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8화
#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 (5)
하날하날이 살짝 뒤로 물러서 있는 사이, 현수와 방고리, 화진이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갔다.
브렛은 발로 곰의 머리를 툭 쳐서 옆으로 치운 뒤 설비동 건물로 향했다.
어찌 되었든 계속 전진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었다.
“이것도 못 따요.”
자물쇠를 확인한 화진이 뒤로 물러섰다.
이 자물쇠도 완전 녹이 슬어 붉은 산화철 덩어리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현수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 창문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설비동 건물에는 창문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아예 없는 것이었다.
브렛은 현수를 보면서 입을 삐쭉 내밀었다.
현수는 그 표정의 의미가 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시설을 함부로 대하고 소음을 내는 것에 대해 갈등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방법이 필요한 상황 아니냐는 의미였다.
현수가 마음대로 하라는 손짓을 하자 브렛이 씩 미소를 짓고는 자물쇠에 총울 겨누었다.
동시에 일행들 모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타아아아아아앙-
어두운 밤 가운데 총성이 울려 퍼지며 새들이 날아올랐다.
파캉- 스르르르릉-
자물쇠가 부서지면서 칭칭 감겨 있던 쇠사슬이 풀려 쏟아졌다.
브렛은 바닥에 떨어진 자물쇠와 쇠사슬을 발로 툭툭 쳐 옆으로 치웠다.
그 모습을 보던 화진이 다가와 물었다.
“여기가 이렇게 잠겨 있는 상태면 곰 머리는 누가 던진 거죠? 위에서 던진 것 같은데.”
화진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설비동 건물 위로 뻗은 시계탑과 안테나를 제외하고는 밤하늘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머리가 위에서 떨어졌다면 그건 설비동 시계탑에서 던진 것이라는 의미였다.
“아무래도 불길해요.”
현수도 위를 보았다.
이대로 촬영을 중단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폴터가이스트.
여러 기현상에 대해서 많이 접해보고 또 퇴마를 하는 입장에서 마냥 두렵지만은 않았지만 지금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은 결이 달랐다.
도끼가 사라지고, 야생동물이 나타나고, 잘린 동물의 머리가 일행 앞에 떨어졌다.
이건 악귀나 귀신들처럼 단순히 산 사람을 놀리거나 놀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일종의 ‘협박’ 같았다.
“읏챠!”
브렛과 가이드가 양쪽에 서서 철문을 밀었다.
그러자 설비동 정문이 열리면서 콘크리트로 된 건물 내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화진과 현수, 방고리는 손전등으로 내부를 슥 비췄다.
각도에 따라 녹슨 난간과 거대한 철제 콘솔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아아아아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회색 연기가 흐르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본 현수가 조용히 물었다.
“전 여러분 의견에 따를 건데요. 여기서 그만 포기하고 철수하는 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들 하시죠?”
현수가 내부를 비춰보며 물었다.
갑작스런 현수의 제안에 일행 모두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악귀와 싸우는 것도 싸우는 거지만 느낌이 좋지 않아요.”
현수의 말에 방고리가 말했다.
“뭐, 폴란드에서도, 프랑스, 일본에서도 잘 헤쳐 나갔잖아요. 별 문제 있겠어요?”
“그곳과는 느낌이 달라요. 아직 모르시겠어요?”
현수가 방고리를 돌아보며 물었다.
방고리 역시 전보다 더 섬뜩하다는 느낌을 받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중도포기 할 만큼은 아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건 아닌 듯?”
방고리가 세정과 카메라, 그리고 화진을 번갈아 보았다.
“전 현수 님 의견에 따를게요.”
화진은 세정을 보았다.
세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중도포기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아무래도 김창수 과장을 직속상관으로 두고 있는 세정 입장에선 어떻게 해서든 실적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외 다른 스태프들도 세정과 같은 입장이었다.
이어 마지막, 하날하날의 대답만 남아 있었다.
일행 모두가 세정 뒤에 서있던 하날하날에게 시선을 모았다.
“으음.”
그녀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민하는 듯 눈동자를 굴리다 천천히 대답했다.
“조금 더 진행을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사측에서 직접 비용 들여서 여기까지 온 건데.”
가장 겁에 질려 있던 하날하날이 대답했다.
그녀까지 이렇게 대답한다면 현수 입장에서는 두 번 의사를 물을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브렛과 가이드에게 손짓을 했다.
계속 진행하자는 의미였다.
* * *
뚜벅 뚜벅 뚜벅
일행들의 발걸음 소리는 설비동 1층 전체에 울려 퍼졌다.
내부는 굉장히 투박했다.
도색이 되지 않은 회색 콘크리트로 벽과 바닥이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양옆으로는 온갖 레버와 기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신병원 내에 있는 모든 전기나 수도 시설들을 여기서 관리했나 봐요.”
화진이 기기들 앞에서 라벨들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 사이 방고리는 한쪽 벽에 놓인 안내도를 보았다.
확실히 그는 게임을 많이 해서인지, 어느 장소에 가든 지도부터 찾는 듯했다.
“지하에는 정수시설이 있고 1층에 수도, 전기시설이 있는 것 같아요. 2층에는 통신실이랑 여기 경비 병력들, 관리 인력들이 머무는 숙소가 있고요. 그 위로는 뭐가 없네요. 시계탑까지.”
방고리의 말에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설비동 1층을 돌아다니며 수색을 했지만 귀신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곰의 머리를 던진 것으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흔적 역시 전혀 나오지 않았다.
현수는 그것이 더 안 좋은 징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모두 여기 모여주시겠어요?”
제이슨이 한쪽 구석에서 불렀다.
현수 일행이 그쪽으로 다가가자 제이슨이 커다란 기름 탱크와 레버를 가리켰다.
“이게 이 시설 전기 공급 장치인 것 같아요. 기름으로 작동하는 것 같고요.”
제이슨이 총구로 기름 탱크를 퉁퉁 치며 말했다.
“이거 구동하자고 여기 들어온 거잖아. 뭘 고민해?”
브렛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탱크 옆에 쌓여 있는 붉은 기름통들이 보였다.
“전기가 있으면 수색할 때 편하긴 하죠.”
현수가 중얼거렸다.
그때 세정이 뒤에 다가왔다.
“조금 어두워야 더 그림이 잘 나오지 않을까요?”
세정의 말에 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은 밝게 할 수 있다면 밝게 하죠.”
아무래도 불길한 느낌이 자꾸 든 현수가 대답했다.
끼릭 끼릭 끼릭
브렛이 기름통 뚜껑을 열어보았다.
안에서 기름 냄새가 확 풍겨 올라왔다.
살짝 흔들어 보자 묵직한 것이 기름이 제법 많이 든 듯했다.
“이게 수십 년 동안 방치되어 있었던 건데. 될까요?”
방고리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원래 옛날 물건들이 더 잘 작동돼요. 메커니즘이 단순해서.”
제이슨이 브렛과 함께 기름통을 번쩍 들고는 탱크 안에 기름을 쏟아부었다.
똘 똘 똘 똘 똘
구두 발자국 소리만큼이나 기름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기름통 세 개 정도를 비우고 난 후 브렛이 주변 천장과 벽의 전등들을 보며 레버를 내렸다.
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침묵이 찾아왔다.
“역시 작동을 안 하나?”
방고리가 중얼거리는 사이, 어디선가 엔진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우우웅-
터빈이 돌아가는 소리였다.
지징- 지이잉- 파지직- 치지징-
이어 천장과 벽에 있는 전등들이 깜빡이며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콰직!
그중 몇 개는 요란스럽게 불꽃을 내며 깨졌다.
깜빡깜빡-
설비동의 모든 전등들이 일제히 작동한 것이었다.
물론 그 밝기는 현대 전등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고장 난 전등도 많아 군데군데 불이 안 켜지거나, 깜박거리는 구역도 많았다.
하지만 어둠으로 뒤덮여 있던 것에 비하면 꽤 밝아진 셈이었다.
구르르르르르르
이어 지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경계하자 브렛이 손사래를 쳤다.
“전기가 돌아가면서 정화조가 작동한 걸 겁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브렛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했고, 제이슨은 바로 통역을 해주었다.
“정말 전기가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화진이 신기한 듯 주변을 보다 낙서를 발견했다.
피로 쓰인 듯한 글자들이었다.
저주를 받을 지어다.
너희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거야.
우리가 너랑 함께 할 거야.
신이 내릴 수 있는 모든 저주를!
온갖 문장들이 영어로 적혀 있었다.
글씨체가 미묘하게 다른 것이 여러 사람이 번갈아가며 쓴 모양이었다.
“이동할까요?”
현수도 낙서를 보면서 화진에게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2층 통신실에 들어온 일행들은 초록색과 빨간색 LED 등이 가득한 기기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굉장히 오래 된 무전 시설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당시 군에서나 쓸 법한 장비들이었다.
브렛은 무전기로 다가가 마이크를 잡았다.
“CQ. CQ. CQ.”
브렛이 말했지만 ‘지이이이이’하는 노이즈만 잡힐 뿐 아무 응답이 없었다.
“위에 안테나를 손봐야 할 것 같은데?”
“뭐, 지금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브렛은 현수를 보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현수의 오더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긴 하는 모양이었다.
“위성전화기도 있고 하니 굳이 지금 안테나까지 고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현재로썬 당연한 선택이었다.
더구나 안테나를 고치러 올라가서 무전이 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상황.
오늘 밤 내에 모든 곳을 수색하려면 시간이 빠듯할 수도 있었다.
통신실에서 나온 일행은 관리인들의 숙소도 둘러보았다.
특별할 것이 없었다.
몇몇 관리 인력들의 일기와 서류가 나왔지만 크게 소득이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하 정화조로 내려가려 했지만 계단은 온갖 집기들로 꽉 막혀 있었다.
안에서는 정화조 설비 터빈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곳까지 굳이 확인해 볼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본관으로 이동하죠.”
현수가 브렛과 제이슨에게 말했다.
* * *
설비동 건물 밖으로 나오자 을씨년스러운 앞마당 풍경이 훤히 드러났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가로등에 전기가 들어오며 풍경을 밝게 비춘 것이었다.
하지만 주황색 빛이 도는 가로등 불빛은 괜스레 음산함을 더해주고 있었다.
“불이 켜진 대로 더 무섭네.”
방고리가 중얼거렸다.
심지어 가로등이 꺼져 있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하얀 안개가 주변을 모두 감싸고 있자 귀신의 하얀 연기, 악귀의 회색 연기가 분간되지 않았다.
현수는 이것 역시 불길했다.
설비동에서 본관으로 가는 길.
아까는 보이지 않던 옆길이 눈에 띄었다.
현수가 걸음을 멈추고 손전등을 비춰보자 작은 운동장이 보였다.
콘크리트도 평평하게 닦인 바닥 위로 녹슨 농구대와 철봉, 평행봉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작은 운동장을 비추는 전등도 을씨년스럽게 깜빡이고 있었다.
“운동을 하던 곳인가 봐요.”
하날하날이 세정의 옆에 딱 붙어서 중얼거렸다.
그녀는 앞으로 나서기보다는 세정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일행들 모두 보는 귀신을 자기 혼자 못 보니 심령카메라에 의지를 하는 모양이었다.
뿐만아니라 겁에 질린 만큼 선두에 나서지 않으려는 마음도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네요.”
현수는 가로등 밑에 있는 벤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때, 안개 사이로 하얀 연기가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벤치에 하얀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목구비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머리에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의 형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