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 (10)
투박한 회색 인테리어.
곳곳에 있는 각종 기기와 레버, 버튼들.
바닥에 있는 시멘트 수로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들.
본관 지하는 되레 ‘설비동’의 분위기와 비슷했다.
그리고 수로에는 정체 모를 검은 액체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물소리를 따라가죠.”
지금 소나기가 오고 있고, 옥상의 배수로가 정화조에까지 온다면 가장 큰 물소리가 나는 곳이 그 하수구의 종착지일 것이었다.
일행은 귀를 기울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 냄새는 대체 뭐죠?”
제이슨이 코를 틀어막고 물었다.
시큼하면서도 오수 악취 같은 냄새.
정화조에서 날 법한 냄새였지만 현수는 악귀의 냄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악귀들이 내는 냄새에요.”
현수는 바닥에 흐르는 검은 액체를 가리켰다.
“정화조니까 그냥 나는 냄새는 아닐까요?”
화진이 물었다.
그러자 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고 하기엔 여긴 수십 년 동안 버려져 있었잖아요. 밀폐된 공간도 아니었고.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물이 여기로 흘러왔을 거예요. 냄새가 났다 하더라도 고여 있을 리는 없죠.”
현수의 말에 화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우우우우웅
정화조의 터빈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꿀꿀꿀꿀꿀
이어 물이 꿀떡대며 어딘가로 흘러가는 소리도 들렸다.
희미하게 켜진 전등불 사이로 현수가 손전등으로 수로를 비춰보았다.
검은 액체가 흐르고 있는 수로는 바닥을 따라 흐르다 벽에 있는 구멍으로 들어갔다.
이곳으로 온 물이 또 어딘가로 흘러가는 모양이었다.
현수가 그 구멍을 가만히 보고 있자 제이슨이 말했다.
“설비동 쪽으로 빠지네요. 방향상으로 그래요.”
그의 말에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기는 했지만 방향감각이 있다면, 설비동 방향도 대략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어! 저기!”
방고리가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현수와 화진의 손전등이 앞을 향했다.
“헛!”
일행이 발견한 것은 브렛이었다.
천장에서부터 수직으로 이어진 하수구는 이곳까지 쭉 뻗어 내려왔다.
그리고 수로에서 50cm 정도 떨어진 높이에 하수구 끝이 멈춰져 있었다.
브렛은 바로 이곳에 거꾸로 처박혀 있던 것이다.
하수구에 몸통과 하체가 낀 상태였고, 그의 머리는 꺾인 채 수로에 처박혀 있었다.
게다가 수로에 흐르고 있는 검은 액체가 그의 코까지 올라와 잠겨 있었다.
“브렛 씨!”
만약 살아있다면 아직 숨을 쉴 수는 있는 높이였다.
현수와 화진, 방고리, 제이슨, 그리고 스태프들이 달려가 브렛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큰 덩치가 하수구에 끼어있어 제대로 빠지지 않았다.
“정신 차리세요!”
현수가 그의 몸을 빼내려 머리를 잡고 들었다.
철퍽
그러자 두개골 안에 있던 내용물이 쏟아져 나와 검은 액체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억!”
현수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거꾸로 추락하면서 머리부터 떨어졌고, 두개골이 완전히 파손된 것이었다.
똘똘똘똘똘-
꿀떡 꿀떡 꿀떡-
검은 액체는 두개골 안에 있던 내용물을 품은 채 어딘가로 흘러갔다.
현수의 양손에도 걸쭉한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X발. 이게 뭐야.”
방고리는 입을 틀어막고 뒤로 물러서다 그 자리에 토를 하고 말았다.
“우웨엑!”
화진도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빌어먹을.”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브렛은 눈을 크게 뜬 채, 초점 없는 동공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몸을 이곳에서 빼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어?”
그때 세정의 카메라에 무언가 잡혔다.
브렛의 위성전화기였다.
“이거.”
그녀의 말에 일행이 모두 전화기를 발견했다.
특히 토를 하던 방고리가 단번에 달려가 위성전화기를 집어들었다.
하지만 전화기도 완전 파손이 되어 있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방고리가 소리를 지르며 위성전화기를 벽에 집어던졌다.
빠각-
그나마 남아 있던 위성전화기의 본체도 완전 파괴되어 산산이 흩어졌다.
“하아.”
방고리는 좌절한 표정으로 구석에 주저앉았다.
“X발. X발. X발.”
그의 입에서는 주문처럼 욕설이 흘러나왔다.
이제 구조신호를 보낼 수조차 없는 상황.
이 본관을 나간다 해도 어둠을 뚫고 수 시간 동안 숲을 헤매야 했다.
“이제 어떡하죠?”
화진이 한숨을 푹 내쉬며 현수를 보았다.
제이슨도 현수의 대답을 기다리는지, 고개를 돌렸다.
고민하던 현수는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설비동. 설비동에 통신실이 있지 않았어요?”
현수의 말에 제이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거 고장 나있었잖아요.”
“그래도 전원이 들어왔잖아요.”
“그러긴 했죠.”
“그 위에 안테나도 있었고요.”
“네.”
“그 안테나를 손보면 된다는 거 아니에요?”
“전원이 들어오는데 무전이 안 되니까 당연히 먼저 생각했던 방법일 뿐이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제이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은 뭐라도 해봐야죠.”
현수가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다.
일행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다 현수의 뒤를 따라 이동했다.
* * *
다시 돌아가려고 해도 문제는 철창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
가장 먼저 열었던 AA 열쇠가 먹히지 않았다.
누군가 잠근 뒤 일부러 고장을 낸 듯했다.
하지만 이제는 소음을 내더라도, 무리를 하더라도 탈출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다시 1층에 온 일행들은 하날하날의 시신이 다시 원래 자리에 고이 눕혀져 있는 걸 발견했다.
그것이 무척 소름 끼쳤지만 그렇다고 움직임을 멈출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하려고요?”
화진이 물었다.
“부숴야죠.”
현수는 제이슨이 들고 있던 브렛의 샷건을 받아 들었다.
그러고는 탄이 얼마나 장전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이건 브렛의 총이라 탄환도 다 브렛이 가지고 있었어요. 아마 허리에 차고 있었을 텐데.”
제이슨이 중얼거렸다.
“그렇겠죠.”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탄을 새어 보았다.
‘겨우 3발.’
겨우 세 발 정도만 남은 상황이었다.
“제가 한 번 해볼게요. 이 탄은 제가 가지고 있으니.”
제이슨이 현수를 자신의 뒤로 당기며 리볼버를 꺼냈다.
44매그넘 리볼버라면 그래도 권총 중에서는 손에 꼽히게 강력한 모델이었다.
“귀 막아요.”
현수의 말에 일행들 모두 귀를 틀어막았다.
그 사이 제이슨이 총구를 열쇠 구멍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타앙 타앙-
몇 번의 총성과 함께 불곷이 사방으로 튀었다.
타아아아앙-
빠캉-
이어 마지막 총성이 울리더니 철창이 스르르 열렸다.
“나갑시다.”
현수와 화진을 비롯한 일행이 철창을 열고 본관 출입문으로 이동했다.
사아아아아아
사방에서 환자복을 입은 악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가는 현수 일행을 막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쾅!
굳게 닫혀 있던 본관 출입문을 열자 엄청나게 세게 쏟아지는 소나기 빗물이 그대로 보였다.
일행은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바로 앞마당으로 나왔다.
“그냥 바로 대문까지 뛰어가는 게 어때요?”
방고리가 소리쳤다.
구조요청을 하지 말고 숲을 가로질러 도망치자는 것이었다.
그러자 제이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숲은 밤에 굉장히 위험해요. 게다가 이렇게 비까지 오면 더 위험해요. 자칫하다가는 저 안에서 실종 될 거예요!”
그의 말에 방고리는 현수를 보았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동의합니다. 비라도 안 오면 모를까, 이렇게 비가 오면 시계가 확보되지 않아서 숲을 가로지르기엔 너무 위험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캠핑 전문가인 화진까지도 동의했다.
그러자 방고리는 더 요구하지는 않았다.
* * *
구르릉 쿵- 쿠궁-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현수 일행은 비를 헤치고 다시 설비동 쪽으로 이동을 했다.
그런 그들의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하날하날과 브렛의 죽음.
특히나 하날하날의 죽음은 직접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환각 같은 현상이 계속 되고 있는 만큼, 혹시 하날하날이 어딘가에 살아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감도 들었다.
하지만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다.
눈앞에서 하날하날의 뼈가 부러지고 숨이 끊어지는 걸 분명 보았다.
브렛이 하수구에 빠져 두개골이 깨져 있는 것도 보았다.
환각이다 하더라도 충분히 트라우마가 될 법한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첨벙 첨벙
비로 인해 고르지 못한 바닥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일행은 신발에 물이 새어 들어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계속 걸음을 옮겨 설비동 앞에 도달했다.
브렛이 툭 차 치웠던 곰의 머리가 비에 맞은 채로 흉물스롭게 놓여 있었다.
이조차도 아까 있던 위치에서 바뀐 것인지 아닌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현수 일행은 문이 열려있는 설비동에 다시 들어갔다.
이곳도 아까와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사방에 피와 뼈들이 즐비해 있었다.
대체 어떤 것이 ‘진짜 모습’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방고리를 비롯한 스태프들은 점점 패닉 상태에 빠져 들어갔다.
제이슨도 혼란스러운지 낯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오직 현수와 화진만이 제 정신을 꽉 잡고 있었다.
물론 이런 와중에도, 세정의 카메라는 일행을 계속 촬영했다.
흉물스러운 핏자국과 낙서들.
일행들은 그 사이를 지나가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2층 통신실로 향했다.
이곳의 장비들은 여전히 불빛을 깜빡여 대고 있었다.
현수가 다가가 무전기를 작동시켜 보았다.
지이이익 지이이이이-
노이즈가 계속 들리는 사이, 제이슨이 기기 한 쪽에 걸려 있던 책자를 들어 보았다.
주변에 있는 주요 기관들의 무전 주파수가 적혀 있었다.
병원과 경찰 등등, 긴급한 상황에 무전을 보낼 주파수들이었다.
“이거 확인해 봐요.”
제이슨이 책자를 현수에게 건넸다.
현수는 책자를 뒤적이며 조그다이얼을 돌려 주파수를 맞췄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구 응답해주세요.”
현수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하지만 ‘지이이이’하는 노이즈 말고는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
“소용없는 짓이야. 그냥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숲으로 가야 한다니까요.”
그제야 방고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 노이즈가 불규칙하게 변하더니 회신이 들리기 시작했다.
[지이이이 여보세요? 거기 누굽니까?]
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현수를 비롯한 모든 일행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희 목소리 들리십니까? 여기는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입니다! 그쪽은 어딥니까?”
[지이이이이이- 거긴 왜 가셨습니까?]
다시 회신이 들렸다.
‘한국어’로 똑똑히 들려왔다.
현수가 마이크를 잡고 답하려는 순간, 수정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여기서 한국어로 응답을 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현수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일행 모두가 듣고 있는 이 무전이, 귀신의 무전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귀신은 전 세계 언어를 자유자재로 쓰기 때문이었다.
“당신 누굽니까?”
현수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이이이- 거기는 화재로 700명이 넘는 환자들이 그대로 타죽은 곳이에요. 왜 거기 있어요?]
“700명이 타죽었다고요?”
[지이이- 몰랐어요? 지이이이- 화재가 났는데 거기 관리인들이 환자들 놔두고 도망가서 그 안에서 도망 못가고 싹 다 죽었는데?]
노이즈 사이로 남성이 말했다.
현수는 눈을 크게 뜬 채로 일행들에게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