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7화
# 무덤 위의 무덤 (3)
[모다 안식의 땅]
철문 위에는 금속으로 된 현판이 크게 달려 있었다.
그렇게 오래 되어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넝쿨이 올라온 것이 몇 개월은 방치가 된 듯했다.
“바로 이곳입니다. 보면 작은 선산처럼 보이는데요. 이곳에 부모님 묏자리를 이장한 후, 밤마다 익사하는 꿈을 꾼다고 합니다.”
현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 익사하는 꿈 어후
- 생각만 해도 개싫다.
- 옛날에 괴담 그거 생각나네. 밤마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서 계속 춥다고 하니까 이상해서 관 드러내 보니까 안에 지하수 찼던 거.
- 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 괴담이 있음???
- 있음여.
- 조상 묘 잘못하면 후손들한테 안 좋다는 말 많음.
- 풍수지리가 괜히 발달한 거겠음?
어느새 혜수를 찾는 채팅은 묻히고 현수의 말에 반응을 하는 채팅이 올라왔다.
그렇게 몇 분 동안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멀리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진하게 선팅이 된 걸 봐서 혜수의 차량인 듯했다.
달각- 드르륵-
차 문이 열리더니 혜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와 매니저, 코디들이 방송 중인 걸 보더니 바로 메이크업을 보강해주기 시작했다.
현수는 그 모습도 답답했다.
늦었으면 빨리 올 것이지, 메이크업을 손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술 더 뜨는 태도를 보였다.
매니저가 잔뜩 화난 표정으로 현수를 부른 것이었다.
“잠시만요.”
현수가 웃으면서 카메라에 대고 말한 후 매니저에게 다가갔다.
화진이 센스 있게 바로 이어서 멘트를 진행했다.
그 사이, 현수가 매니저에게 다가갔다.
“아니, 아직 혜수 님 도착도 안 했는데 방송을 시작하면 어떡합니까?”
매니저가 현수에게 작게 쏘아붙였다.
현수는 마이크를 살짝 막고 되물었다.
“뭐가 문제입니까? 방송은 9시 시작이라고 말씀드렸고 지각은 그쪽에서 했는데.”
“그래도 메인 게스트인데 오프닝을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네. 같이 해야 하는 거 아닙니다. 계약서에도 그런 내용 없었고요. 지각은 그쪽이 하셨습니다. 늦으면 늦는다고 저희한테 사전 통보라도 해주셨나요? 그럼 저희는 언제 올지도 모르는 혜수 님 기다려야 합니까? 우리 채널 구독자, 시청자 분들 기다리는데?”
현수가 물었다.
“아, 오빠 됐어. 그냥 후딱 들어가면 되지.”
그때 메이크업을 마친 혜수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그녀도 살짝 짜증이 난 얼굴이었다.
매니저는 시종일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현수는 당당하게 고개를 돌려 다시 카메라 앞으로 향했다.
“네. 말씀드리는 순간 지금 혜수 님이 오셨습니다!”
현수가 카메라 앞에서 말했다.
그러자 혜수가 세상 천진난만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굉장히 귀엽고 예쁜 제스츄어였다.
“안녕하세요. 혜수입니다!”
그녀의 인사에 현수 일행이 박수를 쳐주었다.
“이런 공포체험은 처음인데요. 용기를 내서! 끝까지 한 번 잘해보겠습니다.”
혜수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말했다.
‘공포체험이라.’
현수는 혜수가 촬영을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판단이 대번에 들었다.
“이번에 신곡 나오셨다고요?”
“아~ 네, 네. ‘꽃밭’이라는 노래입니다.”
“한 번 들려주시겠어요?”
화진이 웃으면서 능숙하게 멘트를 이어갔다.
되레 이런 진행은 현수보다 화진이 한 수 위인 듯했다.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무반주로 춤을 추며 노래를 했다.
굉장히 짧게 했지만, 퇴마 촬영을 앞두고 현장 앞에서 이런 짓을 하고 있자니 현수는 자괴감이 들었다.
‘두 번 다시 아이돌은 받지 말아야지.’
또 하나의 룰이 생성되는 순간이었다.
- 아 진짜 세계 최고 존엄 예쁨이다.
- 존예다 ㅅㅂ 접근불가다.
- ㅈㄴ예쁘네
- 무반주로 이렇게 잘 부른다고>????
당연하게도 시청자 채팅창도 난리가 났다.
공포 콘텐츠의 아이덴티티는 둘째 치더라도 아이돌이 나와서 무반주 날것 그대로 가무를 보이는데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시청자 수는 삽시간에 80만 명을 찍었다.
동시에 구독자 수도 470만 명을 바로 돌파해 버렸다.
특히 해외에서 유입되는 시청자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혜수와 관련된 키워드가 너튜브에서 알고리즘으로 잡히다 보니 자연스럽게 현수의 방송까지 연결이 된 것이었다.
신곡 홍보가 끝나자 현수가 바로 치고 들어갔다.
“네. 그럼 본격적으로 이동을 시작하겠습니다. 혜수 님을 비롯해서 여기 이 방송에 처음 오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으니 몇 가지 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네.”
“첫째. 절대 혼자 떨어지시면 안 됩니다. 굉장히 위험합니다.”
“네.”
“둘째.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거나 뭐가 보인다고 이동하시면 안 됩니다.”
“네.”
“셋째. 현장에 있는 그 어떤 물건도 만지지 마세요. 가급적이면요.”
“네, 알겠습니다.”
“넷째. 현장에서 무슨 이름이나 호칭이 보여도 절대 읽지 마세요. 귀신을 부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 있어요? 네, 알겠어요.”
혜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긴장감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저희 장비에 대해서는 설명을 드렸죠? EMF탐지기와 솔트샷건. 저기 부적 붙인 봉. 신칼. 향로가 있고요. 추가된 건 여기, ‘시메루의 오르골’이 추가 되었죠?”
현수가 오르골을 들어보였다.
- 헐 진짜 갖고 왓네???????
- 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저거 왜 들고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전 방송을 봤던 시청자들이 채팅을 올렸다.
“저희 퇴마 방송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가지고 왔습니다. 이게 어떤 효과가 있을지, 어떻게 쓰일지는 아직 모릅니다. 한 번 지켜보도록 하죠. 이것도 저희 매니저님께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현수가 세정에게 오르골을 건넸다.
세정은 찝찝한 표정으로 오르골을 받아들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일 때마다 들고 있는 오르골이 한 번씩 앵글에 잡혔다.
“자. 이동하겠습니다.”
현수가 손짓을 하며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혜수의 매니저와 코디들은 차에 남아 있었고, 현수 일행과 혜수만 철문 쪽으로 다가갔다.
앞에는 커다란 비석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곳에는 음각이 새겨져 있었다.
[주여보님의 은총을 받아 하늘의 문을 열리라.]
비석에는 딱 한 마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 비석에도 이끼가 올라오고 있었다.
“오래 방치된 것 같지는 않네요. 이끼는 최근에 생긴 것 같습니다.”
현수가 살짝 이끼를 만져보며 말했다.
“여기가 입구인가요?”
혜수가 철문을 가리켰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철문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갔다.
그 순간이었다.
나무와 수풀 사이로 보이는 등산로 곳곳에 하얀색 형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시메루의 오르골이 갑자기 연주를 시작했다.
띵- 딩띵딩-
실험실에서 계속 들었던 바로 그 곡이었다.
현수 일행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제가 조작한 거 아니에요.”
세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가 들고 있는 오르골 소리는 마이크를 타고 굉장히 선명하게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다.
영천 실험실 촬영 때 송출되었던 소리보다 더욱 선명했다.
- 와 사운드 죽이넼ㅋㅋㅋ
- 진짜 브금 같다
- 아 소리 개무서워
- 오늘 엄마랑 자야겠다.
- 불끄고 보고 있었는데 다시 불 켬
어떤 상황에서 연주를 시작하는지 아직 확실하진 않았지만 최소한 시청자들을 더욱 무섭게 하는 데에는 성공한 셈이었다.
무엇보다 세정이 들고 있게 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그녀가 메인 카메라와 메인 마이크를 모두 장착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개별 마이크보다 더 좋은 음질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수는 오르골 소리를 들으면서 하얀 형체들을 주시해서 보았다.
땅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하얀 아지랑이는 조금씩 뭉쳐지며 사람의 모습을 띠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었다.
온전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어?”
팔, 아니면 몸, 다리, 심지어는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 같은 모습들이었다.
그도 모자라 물에 팅팅 분 것 같았다.
현수가 멈칫하자 일행도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 저 귀신들 보이시나요?”
현수가 세정과 화진, 태환을 보며 물었다.
“귀신? 어디요?”
혜수는 영안이 없기 때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보여요. 하얀 아지랑이들.”
화진과 세정, 태환은 영안이 있지만 귀신을 선명하게 보지는 못하기 때문에 귀신의 존재 정도만 보이는 정도였다.
심령카메라 역시도 조금 진한 하얀색 형태로만 촬영이 되었다.
“샴쌍둥이처럼 귀신의 몸이 붙어 있어요. 이런 경우가 있나요?”
현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래요? 그런 경우가 있어요?”
태환이 놀라 되물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혜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자 세정이 심령카메라 화면을 보여주었다.
“여기 하얀색으로 촬영되는 부분이 귀신들이에요. 회색으로 보이면 원한이 강한 원귀나 악귀고요.”
세정의 설명에 혜수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현수 방송에 나오기로 했으면서 제대로 모니터링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영안이 있는 분들한테도 선명히 보이지 않으면 굉장히 기가 약한 귀신인 거예요.”
현수가 부연설명을 해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무섭네요.”
혜수가 한 걸음씩 나아가며 말했다.
“저기.”
그때, 화진이 앞을 가리켰다.
자그마한 콘크리트 건물과 함께 나무가 깎여 있는 공동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관리실]
콘크리트 건물에는 작은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최근까지도 사람이 머물렀던 곳으로 보였다.
“저쪽이 공동묘지 관리실인 모양입니다.”
현수가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건물로 다가갔다.
“산속이지만 상당히 깨끗하네요. 길도 그렇고.”
방치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곳이 분명했다.
현수는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멘트를 이어갔다.
하지만 혜수에게 마이크가 넘어가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질문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혜수는 그런 현수에게 조금씩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이곳에 온 만큼, 방송의 중심이 자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수는 일부러 그녀를 열외 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 어느 순간 악귀가 튀어나올지 모르고, 또 어떤 방식으로 해코지를 해올지 모르기 때문에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 마디로 마음 편하게 노닥거리며 진행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벌컥
관리실 문고리를 돌리자 문이 열렸다.
현수가 밖에서 손전등으로 내부를 슥 비춰보았다.
강내수의 사진과 모다교의 상징이 한 쪽 벽에 걸려 있었고, 컴퓨터와 작은 오디오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누가 갖다 놨는지 모를 작은 TV도 있었다.
쩌저저적-
그 순간이었다.
벽 곳곳에서 사백안의 눈이 나타났다.
‘악귀.’
현수는 솔트샷건을 들어 결속된 EMF 탐지기를 보았다.
다섯 개 불빛이 강하게 발하고 있었다.
“어머.”
심령카메라에도 회색 연기가 명확하게 촬영 되었다.
세정은 혜수에게 그 화면을 보여주었다.
“오. 신기하네요.”
자신의 눈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관리실 근처로 회색 연기가 촬영되고 있는 현상.
처음 보는 혜수 입장에서는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는 서류 같은 게 없네요. 아무래도 다 컴퓨터에 저장이 되어 있는 듯합니다.”
현수가 컴퓨터 본체 전원 버튼을 눌러보았다.
하지만 반응이 없었다.
딸깍 딸깍
그 사이 화진도 관리실의 형광등 스위치를 조작해 보았다.
아무래도 전기가 끊긴 듯했다.
번쩍-
그 순간, 모니터가 갑자기 파란색 화면을 띄웠다.
일행 모두 흠칫 놀라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