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1화
# 화림산 개장수 (1)
현수와 화진, 태환, 세정은 촬영 장비를 모두 챙긴 채 화림산에 올랐다.
의뢰인인 스님을 만나기 위해 절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밤 산행은 많이 위험하다는 메일 내용에 일행은 해가 떠 있는 오후에 절을 방문하고, 밤9시 쯤 현장으로 이동할 것을 계획했다.
한참을 올라도 목적지가 나오지 않자 태환이 짜증이 난 표정으로 땀을 닦았다.
“와우. 진짜 운동 좀 해야겠네요. 너무 빡세네.”
태환이 볼멘소리를 하자 현수가 피식 웃었다.
“야. 20대가 벌써부터 그렇게 퍼지면 어떡하냐. 너도 주짓수나 할래?”
“어우. 저는 맨몸 격투는 사양입니다. 전 원딜하고 싶은데요.”
“원딜도 근력이 있어야 하는 거야. 옛날 궁수들 팔 근육 쩔었을 걸?”
현수와 태환이 대화를 나누고 있자 앞서가던 화진이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하여튼 남자들이란.”
옆에서 세정이 말했다.
“아. 저긴가.”
그때 현수가 앞을 가리켰다.
갈색 철제 이정표가 나타난 것이었다.
[화증사]
“그 ‘당태스님’이 계신 곳이 ‘화증사’랬죠?”
“네, 맞아요.”
현수의 질문에 세정이 대답했다.
하지만 이정표가 나왔을 뿐, 또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일행은 점점 말없이 산행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이 힘든 것이었다.
반면 현수 옆에 따라 걷고 있는 수정은 상쾌한지 양팔을 벌리고 삼림욕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안 힘들어요?”
현수가 묻자 수정은 손사래를 쳤다.
“전혀. 우린 근육이 없잖아.”
“아.”
‘근육이 없다.’는 말이 괜스레 이상하게 들려왔지만 어쨌든 귀신이 힘들다는 건 아무래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긴 했다.
그렇게 수십 분을 더 걸어 올라가고 나서야 화증사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현수 일행이 절에 다가가자 풍경소리와 목탁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현수가 앞장서서 절의 일주문 안으로 들어가며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러자 마당을 쓸고 있던 동자승이 화들짝 놀라더니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진짜 산속에 고즈넉한 절이네요.”
화진이 산속에 파묻혀 있는 듯한 절의 지붕을 보며 말했다.
“그러게요.”
현수 일행은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 자하문을 통과했다.
똑- 똑똑똑똑똑-
땡- 땡- 땡-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것 같은 풍경, 목탁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그때 대웅전에서 승복을 입은 노승이 걸어 나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캡틴 퇴마 채널 박현수라고 합니다. 여기 제 일행들이고요.”
현수가 꾸벅 인사를 하자 노승이 합장을 하고 화답했다.
“여기 ‘당태스님’이라고 계시지 않나요?”
“아. 당태는 지금 잠시 시내에 갔습니다. 안에 드셔서 차라도 한 잔 하시지요.”
노승이 절 한 쪽에 있는 작은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은 신도들이 와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곳인 듯했다.
현수 일행은 노승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자판기와 기다란 플라스틱 테이블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커피? 녹차?”
“커피 하겠습니다.”
“저희도요.”
노승은 현수 일행에게 믹스커피를 타 앞에 놓아주었다.
“그 ‘당태스님’께서 저희가 온다는 걸 말씀해 주셨나요?”
“네. 아무래도 당태가 젊다 보니까 꼭 여러분을 부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아?”
“본디 산 사람은 살고, 죽은 사람은 그들 나름대로 편안해야 하는 법이지만- 죽은 존재가 아직도 구천을 맴돌고 있다면 그건 다 이유가 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그것 또한 그들의 운명이거늘, 퇴마사나 무당을 불러 불쌍한 영혼을 억지로 천도하는 건 개인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
노승의 말에 현수는 괜스레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지요.”
그러자 노승이 손사래를 치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여기 박현수 님의 모습을 보니 많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잘 해결해주고 계신 것 같기는 합니다.”
“감사합니다.”
“허나 그런 박현수 님을 쫓아다니는 영혼이 있는 것도 같군요.”
수정을 말하는 듯했다.
현수는 노승 뒤에 서있는 수정을 슬쩍 보았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가리키며 입모양으로 ‘나?’를 말하고 있었다.
“산 사람의 원한은 없는데 죽은 사람들의 원한은 많이 뒤엉키는 것 같기도 하고.”
노승이 현수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저기. 혹시 막 정체 모를 악귀가 따라올 수도 있나요? 특별한 원한관계 없이.”
“그럼요. 귀신은 자기를 알아보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더 달라붙는 법입니다. 죽은 사람을 보는 눈에다 퇴마까지 하고 있으니 영혼들이 현수 님을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저희 방송을 보시나요?”
현수에게 영안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아는지 궁금해서 던진 질문이었다.
“아뇨. 저는 스마트폰이 없습니다. 허허. 다만 제가 아니라 다른 한 곳을 자꾸 보시기에 드리는 말씀이죠.”
노승이 대답했다.
수정에게 눈동자가 돌아갔던 순간을 캐치했던 것이었다.
‘어우.’
노승의 눈썰미에 현수가 새삼 놀랐다.
“특히나 현수 님의 몸을 노리는 악귀들이 있을 수 있어요. 악귀는 산 사람한테 달라붙고 싶어 하니까.”
노승이 덧붙였다.
현수는 노승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는 마치 모든 걸 꿰뚫는 듯한 오묘한 눈빛으로 현수를 보고 있었다.
“주지 스님. 저 왔습니다.”
그때 건물 밖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노승이 화증사의 주지였던 모양이었다.
현수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이, 젊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깔끔한 외모에 중의 머리, 승복을 입은 당태스님이었다.
“아. 당태 왔니. 손님 오셨다.”
노승의 말에 당태스님이 현수를 보았다.
그는 마치 연예인을 본 것처럼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의뢰 드린 당태입니다.”
“박현수입니다.”
“와. 캠핑님. 팬입니다.”
당태스님은 웃으면서 꾸벅 인사했다.
“그럼 이야기들 나누게나.”
노승이 일행과 당태스님을 번갈아 슥 둘러보고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
“앉으시죠.”
당태스님이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
“전화 통화로 대충 듣기는 했습니다만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세정이 다이어리를 펼치며 물었다.
당태스님은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처음에는 그냥 소문이었고- 주지스님께서도 영혼들도 흘러가는 대로 두라고 해서 뒀는데요. 한 두어 달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당태스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이건 뉴스에도 단신으로 보도가 되었던 건이라고 했다.
6살짜리 딸과 함께 화림산에 온 젊은 부부는 산 초입에 주차를 한 후 등산을 시작했었다.
어린 딸이었지만 독실한 불교신자인 만큼 업어주고 달래면서 산행을 한 것이었다.
꽤 높기는 해도 산책로가 깔끔하게 잘 되어 있는 편이라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특히 젊은 아빠는 딸이 힘들까 목마를 태우고 등에 업어주면서 산행을 했다.
그렇게 계속 산행을 하다 중간에 있는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딸이 사라졌다.
놀란 부부가 산속을 헤매며 딸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119까지 출동을 했다.
화증사 스님들도 모두 출동해 산을 뒤지고 다녔다.
그러던 중, 해가 저물게 되었고 일부 경찰과 수색대원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수색 규모를 줄였다.
이는 행정적으로 당연한 절차였지만 딸을 잃어버린 부모 입장에선 용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당태스님을 비롯한 화증사 스님 몇 명과 아이의 부모는 밤이 깊도록 수색을 했다.
그때, 산 곳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는 들개들의 울음소리도 들려왔다.
이곳에 들개가 나타난다는 소문 때문에 스님들은 부모를 말리려 했지만 말릴 수 없었다.
그렇게 수색을 계속 되었고 새벽이 되었을 쯤, 아이를 찾을 수 있었다.
산속에 있는 작은 창고 건물 앞에서였다.
그리고 아이의 부모는 창고 건물 근처에서 개에 물려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날카로운 이빨에 목 절반 정도가 뜯겨 나간,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후로 절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 몇 명은 숲속에서 이상한 목소리가 한 번씩 들린다고 전해왔다.
“명화야-! 명화야-!”
그 이름은 잃어버렸던 그 여자 아이의 이름이었다.
사람들은 아이를 찾던 그 부모의 절규가 계속 들려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은 현수가 물었다.
“예전에는 이런 소문이 없었나요?”
“옛날에도 귀신이 있네 마네 하는 소문은 있었지만 그것도 한 10년 전부터 부쩍 많아진 겁니다.”
“그게 늑대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네. 주지스님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시는데- 전 아무리 생각해도 그 소리들이 매일 들리기 시작했던 그쯤부터 이런 괴소문들이 돌았던 것 같습니다.”
“흐음.”
언제나 그렇듯 ‘괴담’이라는 것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분명히 해야 했다.
어쨌든 뉴스에 보도가 되었다는 몇 달 전 사건을 기준으로 현장을 추적해 보는 것이 제일 좋았다.
“아이가 발견된 곳은 여기서 먼가요?”
“산행으로 한 시간 정도 거리입니다. 조금 됩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요?”
“그 근처입니다.”
“그러면 7시 반쯤 출발하면 되겠네요.”
“그럼 식사부터 준비를 좀 해드리죠. 배가 든든해야 퇴마하지 않겠습니까.”
당태스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
해가 지자 정말 아득히 먼 곳에서 늑대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우우우우우-
근데 그게 늑대 소리보다는 조금 더 높은 느낌이었다.
현수는 마당에서 장비를 챙기며 시커멓게 어둠이 드리운 산을 바라보았다.
“형님. 정말 들개가 있는 거면 이거 우리 퇴마 장비로는 위험한 거 아니에요?”
태환이 물었다.
“그러게요. 진짜 엽총이라도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몰라요.”
화진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글쎄요. 수정 누나 말로는 진짜 들개가 있는 거 같진 않은데. 혹시 모르긴 하죠.”
현수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때 노승이 뒷짐을 지고 걸어 나왔다.
“이 산에 늑대나 들개는 없습니다.”
노승의 말에 일행 모두가 돌아보았다.
“거 당태나 젊은 스님들은 혹시 모른다고 말하고 뭐 산림청인지 어딘지 공무원들도 조심하라고 하는데 난 이 산에 평생 살았잖아요. 여기엔 위험한 동물 없습니다.”
노승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순간 현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의 등 뒤에 옅은 황금색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절 곳곳에서도 황금색 아지랑이가 피어났다.
아주 옅게 올라오는 수준이었지만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현상이었다.
만약 저 아지랑이가 하얀색이나 회색이었다면, 귀신이나 악귀의 흔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였다.
‘저건 뭐지?’
현수가 수정에게 물으려 주변을 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유. 주지스님. 정말 모르는 거예요. 그러다 사람들 다치면 어떡하시려고.”
그때 나무 지팡이에 배낭을 멘 당태스님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같이 가시려고요?”
현수가 묻자 노승이 대신 대답했다.
“밤 산행은 위험합니다. 우리 스님들이 이곳 산길은 훤하니 길잡이가 되어 드릴 겁니다.”
당태가 합장을 하며 현수에게 인사를 했다.
현수도 엉겁결에 합장으로 인사를 받으며 출발 준비를 마쳤다.
“이제 출발합시다.”
현수가 앞장서서 일주문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