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스트리머 퇴마사-175화 (175/227)

175화

# 아수라 솔루션 (6)

고오오오오

서버실 내부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돌변해 있었다.

부서진 서버 콘솔들과 곳곳에서 일어나는 스파크.

천장에서부터 축 늘어진 케이블들.

흡사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는 건물 안에 들어온 것 같았다.

현수 일행은 주저앉아 있는 이도원의 주변을 둘러쌌다.

“분명 박광석 씨는 이도원 팀장님을 노릴 거예요. 악귀로 변하고 있으니 조심해야 해요.”

현수가 주변을 살폈다.

“살다 살다 이런 상황은 처음 겪네요. 어지간히 험한 상황을 겪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신도알이 주변을 경계하며 말했다.

“어디 있는 거죠?”

화진이 다급하게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태환도 심령카메라를 빠르게 돌려보았다.

하지만 주변에 자욱해진 서버 콘솔의 회색 연기 때문에 악귀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일단 이것부터 합시다.”

현수는 액막이 부적을 하나 꺼내 이도원에게 쥐여주었다.

“기운이 강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른 악귀들에 비하면 약한 편이에요. 애초에 귀신이 된 이유도 지독한 분노 따위가 아니라 억울함이었으니까 이 부적으로 어느 정도 방어는 할 수 있을 거예요.”

“아, 아, 알겠습니다.”

이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볼 때 박광석 씨는 악귀의 기운을 내뿜고 있지만 이 서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박령’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확실하게 구석으로 몰아서 퇴마를 하겠습니다.”

현수가 부적들을 더 꺼내며 말했다.

어르고 달래며 퇴마를 해주기에는 물질적인 피해가 발생한 것이었다.

지금부터는 강 대 강 대치로 전투를 벌여야 할 상황이었다.

‘악귀의 기운이 강해지고는 있지만 억울함에 근무지를 못 떠나는 직장인. 그리고 남에게 크게 해를 끼칠 귀신도 아니다.’

격무로 죽은 많은 원혼들을 생각하며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눈에 띄려 한다는 귀신.

그런 그가 갑자기 악귀로 변해 살인을 벌일 리는 없었다.

그저 억울함과 분노가 뒤섞인 채 폭발하며 악귀의 형태로 분출이 되는 것이리라는 판단이 섰다.

- 이제부터 시작이네.

- 조아쓰!!!!!!

- 가즈아!

역시 액션을 좋아하는 시청자들도 상당수였다.

“우리가 지금까지 싸웠던 악귀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어떤 억울함, 어떤 한을 갖고 있는지 아는 만큼 너무 폭력적으로 가지는 맙시다.”

현수는 화진과 신도알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야 뭐. 내가 할 게 없을 거 같은데.”

신도알은 어깨를 으쓱였다.

현수는 그 말에 반응하지 않고 바로 작전을 이야기 해주었다.

“이도원 팀장님이 여기 있으니까 박광석 씨도 이 근처에 있을 거예요. 팀장님을 해코지 하고 싶을 겁니다. 죽이고 싶을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괴롭혀서 사과를 받아내고 싶을 거예요.”

현수가 이도원을 보며 말을 이었다.

“팀장님을 미끼로 해서 박광석 씨를 몰아볼 겁니다. 다들 이거 받으세요.”

현수가 액막이 부적 뭉치를 화진과 신도알에게 나눠주었다.

“어지간히 강한 악귀가 아닌 이상, 귀신은 이 부적을 넘지 못해요. 이곳 가장 가장자리에서부터 순차적으로 부적을 붙여서 울타리를 만들 거예요.”

“오케이.”

“주요 포인트마다 부적을 붙이면서 계속 전진해 나가면 박광석 씨는 점점 동선이 줄어들다 구석에 갇히게 될 겁니다. 그때 다시 대화를 해보든, 폭력을 쓰든 해봅시다.”

현수가 비장하게 말하자 화진과 신도알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도알님. 특수부대 출신으로서 지금 이곳에 부비트랩을 설치해야 한다면 어디 어디에 하시겠어요? 적이 접근 못 하게요.”

현수가 묻자 신도알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선 후 주변을 슥 보았다.

같은 규격의 커다란 서버 콘솔이 균일한 간격으로 놓여 있는 서버실.

그는 머릿속으로 이곳의 도면을 그린 뒤에 부비트랩을 설치할 곳을 지정해 보았다.

“따라오시죠.”

신도알이 앞장서서 뛰기 시작했다.

현수와 화진은 이도원을 일으킨 뒤 그를 따라 걸었다.

세정과 태환 역시 이들의 뒷모습을 계속 촬영했다.

끼이이이잉-

꾸우우웅-

곳곳에서 괴이한 소리가 들렸다.

이도원은 잔뜩 겁에 먹은 표정으로 주변을 보았다.

“앞만 봐요. 절대 고개 돌리지 말고.”

현수가 말했다.

만약 박광석과 눈이 마주쳤다가 패닉 상태에라도 빠지면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여기.”

신도알은 달리다가 서버 콘솔 한 곳에 부적을 붙였다.

그리고 계속 달렸다.

“여기.”

그리고 다른 지점에도 부적을 붙였다.

*

다다다다다다다

일행은 계속해서 서버실 사이사이를 누비며 부적을 붙였다.

“여기.”

“여기.”

“여기.”

그 넓은 지하 4층 서버실을 몇 바퀴나 돈 것인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일행들 모두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지만 신도알은 여전히 쌩쌩했다.

“그리고 여기.”

마침내 신도알이 서버 콘솔 한 곳을 가리키며 멈춰 섰다.

현수가 부적을 서버 콘솔에 딱 붙이고 옆을 보았다.

고오오오오오

일행은 서버실 구석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그 구석에는 회색 피부로 변한 박광석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었다.

어디로든 가고 싶은데, 가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다 현수 일행 사이로 이도원이 보이자 눈을 붉게 뜨고 송곳니를 내보였다.

흡사 짐승처럼 보이는 수준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현수가 말했다.

“이제 그만 하세요.”

그의 말에 박광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시는 분이 지금 이게 뭡니까.”

현수가 말을 이었다.

“그르르르르.”

박광석은 송곳니를 크게 내보이며 괴상한 숨소리를 냈다.

“화가 나고 억울하시겠지만 이런 방법은 안 됩니다. 악귀가 되지 마세요.”

“내가 몇 년 동안 여기서 있었는데. 드디어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런데 저 인간은 지금 내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박광석이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찬바람이 또 한 번 휘몰아쳤다.

“이도원 팀장님. 두 분이 어떤 관계였는지 모르겠지만 회사를 대표해서 사과하세요. 이미 회사에 피해가 막심하잖아요. 지금 더 고집부릴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현수가 나지막이 말했다.

띠리리리리-

그때 이도원의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생방송을 보고 있는 상사의 전화일 것이었다.

이도원은 전화를 받지 않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미안하다. 광석아. 미안하다, 내가.”

그는 고개를 푹 떨어트리고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생방송으로 너튜브에 널리 퍼져 나갔다.

* * *

박광석과 이도원은 대학 동기로 이 회사에도 같이 입사했었다.

둘은 다른 부서에서 열심히 각자 업무를 잘 해나갔는데 어느 날 박광석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 것이었다.

인사팀이었던 이도원은 박광석의 사후 처리에 대해 행정처리를 해야 했는데, 위에서 산재처리를 못하게 막았다고 자백했다.

실질적으로 박광석이 건강 문제로 검진과 외래 진료 차 반차 신청을 했지만 회사에서는 번번이 거절을 했던 이력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위에서 내려온 오더에 따라 이도원은 이 이력도 모두 말소를 시켰다.

결국 박광석은 산재를 받지 못한 채 잊혀 간 것이었다.

직원들이 정한 규칙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퇴근 시간 이후에 내려가면 높은 확률로 귀신을 보았고,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말에 함부로 대답했다가는 그대로 실신해 버린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서버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후 정신을 잃었다는 사례가 제법 많았다.

무서운 건 정신을 차리고 보면 자신의 부서 사무실 책상에 얌전히 엎드려 자고 있었다는 것.

직원들은 그것이 귀신에 홀린 것이라고만 생각했지만 나름 박광석이 근무 여건 개선을 위해 자신의 방법으로 노력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격무로 인해 직원들이 죽은 뒤 흉흉한 소문이 돌면 사측에서는 그 내용을 모두 취합해 경고문을 써 붙였다.

행여나 귀신들 때문에 회사 이미지가 실추되거나 직원들의 업무 효율에 지장을 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한 마디로 회사는 누가 죽든, 귀신이 나오든 숨기기에 급급했던 것뿐이었다.

결국-

이도원은 자기 눈으로 보이지도 않는 박광석의 영혼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백을 했다.

그리고 그 장면은 생중계로 퍼지면서 아수라 솔루션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IT업계의 업무 강도에 대해서도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생계 때문에 꾹꾹 입을 다물고 있던 많은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부당한 야근과 특근.

심지어 최종 지급할 월급과 내야 할 세금을 줄이기 위해 포괄임금제를 악용하는 사례들에 대해서도 고발이 이어졌다.

박광석이 바라던 ‘공론화’가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유족과 친구들로부터 감사 연락과 메일이 이어졌다.

“IT업계 특성상 쉽게 바뀌진 않겠지만 그래도 많은 근로자들이 경각심을 갖게 될 거야. 자기 권리에 대해서.”

현수가 기사를 보며 말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동안 계속해서 아수라 솔루션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이에 아수라 솔루션은 현수에 대한 법적 대응을 선포했다.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물론, 지하4층 서버실이 통째로 파손되면서 막대한 피해가 생긴 것이었다.

이것에 대해 구독자와 시청자를 포함한 네티즌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현수의 편을 들어준 것이었다.

- 박현수가 마음대로 몰래 들어간 것도 아니고 자기네가 불러서 간 거 아님?ㅋㅋㅋㅋ 불러놓고 자기들 맘대로 안 됐다고 고소하는 게 무슨 꼴임ㅋㅋㅋㅋ

- 이래서 사람이고 기업이고 심보가 고와야 함.

- 고소 취하해라.

- 아수라 불매합시다.

- 아수라 솔루션 진짜 비호감 기업이다.

- 잡끌레오 사이트에 기업 검색 해봄? 기업 평점 1점대로 떨어짐ㅋㅋㅋㅋㅋㅋㅋㅋㅋ

뉴스 기사에 댓글이 연이어 달렸다.

하지만 아수라 솔루션은 고소를 취하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 취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백업 데이터를 보관해 두고 있기는 했지만 손실 정보가 발생해 기존 고객부터 신규 영업까지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었다.

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던 자금으로 조치를 취해야 할 판이었지만 대출부터 추가 매출까지 모두 막힌 상황.

어떻게 해서든 자금을 끌어와야 했다.

그리고 그 창구는 현수에 대한 피해보상 청구 소송이었다.

합의금을 노리고 고소 협박을 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현수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었다.

애초에 촬영 요청을 한 것은 사측이었고, 서버실을 파괴한 것 역시 현수와는 무관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현수가 별도로 로펌 쪽에 문의를 해본 결과로도 이는 현수의 승소가 확실시 되는 건이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현장에 있던 인사팀장 이도원이 현수의 편을 들며 회사의 주장은 약해졌다.

결국 아수라 솔루션은 현수에 대한 피해보상 청구 소송을 취하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현수의 영상과 구독자는 또 한 번 엄청난 떡상을 기록했다.

수십만 명의 구독자가 한 번에 오른 것이었다.

* * *

아수라 솔루션 촬영 이후 현수는 신도알의 콘텐츠에 출연해 두 편 분량의 영상을 촬영했다.

현수가 지금까지 배운 주짓수를 보여줌과 동시에 헬스 운동을 교육 받는 영상이었다.

이 영상 역시도 꽤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현수는 대한민국 너튜브 생태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구독자 380만 명 달성.

게임 방송에서 퇴마 방송으로 전향한지 채 2년, 3년도 되지 않아 달성한 쾌거였다.

또한 아수라 솔루션에서 촬영한 생방송 영상과 편집된 클립 영상, 쇼츠 영상은 도합 5000만 뷰라는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다.

해외에서의 유입량도 상당했지만 국내 직장인들의 대리만족 영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이었다.

박광석의 유족들은 현수의 영상 업로드를 허락해 줬고, 이는 고스란히 현수의 수익으로 귀결이 되었다.

하지만 현수는 박광석에게 받은 ‘선물’도 있었던 만큼 유족들에게 상당한 규모의 사례를 해주었다.

현금으로 1억 원을 전달해준 것이었다.

유족들은 한사코 거절했지만 현수는 그에게 도움 받은 것이 있었다며 끝끝내 돈을 전달해 주었다.

문득 현수는 자신에게 심령카메라 앱을 깔아주었던 과거의 귀신을 떠올렸다.

그 역시 IT업계 종사자였던 귀신이라고 했었다.

생각해 보면 현수가 이렇게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 심령카메라의 역할이 컸다.

비록 박광석이 그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귀신을 다시금 기억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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