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화
# 의정부 자취방 (1)
의정부 역 인근 대형 카페.
현수 일행은 예전, 의정부 신시가지 쪽에서 발생했던 살인사건 관련해 연을 맺게 되었던 의정부 경찰서 형사2과 강력2팀 오 형사와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먼저 도착해 앉아 있자 잠시 뒤 오 형사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아, 여기.”
현수가 손을 흔들었다.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잘 지내세요?”
오 형사가 성큼 다가와 인사를 했다.
둘은 반갑게 악수를 한 뒤 마주 앉았다.
“그런데 여기까지 어쩐 일로.”
오 형사가 물었다.
그러자 현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작게 속삭였다.
“방고리 양수찬 기억하시죠?”
“기억하죠. 그럼요.”
“그 양수찬이 머물던 자취방에서 사람이 죽어나갔다면서요?”
현수가 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언론에 안 나갔는데.”
“저희 직원이 방고리 유족들 근황에 대해 알아보던 중에 알게 됐어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
현수의 질문에 오 형사는 손사래를 쳤다.
“아유. 아무리 캡틴 퇴마 박현수 님이어도 이건 함부로 이야기해 드릴 수 없어요.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개인 정보인데.”
“방송에 안 태울게요. 부탁드려요.”
“조금 어렵습니다. 그리고 타살 정황이 전혀 없어서 경찰 쪽에서 크게 수사한 것도 없어요. 정보랄 것 없습니다.”
“아아. 그렇습니까.”
현수가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
잠시 현수를 빤히 보던 오 형사가 덧붙였다.
“그 자취방 빌라 옆에 ‘태흥맨 공인중개사’가 있는데 거기 사장한테 가 봐요. 뭐 좀 나올 수 있으니까.”
오 형사의 말에 현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태흥맨 공인중개사요?”
*
의정부 태흥맨 공인중개사.
현수가 안으로 들어가자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스트리머 박현수라고 하는데요. 뭐 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네, 말씀하세요.”
“혹시 여기 옆에 빌라에 공실 떠 있는 거 있죠?”
“아! 있죠. 방 알아보고 계세요?”
남자가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뇨. 혹시 그 방이 예전에 살인범으로 사살된 방고리 양수찬 집 맞나요?”
현수가 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표정을 싹 굳히더니 현수 앞으로 성큼 다가와 쫓아내려 했다.
“아, 모릅니다. 나가세요. 나가.”
100% 알고 있다는 반응이었다.
“저는 퇴마 콘텐츠를 진행하는 스트리머고요. 양수찬 씨를 체포하는 데 도움이 된-”
현수가 끌려 나가면서 말했다.
“귀신 때문에 공실이 난다고 들었습니다! 도움을 드릴 수 있어요!”
화진도 함께 끌려 나가는 와중에 소리쳐 말했다.
그러자 한참 일행을 밀어내던 남자가 멈칫했다.
“캡틴 퇴마 박현수 씨라고요?”
“네, 접니다.”
“아.”
남자가 이마를 붙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쪽이 괜히 들쑤셔놓는 바람에 여기 매물 떨어지고 집값 떨어지고 난리도 아닌 것 아닙니까.”
“송구스럽게 됐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조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현수가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공인중개사 사무실 한쪽에 있는 소파를 가리키고는 자기 자리에 앉았다.
현수 일행에게 앉으라는 사인을 준 것이었다.
일행이 나란히 앉자 남자가 운을 뗐다.
“지금 두 명이 들어왔다가 두 명 모두 문제가 생겼는데요. 어디까지가 진짠지 몰라도 저한테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남자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
“어, 엄마. 너무 걱정 마. 아유 집 앞에 가로등 있어. 괜찮아.”
20대 여자가 방을 슥 둘러보며 통화를 했다.
방 곳곳에는 아직 풀지 않는 이삿짐 박스들이 놀려 있었다.
“응, 응. 응. 걱정마. 싸게 잘 구했지, 뭘. 알았어-”
여자가 전화를 끊은 뒤 짐들을 정리했다.
그때, 열려있는 현관문으로 한 중년 여성이 기웃거렸다.
“여기로 이사 왔어요?”
중년 여성이 물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여자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상당히 살가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으음. 어디서 계약했어요?”
“여기 밑에 태흥맨 부동산이요.”
“그래요?”
중년 여성은 뭔가 잔뜩 든 장바구니를 든 채 무언가 말하려는 듯 주저했다.
여자가 고개를 갸웃하자 중년 여성은 손사래를 쳤다.
“아유. 아니에요. 정리 잘해요. 이웃인데 종종 인사하고.”
“네, 알겠습니다.”
여자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중년 여성이 떠난 후, 여자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남은 짐을 정리했다.
그날 밤.
짐을 정리한 여자는 많이 힘들었는지 침대에 잠시 누워있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간단히 한 잔 하기 위해 야식을 주문하려는 것이었다.
“치킨. 피자. 떡볶이. 곱창. 족발. 있을 건 다 있네.”
그녀는 누워서 핸드폰을 보고 메뉴를 정했다.
덜컹
그때 화장실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또 뭐가 떨어졌니.”
여자가 일어나 화장실에 가보았다.
바닥에 샴푸가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다시 올려놓은 뒤 다시 침대에 누웠다.
덜컹
또 한 번 들렸다.
“하아. 진짜 뭐야.”
그녀가 다시 일어나 화장실에 가보았다.
샴푸가 다시 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떨어진 샴푸 통을 가만히 보았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이었다.
‘내가 잘못 놨나.’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샴푸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음식을 주문했다.
야식에 술 한 잔을 마시고 잠든 뒤 다음 날.
아침에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간 그녀는 샴푸 통이 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제 술김에 뭔가 떨어트렸나- 하는 생각에 별 대수롭지 않게 다시 올려놓았다.
그날 퇴근을 한 뒤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샴푸가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제 슬슬 그녀는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 자리에 샴푸가 아닌 다른 통을 놓아 보았다.
그러자 그 통은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다.
당장 샴푸가 자꾸 떨어지는 건 해결했지만 원인이 뭐였는지는 오리무중이었다.
하지만 원인이 뭔지 궁금한 것도 괜찮았다.
한 번씩 화장실 물건이 떨어져 소음에 놀라도 괜찮았다.
여자를 정말 힘들게 한 것은 매일 밤 그녀의 침대 위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한 남자였다.
그는 눈을 징그러울 정도로 크게 뜬 채 가만히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가위에 눌린 것이다, 악몽을 꾸는 것이다 생각하며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두려움에 떨었다.
외박도 해보고 친구를 불러와 밤을 보내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안 됐다.
결국 그녀는 태흥맨 공인중개사 사무실로 가 이 사실을 푸념했다.
하지만 계약까지 모두 마친 상태에서 공인중개사 사장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물론 전 세입자가 살인자였다는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그 방뿐만 아니라 그 동네 전체 부동산 가격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여자의 얼굴은 점점 초췌해져 갔다.
다크서클이 점점 더 짙어지고, 살은 말라갔다.
밤에 잠을 자기 위해 그녀는 매일 술을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달 되지 않아, 그녀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자 신고가 들어갔던 것.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그녀는 피부 하나 썩지 않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침대에 가지런히 누운 채.
천장의 무언가를 뚫어지게 보고 있던 것처럼 천장을 응시한 채.
* * *
이야기를 들은 화진이 고개를 갸웃하고 물었다.
“계약할 때 그런 내용은 전달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녀의 질문에 남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세입자가 검사든, 경찰이든, 범죄자든, 직업이나 경력을 말해줄 의무는 없죠. 집에 하자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나 고지할 의무가 있는 거지.”
그의 대답에 화진은 화가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기야 전에 살던 사람이 범죄자라고 해서 집에 문제가 생긴다는 과학적인, 법적인 근거는 없었다.
“그럼 그 자살사고는 어떻게 된 건가요?”
“똑같아요. 저한테 와서 따졌던 내용을 들어보면 똑같았어요. 다만 그 사람은 화장실에서 샤워기를 틀어놓은 채 손목을 그었더라고요.”
남자는 들고 있던 볼펜으로 자기 손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그의 얼굴에서는 공포나 두려움보다 짜증이 많이 들어차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그곳이 공실인 이 상태 자체가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저희가 그곳을 촬영해도 괜찮을까요?”
“퇴마하는 걸로요?”
“네.”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잠시 다른 곳을 보았다.
“집주인하고 한 번 이야기 나눠볼게요. 어차피 거기서 사람 죽은 거 이 근처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들이라 숨겨봐야 소용없고. 확실하게 해결을 했다고 홍보하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남자가 답했다.
현수는 편하게 통화하라는 손짓을 하며 돌아섰다.
“여보세요? 최 사장님. 여기 태흥맨이에요. 네. 네. 그 공실로 둔 방 있잖아요. 304호. 네. 네, 네. 퇴마를 한다고 그 분 오셨네. 캡틴 퇴마. 아. 네, 네. 알겠어요.”
그가 짤막하게 통화를 하더니 현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집주인도 하라고 하시네요.”
“알겠습니다.”
현수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그때 남자가 쭈뼛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저, 그런데 촬영하면서 여기 부동산 이야기는 안 해줬으면 좋겠는데.”
만약 그 집에 깃든 귀신이 방고리 양수찬일 경우, 자신에게 날아올 비난의 화살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도 사람이 죽지 않게 미리 좀 조심을 해주셨으면 참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현수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남자는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
며칠 후 의정부역 근처 공용주차장.
밤이 되자 도시에 어둠이 깔리고 네온사인 불빛이 피어올랐다.
현수 일행은 주차를 한 뒤 방고리가 지내던 건물로 이동했다.
그리고 밤 9시가 되었을 때 건물 앞에 도착했고 세정이 바로 방송을 켰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박현수입니다.”
“너도캠핑입니다!”
“태환이에요!”
현수 옆으로 화진과 태환이 다가와 서며 인사를 했다.
“오늘 이곳은 의정부입니다. 바로 방고리 양수찬 씨가 살던 자취방인데요.”
현수가 옆에 있는 건물을 가리켰다.
세정은 건물 상호가 나오지 않게 구도를 잡아가며 촬영했다.
“하날하날 님에 이어 방고리 님도 제대로 애도를 하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물론 악귀에 쓰여 절 공격하다 세상을 떠나시긴 했지만- 어쨌든 악귀에 들리셨던 것도 저랑 다니다 생긴 일이니까요.”
현수가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 안녕하세요~~~~
- 오늘은 방고리구나.
- 근데 방고리는 왜 봉안당이 아니고 여기지.
- 왜 거기에요???
시청자들이 장소에 대해 물었다.
“저희가 방고리 님도 제대로 위로하기 위해 조사를 좀 했는데요. 방고리 님 유족분들에 대해서는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요.”
현수가 대답을 이어갔다.
“다만- 어떤 방법이 좋을지 조사를 하던 도중에 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여기 방고리 님이 지내던 방에서 귀신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심장마비 급사랑 자살사고도 있었다고 하고요.”
진지한 현수의 표정에 시청자들도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