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1화
#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 (8)
타아아앙-
브렛이 AA 철창에 대고 총을 쏘았다.
요란하게 불꽃만 튈 뿐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나저나 쟤네 그만 좀 시끄럽게 굴라그래. 저 브렛인가, 뭔가 하는 애가 소란스럽게 할 때마다 여기 귀신들이 죄다 놀란다.”
수정이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현수가 대답했다.
수정과 현수가 대화하는 장면은 브렛과 제이슨에게 있어 역시 생경할 수밖에 없었다.
브렛이 현수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있는 사이, 방고리가 브렛에게 다가갔다.
“위성전화기 있죠? 그걸로 어떻게 구조 요청을 할 수 없을까요?”
방고리가 묻자 제이슨이 통역을 해주었다.
“맞아. 위성전화기가 있었죠?”
화진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러자 구석에 앉아 있던 스태프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브렛을 보았다.
“잠시만.”
브렛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두껍고 큰 위성전화기를 꺼내 안테나를 확인해 보았다.
“전파가 잘 안 잡혀요.”
브렛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위성전화인데 왜 신호가 안 잡히는 거죠?”
“그건 여러 경우가 있어요. 위성 위치와 맞지 않으면 잘 안 터질 수도 있고, 실내라서 잘 안 터질 수도 있고.”
브렛과 방고리의 말을, 제이슨은 가운데에서 열심히 통역을 했다.
“영화에서 보면 빵빵 잘 터지더만!”
“이게 영화인 줄 알아? 그렇게 불만이면 당신이 직접 써보든가!”
브렛과 방고리가 언성을 높이며 투닥거렸다.
그러자 현수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만 싸우시고. 실내에서는 전파가 잘 안 터질 수도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귀신의 기운이 강할 땐 전자기파 신호에 혼선이 들어갈 수 있어요. 당연히 전파 방해가 있을 수 있고요.”
“뭐라고요?”
방고리가 흥분해 되물었다.
그러자 현수가 EMF 탐지기를 꺼내들었다.
탐지기는 단 한 치의 흔들림 없이 5개 LED 불빛을 모두 깜빡이고 있었다.
“EMF 탐지기가 심령 탐지기로 알려져 있지만, 전자기파를 감지하는 거 아시죠?”
현수가 이어 물었다.
그러자 방고리는 답답한 듯 휙 돌아섰다.
화진은 그런 방고리의 태도에서 약간의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미국에 온 고스트 크루 모두는 지금까지 폴란드, 일본, 프랑스를 거쳐 오며 겪은 ‘떡상’을 다시 한번 노려보고자 온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불길한 징조에 현수는 철수를 이야기 했고, 끝까지 가자고 한 것은 정작 방고리 본인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현수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모든 걸 책임지라는 듯이 감정적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상황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바꾸는 것이 뚜렷했다.
극한 상황 속에서 사람이 변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기고 있었다.
이 장면은 나중에 영상 공개 후, 큰 파장을 불러왔다.
“제대로 확인을 해보려면 옥상으로 올라가봐야 할 것 같아요.”
제이슨이 브렛의 전화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창문 쪽에서는 확인이 불가한가요?”
“아까 보니까 창문에 창살이 다 설치되어 있고 창문도 고정창이더라고요. 전파를 제대로 송수신 할 수 있는 정도까지 되진 않을 듯합니다.”
브렛이 거들었다.
“옥상.”
현수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보며 중얼거렸다.
* * *
“본관은 지상 5층까지 되어 있으니까 그쪽으로 쭉 올라가면 될 거예요. 다만 옥상으로 가는 길은 철저하게 잠겨 있겠죠? 여기 환자들이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야 했으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모인 일행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 열쇠들로 열 수 있기를 바라야죠.”
화진이 열쇠 꾸러미를 들고 말했다.
현수는 또 한 번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철창문에 적힌 알파벳이 AA부터 시작해 순서대로 ‘넘버링’이 되어 있었다는 점.
그렇게 따지면 수정의 말마따나 철창 개수는 최대 676개까지 나올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철창의 ‘넘버링’이 두 자리 알파벳으로 되어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 뒤에 또 다른 알파벳이 추가될지, 숫자가 있을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문제는 이러든 저러든 더 이상 후퇴할 길이 없다는 점.
관리실 등 행정 처부로 가는 길이 막혀 있는 이상 또 다른 열쇠 꾸러미를 찾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올라가봅시다. 별수 없죠.”
현수가 말했다.
“휴.”
화진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며 하날하날의 시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놀란 화진이 현수의 등을 빠르게 두드렸다.
“네?”
현수가 돌아보자 화진이 시신을 가리켰다.
“왜들 그-”
일행 모두 시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쩌저저저적-
시신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러더니 시신의 얼굴을 덮은 천이 피에 물들 듯, 군데군데 붉게 번지기 시작했다.
“쉣 더-”
브렛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쩌저저저적-
이상한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이내 하날하날의 시신이 천을 머리에 뒤집어 쓴 채, 상체를 일으켰다.
마치 마리오네트처럼 어색한 움직임이었다.
“으아아아!”
방고리가 비명을 지르며 계단 위로 뛰어 올라갔다.
“방고리 님!”
화진이 방고리의 뒤를 쫓아 올라갔다.
이어 브렛과 제이슨도 도망치듯 2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죠!”
현수도 소리쳤다.
세정은 현수의 뒤를 따라 올라가며 수시로 하날하날 쪽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하날하날의 시신은 얼굴에 천을 뒤집어쓴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녀가 누워있던 자리에는 피 웅덩이가 짙게 생성되어 있었다.
* * *
2층으로 올라온 일행은 철창문을 열려고 마구 흔들었다.
그때 화진이 열쇠 꾸러미를 들고 허겁지겁 라벨에 맞는 열쇠를 찾았다.
그 순간이었다.
지이이이이잉-
2층 복도 전체 전등이 모두 깜빡이기 시작했다.
현수와 세정이 가장 뒤에 쫓아와 복도를 보았다.
지이잉-
이내 복도 끝에서부터 전등이 순서대로 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두워지는 복도 끝으로 달려오는 대머리 귀신이 보였다.
현수는 재빨리 솔트샷건을 들었다.
지이이이이이잉-
깜빡 깜빡-
온 사방의 전등들이 깜빡였다.
꺄아아아아악-
이어 하날하날의 비명 소리도 들렸다.
정신없는 상황이 연출되자 일행 모두 혼비백산 했다.
오로지 현수와 화진만이 정신줄을 꽉 붙잡고 무기를 움켜쥐었다.
다다다다다다다
복도를 냅다 달리는 대머리 귀신의 형체가 정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운동장에서 보았던 바로 그 복장을 한 귀신이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똑같이 머리카락이 없었지만, 여성이라는 점이었다.
팟-
순간 모든 전등이 꺼졌다.
그리고 다시 전등이 켜졌을 때, 비명소리와 대머리 귀신은 사라져 있었다.
철컹
그때 화진도 열쇠를 찾아 3층으로 올라가는 철창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이이-
문 열리는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정신건강에 너무 안 좋다.”
방고리가 중얼거렸다.
브렛과 제이슨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3층 쪽을 총으로 겨누었다.
“올라가죠.”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섰다.
이제 목표는 수색이 아니라 ‘탈출’이었다.
옥상을 향해 최대한 빨리 올라가는 편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착-
3층에 올라와 문을 열자마자 현수의 솔트샷건, 브렛의 12게이지 샷건, 제이슨의 리볼버 총구가 복도 쪽을 견제했다.
이어 방고리도 새총을 장전한 채 3층에 올라왔다.
화진은 바로 4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확인해 보았다.
당연하게도 이곳에서 철창으로 굳게 잠겨 있었다.
각층과 각 계단, 복도 출입구마다 모두 철창이 있는 것이었다.
정신병원에 어울리는 구조가 아닐 수 없었다.
“안 열고 뭐해요?”
방고리가 살짝 짜증이 난 목소리로 말했다.
화진 역시 화가 났는지 방고리를 째려보았다.
이 모든 장면은 세정과 스태프들의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방고리는 이제 촬영이고 뭐고 생각하지 않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 나가기만 하면 자신의 분량을 지워달라고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비행기값과 스태프 인건비 등 비용을 지출한 라미로브의 허락이 있어야겠지만.
“안 보여요?”
화진이 짜증이 난 목소리로 계단을 가리켰다.
굳게 잠긴 철창 너머 계단에는 커다란 소파와 책상, 의자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좁은 철창문을 연다 하더라도 저 가구들을 다 빼내고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다른 길을 찾아야겠구먼.”
브렛이 중얼거렸다.
“하날하날 님이 사고를 당했던 그 복도 끝 계단이요. 그곳은 괜찮을지도 모르죠.”
현수가 복도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후.”
일행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복도를 보았다.
2층 복도에서 입원실을 수색하다가 하날하날이 사고를 당했던 만큼, 찝찝해 하는 것이었다.
“아직도 신호는 안 잡혀요.”
브렛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위성전화기를 보여주었다.
“수시로 확인해줘요.”
현수가 말하자 제이슨이 통역을 해주었다.
브렛은 OK사인을 보낸 후 위성전화기를 휘휘 흔들었다.
“갑시다.”
현수가 앞장서서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브렛과 제이슨이 앞장을 섰던 때와 달리, 어느새 현수와 화진이 전방을 맡고 있었다.
* * *
3층도 옆으로 쭉 입원실이 나있었다.
나무로 되어 있던 2층 입원실 문과 다르게 3층 입원실은 모두 쇠로 만들어져 있었다.
또한 상황실과 간호사실이 따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 2층보다 증상이 더 심한 사람들을 모아놓은 듯했다.
휘이이이잉-
어디선가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현수 일행의 입에서는 여전히 입김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뚜벅 뚜벅 뚜벅
걸어가는 일행의 발걸음 소리가 길고 깊게 메아리 쳐 울렸다.
쾅!
그 순간, 회색 팔이 쇠로 된 입원실 창살 밖으로 훅 뻗어 나왔다.
“으헉!”
일행 모두가 놀라 반대편 입원실 문 쪽에 붙었다.
화아아악
그러자 그 입원실 창살에서도 회색 팔이 튀어나왔다.
덮석
이번에는 방고리의 목이 붙잡혔다.
키야아아아아
창살 사이로 사백안을 가진 악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커걱!”
방고리는 숨이 막힌 지 무척 괴로워했다.
현수는 스프링텐션 수류탄을 꺼내 창살 너머 악귀의 입에 욱여넣었다.
빠각-
이어 팥가루가 사방으로 퍼지면서 악귀가 물러났다.
동시에 방고리도 앞으로 고꾸라지듯 쓰러졌다.
“쿨럭 쿨럭!”
방고리가 목을 움켜잡고 기침을 해댔다.
“조심해요. 입원실마다 악귀가 있을 수 있어요. 양쪽 문에서 떨어져서 걸으세요.”
한 마디로 복도 가운데로 걸어가라는 의미였다.
일행은 2열로 서서 복도를 가로질러 걸었다.
구오오오오-
우우우웅-
사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걸어가다 옆 입원실을 볼 때면 사백안을 가진 악귀의 얼굴이 보였다.
제이슨과 브렛은 알 수 없는 기운에 한기만 느꼈지만 나머지 일행은 악귀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스으윽-
심지어 입원실 아래 틈으로 검은 액체가 흘러나오는 입원실도 있었다.
당연히 특유의 악취도 지독하게 풍겨 올라왔다.
이내 복도 끝 철창문에까지 도달했다.
일행이 올라왔던 중앙 계단보다 한참 좁았지만 4층으로 올라갈 수는 있었다.
화진은 철창의 라벨을 확인한 후 열쇠 꾸러미를 뒤적거렸다.
“매번 이런 식이면 너무 귀찮은데. 어떻게 다 부수면서 갈 수는 없나.”
브렛이 중얼거렸다.
“너무 소음을 내면 안 좋다잖아요. 그리고 철창들 다 부수면 탄환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제이슨이 대답했다.
“여차하면 다 부숴버릴 거야.”
영어로 대화하는 둘은 일행들이 모두 못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편하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현수 옆에 있는 수정이 이 둘의 대화를 모두 통역해주고 있었다.
둘은 수정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존재조차 모르는 상태기 때문이었다.
‘브렛, 저 사람 많이 위험해.’
현수는 만약 이곳에 귀신이 있다면, 브렛이 가장 눈엣가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