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0화
# 무덤 위의 무덤 (6)
다다다다다다다-
일행은 수풀 사이를 거칠게 헤치며 계속 앞으로 달려 나갔다.
중간중간 기귀가 나타나 습격을 했지만 현수와 화진, 태환이 적절한 타이밍에 무기를 이용해 밀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말뚝을 뽑는 개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기귀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심지어 그 외모조차도 더 흉측해지고 있었다.
손톱은 검게 변하면서 눈의 흰자도 붉게 변하였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손가락도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더 길어진 모습이었다.
차자가가가가가가
나무를 타고 빠르게 달리다 위에서 현수 일행을 덮치는가 하면, 땅에서 튀어나와 발목을 낚아채기도 했다.
우당탕-
갑자기 튀어나온 기귀의 손에 태환이 걸려 넘어졌다.
끄그그그그극-
기괴한 소리와 함께 땅속에서 수십 개의 팔이 올라오더니 태환의 목과 팔, 다리를 잡아당겼다.
“으아아악!”
태환이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
영안이 있는 일행들은 기귀의 팔을 볼 수 있었지만 혜수는 태환이 혼자 땅에서 발버둥치는 것으로만 보였다.
“아니, 뭐, 뭐하는-”
혜수가 숨을 헐떡이며 태환을 보았다.
“내 손 잡아!”
반면 현수와 화진은 바로 태환의 팔을 잡고 끌어주었다.
기귀의 팔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태환이 허겁지겁 일어났다.
이미 그의 옷은 온통 흙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캬아아아아악-
땅속에서 기귀가 튀어나와 다시 한번 태환을 덮치려 했다.
현수가 재빨리 솔트샷건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팡!
소금에 맞은 기귀가 뒤로 날아갔다.
“계속, 계속 달려요!”
현수가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일행은 다음 무덤과 말뚝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러면서 현수는 옆을 보았다.
샴쌍둥이처럼 뒤엉킨 모습으로, 물에 팅팅 분 귀신들이 우두커니 서서 현수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은 여전히 시퍼렇게 질린 피부와 검은 액체를 입에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말뚝을 뽑으면 뽑을수록 그 수는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팡-
쑤욱-
퍼어억-
쑤우우욱
샷건과 부적 봉, 신칼이 공중을 휘가를 때마다 기귀가 뒤로 날아갔고, 일행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말뚝을 제거했다.
그렇게 한 공터에 도착하자 작은 신당과 함께 묘비 없는 무덤이 보였다.
무덤의 크기로 봐선 어린아이의 무덤인 듯했다.
그리고 그 앞에 다른 형태의 말뚝이 박혀 있었다.
계속 봤던 말뚝보다 더 크고 두꺼운 형태였다.
“헉, 헉, 헉, 헉.”
일행 모두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보았다.
주변에 가득했던 귀신들도, 쫓아오던 기귀도, 몰아치던 한기도 사라져 있었다.
“여긴 뭐죠?”
화진이 신당 쪽을 손전등을 비췄다.
신당 안에는 색동옷을 입은 아이의 전신 그림이 걸려 있었고 그 앞에 여러 부적과 초가 놓여 있었다.
초는 오랫동안 불을 붙였었는지 흉측하게 녹은 모습이었다.
“기귀가 어린아이 귀신이라고 했지?”
현수가 그림을 보며 물었다.
“네. 병으로 죽은 아이요. 그래서 건강한 아이를 보면 질투를 해서 병나게 한다고 하죠.”
태환이 대답했다.
“여기가 그 아이의 무덤인 듯한데.”
현수가 그림 앞으로 다가갔다.
탱화 같은 분위기로 그려진 아이의 얼굴은 사백안에 회색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흡사 기귀가 아닌 ‘평범한 악귀’의 모습이었다.
슥
순간 그림 속 아이의 눈동자가 현수 쪽으로 돌아갔다.
현수가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파릇-
동시에 녹아내린 초의 심지에 불이 붙었다.
화아아아아아아
이어 찬 공기가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하면서 시메루의 오르골도 연주를 시작했다.
정신없이 달렸던 조금 전과 다르게 굉장히 차분하고 은은하게 공포 분위기가 연출이 되었다.
쿵-
그때,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수풀 속에서 기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정말 ‘요괴’라 불릴 만큼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키기긱 키기기긱-
기귀는 마치 진동이 온 것처럼 고개를 빠르게 까닥였다.
철컥
현수도 솔트샷건을 장전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러면서 EMF 탐지기를 보니, 다섯 개 불빛 모두 요란하게 번쩍이고 있었다.
LED 불빛이 켜지다 못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깜빡거리는 것이었다.
척
화진과 태환도 각자 무기를 들고 기귀를 노려보았다.
침묵이 감돌았다.
“매니저님. 혜수 님 잘 부탁드리고, 쑥 향 더 강하게 피우세요.”
현수가 말했다.
세정은 고개를 끄덕인 후 향로에 쑥을 더 넣었다.
“콜록 콜록. 이거 효과가 있긴 한 거예요?”
혜수가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자 세정이 심령카메라로 기귀를 보여주며 대답했다.
“지금 이 정도만 당한 게 다 이거 덕분이에요.”
세정이 대답했다.
혜수는 혼란스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 혜수 님 어째 나락각인 거 같은뎈ㅋㅋㅋㅋㅋㅋ
- 쉴드를 치고 싶은데 좀 발암이다.
- 아직도 뭐 의심이 나나????
- 그래도 덕분에 말뚝 뽑는 건 아이디어 찾아낸 거 아님??
- 역할 하나 했지 뭘.
시청자들도 혜수를 보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 사이, 현수와 기귀 사이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탓
그 순간 기귀가 앞으로 확 달려오기 시작했다.
현수는 이를 악물고 바로 샷건을 쏘았다.
팡 팡 팡-
하지만 이미 몇 번 공격을 받아 익숙해졌는지, 기귀가 옆으로 몸을 날려 소금을 피했다.
“이야아압!”
태환이 신칼을 들고 달려 나갔다.
부우웅-
놈은 신칼 공격도 능숙하게 피했다.
화진이 부적 봉을 휘둘렀지만 이마저도 빠르게 피했다.
타다닷
이어 신당과 나무 위를 차고 달리며 혜수에게 덤벼들었다.
놈의 목표는 처음부터 혜수였다.
“혜수 님!”
현수가 소리쳤다.
혜수가 놀라 현수를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기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꺅!”
반면 그 옆에 있던 세정은 회색 형체가 자신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손에 있던 향로를 휘둘렀다.
빠캉-
쑥 연기가 풀풀 나던 향로가 기귀를 가격하자 불꽃과 함께 쑥 재가 사방으로 퍼졌다.
그리고 재에 붙어 있던 불꽃들이 화려하게 사방에 날렸다.
콜록 콜록 콜록
잿가루와 연기가 퍼지자 세정과 혜수가 몸을 움츠린 채 기침을 했다.
하지만 동시에 기귀를 괴롭게 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쑥의 재와 연기를 온 몸에 뒤집어 쓴 기귀가 비명을 지르며 괴로워했다.
캬아아아아악-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향로 안에 있던 불꽃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풀과 나무, 심지어 옆에 있던 신당에 옮겨 붙은 것이었다.
화르르륵-
특히 신당은 마치 장작처럼 빠르게 불이 번져나갔다.
화아아아악-
불은 금세 사방으로 퍼졌다.
- 헐???
- 난리났네.
- 119 신고
- 난리났네
- 산불?????
세정과 혜수가 서있던 곳을 중심으로 불이 퍼져나가자 둘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키야아아아악!
기귀는 고통스러우면서도 화가 난 표정으로 혜수를 보았다.
턱이 입까지 내려올 정도로 징그러운 모습이었다.
‘신당.’
현수는 저 기귀가 괴로워하는 이유가 신당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꺄아아아아아악-
공격적으로 지르던 비명은 어느새 고통스러운 비명으로 바뀌어 있었다.
현수는 가방에서 부적을 붙인 밀짚인형을 꺼냈다.
그러자 화염에 휩싸인 기귀가 현수를 보고 알 수 없는 말을 소리쳐 댔다.
리그나바비다너저리자머리지!
마치 주문을 외우는 것 같은 소리였다.
“얌전히 이 안에 들어와!”
현수가 소리치면서 악귀를 부르는 부적을 하나 더 붙였다.
그러자 화염에 휩싸인 기귀가 스파게티 면발처럼 길게 늘어지더니 밀짚인형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신당이 불타면서 기운이 약해지자 쉽게 흡수가 된 것이었다.
화아아아아악
밀짚인형 안에 악귀가 빨려 들어오자 배터리 넣는 인형처럼 움직여댔다.
현수는 그 밀짚인형을 그대로 화염 속으로 내던졌다.
화르르르륵-
밀짚인형은 순식간에 불덩이가 되었다.
화르륵 탁 탁- 탁-
신당도 가열하게 타올랐다.
꺄아아아아악-
화염 속에서 또 한 번 비명이 들려왔다.
어린 아이의 무덤을 비롯해 말뚝 주변으로 화재가 점점 번져갔다.
현수 일행은 뒤로 물러섰다.
화르르르륵
“119에 신고하고 바로 대피하죠.”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 이미 신고 했어요.
- 신고 했습니다.
- 저도 신고함요.
- 함부로 신고들 하지 마요.
- 지금 119 순간 먹통 됐었음.
- 신고 몰렸나 보다.
- 민폐방송이다 진짴ㅋㅋㅋㅋㅋ
일부 시청자들이 벌써 화재 신고를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러 시청자들이 한 번에 중첩 신고를 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모양이었다.
현수 일행은 가열하게 타오르는 신당과 그 주변 무덤가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붉은 불꽃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마치 이곳에 있는 숱한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한 불길처럼 보이기도 했다.
현수는 주변에 서있던 귀신들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들은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서서 현수 일행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일행은 그대로 현장에서 빠져나와 공동묘지 입구에서 구급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오늘 방송은 여기서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 내일 후기 방송 어캄???
- 야외에서 하면 안 됨?
- 어떻게 된 건지 궁금한데.
- 어케 함?
- 해 뜨고 다시 보면 안 댐?
시청자들의 채팅이 봇물 터지듯 빠르게 쏟아졌다.
현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내일 후기 방송은 이곳, 야외에서 촬영하도록 하겠습니다.”
- 좋당
- 굳굳굳굳굳
- 감사합니다.
- 50000원 파워챗 후원.
- 감사합니다.
현수는 채팅을 한 번 확인하고는 바로 카메라에 대고 말을 이었다.
“오늘 어떤 상황들이었는지 내일 정리를 좀 하도록 하고요. 혜수 님께서는 오늘 함께 해주셨는데 어떠셨나요?”
현수가 물었다.
혜수는 멍하니 있다가 현수의 질문을 받자 부랴부랴 대답했다.
“아, 네. 신기한 경험이었고-”
그녀는 멘트를 해나갔지만 횡설수설, 이상한 말만 늘어놓았다.
잠시 후, 카메라가 꺼지자 혜수는 도망치듯 자기 스태프와 함께 현장을 떠났다.
현수 일행은 입구에 가만히 서서 멀어지는 혜수의 차량을 보았다.
“정말 신속하게 빠지네요.”
태환이 말했다.
“우리도 정리하자.”
현수가 피식 미소를 짓고는 돌아섰다.
잠시 뒤, 공동묘지 입구로 소방차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
화재의 규모는 상당히 컸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말뚝을 박아놓은 지역 바깥으로는 단 한 평도 손상되지 않았다.
수맥을 타고 겹무덤을 만들어 두었던 지역만 고스란히 타버렸던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현수는 태환의 어머님께 연락을 드려 후기 방송에 참여해 주실 것을 요청 드렸다.
그녀는 태환이 고스트 크루 공식 멤버가 된 이후로 계속 생방송을 챙겨 보고 있었기 때문에 부가적인 설명을 듣지 않고도 바로 수락을 해주었다.
그렇게 후기 방송은 태환의 모친까지 참석한 가운데, 야외에서 진행이 되었다.
낮에 확인한 현장은 정말 기이하기 그지없었다.
말뚝이 박혀 있던 곳 안 으로만 시커멓게 타있었고, 신당은 아이의 그림을 제외하고 모두 타버렸다.
그러나 그 그림 속 아이의 얼굴은 회색 피부가 아닌, 하얀색 피부로 표현되어 있었다.
어젯밤에 보았던 것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