라?”
“잘 보거라. 우리 군의 숫자가 몇인지. 고작 100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본군은 어디에 있을까?”
“······서, 설마!?”
“죽여라.”
호레스의 명령에 옆에 있던 병사 하나가 기함을 터트리는 적 지휘관의 목을 베었다.
원통한 표정으로 떨어져 있는 수급을 멍하니 바라보던 호레스는 짧게 혀를 찼다.
“네놈을 욕할 게 아니었구나. 나도 어리석어 이런 미끼 역할을 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