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2화
# 길정산 실험실 (4)
현재 시청자 수 17만 명.
생방송 시청자 수 10만 명이 넘는 방송은 너튜브에서 무척 드물기는 했지만 다른 때 생방송보다는 반응이 조금 미지근한 편이었다.
이는 ‘폐쇄된 실험실’이라는 키워드와 링톡커 시메루의 사연으로 한껏 기대감이 끌어 올랐던 것에 비해 보이는 화면이 상대적으로 밋밋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주목은 대단했고, 채팅창은 불이 붙어 있었다.
- 우리나라에서 인체 실험을 한다고??
- 그게 가능함??
- 법적으로 불가능할 걸여
- 불가능해여.
- 임상실험 하려면 막 뭐 실험 거치고 테스트 거치고 해야 하는데.
현수는 채팅을 확인하며 다시 복도로 나왔다.
“이제 1층은 다 둘러본 것 같습니다. 2층으로 가보겠습니다.”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말한 후 복도를 가로질러 걸었다.
“지금까지 상황을 한 번 정리해볼까요?”
화진이 말했다.
“네. 보니까 어떤 이유로 해서 회사가 망했고, 이 실험실도 버려진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서 무슨 실험을 했는지는- 사실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밖에 있는 무덤들이 사람 무덤인지, 동물 무덤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기도 하고요.”
현수가 창밖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하나 분명한 건 동물이든, 사람이든, 그들의 원한을 살만한 실험을 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원한을 살만한 실험이요?”
화진이 되물었다.
“네. 차가운 공기와 귀신의 흔적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게 보여요. 물론 산속이라 더 그럴 수도 있지만- 기괴한 현상들이 자주 나타나는 게 좋은 징조 같지는 않습니다.”
현수가 대답했다.
그러는 사이 일행들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섰다.
그곳에는 온갖 집기와 가구들이 쌓여 있었다.
“아유. 그 우리가 봤던 시메루가 귀신인지 사람인지 몰라도 여길 어떻게 지나갔대.”
태환이 볼멘소리를 했다.
현수는 바닥에 있는 먼지들을 훑어보았다.
발자국이 전혀 나 있지 않았다.
확실히 일행이 봤던 시메루는 귀신이었던 것이다.
“올라가죠.”
현수가 가구 사이사이를 한 걸음씩 밟아가며 위로 올라갔다.
저벅 저벅
우당탕-
계단을 밟고 올라가다 집기가 계단 아래로 굴러가기도 했다.
“조심하세요.”
현수가 나지막이 말한 후 계단 모퉁이를 돌아 위를 보았다.
“허.”
순간 현수가 허탈한 듯 탄식을 내뱉었다.
“왜요?”
이어 화진과 태환, 세정도 계단 모퉁이를 돌아 위를 보았다.
“어머?”
화진도 놀란 듯 탄성을 내뱉었다.
2층 입구에는 두꺼운 철창이 쳐져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철장 앞에는 나무 판에 붉은 붓글씨가 적혀 있었다.
[생동성 시험장]
[관계자 외 출입금지]
그리고 철창으로 된 문에는 커다란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아까 분명 시메루 귀신이 이 방향으로 뛰어 왔죠?”
현수가 카메라와 화진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화진이 끄덕였다.
“시메루가 여길 안내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현수는 철창에 걸린 자물쇠를 만져보았다.
엄청나게 무거운 것이 공구를 가져와 잘라도 한참 걸릴 느낌이었다.
“저런 자물쇠는 제 선에서 어떻게 할 수 없어요.”
화진도 자신의 툴킷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그녀가 열기에도 자물쇠의 크기가 상당한 것이었다.
“그런데 생동성 실험을 이런 곳에서 해요?”
태환이 볼을 긁적이며 물었다.
생동성 시험.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의 줄임말로 한 마디로 특정 약에 대한 인체 반응을 보는 실험이었다.
정확한 정의는 동일 성분을 함유한 의약품 등을 여러 생명체에 투여해 같은 반응이 나오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이는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국가 공인 기관에서 검열 및 검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까다로운 시험이었다.
- 생동성 시험할 때 집에 못 가게 하는 경우는 종종 있음.
- 나 전에 과 선배도 생동성 알바 가면 한 3일 정도는 어디 단체 숙소에서 머문다던데.
- 그런데 저건 그냥 감금 아님???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도 저마다 자신이 아는 이야기들을 올렸다.
휘이이잉-
찬 공기가 은은하게 퍼지며 철창 안쪽으로 회색 아지랑이들이 보였다.
“캠핑 님. 이거 어떻게 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현수가 자물쇠를 쥐고 물었다.
화진은 인상을 쓰며 문의 연결부위를 슥 둘러보았다.
녹이 잔뜩 엉겨 붙어 금방 부스러질 것처럼 보였지만 두꺼운 것이 쉽게 열 수 있는 문은 아니었다.
“이 자물쇠를 어떻게 해봐야겠네요.”
화진이 자물쇠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어려울 것 같나요?”
“네. 근데 방법이 없으면 뭐라도 해봐야죠.”
그녀는 자물쇠 앞에 쪼그려 앉아 툴킷들을 늘어놓았다.
“그러면 캠핑님이 문을 열 때까지 잠시 기다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
현재 시청자 수 10만 명.
자물쇠와 10분 넘게 씨름을 하자 시청자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있었다.
현수와 태환이 오디오가 비지 않게 계속 멘트를 주고받았지만 어찌 되었든 공포스러운 장면이 나오지 않자 시청자가 빠지는 것이었다.
- 오늘은 좀 노잼이네요.
- 뭔가 패기 넘치게 무서웠던 것하고는 다르네.
- 재미없다 오늘.
- 재미없는 날도 있겠죠.
- 1000원 파워챗 후원.
- 제로투라도 춰라. 아님 토카토카?
- 재미없음.
시청자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철컹
그 순간이었다.
둔탁한 쇳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바닥에 떨어졌다.
“후아. 됐어요!”
화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툭툭 털었다.
자물쇠가 고리를 연 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와. 성공하셨네요!”
현수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네, 네. 안이 다 녹슬어서 힘들었네요.”
화진이 철문을 열었다.
꾸우우우우우웅-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철창문이 열렸다.
그 순간, 오르골 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띵- 딩딩-
역시 아까와 같은 곡이었다.
미소를 짓던 현수가 표정을 차갑게 굳히고 철창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로 일행들도 따라 2층에 진입했다.
“자. 여기가 실험실 건물 2층입니다. 복도는 1층과 같은 구조인 것 같은데요. 여기 안에 방을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현수가 2층에 올라오자마자 보이는 방의 안쪽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말했다.
가운데 통로가 있고 양쪽에 침상과 사물함이 있는 구조였다.
흡사 80년대, 90년대 군대 내무실, 생활관 분위기였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았던 것처럼 이불과 숟가락, 연필, 연습장, 옷가지 등이 널려 있었다.
당연하게도 곳곳에 회색 악귀의 아지랑이들이 뚜렷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띵- 딩딩딩- 띠딩-
여전히 오르골 소리도 들리고 있었다.
다른 흉가처럼 일행을 갑자기 놀라게 하는 케이스는 적었지만 분위기만큼은 그 어떤 현장보다 압도적이었다.
1번 방
2번 방
3번 방
.
.
2층에 있는 모든 방에는 번호가 부여되어 있었다.
“1층에서 주로 실험을 하고 여기 2층에서 임상시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현수가 복도 벽에 있는 게시판을 보았다.
[투약 시간표]
[약을 먹은 후 체크할 것]
게시판에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두껍게 쓰인 글씨 밑으로 표가 보였다.
표 안에 어떤 글씨가 쓰여 있는지는 식별되지 않았지만 이름과 동그라미, 내지는 체크 표시를 하는 구성인 듯했다.
가라라라랑-
그때 걸음을 옮기던 태환의 발에 치였는지, 유리병 하나가 굴러갔다.
현수 일행은 굴러가는 유리병을 본 후 계속 복도를 걸어 나갔다.
뚝-
그런데 굴러가던 유리병 소리가 갑자기 뚝 멈췄다.
보통 벽에 부딪히거나 소리가 느려지다 멈추는 것이 정석이지만 이상하리만치 딱 잘리듯 소리가 끊긴 것이었다.
화아아아아아
동시에 찬바람이 복도 끝에서부터 휘몰아쳤다.
뒤에서 뭔가 존재를 느낀 현수가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자자자자자자자자자-
뒤에서 무언가 빠르게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회색 피부에 사백안의 눈을 가진 악귀였다.
악귀는 마치 짐승처럼 네 발로 빠르게 덤벼들었다.
“뒤!”
현수가 외치자 세정이 뒤늦게 카메라를 뒤로 돌렸다.
화아아아악
악귀가 어느덧 세정의 앞에 도달해 있었다.
심령카메라 가득 회색 형체가 가득 찼다.
- 와 깜짝!!!!!!
- 깜자ᅟᆞᆨ놀랐ㄷ!!!!!
- 아오!!!!!
- ㄷ허ㅣㅐᅟᅣᆮ거ㅣ햐ㅓᅟᅣᇂ
- !!!!!!!!!!!!!!!!!!!
- ㅇ래ㅑ조ㅓᅟᅢᆮ갸ᅟᅥᇂㄷ잭ㅎ아 ㅅㅂ
- 뭐얄!!!!
약간 심드렁한 분위기 속에서 이어가던 방송이어서 방심들을 했는지 시청자들의 반응도 격렬했다.
철컥 팡!
현수가 바로 솔트샷건을 쏘았다.
세정을 덮치려던 악귀가 뒤로 확 날아갔다.
쿠구구구구구구구
자가자가자가자가자가
2층 천장의 석고 텍스 위에서도 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위를 기어다니고 있는 소리였다.
동시에 석고 텍스가 중간중간 하나씩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퍼석 퍼석- 퍼석-
그러는 와중에 천장에 위태롭게 붙어 있던 형광등도 툭 떨어져 전선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머리 조심해요!”
화진이 부적 봉을 들고 소리쳤다.
끼이이익 쾅!
순간 2층에 있는 모든 방문이 일제히 닫혔다.
그러면서 오르골 소리는 물론, 천장에서 나던 이상한 소리도 모두 멈췄다.
일행의 거친 숨소리를 제외하고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 바, 바, 방금 뭐였어요?”
일행 중 가장 심하게 놀란 것은 세정이었다.
뒤를 돌아봤다가 갑자기 악귀가 눈앞에 떡하니 나타난 것이었다.
“악귀. 악귀였어요.”
현수가 대답했다.
“방문은 갑자기-”
태환도 어리둥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열려 있던 모든 방문이 갑자기 쾅 닫힌 것도 굉장히 무서운 현상이었다.
일행들이 서로를 챙기며 괜찮은지 확인하는 사이, 현수는 복도 끝을 보았다.
악귀가 처음 나타나 달려든 바로 그 방향이었다.
- 저기 서있는 것부터 신기.
- 어케 버티고 있는 거지
- 와 대박....
- 어케 버티고 있는 거에요??
- 쌉무섭다.
전처럼 쫓고 쫓기는 추격씬이나 격투씬이 나오고 있지는 않았지만 미칠 듯한 공포 분위기는 점점 더 강렬해지고 있었다.
현수가 복도 끝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캡틴님?”
화진이 세정을 부축해주며 현수를 보았다.
“저쪽으로 가보겠습니다. 세정 님. 향 피워주세요.”
현수의 말에 일행들이 같이 움직였다.
그리고 세정은 쑥 향을 꺼내 연기를 피웠다.
저벅 저벅 저벅
복도를 걷다 보니 벽에 걸린 여러 그림 액자들이 나타났다.
그중 액자 하나는 징그러울 만치 기괴했다.
유화로 그린 듯한 초상화였는데, 그림 속 인물은 눈이 엄청나게 크고 눈 아래쪽으로 붉은 피가 고여 있었다.
엄청나게 새하얀 피부에 피가 눈 밑에 고여 있으니 붉은색이 더욱 강조되었다.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림을 지나갔다.
화진과 태환, 세정도 그림을 한 번씩 보고는 바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맨 끝 방에 오자 굳게 닫힌 방문이 보였다.
15번 방
문 앞에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닫힌 문 아래 틈으로 긴 머리카락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방 안에서부터 흘러나온 모양새였다.
현수가 문을 열려고 문고리에 손을 뻗었다.
- 긴장....
- 이제부터가 진짜네
- ㅈㄴ긴장된다.
- 캡틴 강철심장 인정
- ㅈㄴ쫄깃하구마이
- ...........
-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열지 마 열지 마 열지마
- 두구둑두구두둗구둑둑둑둑둑두구
세정은 문고리를 향해 뻗는 현수의 손을 촬영했다.
그 순간은 마치 슬로모션처럼, 시청자들에게 전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