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스트리머 퇴마사-169화 (169/227)

제169화

# 인연의 끈

귀신이 자신의 형체를 드러내는 단계.

현수는 오랫동안 귀신들을 봐오며 나름의 단계를 만들어 뒀었다.

원한의 정도에 따라 하얀 아지랑이 형태나 하얀 구체 형태로 나타났다.

그리고 원한이 강해질수록 점점 더 사람의 형태를 띠었다.

그 원한이 오랜 시간 해결이 되지 않고 ‘숙성’이 되면 회색으로 그 색이 변한다.

그리고 거기서 더 오래 되면 걸쭉하고 검은 ‘슬라임’ 같은 형체가 되어 버린다.

생각해보면 수정은 이 중 그 어떤 것에도 해당이 되지 않았다.

그녀의 말마따나 허태훈 악귀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남았다면 사람 형체의 귀신으로 남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것도 벌써 20년, 30년 전의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숙성된 악귀로 변했어도 무방하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수정은 악귀의 모습이 아니었다.

흡사 ‘갓 죽은 귀신’처럼 ‘생생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였다.

그 시간만으로는 귀신이 악귀가 되지 못하거나, 아니면 애초에 수정이 여태 존재하는 이유가 ‘원한, 원망’이 아니거나.

순간 태환의 모친이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여자 귀신은 ‘수호신’ 역할을 해주고 있네요. 악귀가 들러붙는 걸 막아주고 있어요.”

호장리 폐 수영장의 악귀가 현수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고 있을 때였다.

수정 덕분에 그 악귀가 현수에게 화를 입히지 못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었다.

그렇다면 수정은 현수를 지켜주기 위해 아직 구천에 머물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현수가 태환의 모친을 보며 물었다.

“수호신. 그때 말씀하신 수호신?”

“저는 몰라요. 그렇게 보일 뿐. 보이는 대로 말씀드리는 거고요.”

태환의 모친이 말했다.

“수호신은 무슨 기준인 건가요? 귀신이 어떻게 수호신이 되고 또 그 선택 기준은 어떻게 되고.”

“뭐, 사랑하는 사이일 수도 있고, 부모님일 수도 있고. 그건 정해져 있지 않아요. 귀신 스스로 ‘이 사람을 지켜야 한다.’라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면 되는 거라.”

“수정 누나가 저한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요?”

현수가 되물었다.

태환의 모친은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액막이 부적도 그 귀신한테는 안 통했댔죠? 그러면 그 귀신은 처음부터 현수 씨를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원한보다 더 컸던 거예요.”

그녀의 말에 현수는 눈을 크게 떴다.

수정은 처음부터 현수를 지켜야 할 이유가 뭔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인연’에 대해 운운하기는 했지만 그게 뭔지는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와의 접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 * *

다시 집에 돌아온 현수는 수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수정 누나 어디 갔어요?”

현수가 묻자 화진이 대답했다.

“오늘 자기 제삿날이라고 집에 간대. 오랜만에 밥 먹으러 간다고.”

“네?”

현수가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제삿날도, 현수는 모르고 있었다.

현수는 바로 차키를 가지고 부랴부랴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요?”

화진이 물었다.

“수정 누나 집이요.”

“갑자기?”

화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러더니 지금 상황이 궁금했는지 바로 따라붙었다.

* * *

을지로 백반집에 간 현수는 멀찌감치 서서 식당 안을 보았다.

출입문에는 ‘개인 사정으로 쉽니다.’라는 안내가 붙어 있었고, 식당 안에서는 제사가 한창이었다.

현수와 화진은 제사상에 올라온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살아생전 수정의 증명사진이었다.

“그래도 꽤 오랫동안 함께 지냈는데 제삿날이 언제인지도 안 물어봤었네요. 너무 무심했나.”

현수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게 현수 님 잘못인가요.”

화진은 현수를 위로하려 했다.

“그래도 퇴마를 하고 영혼을 달래준답시고 그렇게 쏘다니면서 정작 제 수호신은 달래줄 생각을 안 한 거죠.”

“수호…… 신?”

현수가 사용한 단어에 놀란 화진이 되물었다.

현수는 설명하기 귀찮은지 손사래를 쳤다.

“정말 가슴이 미어지시겠다.”

현수는 한숨을 길게 쉬며 식당 유리창 너머 영정사진을 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영정사진 속 수정의 눈동자가 휙 돌아가더니 현수와 눈이 마주쳤다.

“우와씨!”

현수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자 벌컥 뒤에서 수정이 나타났다.

“하이!”

수정이 해맑게 인사를 했다.

“아이씨. 이렇게 무섭게 나타나야겠어요?”

현수가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수정은 미안했는지 어깨를 토닥였다.

“간만에 배불러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미안, 미안.”

“뭐, 배부르시다니 됐어요. 언제 한 번 뭐 제대로 챙겨드린 적이 없네. 생각해 보니까.”

현수가 제사상을 보며 말했다.

“아이고. 갑자기 뭐 챙겨주는 척이셔?”

수정은 현수 옆에 서서 자신의 제사상을 보며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현수가 물었다.

“그런데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요.”

“응.”

“허태훈 악귀에 대한 원한이 강하셨다는 건 알겠는데요. 그건 부수적인 거고. 절 지켜주기 위해 제 옆에 계시기 시작하신 거죠?”

현수가 물었다.

화진은 무슨 이야기인가 싶어 현수와 수정을 번갈아 보았다.

하지만 수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악귀를 처치하면 멱살 잡고 같이 성불할 거라고 노래를 부르셨는데 정작 성불을 안 하고 계시니까요.”

“그 악귀가 제대로 소멸된 게 아닐 거란 생각은 안 하고?”

“네?”

현수가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그러자 수정이 손사래를 치며 웃어 보였다.

“하하하. 농담이야. 놈은 소멸 됐어.”

“아! 진짜 장난 좀 그만!”

“알았어. 얘는 왜 성질을 내고 그러니.”

수정이 재미있는지 키득거리며 말했다.

“말씀해 주세요. 전부터 말씀하신 그 ‘인연’이 대체 뭐에요?”

현수가 물었다.

수정은 가만히 자신의 영정사진을 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굳이 비밀일 필요는 없는데 그렇다고 굳이 말해줄 필요도 없잖아. 알 필요도 없고.”

“아, 진짜 답답하게.”

현수가 볼멘 소리를 하자 수정은 미소를 지으며 제사상을 가리켰다.

“에?”

현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가게 안을 보았다.

“아유. 어머님도 겸사겸사 식사나 하셔야지.”

수정의 모친이 영정사진을 하나 더 꺼내 수정의 영정사진 옆에 놓았다.

순간 현수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왜요? 아는 분이에요?”

화진이 물었다.

수정의 영정사진 옆에 놓인 영정사진은 어떤 할머니의 영정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예전에 현수가 구해주었던 ‘할머니 귀신’이었다.

그 할머니를 구해준 이후로 귀신들이 현수 주변에 몰려들었고, 엔지니어 귀신까지 찾아와 현수의 핸드폰에 심령카메라 앱을 깔아준 것이었다.

다시 말해 현수가 퇴마 방송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할머니가 바로 수정의 할머니였던 것이다.

“내가 사고당할 당시에 자네 같은 젊은이가 주변에 있었으면 살 수 있었을 텐데.”

“앞으로 억울하게 죽은 귀신들을 도와줬으면 좋겠다.”

도로에서 구해준 할머니, 그리고 IT회사에서 근무하던 총각귀신이 했던 이야기가 스치듯 지나갔다.

그 귀신들의 의지로 현수는 흉가체험을 시작했다.

그리고 악귀들과 싸울 일이 생기기도 하고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하였다.

허태훈 악귀와 쫓고 쫓기며, 싸우면서 죽은 넋들을 보내주기도 하였다.

이 모든 과정에서 수정은 수호신으로서 현수의 옆을 지켜주고 있던 것이었다.

“아니, 이게-”

현수가 고개를 돌리며 옆을 보았다.

하지만 수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 * *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 수정은 언제나처럼 또 TV 앞에 앉아 예능을 보고 있었다.

현수는 그녀가 왜 자기 옆을 지키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자기 할머니의 의지도 포함이 되어 있던 것이었다.

참 공교로운 인연의 끈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할머니로 인해 시작된 인터넷 방송.

그리고 그 방송으로 알게 된 귀신.

자기 할머니 덕에 지켜줄 사람이 생긴 귀신.

그리고 그 사람 덕분에 한까지 푼.

현수는 수정에게 이것저것 더 말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피식 미소를 짓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수정이 그런 현수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 화진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이후 평소와 같은 일상이 계속 되었다.

김창수 과장 대신 ‘이호율’이라는 과장이 현수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는 캡틴 타워에까지 직접 방문해 미팅을 하고 갔다.

김창수 과장과는 달리 처음부터 현수의 선택과 의지를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실 그건 어쩔 수 없을 것이었다.

김창수 과장은 현수를 소형 스트리머일 때부터 접했던 사람이었고, 이호율 과장은 360만 대형 스트리머인 현수를 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그 숫자만으로도 라미로브에서는 탑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 현수를 대하는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가 계약이 해지되면 회사 매출에 큰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적정 수준의 촬영지원비를 계속 받아가며 영상 업로드가 계속 진행되었다.

그리고 캡틴 타워에서 진행하는 공포 콘텐츠도 하나둘 기획이 되었다.

유명 영화배우 ‘이찬종’을 섭외해 웹드라마를 제작하는 한편, 최근 가장 핫한 소설가인 ‘하선우’와 협업해, 실화 바탕으로 한 소설들을 시리즈로 기획을 하였다.

특히 대형 프로젝트로 기획을 한 것은 해외 출장을 갔을 때 알게 된 에피소드들이었다.

‘노로이노무라’나 ‘위즈소카 수용소’, ‘르브레 성’, 그리고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 ‘백룸’ 등 해외에서 겪었던 일들을 소재로 하여 장편 소설을 써내려간 것이었다.

그리고 현수는 여기서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 직접 전해주며 묘사의 현실감을 더해주었다.

아울러 하선우와 연결된 번역가들을 통해 각국 언어로도 출판 준비를 해나갔다.

소설을 집필하고 번역, 출판을 해 수출하는 시간은 보통 오래 걸리는 것이 아니었다.

추후, 소설이 출판 됐을 때엔 하선우의 필력과 번역가의 의역 실력, 그리고 현수의 현실감 넘치는 고증들이 더해져 엄청난 대히트를 치게 되고 현수는 엄청난 셀럽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현수를 알 수 있도록 인지도를 더 높이는 작업을 계속 해나가야 했다.

현수 앞으로만 떨어지는 수익은 월 억대 수준.

직원들 월급을 챙겨주면서, 현수는 다음 촬영지와 소재들을 늘 고민했다.

하지만 이제 슬슬 태환, 세정을 비롯해 직원들 사이에서 이런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조금 더 자극적인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누군가 죽거나 다치는 영상의 조회 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평범하게 흉가 체험을 하거나 퇴마 의뢰를 진행하는 영상은 상대적으로 조회 수가 떨어지고 있었다.

물론 일부 댓글들 중에서는 자극적인 것보다 저런 소소한 공포가 좋다는 네티즌들도 있기는 했지만 결국 수익이 되고 매출로 잡히는 건 자극적인 영상들이었다.

“자극적인 거. 뭐가 있을까요?”

회의실에서 현수가 물었다.

그러자 세정, 태환, 화진이 다른 직원들과 함께한 회의 참석자들 모두 입을 다물었다.

‘자극적’이라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지만 너튜브 규정도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구체안을 내놓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도덕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때 화진이 조심스레 운을 뗐다.

“개그프로그램들도 그렇고. 보통 같은 포맷이 반복되면서 시청률이 떨어지면 게스트를 좀 이용하는데. 우리도 게스트를 좀 활용해보면 어때요?”

“게스트? 과대나 혜련 님?”

“고스트 크루는 당분간 좀 힘들지 않을까요? 하날하날에 방고리까지 그렇게 됐으니.”

“음. 그런 누구요?”

“뭐. 굉장히 유명한 사람?”

화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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