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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2화 (2/200)

2화

1초만 소드마스터 2화

“······.”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거구의 남성, 유한을 내려다보았다.

할라즈의 거인이라 불리던 그 위명이 무색하게 그의 반쪽 난 몸뚱이가 처량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내가······이긴 건가?’

아직까지도 두 손이 바들바들 떨려 온다.

내가 정말 저 거인을 이 손으로······!

[히든 퀘스트 완료]

-소드마스터 유한을 죽이는 대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극악’ 난이도 설정으로 인해 추가 경험치 및 히든 특성, 혹은 추가 보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보상으로 10골드를 얻습니다.

나는 앞에 떠있는 정보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서도 보상이 짜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가 미친놈이라서 그런 건가.

그나저나 대체 어떻게 이긴 거지?

[찰나의 괴력]

(재사용 시간 300초)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살고자 하는 본능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썼던 스킬이다.

그런데 아무짝 쓸모도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이 스킬이 유한이라는 거목을 쓰러뜨렸다.

유한이 누구인가.

무려 대륙 7번째 소드마스터다.

이 대륙에서 7번째로 강한 기사라는 뜻이다.

‘설마 이 정도로 강한 스킬일 줄은 몰랐지.’

쿨타임이 300초인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유한을 일격에 죽일 정도로 무지막지한 스킬이라면 충분히 납득이 갔다.

나는 싸늘하게 식어 가는 유한의 시체를 바라보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우읍-”

아무리 게임 캐릭터라고 해도, 내가 바라보는 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이 생생했다.

사람을 죽였다는 그 공포와 역겨움이 올라오려 할 때, 그것들을 전부 짓누를 만큼의 다른 무언가가 솟구쳤다.

특성 [병적인 허세]가 발동됩니다.

특성 [심취]가 발동됩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긴장감과 공포심에 토악질이 나오려던 것이 사라지고 쿵쾅대던 심장도 금방 진정되었다.

마치 이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듯, 모든 건 정해진 일이라는 듯 나는 숙였던 몸을 일으키고 태연자약하게 시선을 들었다.

눈앞에 보이는 저 적군을 향해 말이다.

그리고,

“더 없느냐?”

그 충동적이고 강렬한 감정이 내 몸을 잠식하면서 입이 저절로 열렸다.

“날 상대할 자가 더 없느냐?”

수천 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적 병사들 앞에서,

방금 전 내 손에 자신들이 따르는 지휘관을 잃은 그들 앞에서 난,

“원한다면 전부 덤벼도 좋다.”

병신 같은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

잠시 적막이 흘렀다.

1초가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

‘지, 지금 내가 무슨 미친 짓을.’

대륙 7번째 소드마스터이자 저들의 영웅인 유한을 내가 죽였다.

당연히 복수심이 활활 불타오르고 있을 터.

그런데 내가 방금 불난 집에 기름을 퍼부은 꼴이었다.

‘간신히 죽을 위기에서 벗어났더니.’

병적인 허세라는 특성이 다시 나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

설마 이 특성이 이런 식으로 작동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런 개병신 같은 캐릭터.’

지금이라도 말을 돌려 도망을 친다면 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말고삐를 굳게 잡았다.

“우으으-.”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퇴, 퇴각! 퇴각하라!”

오히려 적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 * *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일라이 왕국의 군사, 호레스는 오늘이 오기를 고대했다.

오늘 드디어 일라이 왕국의 적폐인 아슬란이 죽는다.

“이날을 위해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왕국을 망치는 아슬란과 그의 가문을 벌하고자 오래 전부터 계획을 세워왔다.

그를 따르는 가신들도 계획에 동참했다.

독살을 할지, 아니면 정변을 일으킬지, 고민하고 있을 때 호레스는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아슬란은 허세가 굉장히 심한 자다.

정신병에 가까운 허세와 같잖은 자신의 힘에 심취하여 스스로가 천하무적이라고 착각했다.

그런 심리를 이용해 그를 도발했으나, 그 추잡한 옹졸함 때문에 아슬란은 전쟁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놈은 겁대가리 없이 할라즈 왕국 대기사단장이자 대륙 7번째 소드마스터 유한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제 무덤을 제가 파 버린 것이었다.

“일라이 왕국의 영광을!”

“대륙 최강 아슬란 대기사단장님 만세!”

미리 군사들을 시켜 놈의 용기에 힘을 불어 놓기까지 했다.

아슬란은 완전히 그 분위기에 심취하여 대검을 들었고, 말에 올라탔다.

하지만 막상 말 위에 올라타고 나서 생각이 달라진 것일까.

오늘 자신이 7번째 소드마스터가 될 것이라며 자랑스럽게 떠들던 놈이 갑자기 굳은 얼굴로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 실패인가?’

하긴. 아무리 허세에 찌든 정신병자라고 해도 막상 이런 상황에 치달으면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법이다.

지금까지 저 옹졸한 놈은 사고란 사고는 다 쳐 놓고 꼭 중요한 순간에 뒤로 슬쩍 빠져 도망치지 않았던가.

‘그럼 다른 계획을 세워야 하나?’

여기서 한번 더 아슬란을 도발하면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유한과 싸우려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푸히힝-!!

아슬란이 말의 앞발을 높이 든 뒤 유한을 향해 용맹하게 달려나갔다.

“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참 한결같다고 해야 할지.

정말 자기가 소드마스터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그래도 마지막 모습은 기사답구나.”

비록 개죽음이라도 정정당당한 대결이니 영예롭다고 할 수 있을 터.

그러니,

“죽어라.”

죽어서 네놈이 아름다운 일라이 왕국에 저지른 그 끔찍한 짓들을 조금이나마 속죄하거라. 그럼 우리는 너희 가문을 몰아내고 이 왕국을 찬란하게 일으킬 것이다.

콰득-!

“!?”

그런데 예상치 못 한 일이,

전혀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뭐?”

분명 죽어야 할 놈은 아슬란이거늘.

저 바닥에 피를 흘려야 하는 건 저 망나니이거늘.

어찌하여 놈이 아닌, 유한이 쓰러져 있단 말인가!

“이게 무슨!”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차라리 비등한 대결을 펼쳤다면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슬란은 유한을 단 일격에 죽여버렸다.

대륙 7번째 소드마스터라는 저 유한을 말이다.

‘꿈인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허허. 그래.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게야.

그렇고 말고.

하지만 눈을 몇 번이나 감고 뜨는 것을 반복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

저 허세과 자아도취에 찌들어 사는 망나니가 정말로 유한을 죽인 것이었다.

거기다 한술 더 떠서 놈은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수천의 병사들 앞에 당당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도발하기까지 했다.

“뭐 하고 있느냐. 어서 전부 덤비라니까?”

그 패기에 겁을 먹은 수천의 할라즈 왕국 병사들은,

“퇴, 퇴각하라!!”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도망쳤다.

할라즈 왕국의 영웅인 유한의 시체를 거두지도 않고 말이다.

‘미, 믿을 수가 없다.’

믿고 싶지 않았다.

‘이제까지 실력을 숨기고 있었나?’

그럴 리 없다.

호레스는 아슬란이 어렸을 때부터 봐왔다.

허세만큼은 가히 대륙 제일이었으나, 저놈은 검술에도, 전술에도, 그 무엇에도 재능이 없는 쓰레기였다.

그저 막강한 가문의 뒷배경으로 실력도 없는 놈이 감히 대기사단장 자리에 앉은 것이고 왕국을 망쳐 놓은 것이다.

분명 그럴 터인데,

‘유한을 죽였다.’

그 뜻은 곧

‘새로운 소드마스터의 탄생!’

그것도 바로 저 아슬란이!

“우와아아아-!!”

“대기사단장님 만세!!”

병사들의 어마어마한 함성이 평야를 덮었다.

이 순간만큼은 호레스도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슬란은 이제 새로운 대륙 7번째 소드마스터가 되었다.

* * *

일라이 왕국의 병사들이 도망간 뒤, 나는 막사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말을 타는 게 어려웠는데, 이 캐릭터가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금방 말을 모는 게 익숙해졌다.

하지만 아까부터 이놈 행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 아까 일부러 그랬지? 내가 멈추라고 고삐를 계속 당겼는데도 그냥 달렸잖아.”

푸히힝-!

“이걸 확 목을 쳐서 말고기로 만들어 버릴라.”

푸르르-!

왠지 이 말새끼가 날 무시하는 것만 같았다.

넌 이따 두고 보자.

“대기사단장님!”

“과연 대기사단장님이십니다!”

“대기사단장님 만세!!”

난 막사에 있는 병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천천히 말 위에서 내려왔다.

고작 말 위에서 내리는 것뿐인데도 몸짓이 자연스레 과장되었다.

그리고 바닥으로 내려와 걸을 때도 턱을 위로 치켜든 채 거만한 자세를 유지했다.

마치 모두가 내 아래라는 것을 표방하듯이 말이다.

[병적인 허세]

특성, 병적인 허세의 발현이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대기사단장님!!”

“새로운 소드마스터이시다!”

구태여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이들의 환호성을 온몸으로 느끼며 즐겼다.

그들의 찬사가 당연한 듯 받아들여졌다.

[심취]

이것 역시 아슬란의 특성이었다.

그리고 텐트 안에 들어가 상석에 앉을 때도 망토를 일부러 과하게 펄럭이며 앉았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닌, 이 몸이 본능적으로 해내는 것이었다.

······참으로 괴랄한 정신병 특성들이 아닐 수 없다.

“가, 감축드립니다. 새로운 소드마스터가 되셨군요. 일라이 왕국의 축복입니다.”

턱을 괴고 앉아 있자 노년의 남성이 내게 예를 차렸다.

[호레스]

무력: 30

지력: 80

호레스.

알고 있는 이름이다.

‘게임에서는 분명······.’

준수한 스텟을 가지고 있는 지략가.

지력이 80이면 꽤 높은 편.

그래서 게임 플레이할 때 기회가 된다면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에 좋은 인재였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아슬란을 죽이는 데에 일조한다는 거지.’

게임을 플레이하면 거의 대부분 일라이 왕국이 가장 먼저 멸망을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아슬란과 아슬란의 뒷배경인 베라크 가문 때문이다.

지금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베라크 가문의 탐욕으로 왕국은 망가져 버리고 결국 참다못한 왕국의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국을 정상화에 놓으려 한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호레스가 있었다.

‘그래서 자원 파밍하려고 호레스가 반란하는 것만 기다렸다가 왕국에 쳐들어갔었지.’

게임 속 등장하는 영웅을 플레이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왕국을 움직일 수 있는 왕을 플레이하는 것이라면 이것이 기본 공략이었다.

최약체인 일라이 왕국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것을 기다렸다가 공격을 가해 멸망시키고 그곳에 있는 자원들을 가지고 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끽하면 저 영감탱이한테 죽을 수 있다는 거잖아.’

언제나 반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저 호레스라는 영감이다.

여기 막사에 모여 있는 사람 중 호레스와 결탁을 한 자가 과연 몇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어지럽네.’

생각이 많아지니 머리가 아프다.

큰 위기였던 유한을 죽이고 왔더니, 이젠 호랑이 굴에 들어왔다.

“7번째 소드마스터 유한을 일격에 꺾으시다니. 과연 대기사단장님이십니다.”

더군다나 여기 막사에 들어오기 전부터 꾹 누르며 참고 있던 감정들이 자꾸만 솟구친다. 하지만 특성이라는 것은 내가 저항한다고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결국 그 감정에 잡아 먹힌 나는 거만하게 뒤로 몸을 기대며 턱을 치켜들었다.

“뭘 그 정도로 가지고 그러나?”

“예?”

병적인 허세와 자아도취가 콜라보레이션을 일으키며 망언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시시한 싸움이었다.”

온갖 만화책과 애니를 봤으면서도 이 중2병 같은 허세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번 열린 이 주둥이는 닫히지 않는다.

“너무 시시해서 죽고 싶을 정도였지.”

“······.”

모든 행동과 말투에 허세가 가득했고, 본인 스스로에게 심취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분명 듣는 사람은 손과 발이 오그라들다 못 해 쪼그라들어 버릴 것이다.

주먹이라도 안 날리면 다행이겠다.

‘그런데······.’

분위기가 왜 이러냐.

“과연 대기사단장님이십니다.”

“그토록 강대한 힘을 가지고 계셨다니. 일라이 왕국의 미래가 밝습니다.”

기사들은 감명받은 표정이었다.

어떤 놈들은 눈물을 글썽거리기까지 한다.

조금만 생각해도 내 발언이 개소리였다는 걸 알 텐데도 이들은 조금만 더 하면 눈물바다가 될 것처럼 들 떠 있었다.

‘강대한 힘은 개뿔.’

찰나의 괴력 덕분에 정말 운 좋게 이긴 것뿐이다.

만약 유한이 내가 달려오기 전 검강을 썼거나, 다른 스킬을 썼으면 그 자리에서 난 즉사였다.

방심을 한 건지, 아니면 서로 무기를 부딪혀 힘 싸움을 하고 싶었던 건지.

무엇이 되었든, 운이 좋았던 것이다.

“······.”

그러다 나는 아까부터 시선이 따가운 곳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내 눈길이 닿는 곳에는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던 호레스가 있었다.

‘저 영감을 어떻게 하면 좋지?’

좋은 인재이기는 하지만, 아슬란과는 상극이며 언제든 기회가 되면 날 위험에 빠뜨리려 할 것이다.

그럼 날 죽이려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죽여야 하나?

아니면,

“호레스.”

“예. 대기사단장님.”

“내가 죽지 않아서 아쉬운가?”

“······!?”

두 번 다시 기어오르지 못하게 짓밟아 줘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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