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1화
# 상건아파트 괴담 (1)
언제나처럼 세정은 카메라를 들고 현수 일행과 태환의 모친을 촬영했다.
저벅 저벅 저벅
검게 재가 된 곳을 가로지르며, 현수와 태환 모친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제 방송에서 추론해 낸 내용들은 잘 들었어요. 보니까 그 추론이 맞는 것 같아요.”
그녀가 현수를 보며 설명을 해주었다.
“아직도 이곳에는 영가들이 많아요. 그리고 그 모습을 봤을 때 무덤 위에 무덤을 얹어 놓은 것 같습니다. 이걸 강내수가 다 점지해줬다고 하면, 그가 일부러 했다고밖에 볼 수가 없죠. 심지어 수맥 위에 무덤을 얹어 놨으니 영가들이 괴로워할 수밖에요.”
그녀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시커멓게 탄 봉분과 비석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 신당과 기귀는 어떻게 된 걸까요?”
“저도 영상을 봤어요. 한 번 그 현장으로 가볼까요?”
태환의 모친이 말했다.
현수가 앞장서서 그곳으로 안내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말뚝을 가리켰다.
“저게 이곳을 봉인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현수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곳의 영가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이곳을 구속하고 있던 겁니다. 끔찍한 일이죠.”
태환의 모친이 말했다.
그러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두리번거렸다.
말뚝이 박혀 있던 곳을 중심으로 안쪽 무덤가는 시커멓게 타 있고 그 바깥으로는 깔끔한 상태였다.
그녀는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다 말했다.
“이 결계를 중심으로 해서 불이 번지지 않았네요. 아마 이곳의 영가들이 불이 번지지 않게 도와준 것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들을 구해달라는 강한 요청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녀의 설명에 세정이 바닥을 촬영해 보여주었다.
확실히 일반카메라로도 불이 탄 곳과 타지 않은 곳의 경계가 뚜렷했다.
- ㅈㄴ신기하다.
- ㅇㅇㅇㅇㅇㅇ 신기하긴 함.
- 와 대박
- 암만 봐도 주작 아닌 거 같음.
- 귀신이 화재를 막아준 건가.
- 그거 다행이네
현수 일행은 계속 멘트를 주고받으며 신당이 있던 자리에 도착해 보았다.
그곳에 도착한 태환의 모친은 어깨를 움츠리고 몸서리를 한 번 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어우. 한기가 강하네요. 굉장히 강한 악귀가 있었나 봐요. 촬영 중에 봤던 게 ‘기귀’였던 거죠?”
“어린 아이의 귀신이기는 했습니다. 기귀인지는 모르겠고요.”
“저 무덤에 묻힌 아이가 악귀가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악귀를 더 강한 악귀로 만들려고 신당을 지어서 제를 지냈던 것 같아요.”
태환의 모친이 불타 흔적만 남은 신당을 가리켰다.
“일부러 악귀를 키우는 게 가능한가요?”
현수가 물었다.
“가능하죠. 새우니를 받은 강내수라면요.”
태환의 모친이 대답했다.
그녀는 불탄 신당 앞에 떨어진 그림을 살짝 만지며 말을 이었다.
“이곳을 지키는 수문장으로 어린 아이의 영가를 기귀로 만들어 버리다니. 정말 끔찍한 사람이네요. 그 사람.”
태환의 모친은 말을 마치자마자 눈을 감고 무어라 주문을 외웠다.
영혼을 위한 기도를 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럼 여기는 어떡해야 하죠?”
화진이 물었다.
“여기에 있는 무덤을 이장하려고 할 때 사람들이 화를 당한 건, 이 기귀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었을 거예요. 이제 기귀가 없으니 이장을 해도 됩니다.”
태환의 모친이 주변을 보며 말했다.
“여기 있는 모든 무덤들. 다 이장해야 해요. 이 땅은 무덤자리를 해서는 안 되는 땅이에요.”
그녀의 결정은 단호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현수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런데요. 어제 방송 보셨으니 아실 텐데요.”
“네, 네.”
“그 혜수 님이요. 기귀가 왜 혜수 님을 노린 거죠? 영안이 없어서 노린 건가요?”
“아뇨. 연예인이라 그렇다고 해야 하나?”
“네? 그게 무슨 말이죠?”
“연예인 팔자도 무당 팔자라는 말이 있어요. 사주나 기운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는 건데요. 보시면 연예인들이 이상한 귀신 이야기를 많이 겪잖아요. 보거나 듣거나.”
“네, 네.”
“그게 다 그 기운이 있어서 그런 거거든요. 혜수 님 같은 경우에는 다른 연예인보다 더 뚜렷해서 그랬을 거예요. 그러니 기귀가 보기에도 탐이 나는 ‘사람’이었겠죠.”
“아아.”
“무엇보다 기귀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지켜야 할 말뚝을 처음 뽑은 사람이 혜수 님인 거잖아요. 정말 밉기도 했겠죠.”
“그렇군요.”
“아마 환청을 들은 것도 다 신기가 있어서 그렇다고 봐야 할 겁니다.”
태환의 모친이 다른 곳을 살피며 덧붙였다.
- 이제 모든 게 다 짜맞춰지네.
- 강내수가 정말 희대의 X새끼인 거네.
- 문제가 그 사람 하나한테로 모아지네요.
- 대박 진짜 장난 없다 그 사람.
- 그런 인간한데 내 세금이 나가고 있단 건가.
시청자들의 공분이 이어졌다.
그리고 태환의 모친이 조언을 해주면서 영상 촬영 중 모호 했던 부분들이 많이 해소 되었다.
* * *
후기 방송을 진행한 이후, 현수는 내심 걱정이 앞섰다.
무덤 인근이 다 불에 탔고 훼손이 된데다가 산불까지 났으니 여러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송 이후에도 소식은 잠잠했다.
관계 부처로부터 벌금을 내야 한다는 연락을 받기는 했지만 민형사상 고소에 관련해서는 그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이 사실에 대해 의아해 했지만 여러 댓글 및 제보를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곳에 조상님의 묘를 이장한 사람들 대부분 쉬쉬하고 있거나, 사망했던 것이었다.
사이비 교주 강내수의 신수식으로 인해 조상의 묘를 이장했는데 그곳이 수맥 위의 겹무덤이라니.
강내수에게 속아서 이장을 했던 것이지만 결론적으로는 집안싸움이 크게 날 수밖에 없는 요소였다.
그러다 보니 누구도 캡틴 타워 측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반면 강내수와 모다교 쪽은 또 한 번 언론의 융단폭격을 맞고 말았다.
아직도 세를 유지하고 있는 강남 모다 빌딩을 비롯해 전국 지부 건물에 계란이 투척되는가 하면 페인트로 낙서가 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사회 악’으로 낙인이 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떤 영문에서인지 모다교는 그 어떤 입장발표도 하지 않은 채 계속 그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종전까지 하던 모든 오프라인 선교 활동은 중단을 했다.
대신 홈페이지와 카페, SNS 등, 인터넷에서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현수는 이 상황을 보고 강내수가 교도소에서도 모다교를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걸 추측할 수 있었다.
* * *
며칠 후.
이번에 올라온 생방송 영상과 편집 영상에 올라온 댓글을 확인하던 현수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굉장히 오랜만에 혜련에게 전화가 온 것이었다.
“어?”
반가운 마음에 현수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하날하날, 방고리 사건 이후로 약간 거리를 두고 있던 터라 먼저 온 연락이 내심 기뻤던 것이다.
“여보세요? 혜련 님?”
[안녕하세요~ 현수님! 잘 지내셨어요?]
그녀는 언제나처럼 굉장히 쾌활한 목소리였다.
“그럼요. 혜련 님은요?”
[저도 잘 지내죠. 요즘 방송도 잘 보고 있어요. 구독자 470만 명 넘었던데요?]
“아아. 네, 네.”
[축하드려요! 대박. 개부러워!!]
“혜련 님도 금방 오르실 거예요. 능력자시니까.”
[빈말이라도 고맙네요. 하하. 다른 게 아니고요. 하나 의뢰를 좀 하려고요.]
“네? 의뢰요?”
[네, 네. 제가 고정 패널로 출연하는 방송이 하나 있어요. ‘미담’이라는 프로그램인데 아세요? ‘미칠 듯한 괴담’이요.]
“아아. 네. VBS 방송에서 하는 거죠?”
[네. 거기 최근에 사연 하나가 올라왔는데요. 이거 캡틴 채널에서 한 번 만져주면 어떨까 해서요. 녹화만 하고 아직 방영 안 된 거라 동시에 태우면 좋을 것 같은데.]
“어떤 건데요?”
[수원에 있는 ‘상건아파트’ 괴담인데요. 관심 있어요?]
“그거 VBS에서 소재 쓴 거면 그쪽 PD하고 논의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네, 네. 현수님께서 수락하시면 라미로브 측하고 이야기 하면 될 거 같아요. 그쪽이야 현수님 의견을 전적으로 받잖아요.]
“음. 자세한 내용 좀 말씀해 주세요.”
현수가 물었다.
[사연자가 사연을 보낸 내용은 대충 이래요.]
혜련이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
밤 11시.
20대 여성인 A씨는 친구들과 술자리를 마치고 상건아파트 102동, 자신의 집 건물로 향했다.
1층 현관에서 비밀번호를 찍고 들어간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구조였다.
그녀는 1층 현관 키패드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찍었다.
하지만 취기 때문에 비밀번호를 여러 번 실패했다.
그때 새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구두를 또각거리며 뒤에 다가왔다.
A가 옆으로 비켜서자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키패드의 숫자를 눌렀다.
문이 열리자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A도 따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땡-
엘리베이터가 오자 A와 원피스 여성이 함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러나 원피스 입은 여성은 올라갈 층을 누르지 않고 기다렸다.
A는 뭔가 의아했지만, 이 여성이 범죄자는 아니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흉악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 하이힐에 새빨간 원피스를 입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A가 자신의 집인 10층을 누르자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바로 9층을 눌렀다.
여기서도 뭔가 의아했지만, 이 여성이 범죄자는 아니리라고 생각했다.
스르르륵-
꿍-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 문에는 복도가 보이는 작은 창문이 있었다.
[올라갑니다.]
안내 방송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올라갔다.
원피스를 입은 여성은 문 앞에 서서 앞만 보고 있었다.
A는 하품을 하는 척 하며 옆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순간 그녀는 온몸의 털이 바짝 곤두서는 듯한 소름을 느꼈다.
분명 자신의 앞에 선 원피스 여성은 문 쪽으로 선 채 앞만 보고 있었는데, 거울 속 그녀는 거울을 향해 얼굴을 돌리고 있던 것이었다.
그것도 머리카락이 축 늘어져 두 눈이 보이지 않아 더욱 기괴했다.
“어어?”
A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흘렸다.
[땡- 9층입니다.]
알림 방송과 함께 원피스 여성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A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원피스 여성은 엘리베이터에서 한 걸음 내린 뒤 그 자리에 서있었다.
A는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문이 닫힙니다.]
안내 방송이 들리자 드르륵-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의 작은 창문으로 원피스 여성의 뒷모습이 보였다.
A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계속 보았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려는 순간, 원피스 입은 여성이 손을 올리더니 뒤통수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러자 뒤통수에도 이목구비가 있는 것이 보였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을 때부터 그녀는 A를 쳐다보고 있던 것이었다.
“꺄아아아악-!”
A는 그 자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사연을 보내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 사건이었다.
A는 그 뒤로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고 계단으로 다녀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겪은 그 일이 인터넷에 올라오자, 상건아파트 입주민들 사이에서 빨간 원피스 귀신에 대한 목격담들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중고 거래 앱인 ‘당근마트’의 동네 소식을 통해 공유가 되는가 하면, 입주민 카페나 동네 맘카페에서 공론화가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