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8화
# 무덤 위의 무덤 (4)
깜빡 깜빡-
파란색 화면은 마치 에러가 난 것처럼 빠르게 깜빡였다.
“지금 여기 전기가 들어오고 있지 않은 것 같거든요? 그런데 지금 모니터에 반응이 있습니다.”
현수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세정이 모니터를 클로즈업하며 촬영했다.
그때, 혜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아, 너무 무서워요. 잠시만요. 잠시만요.”
그녀가 반응하자마자 시메루의 오르골이 뚝 멈췄다.
“전 돌아갈래요. 너무 무서워요.”
그녀는 모니터 불빛이 깜빡거리는 것이 굉장히 무서웠던 모양이었다.
그녀 역시도 두 눈으로 전기가 끊어진 걸 분명히 확인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돌발행동에 일행 모두 당황했지만 되레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 헐 진짠가????
- 저거 연기 아닌 거 같은데????
- 주작논란 없어지나요
- 저거 찐인듯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저거 연기 아니얔ㅋㅋㅋㅋㅋ
- 혜수 저렇게 연기 잘하지 않음ㅋㅋㅋㅋㅋㅋㅋㅋ
혜수가 저렇게 무서워하며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이 조작 논란을 잠식시키는 데에 도움이 된 것이었다.
“혼자 떨어지시면 안 됩니다.”
현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매니저한테 오라고 할래요.”
혜수가 핸드폰을 들었다.
“안 돼요. 그러면 매니저 쪽에서 이곳까지 따로 와야 하잖아요. 매니저님이 위험해집니다.”
현수가 그마저도 만류했다.
그때, 현수의 눈에는 귀신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보였다.
걸어왔던 길 쪽으로 신체 일부가 딱 붙은 귀신들이 포진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귀신들은 현수 일행이 다시 돌아가는 걸 바라지 않는 모양이었다.
“혜수 님. 조금만 더 가보죠. 아직 귀신이 우릴 해코지한 것도 아닌데요.”
화진이 혜수를 달래주듯 말을 이었다.
“놀라게는 하지만 우리를 해치려는 생각은 없어 보여요. 그렇죠, 캡틴님?”
화진이 현수를 보며 윙크를 했다.
적당히 달래주자는 눈치였다.
“네. 맞습니다. 악귀의 기운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그냥 이곳에 머무는 귀신인 듯합니다. 우리를 해할 생각이 있었으면 벌써 조짐이 있었을 겁니다.”
현수가 손사래를 치며 덧붙였다.
혜수는 현수 방송을 보지는 않았어도 이 방송에서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현수와 화진의 말에도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무슨 문제들이 터졌을 때 그냥 조작이나 쓸데없는 논란이라고 생각했는데.”
혜수는 관리실 안쪽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믿지 않았던 그녀가 조금씩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관리실에서는 특별히 뭐 건질 게 없어 보입니다. 실제 무덤이 있는 곳으로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현수가 밖으로 나오며 말했다.
그때 현수의 눈으로 아주 선명한 귀신이 들어왔다.
혜수의 뒤에서 신기한 듯 그녀를 보고 있는 귀신.
한 몸에 머리가 두 개 달린 귀신은 입가에 미소를 크게 띤 채 눈을 크게 뜨고 혜수의 등에 딱 붙어 그녀를 관찰하고 있었다.
“거기. 물러나요.”
현수가 귀신을 보고 말했다.
“네? 저요?”
혜수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당장 물러나요.”
현수가 솔트샷건을 들어 조준하며 다시 말했다.
혜수는 현수가 자신을 조준한다고 생각했는지 적잖이 당황해했다.
“아니, 저한테 갑자기 왜-”
혜수가 말하는 순간, 차가운 무언가가 그녀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바로 뒤에 누군가 서 있는 것 같은 인기척을 느꼈다.
혜수는 본능적으로 사람이 아님을 직감하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화악
그녀가 뒤를 확 돌아보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현수의 눈에도 귀신은 순식간에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여기 귀신들 특이하네요.”
현수가 총구를 내리며 말했다.
“뭐가 있었나요?”
혜수가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현수는 길게 설명해주기 어렵다고 생각하고 돌아서 무덤 쪽을 가리켰다.
“일단 저쪽으로 가보죠.”
현수의 말에 일행들 모두 걸음을 옮겼다.
혜수는 입을 씰룩거리다 현수의 뒤를 따랐다.
* * *
“무덤이 있는 곳에 귀신이 있는 건 당연합니다. 공동묘지라면 귀신의 수는 더 많을 수밖에 없죠.”
현수가 걸어가면서 멘트를 이어갔다.
“그런데 이곳은 귀신의 형태가 조금 이상합니다. 그 점에 주목을 해봐야겠습니다.”
현수는 점점 가까워져 오는 무덤가를 바라보았다.
공동묘지라고는 했지만 그렇게 개수가 많은 건 아니었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묘비와 그 뒤에 있는 커다란 봉분.
묘비 앞에는 제사를 위한 판도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신체가 붙어 있는 귀신이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도 보였다.
‘대체 저게 뭘 의미하는 거지.’
현수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거 뭐죠?”
그때 화진이 물었다.
바닥에 말뚝 같은 것이 꽂혀 있었다.
말뚝에는 노란색 부적이 칭칭 감겨 있었다.
현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말뚝이 이렇게 박혀 있는 건 보통 저주의 의미 아닌가요?”
현수가 쪼그려 앉아 말뚝을 확인해 보았다.
- 꼭 그런 건 아님.
- 좋은 의미로 말뚝을 박는 경우도 있긴 있어요.
- 아닐 수도 있음.
세정이 현수에게 채팅을 보여주었다.
그사이 태환이 부적의 내용을 대략 확인해 보았다.
“이거. 모다교 예배당에서 봤던 그 부적이랑 비슷한 거 같아요.”
태환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영혼을 구속시키는 용도의 부적이요. 그거 같은데요.”
“그걸 왜 이런 길가에 꽂아 놔?”
“여기 이 산에 있는 귀신들을 구속하려고 했나 보죠. 만약 그 용도가 맞다면 이 산에 이런 말뚝이 여러 개 꽂혀 있을 거예요.”
태환이 주변을 보았다.
곳곳에 무덤만 보일 뿐, 이런 말뚝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럼 안 좋은 거 아니에요? 뽑아버리죠?”
혜수가 말했다.
“누가 어떤 의도로 해놨는지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함부로 뽑았다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아. 저기는 뭐죠?”
그때 화진이 한쪽 공터를 가리켰다.
그곳은 새로 관을 넣기 위해 땅을 파놨었는지 삽과 흙, 묘비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현수 일행은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사이, 뒤를 따르던 혜수의 귀로 정체 모를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말뚝을 뽑아. 말뚝을 뽑아 줘.”
하지만 혜수는 현수의 경고를 떠올리며 귀를 막았다.
현수가 못마땅하긴 했지만 이곳에서는 그의 룰을 따라야 할 것 같다는, 그런 본능을 느낀 것이었다.
화진이 가리킨 공터에 도착한 현수는 뭔가 기이한 풍경에 고개를 갸웃했다.
묘비가 두 개가 바닥에 놓여 있었고, 그 옆 땅에는 반듯하게 땅이 파여 있었다.
관 하나가 딱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넓이였다.
“왜 묘비가 두 개죠?”
화진이 물었다.
그사이 태환이 묘비에 적힌 한자들을 확인해 보았다.
“묘비 주인이 달라요. 주인이 다른 묘비가 왜 여기 널려 있지.”
태환도 의아한 모양이었다.
이곳에 누군가를 묻을 생각이었다면 그 사람의 묘비 하나만 준비 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곳에는 오래 되어 보이는 묘비 하나와 새 묘비 하나가 바닥에 누여있었다.
마치 오래된 묘비를 뽑아내고 거기에 새 묘비를 박으려는 것 같았다.
현수는 천천히 구덩이 안쪽을 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노인의 모습을 한 귀신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보았던 샴쌍둥이의 형태가 아니었다.
‘설마.’
현수는 한 가지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원래 있던 무덤 위에 또 무덤을 만든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었다.
이미 땅에 관이 묻혀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그 위에 또 사람을 묻는 것이었다.
이는 관리가 안 된 무덤이 시간이 지나면서 무너져 내리거나, 풍수지리학적으로 좋은 위치에 있는 경우 발생하기 쉬웠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고의로 발생하는 일은 아니었다.
허나 이런 일이 생기면 후손들에게 굉장히 악영향을 미친다고 전해졌다.
추측의 근거로 지금 눈앞에 보이는 두 개의 묘비와 땅속에 있는 노인 귀신.
노인 귀신은 이곳의 다른 귀신들과 다르게 평범한 모습이라는 점에서 이런 추측이 가능했다.
무덤 자리가 같을 경우 두 귀신의 몸이 붙어 버린다고 가정한다면, 이곳의 무덤들은 모두 무덤 위에 무덤을 지었다는 의미였다.
현수는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추측에 대해 설명을 해나갔다.
“지금 이 무덤 속에 보이는 귀신은 다른 귀신과 몸이 붙어 있지 않거든요. 이런 현상으로 볼 때 이곳에는 무덤 위에 무덤을 얹는 행태가 계속해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마치 기자처럼 카메라와 무덤 앞에서 멘트를 하는 현수의 모습은 프로, 그 자체였다.
현수가 한창 멘트를 하는 사이, 화진과 태환이 무덤 안쪽을 손전등으로 비춰보았다.
둘에게는 노인 귀신의 모습이 회색 구체로만 보였다.
“어어. 형님 추론이 맞는 거 같아요.”
그때 태환이 무덤 안 쪽을 비추며 말했다.
현수가 돌아서 태환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파여 있는 땅속 구석에 갈색 판의 끄트머리가 발견된 것이었다.
화아아아악
손전등 불빛이 판의 모서리를 비추자 찬바람과 함께 노인 귀신이 현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저거 뭐임?
- 밑에 뭐 묻혀 있는 거 같은데.
시청자들도 손전등 불빛에 비친 것을 보고 의아한 듯 채팅을 썼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곳 현장의 상황으로 봐서는 입관할 자리만 만들어 두고 입관절차는 하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구덩이 안쪽에 귀신 한 분이 앉아 계시거든요.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한번 내려가 보겠습니다.”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말한 뒤 노인에게 꾸벅 절을 했다.
그러자 노인 귀신은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 일어나더니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심령카메라로는 하얀색 형체가 살짝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다.
- 우와 개신깈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절하면 귀신들이 저러는구낰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신기햌ㅋㅋㅋ
현수는 노인 귀신이 물러난 것을 확인하자 구덩이 안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손으로 구석에 드러난 판 부분을 살짝 파보았다.
이내 나타난 것은 오래 되어 보이는 관의 끝이었다.
그 밑으로는 칠성판의 모서리도 발견이 되었다.
“이 밑에 이미 무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현수가 구덩이 밑에서 위를 보며 말했다.
현수 일행을 비롯한 혜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려 보았다.
콰삭
그 순간이었다.
땅속에서 손이 튀어나오더니 대뜸 현수의 발목을 낚아챘다.
“헉!”
모두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영안이 없는 혜수도 갑작스러운 소음에 놀라 뒤로 넘어졌다.
“어엇!”
순간 중심을 잃은 현수가 비틀거렸다.
퍼석
이어 오래된 관의 뚜껑이 부서지며 현수의 한쪽 다리가 푹 들어갔다.
첨벙-
동시에 굉장히 차가운 물의 촉감이 느껴졌다.
“이게 뭐야!”
현수가 허겁지겁 발을 빼고 구덩이 끝에 몸을 기댄 채, 구멍으로 손전등을 비춰보았다.
언뜻 보이는 관 안으로 물이 가득 차있는 것이 보였다.
“지하수가 흐르나 본데요.”
태환이 구덩이 앞에까지 다가와 내려 보며 말했다.
이어 화진과 세정도 아래를 내려 보았다.
당연히 카메라도 이 모습을 모두 담아내고 있었다.
“지하수가 흐르는 자리에 관을 묻고, 그 위에 또 무덤을 만들고 있었다고?”
현수가 중얼거리며 가만히 관을 보는 순간 노인 귀신이 다시 한 번 현수의 옆에 바싹 나타났다.
조금 전과 다르게 굉장히 시퍼렇게 질린 얼굴이 무척 기괴해 보였다.
“살려줘-”
노인 귀신은 코와 입에서 검은색 물을 꿀렁꿀렁 흘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