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9화
# 무덤 위의 무덤 (5)
띵 딩딩 딩-
동시에 시메루의 오르골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악
이어 주변으로 수많은 귀신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모두 얼굴이 시퍼렇게 변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노인 귀신과 같이, 입에서 검은색 물을 계속 흘리고 있었다.
흡사 ‘익사한 시신’ 같은 모습이었다.
그도 모자라 신체 일부가 뒤엉켜 붙은 것이 무척 끔찍했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화진이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관에 물이 차있다는 것이 밝혀진 후, 귀신들이 한이 강해지며 화진과 태환, 세정의 눈에도 귀신들의 모습이 정확히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다만 심령카메라로는 새하얀 아지랑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으로만 촬영 되었다.
“형님. 일단 빨리 올라오세요.”
태환이 구덩이 아래에 있는 현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현수가 끄덕인 후 태환의 손을 잡고 올라왔다.
그 사이, 혜수의 귀에는 또 한 번 목소리가 들렸다.
“말뚝을 뽑아 줘. 말뚝을-”
그 목소리는 간드러지는 듯하면서도 흐느끼는 것처럼 구슬프게 들렸다.
“읏챠!”
화진과 태환이 현수의 팔을 붙잡고 올려주고, 세정이 이 모습을 촬영하는 사이 혜수가 말뚝 쪽으로 달려갔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한 모습이었다.
구덩이 밖에 올라온 현수는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귀신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혜수 님은요?”
현수가 물었다.
그러자 일행이 두리번거리며 혜수를 찾았다.
“어어?”
태환이 달려가고 있는 혜수의 뒷모습을 가리켰다.
“혜수 님!”
세정이 외쳤다.
하지만 혜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달려가 말뚝을 그대로 뽑아버렸다.
화아아아아악-
찬바람이 강하게 몰아쳤다.
혜수는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혜수 님!”
현수 일행 모두 넘어진 혜수를 향해 달렸다.
사아아아-
얼굴이 시퍼렇게 변한 귀신들도 혜수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어, 어, 어-”
순간 땅속에서 손이 튀어나와 혜수의 손을 붙잡았다.
“꺄아아아악!”
그 손도 물에 부은 것처럼 보였다.
현수가 가장 먼저 도착해 바로 혜수를 일으켜 세웠다.
그녀는 패닉 상태에 빠진 듯 몸부림을 쳤다.
“정신 차려요! 정신!”
현수가 혜수의 양 어깨를 붙잡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의 귀는 이미 닫힌 지 오래였다.
환청에 정체 모를 촉감까지.
그녀로선 이해하지 못할 현상들뿐이었다.
끄어어어어-
주변에 있는 귀신들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현수는 두리번거리다 혜수를 부축한 채로 숲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화진과 태환, 세정도 현수의 뒤를 따랐다.
*
숲속에 들어온 현수 일행은 숨을 골랐다.
“헉 헉 헉.”
특히 혜수의 상태가 특히나 안 좋아 보였다.
무척 지친 표정으로 나무에 기대고 선 채 넋이 나가 있었다.
“괜찮아요?”
화진이 다가가 물었다.
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현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도 무덤이 있었다.
현수는 묘비를 가만히 보다 카메라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까지 상황을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현수가 지금까지 보고 겪은 일들을 토대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먼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얹는 행태가 발생했다는 것.
그게 이 공동묘지 전체에 걸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겹무덤이 이루어졌을 경우 각 무덤의 주인 귀신들도 서로 뒤엉켜 나타났다는 점.
그리고 겹무덤이 이루어지지 않은 무덤의 주인은 평범한 귀신의 형태였다는 점이 그 근거였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무덤들이 수장된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관에 저 정도로 물이 찼다는 건 수맥 위에 지은 걸 너머 지하수 위에 관을 얹은 수준이었다.
많은 귀신들이 팅팅 붓거나 물을 머금고 있었던 것들을 봐도 추측할 수 있었다.
여기에 의뢰인이 익사 당하는 꿈을 자주 꿨다고 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였다.
현수가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 사이 혜수도 조금씩 정신을 차렸는지 어깨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추스렸다.
- 강내수 대박이네.
- 강내수가 점지해준 자리가 다 그런 건가?????
결국 현수의 추론은 모다교와 강내수의 만행으로 귀결이 되었다.
“분명 의뢰인은 신수 대상자라고 했었습니다. 그 말인즉슨 강내수 안에 있는 악귀가 자신의 그릇을 찾기 위해 이런 작업을 했다고 볼 수 있죠. 조상들에게 해를 가함으로써 신수 대상자들의 기운을 약하게 만들려는.”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한 마디로 신수 대상자들에게 부정을 태우려는 거죠. 악귀나 귀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이니까.”
태환이 거들었다.
- 강내수 진짜 사형해야 하는 거 아님???
- 와 진짜 장난 아니다. 모다교.
- 저거 다 왜곡입니다. 주여보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 아직도 모다충이 있네.
- 강퇴시켜라.
아직도 모다교 신자들은 강내수에 대한 병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추악한 진실이 여러 다큐멘터리와 뉴스를 통해 거듭 보도가 되었음에도 ‘탄압 받는다.’라는 표현을 쓰곤 했다.
심지어 빌라도에게 탄압 받았던 예수에 빗대며, 더욱 신격화하기도 했다.
“그럼 여기 있는 무덤들은 다른 곳으로 이장해야 하는 상황인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이 다치는 거죠?”
화진이 물었다.
“아마 뭔가가 이들의 무덤을 여기에 구속시켜 두려는 것 같아요. 제가 볼 때 그게 말뚝과 관계가 있어 보이고요.”
현수가 대답했다.
“근데 말뚝을 뽑았으니-”
“-뭔가가 우리를 이제 공격하려 하겠죠.”
현수의 대답을 들은 화진이 혜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왜 갑자기 말뚝을 뽑은 거예요?”
그녀가 물었다.
“막 귀에 맴돌았어요. 어떤 사람이 울면서 말뚝을 뽑아달라고 해서…….”
“환청이나 환각에 홀리면 안 된다는 말씀드렸던 거 기억나시죠?”
“네, 네.”
혜수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대답했다.
처음에 보였던 시건방진 태도는 다소 줄어든 모습이었다.
“한기가 강해.”
그때 수정이 현수의 옆에 나타나 말했다.
“그렇죠?”
현수가 물었다.
“수맥 위에 무덤을 올렸어. 그것도 겹무덤을.”
“그럼 수맥을 찾아서 이장할 무덤을 골라내야겠네요.”
“그럴 필요 없어.”
“네?”
“무덤이 있는 모든 곳이 다 수맥이야. 애초에 수맥 위에만 무덤을 올린 거야. 그러니까 이렇게 한기가 강하지.”
“그럼 여기를 다 엎어야 한다는 거네요?”
“그렇지. 여기 있는 영혼들이나 후손들이 편안하게 지내려면 여기 있는 무덤들을 모두 들어내야 해.”
수정이 말했다.
현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일행과 카메라를 보았다.
“그런데 그 전에-”
수정이 말을 이었다.
“네?”
“여길 지키고 있던 놈부터 처리해야지.”
“그놈은 뭐죠?”
“새우니 강내수가 불러들인 또 하나의 귀신.”
“또 하나의……귀신이요?”
“지금 네 뒤에 있네.”
수정이 말했다.
현수가 고개를 갸웃하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이었다.
새하얀 피부에 짧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 아이가 서있었다.
이제 한 8살, 9살쯤 되어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옷가지를 걸치고 있지 않았지만 유두와 생식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팔은 무릎까지 축 내려와 있었고, 손가락은 징그러울 정도로 길었다.
여기에 뚜렷한 사백안과 보라색 입술.
악귀의 원형, 그 자체였다.
캬아아아악!
기귀가 현수를 향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덤벼들었다.
현수가 솔트샷건을 뽑아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팡!
소금이 확 뿌려지자 기귀가 사라져 버렸다.
“뭐예요?”
화진과 태환이 혜수를 중심으로 둘러서며 주변을 경계했다.
“기귀가 있대요.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네요.”
“기귀라면- 어린아이 귀신 말인가요? 병을 들게 하는 아이 악귀.”
태환이 말했다.
“사전적 의미로는 그런데- 그놈이 여기를 지키고 있었다니.”
현수도 빠르게 주변을 경계했다.
“새우니, 새타니, 저퀴, 기귀, 다 어린 아이의 한에서 기인을 하니까요. 다 그놈이 그놈인 거죠.”
태환이 신칼을 꽉 움켜쥐며 받아쳤다.
“아까 설명 드렸듯이 강내수는 자신의 그릇을 찾아 만들려고 했어요. 수맥 위에 신수 대상자 조상들의 무덤을 만들고, 그 영혼이 도망가지 못하게 말뚝으로 봉인을 한 거죠. 수문장으로 기귀를 세워 둔 거고. 그래서 이장을 하려고 하면 기귀가 나서서 해코지를 한 거고.”
현수가 방아쇠에 손가락을 꽉 걸치며 멘트를 쳤다.
화아아아악
그 순간 기귀가 나타났다.
현수가 몸을 휙 돌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팡 팡 팡-
기귀는 곳곳에서 나타나 덤비며 현수와 화진, 태환을 노렸다.
쑥 향이 거세게 올라오고 있는 세정에게는 덤비지 않고 있었다.
확실히 효과가 있기는 한 것이었다.
문제는 혜수였다.
“매니저님! 혜수 님한테서 절대 떨어지지 마세요!”
현수가 소리쳤다.
세정이 고개를 끄덕인 후 혜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팡- 팡-
붕 붕-
부우웅
솔트샷건의 소금과 부적 봉, 신칼이 공중을 휘갈랐지만 기귀에게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이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 빠르게 나타나 달려들다가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럴수록 현수와 태환, 세정의 집중력은 조금씩 흐트러졌다.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있어요.”
화진이 말했다.
“이대로 기귀랑 싸우는 건 위험할 것 같아요.”
그때 태환이 말했다.
“말뚝. 그 말뚝을 모두 제거해 버리죠. 그게 풀리면 이곳에 구속된 영혼들이 해방되면서 우리를 도와줄 수 있을 거예요.”
“그 말뚝을?”
“네. 그 말뚝은 영가를 봉인하는 액막이 성격을 띠고 있는 부적으로 만들어져 있었어요. 그 말뚝 안쪽으로 수맥과 겹무덤들이 있었고요. 말뚝을 제거하면 여기 귀신들도 우리의 의도를 알아줄 거예요.”
태환이 말했다.
“그런데 말뚝을 어떻게 찾아?”
현수가 물었다.
“무덤을 수맥 위에 지었다고 했죠? 그럼 무덤들만 따라가도 말뚝을 다 찾아낼 수 있을 거예요. 수맥 위의 무덤과 영가를 구속시키는 게 목적이었으니.”
태환이 답했다.
캬아아아악-
그 순간 다시 한번 기귀가 나타났다.
현수가 재빨리 총구를 들었지만 기귀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랐다.
촤아아악
손톱이 현수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현수의 볼에서 한 줄기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시간 끌면 안 되겠다. 네 말대로 하자.”
현수가 말했다.
“다음 무덤으로 가보죠!”
태환이 앞장서서 풀숲을 뛰어 들어갔다.
이어 현수와 화진, 세정, 혜수도 태환의 뒤를 따라 내달렸다.
파스스 파스스
수풀이 채찍처럼 일행의 몸을 후려쳤다.
픽-
그중 날카로운 가시나무가 팔과 목에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일행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이어 다음 무덤이 나오자 묘비 앞쪽으로 말뚝이 하나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태환은 도착하자마자 바로 말뚝을 뽑아버렸다.
그런 다음 바로 수풀로 뛰어 들어가 다음 무덤을 찾아갔다.
현수는 태환의 뒤를 쫓아가며, 환청을 듣고 말뚝을 뽑은 혜수를 떠올렸다.
이게 정말 태환의 말대로 기귀를 없애기 위한 방법이 되어 준다면, 혜수는 환청으로 그 방법을 알아냈던 것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현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영발이 강할 수도 있었다.
캬아아아아악
순간 태환의 옆에서 기귀가 튀어나왔다.
말뚝을 뽑으려는 걸 제지하려는 것이었다.
우당탕-
태환이 옆으로 나뒹굴었다.
그러자 화진이 부적 봉을 휘둘러 가격했다.
빠아아앙-
둔탁한 타격감과 함께 기귀가 뒤로 쭉 날아갔다.
하지만 놈이 다시 쫓아올 것이라는 걸, 일행 모두 너무 잘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