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 방성 봉안당 (7)
“태환아!”
현수가 남자의 몸에 올라타 두 팔을 짓누르며 소리쳤다.
그러자 태환이 달려와 남자의 입에 팥을 물렸다.
그 사이 화진도 달려와 남자의 두 다리를 온몸으로 억눌렀다.
“도와줘요!”
화진이 소리쳤다.
그러자 관리인들도 머뭇거리다 화진에게 달려와 다리를 붙잡아 주었다.
“커어어억!”
남자가 더욱 격렬하게 몸부림을 쳤다.
장정 네 명에 여성이 한 명 매달렸음에도 남자는 쉽게 구속되지 않았다.
“태환아!”
현수가 다시 소리쳤다.
그러자 태환은 바로 남자의 몸에 부적을 붙였다.
꺼거거거거걱-
남자의 눈과 코, 입에서 검은 액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악귀가 튀어나오려는 것이었다.
현수는 그대로 남자의 이마를 짓눌렀다.
“나와! 나와!”
악을 쓰듯 소리쳤다.
꺼거거거걱
입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액체들 사이로 팥들이 새어 나왔다.
그 검은 액체들도 점점 더 끈적하게 변했다.
동시에 지독한 악취가 퍼져 나왔다.
현수는 인상을 팍 쓴 채로, 한 손은 턱을 잡고 다른 한 손을 입에 욱여넣었다.
그러고는 무를 뽑아내듯, 검은 덩어리를 확 뽑아냈다.
촤아아아아악
검은색 악귀가 뽑혀져 나오자 현수는 그대로 밀짚 인형에 집어넣었다.
태환은 바로 라이터를 꺼내 인형에 불을 질렀다.
화르륵
밀짚인형이 불타며 강렬한 비명을 내질렀다.
꺄아아아아악
남자에게 들렸던 악귀가 확실히 소멸되는 것이었다.
툭
몸부림치던 남자의 사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내 그는 코와 입에서 피를 주르륵 흘렸다.
“후아.”
현수가 지친 듯 옆으로 비켜 앉았다.
다른 일행들도 천천히 일어나 비켜섰다.
덜컹-
그때 아크로스 봉안당으로 경찰들이 밀려 들어왔다.
“제가 박현수입니다.”
현수가 경찰들에게 손을 들어 보이며 먼저 말했다.
그때 경찰들 옆으로 손을 흔들며 나가는 하날하날의 영혼이 보였다.
그녀는 고맙다는 듯, 밝게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 * *
이름 최화준.
나이 25.
직업 무직.
악귀에 들렸던 남자의 신상이었다.
그는 하날하날 방송의 열혈 시청자로 지금까지 후원한 금액만도 수천만 원이 되는 정도였다.
한 달 아르바이트로 번 대부분의 돈으로 후원을 하고 인스턴트만 먹으며 폐인처럼 지냈던 것이다.
집에는 온통 하날하날의 굿즈 뿐이었고, 그의 하드디스크에도 그녀를 스토킹한 것 같은 사진들로 가득했다.
방송을 하는 여성에게 이런 스토커가 붙는 경우는 흔했다.
그래서 선례를 보여주기 위해 스토커들을 고소하는 케이스 역시 매우 많았다.
하지만 하날하날은 최화준의 존재를 인지하면서도 고소를 하지는 않았다.
고소를 할 정도로 물리적인, 현실적인 피해를 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캠에게 이러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여긴 모양이었다.
더구나 최화준이 촬영한 하날하날의 사진들은 수십 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찍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한 마디로 스토킹을 했지만 정작 접근하지는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하날하날이 죽던 날 써놓은 메모가 무척 소름끼쳤다.
[이제 드디어 가까워질 수 있겠네요.]
그는 자신의 SNS에 이 문구를 써서 올린 뒤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봉안당에 찾아갔다.
그리고 급기야 납골함을 훔치려고 했었다.
그렇다. 이전 봉안당에서 이장을 해야 했던 바로 그 원흉.
하날하날의 납골함을 훔치려 했던 범인이 바로 이 남자였다.
무서운 점은 이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알아냈는지 이곳 방성 봉안당에까지 쫓아와 그녀를 비상식적으로 기렸던 것.
심지어는 하날하날 굿즈를 가지고 방성 봉안당 근처에 숨어 지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봉안당 근처를 맴돌던 그는 폐허가 된 아크로스 봉안당을 찾게 되고, 거기에 ‘터’를 잡아 버렸다.
문제는 하날하날의 영혼이었다.
아크로스 봉안당에는 버려진 납골함 때문에 원혼들이 많았고, 당연히 악귀도 자리 잡고 있었다.
최화준은 그런 곳에 하날하날의 굿즈를 가지고 들어가서 하날하날의 납골함 방향을 보며 매일 같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하날하날의 영혼이 그곳으로 불려가게 되었고, 거기서 악귀들에게 구속이 되어 버렸다.
결국 하날하날은 현수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최화준은 이전 납골함을 훔치려고 했던 혐의까지 적용이 되어 고소, 고발조치 되었다.
이제 남은 건 아크로스 봉안당의 존폐 여부였다.
경찰들과 방성 봉안당 관리실에서 수집한 정보들을 종합해본 결과, 문을 닫은 이후로도 몇 년 동안은 방성 봉안당 관리실 측에서 관리를 해주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순찰 도중 헛것을 보거나 정신을 놓는 관리인이 자꾸 나타나자 모두 그곳에 가기를 꺼렸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니 그곳은 출입을 금한다는 투박한 경고문 하나만 남긴 채 완벽하게 방치가 되어 버렸다.
이후로 수많은 관리인들이 취직을 했다가 그만두면서 아크로스 봉안당에 대한 괴담은 아주 흐릿하게만 남게 되었다.
이제 아크로스 봉안당도 공론화가 되었으니 정부에서 직접적으로 개입해 처리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 * *
이번 생방송의 순간 최고 시청자 수는 34만 명.
역시나 인기 급상승 동영상에 올라가기에는 충분한 수치였다.
또한 구독자 역시도 380만 명에 육박하고 있었다.
현수 일행은 경찰서에 들러 상황 설명과 조서를 작성한 뒤 캡틴 타워에 복귀했다.
그리고 바로 후기 방송을 진행했다.
동시에 편집자들은 오늘 촬영하고 온 영상들의 편집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박현수입니다.”
“너도캠핑입니다.”
“오늘 하날하날 님 봉안당에 갔다가 사건이 좀 커졌었죠?”
“네. 많이 위험했어요.”
현수와 화진은 자연스럽게 멘트를 주고받으며 이번 사건 관련한 위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러자 시청자들은 공분하며 스토커의 신상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 그 변태 신상 좀 밝히시죠.
- 누구에요????
- 뭐하는 새끼임???
- 백수일 거 같은뎈ㅋㅋㅋㅋ
- 백순데 몇 천을 후원???
- 저런 인간도 우리랑 같은 한 표를 행사한다는 거잖아.
- 와 진짜 무섭다. ‘이제 우리 가까워지겠네요.’ ㅅㅂ
- 그 메모 얘기 나올 때 씹소름이었음.
약 만 명 정도 모인 시청자들이 흥분해 채팅을 올렸다.
그 중에는 오늘 낮방송을 보지 못한 시청자들도 있었다.
- 무슨 일인데여???
- 뭐임? 뭐임? 무슨 후기임?
“지금 영상 편집 중이니까 업로드 되면 확인해 주세요.”
현수가 웃으며 말했다.
동시에 시청자들도 오늘 상황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아무튼 하날하날 님 찾아뵙고 미안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갔는데 본의 아니게 또 소란이 일어났네요.”
현수가 두 손을 모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 그래도 하날하날을 구해준 거잖음.
- 잘하셨어요.
- 이건 솔직히 잘한 거다.
- 이것도 짜고 치는 걸지 어케 암??
- 맞아 짜고 칠 수도 있짘ㅋㅋㅋㅋ 어차피 다 조작 아님?
- 하날하날 님도 고마워 할 거예요.
이번에도 역시 비난 여론과 옹호 여론이 동시에 보였다.
그래도 현수를 옹호하는 채팅이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물론 나중에 영상이 업로드 되고 나서 달리는 악플들을 보면 또 하날하날을 이용했다는 댓글이 달릴 것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하날하날을 도와주었다는 확신이 생겼고 또 하날하날이 미소를 지어주는 것을 봤기 때문에 죄책감은 한 결 덜어질 수 있었다.
*
후기 방송도 깔끔하게 마무리 한 후, 세정이 다가왔다.
“다음도 희생자 중에서 가실 건가요? 김창수 과장님이나 방고리.”
“순서대로 김창수 과장님 쪽으로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현수가 대답했다.
그러자 세정이 조금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 음. 그런데 이호율 과장님이 말씀하신 게 있는데요.”
“네, 네.”
“전에 하날하날 봉안당 촬영 이야기 하면서 김창수 과장님하고 방고리 관련된 추가 영상도 촬영할 거라고 하니까 김창수 과장님은 빼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거든요. 일단 캡틴님하고 논의해보겠다고 하고 마무리는 해둔 상태였고요.”
“김창수 과장님은 빼고요? 왜요? 어쩌면 과장님도 억울하게 돌아가신 건데.”
“음. 아무래도 회사 때문인 것 같아요.”
“회사요?”
현수가 되물었다.
순간 현수는 김창수 과장의 산재처리 문제로 라미로브와 유족이 법적 분쟁 중이라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현수가 김창수 과장의 영상을 촬영하는 건 라미로브 입장에서 조금 난처해 질 수 있었다.
만약 김창수 과장의 ‘한’이 산재라면, 현수가 퇴마를 해주는 행위 자체가 산재처리를 옹호하는 여론을 만들 것이었다.
그리고 네티즌 여론에 예민한 업종인 라미로브 입장에선 산재를 승인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릴 것이었다.
“흠. 라미로브가 싫어할 만하긴 한데.”
현수가 턱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상하긴 해요. 왜 산재 안 해줘요? 근무시간에 돌아가신 거 아니에요? 그것도 소속 스트리머한테요.”
태환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화진이 받아쳤다.
“원래 기업들은 최대한 산재를 안 해주는 쪽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긴 하지. 비용 지출도 지출이지만 산재라고 하면 사람들 인식도 안 좋으니까. 기업 이미지에 좋을 게 없잖아.”
화진의 말에 세정이 덧붙였다.
“저도 중간에서 조금 난처하긴 해요. 과장님 산재는 잘 받았으면 좋겠는데 회사 입장에 반하는 영상을 찍었다가 좀 그럴 거 같고.”
한 마디로 모두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어 있는 건이라는 이야기였다.
“흠.”
현수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생각해 보면 최근 악귀가 현수의 죄책감을 노리고 변한 모습은 하날하날과 방고리, 둘이었다.
김창수 과장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이었다.
먼저 동료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악귀. ‘죄책감’부터 빨리 없애야 했다.
“방고리 쪽은 뭐 나온 거 있어요?”
현수가 태환과 신 주임을 보며 물었다.
태환이 어깨를 으쓱이는 사이, 신 주임이 다이어리를 들며 대답했다.
“방고리는 좀 나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메모한 페이지를 펼치며 말을 이었다.
“방고리가 지내던 방 기억나시죠? 방송하던.”
“네, 나죠.”
“지금 거기가 완전히 공실이래요. 사건이 있은 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
“진짜요? 왜요?”
“두 번이나 입주를 했는데 두 번 다 문제가 발생했던 거 같아요.”
“두 번씩이나요?”
“한 번은- 심장마비 급사고요. 또 한 번은 자살이요.”
“방고리가 죽은 뒤, 그 방에서 계속 그 일이 일어난다는 거죠?”
“네. 사람들은 그 방이 방고리 양수찬의 집인 걸 모르고 계약하고 들어간 건데 모두가 죽은 거죠.”
“살인자가 살던 방이라는 걸 숨겼나 보네요.”
“뭐, 공인중개사나 집주인 입장에선 당연하겠죠. 그래서 그 뒤로 계속 공실로 두고 있다고 합니다. 주변 지역에 소문이 쫙 났다고 하고요.”
신 주임의 말을 듣던 화진이 물었다.
“방고리 양수찬과 관련이 있는 건일까요?”
“글쎄요. 해외에서 죽긴 했지만 귀신이 됐으면 여기 나타나는 건 쉬운 일일 거고. 거기부터 확인할 필요는 있겠네요.”
현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