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 (7)
세정의 카메라는 현수의 뒤를 계속 촬영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끊지 않고 진행되고 있는 촬영.
그녀는 촬영에 집중하며 주변 상황을 살폈다.
“왜요?”
화진이 발걸음을 멈춘 현수에게 물었다.
현수는 대답하지 않고 입원실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익-
문이 열리자 입원실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구석에 놓인 오래된 TV와 가구들.
그리고 철제 침대와 지저분한 침대보가 널려 있었다.
무엇보다 끔찍한 것은, 가구와 침대보에 피가 묻어 있다는 점이었다.
“맙소사. 여기서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제이슨이 풍경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내부에서 칼부림이라도 있었는지 바닥과 천장 할 것 없이 피가 튀어 있었다.
현수가 세정을 돌아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는 너튜브 심의 기준에 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신호였다.
사아아아아
강한 한기와 함께 회색 아지랑이가 곳곳에 피어났다.
상당히 강력한 악귀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대체 무슨 상황이래.”
브렛도 긴장한 듯 권총 손잡이를 꽉 쥐었다.
강한 이미지로 허세를 부리고 있었지만 정체모를 한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현수도 솔트샷건을 꽉 움켜쥐었다.
동시에 화진과 방고리 역시 각자 무기를 쥐어 들었다.
“꺅!”
그때 하날하날이 또 비명을 질렀다.
모두가 돌아보자, 그녀는 입원실 입구에 놓여 있는 인형을 가리켰다.
오두막집과 사무실에서 보았던 바로 그 인형이 방금 들어온 출입문 가운데 바닥에 떡 놓여 있는 것이었다.
일행 모두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이, 이, 이!”
하날하날은 얼굴을 가린 채로 인형을 뻥 걷어찼다.
그러자 인형은 복도에 버려져 있던 집기에 튕겨 복도로 굴러나갔다.
현수 일행이 복도 밖으로 쫓아 나가보았다.
혹시 누군가 인형을 갖다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순간, 일행은 또 한 번 경악하고 말았다.
방금까지 평범했던 복도가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가지런하게 놓여 있던 집기도 모두 헝클어져 있고, 벽에 걸린 액자와 사진들도 부서지거나 찢어져 있었다.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도 흉물스럽게 찢어진 채 창문의 창살이 훤히 드러났다.
끼히히히히힛
순간 복도에 나가떨어져 있던 ‘그 인형’이 벌떡 일어나더니 일행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뻐킹 돌!”
브렛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인형에 대고 샷건을 쏘아버렸다.
타아아아앙-
엄청난 총성과 함께 인형이 산산조각나 흩어졌다.
화약냄새와 탄매가 입 속에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브렛은 화가 난 표정으로 씩씩 거렸다.
두려움을 분노로 치환한 것이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왜 이렇게 바뀐 거예요?”
하날하날이 현수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며 물었다.
이 현상에 대해서 현수도 무어라 정확히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분명 폴터가이스트, 기현상을 넘어 모두 환각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이에요?”
방고리도 복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뚜벅 뚜벅 뚜벅-
웅얼웅얼웅얼-
복도 끝과 중앙 계단 쪽에서 발자국 소리와 사람들 말소리가 들렸다.
뭐라 하는지, 어느 나라 말인지 조차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현수 일행을 제외한 누군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었다.
현수 일행은 자신들이 올라온 계단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발자국 소리와 말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브렛과 제이슨이 실총의 총구를 들어 겨누었고, 나머지 일행들은 퇴마 용품을 들었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때, 정말 귀신같이 침묵이 찾아왔다.
일행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서로를 보았다.
“느낌이 너무 안 좋습니다. 지금이라도 철수는 하는 게 어떨까 싶어요.”
현수가 말했다.
그러자 가장 겁먹은 표정의 하날하날이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더-”
그녀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하는 순간이었다.
꽈당-
갑자기 무언가 그녀의 발을 낚아챘는지 하날하날은 바로 넘어지더니 복도를 가로질러 어딘가로 끌려갔다.
“꺄아아아악!”
그녀의 비명이 온 건물을 휘감았다.
“하날하날 님!”
“하날님!”
일행이 그녀를 쫓아갔지만 그녀는 더욱 격렬하고 빠르게 끌려갈 뿐이었다.
몸부림을 쳤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쾅-
꽈당-
쿵!
복도에 있던 온갖 집기에 부딪힌 그녀는 점점 피칠갑이 되어갔다.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던 하날하날의 몸은 축 처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쪽 다리가 정체모를 무언가에 붙잡힌 채 계속 끌려가고 있었다.
“이잇! 잇!”
브렛과 제이슨이 총을 겨누었지만 뭐가 하날하날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지, 이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반면 현수 일행은 회색 형체가 하날하날의 다리를 붙잡고 뒤로 달리고 있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팡 팡 팡 팡
현수와 방고리가 공격을 했지만 악귀는 물러나지 않았다.
그렇게 복도 끝까지 오자 좁은 철창문이 나타났고, 두 명이나 간신히 지나갈 법한 좁은 계단이 나타났다.
철컹-
하날하날은 계속 끌려가다 철창에 거꾸로 매달렸다.
철창을 통과한 악귀가 뒤에서 하날하날을 계속 당기는 모양새였다.
“커걱!”
피투성이가 된 하날하날이 신음을 흘렸다.
회색 형체가 계속 당기면서 강한 압력을 받는 것이었다.
“어, 어떻게든 해봐요!”
화진이 하날하날의 손을 잡고 당기며 소리쳤다.
하지만 철창문에 거꾸로 매달린 하날하날의 몸은 점점 더 철창에 밀착이 되었다.
“컥!”
그녀는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못했다.
그 순간이었다.
우드드드득-
그녀의 온 몸에서 뼈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풀썩
그제야 그녀는 바닥에 툭 쓰러졌다.
사아아아
잠긴 철창 너머 악귀의 모습이 드러났다.
오두막집에서 보았던 바로 그 악귀의 얼굴이었다.
악귀는 씩 미소를 짓고는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하날하날 님?”
세정과 스태프들이 놀라 중얼거렸다.
그녀는 흰자위를 훤히 드러낸 채 축 늘어져 있었다.
브렛이 조심스럽게 쪼그려 앉아 그녀의 경동맥에 손을 대보았다.
맥이 짚이지 않는지 그는 하날하날의 코와 입에 귀와 볼을 살짝 대보았다.
숨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브렛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가로저었다.
하날하날이 죽은 것이었다.
“X발. 이건 아니잖아.”
방고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갑시다.”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제이슨이 하날하날을 들쳐 업고, 일행 모두 서둘러 다시 1층으로 향했다.
이들의 발걸음은 그 어떤 때보다 다급하고 빨랐다.
1층 홀도 처음 들어왔을 때와 풍경이 달라져 있었다.
바닥, 사무실과 벽, 문, 복도 할 것 없이 피가 튀어 있었다.
심지어 철창에는 잘린 사람의 손목과 살점들이 걸려 있기도 했다.
현수 일행은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AA 철창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나가려는 순간 철창이 ‘쾅’하고 닫혔다.
브렛과 제이슨이 철창문을 잡고 흔들었지만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덜컹 덜컹
세게 흔들수록 소음만 요란하게 울릴 뿐이었다.
사아아아아아아아
이어 엄청난 한기가 휘몰아쳤다.
일행들의 입에서 입김이 뿜어져 나올 정도였다.
세정은 이 모든 걸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방고리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지금 이 와중에 촬영을 해요?”
“증거 자료라도 있어야죠. 콘텐츠도 콘텐츠지만 사람이 죽었어요. 증거가 필요합니다.”
현수가 말했다.
“원테이크로 쭉 찍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편집은 들어가게 생겼어요. 사람이 죽는 장면이 들어가서.”
세정이 말했다.
그러자 방고리와 화진이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하날하날이 죽었음에도 편집부터 생각하는 것이었다.
“현수 님. 뭔가 대책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지금 현수 님이 우리 리더잖아요.”
방고리가 현수의 양팔을 붙잡고 말했다.
“지금 이거 다 책임져야 하는 거 알죠? 어떡할 거예요.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하는데.”
방고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격앙되고 감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걸 왜 현수 님이 다 책임져요?”
화진이 끼어들어 말했다.
그러자 방고리의 표정이 차갑게 바뀌었다.
“이 콘텐츠 다 현수 님 채널에 올라가는 거잖아요. 이거 기획도 마찬가지고. 라미로브가 애초에 박현수 채널 위주로 기획을 한 건데.”
“라미로브고 뭐고 애초에 현수 님은 느낌이 이상하다고, 여기서 철수하자고 몇 번이나 제안했어요. 조회 수 때문에 계속 촬영해야 한다 한 건 방고리 님하고 하날 님이었고요.”
“뭐라고요?”
“사고가 나기 바로 직전만 해도 그래요. 현수 님은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죠. 그 순간까지도 하날하날 님은 아니라고 이야기했어요.”
화진이 말했다.
그러자 방고리는 순간 할 말이 없어졌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때 제이슨이 끼어들었다.
“일단 이곳에서 나갈 궁리부터 해봅시다. 시신을 계속 업고 다닐 수도 없고.”
그가 말하는 사이 브렛은 하날하날의 시신을 문 쪽에 고이 눕힌 뒤 근처에 있던 천으로 얼굴을 덮었다.
모두 심각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일단 시신은 여기에 두고, 이곳을 탈출한 뒤에 수습을 합시다.”
브렛이 말하자 제이슨이 통역을 해주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악귀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신을 계속 업고 다니는 것도 확실히 무리였다.
뿐만 아니라 박효종까지 이곳에 있을지 모르는 지금.
자칫하다가는 하날하날의 시신이 더 훼손될 수도 있었다.
“일단 이곳에서 대책을 강구해봅시다.”
현수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 * *
또옥- 또옥- 또옥-
어디서 나는지 모를 물방울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하지만 다들 그 소리의 정체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다.
하날하날의 사망 이후 모두 패닉 상태에 빠진 상태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날하날과 방고리 전용 스태프들은 비통한 표정으로 구석에 앉아 있었고, 방고리도 초조한 얼굴로 턱을 매만졌다.
그 사이 현수와 화진, 제이슨, 브렛은 모여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이곳 실내 지도는 없는 거죠?”
“저 사무실들을 뒤져보면 뭐라도 찾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갈 수가 없으니.”
제이슨이 굳게 닫힌 철창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AA 열쇠로 다시 열어보려 했지만 무슨 영문에서인지 열쇠가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누군가 안에 껌이라도 넣어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계단하고 층마다 뭐가 있는지 안내도는 그려져 있는 것 같아요.”
화진이 계단으로 올라가는 벽을 보며 말했다.
“철창과 열쇠마다 AA, AB, 이렇게 라벨이 붙어 있다면 총 몇 개 철창이 있는 거죠?”
현수가 묻자 가만히 듣고 있던 수정이 갑자기 나타나 대답했다.
“앞자리와 뒷자리의 알파벳으로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26*26. 총 676개.”
수정의 대답에 현수가 깜짝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어우. 어디 있다가 이제 나타났어요?”
“근처 좀 둘러보느라고.”
“근처에요?”
“응. 뭔가 이상해서.”
“뭐가요?”
“여기에 분명 귀신이 굉장히 많았던 것 같은데, 그 흔적도 분명히 남아 있는데 갑자기 사라진 느낌이야.”
수정이 내부를 슥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요? 그게 돼요?”
“되지. 진짜 무서운 악귀 있으면.”
수정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