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 의정부 신시가지 (2)
현수의 집에 있는 작은 방에는 달력과 의정부역 인근 지도.
그리고 뉴스 기사들과 사진들이 출력되어 붙었다.
흡사 하나의 ‘수사본부’처럼 보일 정도였다.
일부러 수사본부 컨셉으로 ‘스튜디오’를 꾸린 것이었다.
여기에 현수와 화진이 자리했고, 태환이 촬영했다.
촬영은 주로 세정이 진행했지만 그녀는 라미로브 직속 직원으로 자칫하면 정보가 새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박면 태환은 현수를 먼저 알았던 만큼 입단속을 시키기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물론 커뮤니티에 공지를 올린 후, 김창수 과장과 세정에게 질문이 들어오긴 했었다.
소속사에서 모르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는 어려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현수는 그 둘에게도 확실히 선을 그어 ‘나중에 공개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
세정은 즉시 수긍했지만 김창수 과장은 마음에 안 드는지 재차 질문을 해댔다.
결국 현수는 김창수 과장에게까지 말을 하지 않은 채,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간 것이었다.
태환이 카메라와 심령카메라를 거치대에 거치한 후 들었고, 태환과 화진이 멘트를 시작했다.
나중에 영상 편집 할 때 넣을 장면이었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박현수.”
“조화진입니다.”
“오늘 저희는 현재 의정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연쇄살인사건과 관련해서 취재를 시작할 건데요.”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일어나는 살인사건들 중에서 갑자기 의정부 연쇄살인사건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그 범인이 유명 스트리머 ‘방고리’ 양수찬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수와 화진은 능숙하게 멘트를 주고받으며 촬영을 이어갔다.
“먼저 그 의심은 일전에 촬영했던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에서 시작 됐습니다. 허태훈에게서 박효종으로 옮겨갔던 악귀가 방고리 양수찬에게 넘어간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둘은 방고리를 의심하게 된 과정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갔다.
휴방 날짜와 사건이 발생한 날짜가 일치하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두었다.
그러면서 각종 뉴스와 인터뷰 자료들을 확인하며 논의를 하는 장면도 모두 담았다.
“살인 전과가 있는 사람일 가능성. 그리고 범죄현장 근처에 살고 있을 가능성. 이 두 개에 초점을 잡는 이유가 뭐죠?”
화진이 현수를 보며 물었다.
“먼저 지역을 잘 안다는 것 때문이겠죠. CCTV나 블랙박스에 담긴 모습을 보면 늘 검은 옷에 검은 모자,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어요. 그런데 그 주변 다른 골목 CCTV나 블랙박스엔 같은 옷이 다시 포착되지를 않아요.”
“그게 무슨 의미죠?”
“인상착의가 판단되면 사건 현장에서부터 주변 CCTV, 블랙박스를 싹 다 뒤져서 동선을 파악하고, 그게 수사에 도움이 되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현장에서 벗어난 이후 같은 인상착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옷을 갈아입는다는 건데요.”
“네, 네.”
“그건 즉, 이 동네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곳과 촬영 방향, 그리고 차량들이 주차되어 있는 곳들을 잘 안다는 의미가 되겠죠.”
“흠. 그렇군요.”
“그리고 살인 전과가 있을 가능성의 경우엔- 살인이 ‘능숙’하다는 이유를 뽑았습니다.”
“‘살인이 능숙하다’라.”
“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누가 누굴 죽이는 장면을 쉽게 접하죠. 하지만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건 다른 문제일 거예요. 무섭기도 하고 또 생각보다 쉽게 안 죽기도 하고요.”
“네, 네.”
“그렇다 보면 당연히 발생하는 게 뭐겠어요. 바로 실수죠.”
“실수.”
“네. 한 번에 못 죽여서 여러 차례 찌른 흔적이나 몸싸움의 흔적. 내지는 지문이나 DNA를 남겨 꼬리가 밟히는 것 같은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고 있는 겁니다.”
“그게 ‘살인 경력직’이라는 말씀이시죠?”
“네. 어딜 어떻게 해야 빨리 죽일 수 있다는 걸 안다는 것. 그렇다면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다는 거니까요.”
“잡히지 않은 살인범일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지만 일단 경찰 입장에선 전과자가 1순위겠죠. 주소와 신상 정보가 다 있으니까.”
“그래서 진척사항은 있나요?”
“아뇨. 뉴스에 보도된 사항은 없습니다.”
“방고리는 전과가 없는데.”
“없겠죠.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간 악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 살인을 종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악귀는 몇 번이나 감옥에 들락거렸을지 모르죠. 본인도 못 샐 만큼 많을지도 모르고.”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대답했다.
“그럼 저희 퇴마 쪽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요?”
“일단 저희는 방고리님이 범인일 가능성에 대해 초점을 두고 있는 거니까 거기에 맞춰서 움직일 거고요. 가능하다면 피해자들과 직접 만나면 도움이 될 거고요.”
“피해자들이 다 죽- 아. 귀신을.”
“네. 하지만 피해자들을 만나서 범인에 대해 듣는다 하더라도 법적 효력은 전혀 없을 테니 그들을 통해서 증거를 찾아야 할 겁니다.”
현수가 화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
“먼저 경찰 쪽과 컨택을 해볼 건데요. 저희 말을 믿어줄지는 모르겠네요.”
현수가 심각한 표정을 내비쳐 보였다.
* * *
의정부 경찰서.
형사2과 강력2팀.
현수와 태환, 화진이 사무실 안에 들어가자 곧장 카메라부터 제지당했다.
“여기서 촬영은 안 됩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까칠하게 생긴 형사가 다가와 소리쳤다.
“저- 스트리머 박현수라고 하는데요. 의정부 연쇄살인사건 관련해서 몇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됐습니다. 나가세요.”
경찰은 거세게 항의하듯 현수를 내쫓았다.
아무래도 이슈거리를 찾아 온 사이버 렉카 정도로 본 모양이었다.
아마 현수 말고도 스트리머들에게 시달린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극적인 이슈일수록 조회 수가 잘 나오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만 돌아가죠. 아무래도 경찰을 뚫는 건 좀 어려웠어요.”
화진이 현수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결국 셋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경찰서 본관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때, 항공점퍼를 입은 남자가 쫓아 나와 현수를 붙잡았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박현수 씨 맞으시죠?”
남자가 물었다.
그는 무척 다급하게 뛰어나왔는지 살짝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아, 네.”
“저는 강력2팀 오태식 형사라고 합니다. 방송 잘 보고 있습니다.”
“아아. 네, 네.”
“의정부 살인사건 관련해서 취재를 하러 오셨다고요?”
“네.”
“잠시 여기로.”
그는 주변 눈치를 보며 현수 일행을 데리고 본관 옆 야외 휴게실로 데리고 갔다.
* * *
야외 휴게실에는 지저분한 스탠드형 재떨이와 녹슨 자판기, 그리고 오래 되어 보이는 나무 벤치가 놓여 있었다.
“제가 캡틴 퇴마 채널 영상을 쭉 보면서 굉장히 신기했거든요. 허태훈을 체포했던 것도 그렇고, 박효종 사건도 그렇고. 그 외에도 미제 사건을 해결하기도 했죠.”
“네, 운이 좋았죠.”
현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지금 의정부 살인사건은 언론에서도 너무 주목하고 있고 단서도 없어서 다들 예민한 상태에요. 대신 사과드릴게요.”
“아닙니다. 형사님들 정말 찐텐으로 리스펙 합니다.”
현수가 말하자 태환도 엄지를 들어 보였다.
“그나저나 살인사건 뭐 때문에 여기 오신 건지 알 수 있을까요?”
오 형사가 물었다.
현수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오 형사가 훅 끼어들었다.
“솔직하게 말씀을 해주셔야 해요. 그래야 제가 돕더라도 이유를 알고 도울 수 있죠. 어쩌면 수사 기밀을 이야기해야 할 수도 있는 건데.”
“음.”
“혹시 커뮤니티 탭에 올린 ‘대형 프로젝트’에 관한 건인가요?”
“네, 맞습니다.”
“말씀해주시죠.”
“음. ‘방고리’를 아시나요?”
“네. 고스트 크루 멤버잖아요. 너튜브에서 게임방송하고.”
“네. 그 ‘방고리’가 이번 의정부 살인사건에 범인일 수도 있어서 좀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 부분은 절대 비밀로 해주셔야 해요.”
“정말요? 아니, 스트리머면 돈도 잘 벌 텐데 왜-”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에서 악귀에 쓰인 것 같아요.”
“어어-”
“허태훈, 박효종한테 붙었던 악귀가 그쪽으로 옮겨붙은 거죠. 아직 확실하진 않아요. 악귀의 흔적을 직접 보진 못해서요.”
현수의 말에 오 형사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방송에서 가십거리로 즐겨 보던 상황을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건으로 듣게 되니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그 제보를 하러 오신 건가요?”
“아뇨. 어차피 저도 현재로썬 물적 증거가 없고, 또 경찰도 표적 수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습니까.”
“그렇죠.”
“경찰이 아닌 제가 단서를 직접 찾으려고 하는 겁니다.”
“만약 방고리가 범인이 아니면요?”
“지금 녹화하고 있는 촬영본은 다 폐기할 겁니다.”
현수가 대답했다.
오 형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턱을 매만졌다.
지금까지 자신이 보았던 박현수를 보았을 때에는 거짓말이나 사기를 칠 것 같지는 않았다.
더구나 3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스트리머가 경찰을 상대로 허세를 부릴 것 같지도 않았다.
“이렇게 합시다.”
오 형사가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슥 살핀 후 말했다.
“제가 수사 자료를 드리도록 하죠. 대신 이건 참고만 하시고 방송에는 절대 나가지 않게 해주세요. 어디까지나 단서를 찾는 데에 방향을 잡는 용도로만 사용하세요.”
“네, 좋습니다.”
“경찰 내 제보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절대 하지 마시고요.”
“그 부분은 걱정 마세요. 전 심령현상을 다루는 사람이니 사람들도 크게 개연성을 찾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단서를 찾으면 지체 없이 저한테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현수에게 건넸다.
현수는 그의 이름이 정확히 적힌 명함을 확인하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형사님도 제가 방고리를 쫓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비밀로 하셔야 합니다. 누구한테도 새어나가면 안 돼요.”
“그럼요.”
오 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게 지금 공개수사로 진행이 되고 있는데다가 범인이 유명 스트리머라면 아마 굉장히 빠르게 언론에 노출이 될 거예요.”
“네. 인지하고 있습니다. 지금 촬영본들은 경찰 수사와 체포가 모두 끝나고 언론 보도가 나온 이후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현수가 손가락을 펼쳐 하나씩 접으며 설명했다.
“첫 단계. 우리가 심령현상으로 방고리를 의심했고, 두 번째 단계로 영안으로 살인의 흔적을 찾고 그 단서를 경찰 쪽에 제보해 수사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경찰 분들의 출동과 체포. 이 흐름이면 됩니다. 저희가 구상하고 있는 그림이요.”
“좋습니다. 그렇게 진행하죠.”
오 형사가 현수에게 악수를 청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잡았다.
* * *
다시 집으로 돌아오자 메일로 다량의 자료들이 수신되어 있었다.
현재까지 진행 중인 사건 수사 자료와 부검 기록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시신이 발견된 현장의 사진도 필터링 없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자료들을 확인해 보았다.
그 사이에는 수정도 있었다.
“시신이 발견된 위치들이 다 여기 신시가지 쪽에 모여 있네요.”
현수가 위치들을 벽에 있는 지도에 표시해 두었다.
“지금 뉴스에 보도된 것 말고도 더 있네요. 이 날짜도 한 번 크로스 체크 해봅시다.”
화진이 말했다.
태환은 오 형사한테서 받은 범행 추정 일시를 달력에 체크해 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알아낼 수 있었다.
휴방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방송을 종료하고 난 이후인 새벽 시간에 범죄가 일어났던 것이었다.
한 마디로 그가 범인이라면, 방송을 한 것 자체가 알리바이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