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 성망고등학교 (5)
“크윽!”
최동천은 골반을 붙잡은 채 주저앉아 있었다.
화진이 그 옆에서 상태를 살피다 주변을 보았다.
유리장에 반사된 여학생 귀신은 사라져 있었고, 일행들은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어디 갔죠?”
태환이 심령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리며 물었다.
곳곳에 회색 아지랑이가 포착되고 있었지만 사람의 형태는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현수는 EMF 탐지기의 불빛이 다섯 개까지 들어차는 것을 본 후 솔트샷건을 장전했다.
짤랑-
수위 아저씨의 열쇠소리.
일행들은 소리가 난 곳을 일제히 돌아보았다.
교탁이었다.
교탁 위에는 녹슬고 동물 털이 낀 방울이 놓여 있었다.
현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악귀가 쫓고 있다.
여러 악귀들이 쫓아다니고 있다는 걸, 현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최근 죄책감 문제로 인해 캡틴 타워와 차량 등, 부적으로 도배 된 곳까지 악귀가 들어찼다가 이내 사라졌다.
하지만 이렇게 음기가 강해지는 순간에는 악귀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호장리 폐 수영장에서부터 쫓아다니는 악귀인지, 프랑스에서부터인지, 아니면 현수도 모르게 쫓아오기 시작하는 건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악귀들.
현수는 방울 쪽으로 다가가며 샷건을 조준했다.
사아아아아아
교탁 뒤로 회색 아지랑이가 점점 짙게 피어올랐다.
“그 여학생. 악귀였나요?”
화진이 물었다.
“기운 자체는 회색 악귀의 기운인데 공격성이 느껴지지는 않아요. 그런데 우리가 봤던 그 수위. 그 사람에게서는 공격성이 느껴져요.”
“그렇다면-”
“여학생 귀신은 이 학교에 붙어 있는 지박령이고 수위는 우리를 쫓아온 악귀인 것 같아요.”
현수가 방울에 접근했다.
짤랑-
다시 한번 들리는 열쇠소리.
동시에 과학실 앞문이 벌컥 열렸다.
그러자 사백안의 눈을 가진 수위가 기괴하게 웃으며 달려 들어왔다.
그 모습은 흡사 삐에로 같기도 했다.
붉은 입술이 관자놀이까지 치켜 올라간 듯했고 눈동자는 점처럼 작았으며, 피부는 회색으로 썩은 피부 같았다.
찰칵- 팡-
현수는 예상했다는 듯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화아아아아아
악귀가 뛰어올라 천장에 거꾸로 매달렸다.
현수는 그대로 스프링텐션 수류탄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빠각-
플라스틱이 깨지면서 팥가루가 확 퍼졌다.
그러자 수위 귀신은 다시 한 번 사라졌다.
“콜록, 콜록! 이거 뭡니까!”
과학실 안을 팥가루로 가득 채우자 수위가 기침을 하며 손부채질을 했다.
“팥입니다. 악귀를 쫓는 데 좋죠.”
현수는 방울을 내려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이 방울을 일단 봉인시켜 둬야 할 것 같습니다.”
현수는 두리번거리다 과학실 구석에 있던 작은 가방을 집어 들었다.
어떤 학생이 놓고 간 듯한 손가방이었다.
현수는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교탁에 부었다.
펜과 메모지가 쏟아져 나왔다.
“이 가방 주인인 학생. 만약 방송 보고 있으면 저희 캡틴 타워 대표 메일주소로 메일 주세요. 보상해 줄게요.”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찡끗 윙크를 하고는 부적으로 방울을 감쌌다.
그러고는 가방에 넣은 뒤 지퍼를 닫았다.
“이렇게 해두면 방울 속에 깃든 악귀가 당장 나오지는 못할 겁니다. 이건 여기 퇴마가 끝난 후 처리하죠.”
현수가 일행들을 슥 둘러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그 유리장에 비쳤던 여학생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화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여기서 화학약품에 사고를 당했던 학생이겠죠. 그 학생에 대해서는 전혀 정보가 없는 거죠?”
현수가 최동천을 보며 물었다.
그는 아직도 아픈지 골반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소문으로만 도는 거라.”
최동천이 대답했다.
현수는 고민을 하는 듯 그를 보다 카메라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 이 학교가 어딘지 아시는 분들 계실 겁니다. 혹시 졸업생 분들 중에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아시는 분이 계실까요?”
현수가 물었다.
- 난 지금 다니고 있는 사람임ㅋㅋㅋㅋㅋㅋㅋ
- 저 지역에서 저 학교 괴담은 유명하지.
- 나도 지금 저 쌤 이야기 한 거 정도로만 앎.
- 나도나도나도
- 나도 잘 모르는데.
시청자 수가 수십만 명에 달하는 만큼 그래도 성망고등학교 학생이나 졸업생이 제법 있는 듯했다.
더구나 자기 학교가 나온다니, 친구들끼리 방송 URL을 돌려보며 그 수는 계속 많아지는 모양새였다.
- 졸업생인데 우리 때는 저 미스터리를 다 돌면 열쇠를 얻을 수 있다고 했는데.
- 아 맞아 그런 이야기도 있었음.
- 맞아맞아 기억난다.
- 3대 미스터리를 다 들러봐야 진실을 알 수 있댔음.
- 근데 하나만 가도 미친다고 하니까 다들 엄두를 못냈짘ㅋㅋㅋㅋㅋ
- 괴담에 관심 없는 애들도 많았음.
몇몇 시청자들이 채팅을 올렸다.
여학생 귀신에 대해 모르겠다는 여론과 3대 미스터리를 모두 돌아야 한다는 두 가지 여론으로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직접 말해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현수는 턱을 만지다 다시 최동천에게 물었다.
“선생님. 세 번째 미스터리가 화장실이었죠?”
“네. 2층 여자 화장실입니다.”
최동천이 대답했다.
“세 번째 미스터리까지 한 번 가봅시다.”
현수가 손가방까지 허리에 찬 후 앞장서서 앞문으로 나갔다.
현수 일행은 최동천을 부축한 채로 바로 2층 계단으로 향했다.
* * *
확실히 방울을 부적에 봉인한 뒤에는 아까처럼 여기저기 나타나지 않았다.
수위의 열쇠소리도 당장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현수 일행은 계속 주변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촬영을 이어갔다.
“불 꺼진 학교는 역시 무서운 것 같아요.”
태환이 일행의 뒤를 촬영하면서 중얼거렸다.
현수도 태환의 말에 동의했다.
이상하게 학교와 군대에는 음기가 강한 경우가 많았다.
퇴마 방송을 시작한 후 폐교를 포함해 여러 번 학교에 방문했지만 그럴 때마다 느껴지는 공포는 여타 다른 공간을 확실히 압도했다.
별 이슈 없이 2층 여자 화장실 앞에 온 현수는 카메라를 보며 화장실을 가리켰다.
“세 번째 괴담 장소인 2층 여자 화장실입니다. 혹시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안에 사람이 있는지 불러본 뒤, 들어가겠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만큼 괜히 무턱대고 여자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안에 누구 계십니까?”
현수가 불 꺼진 화장실 앞에서 소리쳐 물었다.
- 불 꺼진 거 보면 모르나 아무도 없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저럼
- 불 꺼져있잖아욬ㅋㅋㅋㅋㅋㅋㅋ
- 그냥 들어가면 변태니 뭐니 하면서 까이니깤ㅋㅋㅋㅋ
- 하기얔ㅋㅋㅋ 억까들 겁내 많짘ㅋㅋㅋ
채팅이 올라오는 사이, 현수가 다시 한번 소리쳐 물었다.
“안에 아무도 안 계시죠?”
다시 묻는 순간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있어요.”
되돌아오는 소리에 일행 모두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소리는 시청자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 헐?????????????????
- ???????????????????
- 나만 들은 거 아니지????
- 무슨 소리 들렸어요????
- ㅅㅂ 현실에서 와이프가 말한 줄 알았네
- 들렸어요
- 여자 목소리 들림
- 초상화 앞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 같은데 아닌가
시청자 채팅창도 난리가 났다.
현수 일행은 서로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불이 꺼져 있었지만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 만큼 현수는 잠시 고민했다.
“제가 들어가 볼게요.”
화진이 세정을 보며 말했다.
“저랑 세정 님이 같이 들어가서 촬영해 보겠습니다. 심령카메라 맡겨주세요.”
화진의 말에 태환이 세정에게 심령카메라를 넘겼다.
세정은 예전에 촬영했던 대로, 촬영 카메라 거치대 밑에 또 다른 거치대를 세팅해 구형 스마트폰을 장착했다.
“방송으로 확인하고 있을게요. 사람이 없는 게 확실하면 불러주세요.”
현수가 화진을 보며 말했다.
화진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세정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현수와 태환, 최동천은 화장실 앞에 남아 방송 화면을 보았다.
*
끼익-
화진과 세정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칸막이가 가득한 여자 화장실 풍경이 카메라에 확 담겨 들어왔다.
“저기요~ 누구 계신가요.”
화진이 다시 물었다.
그 소리는 짧게 메아리쳐 돌아왔다.
화진은 손전등으로 곳곳을 비추며 걸음을 옮겼다.
그때, 세면대와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거울 중 가장 구석에 있는 거울은 심하게 색이 바래있었다.
- 저 거울이네
- 저거다.
- 사연에 있는 거울이 저거인 듯.
시청자들도 거울을 보고는 바로 반응을 해주었다.
거울에 손전등 불빛이 반사되면서 순간적으로 화면이 확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 아 눈뽕
- 말 걸어봐요.
- 거울 앞에 서봐요.
채팅이 올라왔지만 세정은 화진에게 전달해 주지 않았다.
일단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실히 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저기요~”
화진이 다시 불렀다.
그러면서 칸막이들을 슥 비췄다.
모두 조금씩 열려 있었다.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현수님! 밖에 계시죠?”
화진이 화장실 출입문을 보며 확인차 소리쳐 물었다.
현수 없이 세정과 단둘이 있으니 무서운 것이었다.
“네, 방송으로 화면 보고 있어요.”
화장실 밖에서 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진은 부적 봉으로 열린 칸막이들을 한 번씩 다 열어보았다.
안에 사람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사람 없는 것 같아요.”
화진이 인상을 쓰며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안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는데, 눈에 띄지 않는 것이 더 무서웠다.
빨리 현수가 화장실 안에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앞섰다.
“사람 있다니까.”
그때 세면대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끼익-
동시에 현수와 태환도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방금 또 목소리 들렸죠?”
현수가 세면대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색이 바랜 거울 너머로 현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아무리 닦아도 오래된 거울처럼 살짝 변색 되어 있는데 그 거울을 보고 인사를 하면 귀신이 인사를 받아준다고 한다.
그때 거울에 손을 대면 거울 속 귀신에게 영혼을 빼앗겨 자기 자신은 거울에 갇히고, 귀신이 몸을 가지고 도망간다고 한다.
최동천이 보내준 사연의 글귀가 떠올랐다.
“바로 저 거울입니다.”
그때 최동천이 현수 뒤에 따라 들어오며 색이 바랜 거울을 가리켰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현수가 대답했다.
최동천은 말하자마자 팔을 내리고 화장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거울 속 최동천은 여전히 거울을 가리키는 모습 그대로였다.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거울 속 최동천을 보았다.
씨익-
거울 속 최동천이 미소를 지었다.
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씨이이이이익-
입가의 미소가 징그러울 만큼 옆으로 길게 벌어졌다.
“선생님.”
현수가 현실 최동천을 돌아보며 불렀다.
“네?”
최동천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그의 눈이 순식간에 검게 변했다.
“선생님!”
현수가 다시 외쳤다.
거울 속 최동천이 짓고 있던 기괴한 표정이 현실 최동천에게로 전이가 되었다.
그가 징그럽게 웃기 시작한 것이었다.
철컥-
현수가 솔트샷건을 들어 조준했다.
순간 최동천이 확 달려들어 현수의 허리에 채워져 있던 손가방을 훔쳤다.
“큭!”
현수가 뒤로 밀려난 사이, 최동천이 화장실 밖으로 확 달아나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