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 (9)
정말 강한 악귀가 있다면 어떨까.
지금까지 현수가 겪어본 적 없는 압도적인 힘의 악귀가 이곳에 존재한다면 지금 현수 일행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귀신을 보고 느끼고, 퇴마할 수 있는 박현수.
그리고 귀신을 물리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너도캠핑 조화진과 방고리.
귀신은 별 것 아니라면서 허세를 부리고 시끄럽게 구는 근육질 브렛.
그리고 브렛 옆에서 통역을 해주며 그와 동조하고 있는 제이슨.
이 모든 걸 촬영하고 있는 김세정과 스태프.
정말 강한 악귀라면 자신을 공격할 수도 있는 현수와 화진, 방고리에 대해선 되레 별 의식이 없을 수도 있었다.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처치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브렛’의 태도와 말은 악귀에게 있어 거슬릴 수 있었다.
가끔은 실제 대립하고 있는 적보다 한참 얕보이는데 허세 부리는 누군가가 더 얄미워 보일 수도 있는 법이었다.
악귀 입장에서는 브렛이 그런 존재였다.
현수는 화진이 열쇠를 찾는 사이, 브렛에게 말했다.
“위성전화기. 제가 맡고 있을까요? 이런 상황은 내가 더 전문가일 것 같은데.”
현수의 말을 통역 받은 브렛이 피식 코웃음을 쳤다.
“이런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요? 지금이야 말로 남자다움이 필요한 때 아닌가?”
브렛이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그의 금니가 훤히 드러났다.
현수는 그런 브렛의 미소가 무척 싸구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안 통해. 그냥 냅둬.”
수정이 말했다.
현수는 통역을 해준 제이슨에게 알겠다는 손짓을 한 후 돌아섰다.
철컹-
그 사이 철창이 열리고,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열렸다.
일행들은 천천히 계단 위로 걸어 올라갔다.
* * *
“후, 후, 후.”
긴장한 상태로 달리고 계단을 뛰어서인지 입김이 나올 정도로 찬 공기가 가득한 와중에도 모두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심지어 숨도 차 공기가 부족한 느낌일 정도였다.
세정은 이런 일행들을 한 명씩 꼼꼼히 촬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철컹-
4층 복도 입구 문이 열리자 3층과 비슷한 구조의 복도가 쭉 펼쳐졌다.
이곳도 3층처럼 입원실 문이 쇠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3층보다 더 어질러져 있었다.
이동식 철제 침대가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고 옷가지와 천 조각, 의료도구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이곳에서 바로 5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여기서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 철창문의 열쇠투입구가 파손되어 있었다.
열쇠로 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중앙계단으로 가봅시다.”
현수가 걸음을 옮겼다.
그때, 아이 환자도 있었는지 목이 돌아가 있는 인형도 발견되었다.
화진은 부적 봉으로 그 인형을 살짝 뒤집어 보았다.
그러자 오두막집과 사무실, 그리고 2층 복도에서 보았던 그 ‘새 인형’과 같은 인형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새것 같았던 그때 인형과 달리 여기 인형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헝겊이 모두 해져 무척 추한 모습의 ‘헌 인형’이라는 것이었다.
악귀의 흔적.
헌 인형과 새 인형.
현수는 지금까지 일행들이 보았던 그 인형이 ‘환각’일 수도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
악귀의 흔적이 계속 묻어 있었고, 장소에 상관없이 눈에 띄었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브렛 역시 그 인형을 보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불쾌감에 자신이 쏘아 가루로 만들었던 그 인형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현수 일행은 복도를 가로질러 계속 걸음을 옮겼다.
뚜벅 뚜벅 뚜벅
발자국 소리는 점점 더 을씨년스럽게 울렸다.
그리고 한기 역시 더 강해지고 있었다.
이제 체감 온도가 10도 이하로 떨어진 것 같았다.
사아아아아아
그리고 천장과 입원실 쪽에서 하얀, 혹은 회색 아지랑이가 점점 더 짙어졌다.
위로 올라갈수록 악귀의 기운들이 더 강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중앙계단에 이르기까지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일행들의 신경이 바짝 곤두서있는 사이, 화진이 열쇠 꾸러미를 뒤적거렸다.
이곳에서 5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 입구 철창을 열기 위해서였다.
잘그락 잘그락-
몇 번 뒤적이다 열쇠를 넣고 돌렸다.
철컹
자연스럽게 문이 열리고, 일행들은 계단에 올랐다.
같은 방식으로 5층 입구에까지 오자 또 다시 철창이 있었다.
화진이 철창을 열자 새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4층에서 보았던 헌 인형이 아닌, 오두막집과 사무실에서 본 그 인형이었다.
“이 빌어먹을!”
브렛이 달려가 인형을 뻥 차버렸다.
“꺄아아아아악!”
그러자 복도 끝에서 비명이 들렸다.
브렛이 화들짝 놀람과 동시에 복도 끝에서 사백안을 한 소녀 귀신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짧은 단발머리에 환자복을 입고 있는 악귀였다.
다다다다다다다
소녀의 입과 코, 눈에서 검은색 액체가 흘렀다.
원한이 가득 쌓인 악귀 그 자체였다.
“어디-!”
브렛은 영어로 온갖 욕을 쏟아내며 샷건을 쏘았다.
타아앙 타아앙 타아앙-
12게이지 산탄총의 탄환이 좁은 복도 곳곳에 튀며 사방에서 불꽃이 일었다.
와장창-
파창-
희미하게 켜있던 전등들이 꺼지며 거세게 스파크가 튀었다.
화아아아아아아
달려오던 소녀는 마치 바람이 된 것처럼 현수 일행 주변을 스치고 지나갔다.
“더 이상은 못 참아!”
브렛이 현수에게 휙 고개를 돌리고는 중앙계단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잘각 잘각 잘각
그러면서 방금 쏜 탄환을 다시 탄창 튜브에 채워넣었다.
척-
브렛은 5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섰다.
여기에도 굳게 잠긴 철창이 자리하고 있었고, 계단 위로 가구들이 쌓여 있었다.
못 올라가게 막아둔 것 같았다.
“이딴 것들!”
그는 철창문의 열쇠 구멍에 총구를 대고 샷건을 마구 쏘았다.
탕 탕 탕 탕-
열쇠 구멍 쪽에서 거세게 불꽃이 튀더니 이내 부서져 내렸다.
그는 양손으로 철창을 잡고 힘껏 당겼다.
꾸우우우우웅-
부서진데다가 중심을 잃은 철창은 무게중심을 뒤틀자 이내 살짝 뒤틀리며 열렸다.
“진정해요.”
현수가 말했다.
하지만 브렛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계단 위의 가구들을 마구 끄집어 내렸다.
우당탕탕-
구르르르르르릉-
계단 위에 위태롭게 쌓여 있던 책장과 의자가 마구 미끄러졌다.
상당한 무게의 가구들의 그의 팔과 손에 쏟아지며 멍이 들고 상처가 났지만 그는 빨리 옥상에 올라가겠다는 일념 하나로 꾹 참고 모든 가구를 복도로 끄집어냈다.
그러고는 바로 옥상으로 가는 계단에 뛰어 올라갔다.
“혼자 가면 안 돼요!”
현수가 외침과 동시에 남은 일행들이 일제히 계단을 뛰어 올랐다.
* * *
탕!
총성이 울리더니 굳게 닫혀 있던 옥상 문의 문고리가 부서져 떨어졌다.
쾅!
이어 옥상 문이 활짝 열렸다.
쏴아아아아아아-
언제부터인지, 비가 억수같이 오고 있었다.
분명 이곳에 들어올 때에는 비가 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비가 억수같이 오는 것이 한치 앞도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쿠구구구궁-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브렛은 옥상 한가운데 서서 위성전화기를 들었다.
그러고는 여기저기 하늘을 비춰보다 안테나가 잡혔는지 바로 911에 전화를 걸었다.
“헬로? 헬로?”
브렛이 온갖 인상을 쓰며 불렀다.
그때, 현수 일행이 옥상으로 뛰어 나왔다.
가열하게 내리고 있는 비에 일행들이 놀라 하늘을 보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비가-”
화진은 놀라 주변을 보았다.
그 사이, 현수가 브렛에게 다가갔다.
“브렛 씨! 진정해요!”
현수가 소리쳤다.
그러자 제이슨이 옆에서 통역을 해주었다.
전화를 걸던 브렛이 현수를 발견하자 대뜸 총을 겨누었다.
“오지 마!”
브렛의 외침에 현수와 제이슨이 멈칫하며 두 팔을 들었다.
갑자기 총을 겨누는 모습에 놀란 것이었다.
아무리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던 브렛이었지만 아군에게 총부리를 겨눌 사람은 아니었다.
심지어 제이슨이 옆에 있는데도 총을 겨눈다는 건 뭔가 이상했다.
확실히 브렛의 눈에는 현수 일행이 다르게 보이고 있었다.
자신을 덮치려고 달려왔던 소녀 귀신의 모습으로 보이고 있었다.
현수와 화진, 제이슨, 방고리를 비롯한 스태프들 모두 똑같은 외형의 단발머리 환자 악귀로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오지 마!”
브렛이 버럭 소리쳤다.
“브렛 씨! 진정해요! 총 내려요!”
현수가 소리쳤다.
“총 내려, 브렛!”
제이슨도 영어로 소리쳤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단발머리 소녀 악귀가 소리치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오지 마, 오지 마! 오지 말라고 했어!”
브렛이 하늘에 대고 총을 쏘았다.
타아아아아앙-
밤하늘 사이로 총성이 소나기 사이를 뚫고 뻗쳐 나갔다.
“브렛 씨!”
현수가 소리쳤다.
“으으으!”
브렛은 겁에 질렸는지 뒷걸음질 쳤다.
그 사이, 그의 손에 들린 전화기에서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what happened?]
전화 연결이 된 것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뒷걸음질 치던 브렛이 뭔가에 걸렸는지 뒤로 넘어졌다.
“어엇!”
그리고 공교롭게, 옥상 한 쪽에 있던 하수구에 거꾸로 처박힌 채 추락했다.
빗물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수로였다.
성인 남자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법한 하수구임에도 그 큰 덩치의 브렛이 ‘쏙’ 들어간 것이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악!”
하수구에 빠진 브렛의 비명소리가 점점 멀어지다 메아리로 바뀌었다.
“브렛 씨!”
현수 일행이 달려가 구멍 아래를 손전등으로 비춰보았다.
컴컴한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어디로 통하죠?”
현수가 물었다.
“지하가 정화조라고 했으니 아마 그쪽에 떨어졌을 겁니다.”
제이슨이 말했다.
“위, 위성전화기는!”
방고리가 하수구 주변을 뒤져보았다.
하지만 브렛이 떨어트린 샷건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위성전화기를 가지고 추락한 것이었다.
“저 새끼가!”
방고리가 버럭 소리쳤다.
“빨리 지하로 가봅시다!”
현수가 말했다.
만약 죽지 않았다면 빨리 내려가 구출을 해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위성전화기를 그가 들고 있지 않은가.
최대한 빨리 지하로 달려가야 했다.
일행 모두 돌아서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제이슨도 브렛의 샷건을 주워든 뒤 뒤를 따랐다.
다다다다다다
일행들은 왔던 길로 온 힘을 다해 내달렸다.
귀신의 기운이 느껴지든 말든, 오로지 앞만 보고 마구 달렸다.
다행히 열었던 철창 중에서 닫힌 것은 없었다.
일행들은 쉬지 않고 2층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가려 할 때, 일행 모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홀 구석에 두었던 하날하날의 시신이 계단 입구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이었다.
누가 옮겨놓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으으으으!”
방고리는 겁에 질린 듯 다리를 떨었다.
‘악귀의 기운은 없어.’
하날하날의 시신에서 다른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현수는 앞장서서 하날하날의 시신을 피해 지하 계단 입구에 섰다.
화진이 허겁지겁 열쇠꾸러미를 뒤져 알파벳에 맞는 열쇠를 찾았다.
“여기!”
화진이 열쇠를 찾자마자 바로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지하를 향해 힘껏 계단 아래로 내달렸다.
지하 정화조 입구에도 철창이 있었다.
화진은 그 철창의 열쇠도 찾아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한 걸음,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오 마이 갓.”
제이슨은 기괴한 풍경에 혀를 내둘렀다.
지하는 위 공간과는 확실히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