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 성망고등학교 (1)
며칠 후.
캡틴 퇴마 채널에서 또 한 번 낮 생방송이 진행되었다.
카메라가 켜지자 보인 것은 바로 방고리의 자취방이었다.
그곳에는 화려한 상이 차려져 있었고, 무당 옷을 입은 태환의 모친이 천도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입니다. 오늘은 방고리 님의 영혼을 위해 천도재를 지내는 날입니다.”
현수가 카메라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ㅎㅇㅎㅇㅎㅇ
- 안녕하세요!
- 대낮 방송도 꿀잼인데.
- 아 여기 거기구나 의정부.
채팅들이 빠르게 올라왔다.
현수는 자기 엄마를 도와주고 있는 태환과 상을 한 번 돌아보았다.
“지난 번 방문을 했을 때 방고리 님의 영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죠. 보니까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아마 악귀한테 완전히, 의식을 지배당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수가 설명을 해주었다.
- 방고리 게임 방송 재밌긴 했는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시청자들의 애도도 이어졌다.
현수는 경건한 마음으로 상 너머 벽을 보았다.
그곳에는 귀신 형태로 서있는 방고리가 눈에 보였다.
그는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현수를 응시하고 있었다.
현수를 제외한 영안이 있는 일행들은 상 주변으로 회색 연기가 피어나고 있는 걸 똑똑히 보고 있었다.
방고리가 이 방에 있다는 건 눈치 채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 사이, 태환도 상차림을 도와준 뒤 심령카메라를 켜 방을 비췄다.
시청자들에게도 방고리의 형상이 어렴풋이 전달되었다.
챙- 챙-
이내 요란한 국악 소리와 함께 천도재가 시작되었다.
그 모습은 실시간 생방송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모두 방고리 님의 명복을 빌어주세요.”
현수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챙 챙 챙 챙-
국악 소리는 더 크고 빨라졌다.
잠시 뒤, 방고리의 영혼은 점점 흐려지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현수는 사라지는 순간의 방고리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할 말이 무척 많은 표정.
하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표정.
그렇게 방고리의 모습이 사라지는 건 심령카메라를 통해 시청자들도 보았다.
- 천도재를 해서 이렇게 퇴마가 되면 무당들이 더 퇴마 잘 하는 거 아님??????ㅋㅋㅋㅋㅋ
- 그래서 무당들 퇴마하고 다니잖음ㅋㅋㅋㅋ
- 우리는 무당이 퇴마하는 걸 보고 싶은 게 아님. 캡틴이 퇴마하는 걸 보고 싶은 거짘ㅋㅋㅋ
- 무당이 퇴마 더 잘 하는 걸 굳이 말할 필요가???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팅을 본 현수가 말했다.
“맞습니다. 신통한 무당 분들의 퇴마 실력이 더 뛰어나죠. 그냥 저는 여러 귀신들의 사연을 듣고 그 분들의 한을 해결하거나, 악귀와 싸우는 콘텐츠를 주로 할 뿐입니다. 무당 분들 스트리머도 실제로 있으시잖아요. 그렇죠? 그 분들은 그 분들대로 방송 하시는 거고요.”
현수는 차분하게 설명을 해나갔다.
- 맞말이짘ㅋㅋㅋㅋㅋㅋ
- 개그맨들이 축구하는 예능 왜 봄ㅋㅋㅋㅋㅋㅋ 잘하는 거 보려면 진짜 축구시합 보면 되짘ㅋㅋㅋㅋ
- 아 맞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진짜 캡틴님 까는 것들 진짜 많은 듯.
- 캡틴 탈출은 지능순.
채팅이 올라오는 사이, 천도재가 마무리 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현수가 태환 모친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녀는 인사를 받아준 뒤 돌아서 밖으로 나갔다.
방에 남은 현수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방고리의 기운에 한 편으로 허탈하면서도 또 안도가 되었다.
“이제 우리도 철수합시다.”
현수가 웃으면서 일행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태환과 화진이 나서서 상을 치웠다.
그때, 누군가 문 앞에 서있는 것이 보였다.
현수가 그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시죠?”
그녀는 딱 봐도 평범해 보이는 옷차림에 옅은 화장을 한 모습이었다.
“저, 김창수 과장 아내 되는 사람입니다.”
“아!”
현수를 비롯해 일을 하던 화진과 태환 모두 놀란 표정으로 현관문을 보았다.
김창수 과장의 아내가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
*
그녀는 하날하날과 방고리의 애도 퇴마 영상을 처음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다.
방송 전, 캡틴 타워 쪽에서 유족들에게 연락했을 때부터 어떤 식으로 애도가 흘러갈지 지켜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방송이 진행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라미로브 측에서 유족들에게 상당한 금액의 위로금을 지불했다고 말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현수는 라미보르가 제법 발 빠르게 일처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캡틴 채널이 김창수 과장의 일을 파고들게 되면 산재 처리 및 법적 분쟁에 대한 이슈가 더욱 불거질 것은 뻔한 일이었다.
바로 전에 아수라솔루션에서의 사건이 있었던 만큼 더 크게 역풍이 몰아칠 여지도 충분했다.
결국 라미로브는 현수가 김창수 과장 유족들에게 깊숙이 접근하기 전에 위로금을 줘 분쟁을 일단락 해버린 것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창수 과장의 아내는 현수가 생방송하는 곳으로 찾아와 애도 퇴마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전달하게 된 것이었다.
현수는 생방송이 꺼진 상태에서 김창수 과장 아내의 이야기를 들었다.
일행 모두 현수의 결정을 기다리는 듯 현수를 보았다.
라미로브 측에서 꼼수를 쓴 것 같았지만 어찌 되었든 유족이 원하지 않는 퇴마를 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전에도 말했듯, 김창수 과장은 현수가 가지고 있는 죄책감과는 거리가 있었다.
악귀들이 김창수 과장의 모습을 악용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현수는 김창수 과장 아내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김창수 과장에 대한 퇴마는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내용에 대해 커뮤니티 탭에 공지를 올렸다.
다만 위로금과 법적 분쟁 내용은 최대한 덜어낸 채, 유족들의 요청에 의해 방송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문구만 올렸다.
유족들이 위로금을 받고 법적 분쟁을 끝낸 만큼, 논란의 여지가 될 만 한 설명은 빼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 * *
확실히 하날하날과 방고리 퇴마 이후, 현수 주변을 가득 메우던 악귀들의 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죄책감이 사라지면서 부적을 뚫고 들어오는 귀신들도 모두 사라졌다.
한 마디로 현수 내면이 한 층 더 단단해진 것이었다.
그에 따라 현수의 방송 역시도 날개 돋친 듯 잘 되었다.
구독자 수는 410만을 넘어서고 있었고, 평균 시청자 수가 20만 명에 도달했다.
편집 영상 조회 수는 올렸다 하면 100만 명을 넘었고, 쇼츠 영상은 1000만 뷰 이상 찍히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 마디로 대 호황을 누리게 된 것이었다.
그만큼 일거리도 엄청 많아졌다.
퇴마 의뢰가 줄지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하다못해 해외에서도 하루에 수십 건 꼴로 의뢰가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매일 같이 모여 의뢰를 선정하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어느 것이 진짜 사연인지.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 만한 요소가 있는지.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지.
논란의 소지가 있지는 않은지.
여러 가지를 토대로 의뢰를 골랐다.
그렇게 한참 동안 회의를 하던 중 태환이 마우스 휠을 드르륵 내리며 말했다.
“여기, 이 사연 괜찮을 것 같은데요?”
“어떤 건데?”
“얼마 전에 강원도 영월 쪽에 ‘성망고등학교’에서 사고 났던 거 아세요?”
“성망고? 처음 들어보는데?”
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화진이 손가락을 딱 튕기며 말했다.
“아! 그 과학실에서 불나서 학생 두 명인가 죽은 그 학교?”
“맞아요. 뉴스에 나왔었거든요.”
태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근데 거기, 좀 무서운 소문이 있었나 봐요. 애초부터.”
태환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사연을 쭉 읊어주었다.
*
성망고등학교 3대 미스터리.
첫 번째, 사라지지 않는 초상화.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 중앙계단에 초상화가 있는데 절대 떼어내면 안 된다고 한다.
이유는 옛날 교장의 딸이 사망한 이후, 그녀를 애도하기 위해 교장이 직접 초상화를 그렸는데 그 딸의 귀신이 초상화에 깃들어 있어서라고.
그러다 보니 해가 진 이후 초상화 앞을 지나가면 안 된다는 소문이 있었다.
초상화 앞을 지나가면 그림 속 귀신이 부르는데 돌아봤다가 눈 마주치게 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한다.
두 번째, 과학실 불장난.
밤에 1층 과학실 안에서 창문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귀신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수십 년 전에 화학 실험을 하던 중 염산을 뒤집어쓰고 흉물스럽게 죽은 선배 귀신이 나타나 똑같이 흉물스럽게 만든다는 소문이었다.
고등학교기에 해가 진 후에도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경우는 많았지만 이런 이유로 해서 학생들도 밤에 과학실은 절대 가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교사들도 과학실은 기피한다고 전해졌다.
세 번째, 2층 여자 화장실 거울.
2층 화장실에는 유독 변색이 심한 거울이 하나 있다.
아무리 닦아도 오래된 거울처럼 살짝 변색 되어 있는데 그 거울을 보고 인사를 하면 귀신이 인사를 받아준다고 한다.
그때 거울에 손을 대면 거울 속 귀신에게 영혼을 빼앗겨 자기 자신은 거울에 갇히고, 귀신이 몸을 가지고 도망간다고 한다.
*
“이야기만 들어봤을 땐 흔한 학교 괴담인데.”
현수가 태환이 보내준 자료를 보며 중얼거렸다.
“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실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는 거죠. 그 과학실 불장난.”
“이 괴담하고 관계가 있을 가능성은?”
“뉴스 상으로는 전혀 없죠. 그냥 여학생 둘이 몰래 장난치다가 불이 난 거라고 하니까. 하지만 저런 괴담이 있다고 하면 시청자들의 흥미를 이끌 수는 있을 것 같은데요?”
태환의 말에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실제로 현상이 발생하는 괴담이든 아니든, 저런 괴담이 있는 학교, 그것도 정확히 그 장소에서 사망사고가 났다면 시청자들이 느끼는 몰입도는 굉장히 높아질 것이었다.
“의뢰한 사람은 누구?”
“기간제 교사네요. 최동천이라는 분이고요. 이 학교 졸업생이었대요.”
“오오. 졸업하고 교사로 다시 컴백하신 거구먼.”
“네.”
“그러면 애교심, 애사심이 남다르긴 하겠지.”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다 테이블을 탁 쳤다.
“그래, 이걸로 하자. 최동천 이 분 연락처 받고 촬영 준비해.”
현수의 말에 일행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망고등학교.
1967년에 개교해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등학교였다.
많이 외진 곳에 있었지만 인서울 대학교 합격률이 높아 강원도에서 이 학교로 입학시키는 경우가 제법 많은 듯했다.
오죽하면 학교 주변으로 사설 기숙사까지 설립이 됐을 정도였다.
실제로 의사나 검사, 변호사들을 많이 배출한 걸로 유명해 사람들 사이에서는 ‘강원도의 등용문’으로 불리고 있었다.
역사가 많고 성적이 좋은 학교라면 그만큼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많고, 귀신들도 많다는 이야기였다.
현수는 사연 메일에 첨부된 학교의 전경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어째 보통 어려운 게 아닐 수도 있겠는데.”
그리고 또 한 가지.
저렇게 대표적인 ‘미스터리’가 있다면 분명 굉장히 오랫동안 터줏대감처럼 자리하고 있는 귀신들도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