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 (3)
“이곳을 보니 주변에서 사냥을 하고 나무를 캐면서 살았던 것 같네요. 누가 살았는지는 몰라도.”
브렛이 오두막 마당을 거닐며 영어로 말했다.
그러자 가이드가 바로 통역을 해주었다.
세정은 이 둘을 촬영하면서 수시로 현수 일행도 비췄다.
“제가 이곳 랭먼트에서 멀지 않은 로니아 출신이라 이곳에 대해서는 종종 들었습니다. 산속에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가끔 연쇄살인범이나 사이코패스들이 숨어있기도 하다고.”
브렛은 카메라를 보며 찡끗 윙크를 하며 말했다.
가이드는 브렛의 모든 말을 그대로 통역해 주었다.
그는 현수 일행이 공포 콘텐츠 촬영 때문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름의 쇼맨십을 보인 것이었다.
“저렇게 나대다가 죽지.”
수정이 입을 삐쭉 내밀고 중얼거렸다.
저벅 저벅 저벅
일행들은 저마다 조금씩 거리를 두고 마당을 수색했다.
나무를 팼던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 밑동과 썩은 장작.
녹이 슨 채 잡초에 파묻혀 있는 오토바이.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세정은 일행들을 한 명 한 명 촬영하다 수시로 마당에 굴러다니는 집기들도 클로즈업 해 녹화했다.
“들어가 볼까요?”
현수의 말에 가이드와 브렛이 오두막 앞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확실히 둘이 선두에 서는 경우가 많았다.
현수가 따로 요청한 것은 아니지만 총을 들고 있는 둘이 여기 있는 인원들을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절걱 절걱
가이드가 문고리를 돌렸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비켜 봐.”
브렛이 가이드를 툭 치며 말했다.
가이드가 옆으로 서자마자 브렛이 발로 문을 걷어 차버렸다.
우지끈!
문이 부서지면서 먼지가 확 피어났다.
“후.”
브렛이 손부채질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현수와 화진이 손전등으로 안을 비췄다.
공중에 부유하는 뿌연 연기들이 먼저 보였다.
이어 바닥에 가득 쌓인 먼지와 가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귀신의 흔적은 보이지 않네요.”
현수가 카메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세정은 심령카메라 화면을 확인하며 실내를 쭉 비춰주었다.
방 하나에 화장실, 그리고 작은 거실이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끼익 끼익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나무 소리가 온 실내에 울렸다.
“이 사람이 살았었나 봐요.”
방고리가 벽에 걸린 사진을 보며 말했다.
세정이 다가가 손전등을 비춰보았다.
의사 가운을 입고 병원 건물 앞에 서있는 남자의 사진이었다.
“스티브 프리저브. 1974년.”
사진 한쪽에는 필기체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프리저브. 그 병원 이름하고 똑같네요?”
하날하날이 돌아보며 물었다.
“론 프리저브가 그 병원 창립자라고 하니 그 후손쯤 되겠네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화진이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잠시만요. 여기 좀 모여 주실래요.”
그녀가 손짓을 했다.
모두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 주변에 모였다.
그녀 앞에는 작은 인형이 놓여 있었다.
먼지가 가득 쌓인 가구와 집기들과 다르게 빈티지 스타일의 소녀 인형은 굉장히 깨끗했다.
문제는 그 인형에서 회색 아지랑이가 피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날하날은 그 인형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귀신의 기운을 볼 수 있는 현수와 화진, 방고리, 세정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심령카메라에도 그 인형에서 피어나는 아지랑이가 정확히 보였다.
다들 놀라고 있자 하날하날이 세정에게 다가와 심령카메라 화면을 확인했고, 그제야 그녀도 소름이 끼치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인형은 최근에 놓은 것 같은데요.”
현수가 쪼그려 앉아 인형을 보며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요.”
통역을 받은 브렛이 영어로 받아쳤다.
가이드의 통역 아래, 그는 말을 이었다.
“조금 전에 문고리를 돌리고 부술 때 느낌이 있었어요. 이곳은 최소한 30~40년 동안 사람이 드나들지 않았어요.”
브렛의 말을 들은 현수는 턱을 매만졌다.
그렇다면 지금 이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사이 방고리는 부서진 문과 문고리를 확인해 보았다.
“저분 말이 맞아요. 문 쪽이 다 녹슬어서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 상태에요. 이 문을 부수지 않고 여기 들어오는 건 불가능해요.”
방고리의 말에 화진도 창문을 확인해 보았다.
창문들도 모두 안에서 잠겨 있는 상태였다.
심지어 바닥에 쌓인 먼지도, 방금 들어온 일행들의 발자국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래요?”
가이드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현수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허리를 펴고 섰다.
“원래 이런 이상한 일이 자주 생깁니다.”
현수의 반응에 가이드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현수의 방송을 보았고, 또 공포 콘텐츠를 촬영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또 영상 내 기현상들이 촬영된 것 역시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조작이 아닌 실제라는 걸 직접 경험하기는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퇴마해야 할까요?”
방고리가 새총을 꺼내며 물었다.
“아뇨. 흔적만 있어요. 악귀가 안에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현수가 인형의 머리 위에 살짝 손을 얹어보고 말했다.
“그럼 왜 여기에 이렇게…….”
“우리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나 보죠. 우리가 자기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거나.”
휘이이이잉
그 순간 밖에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브렛은 재미있다는 듯 낄낄거렸고 가이드는 소름이 끼쳤는지 몸을 으쓱했다.
“이곳에는 특별한 게 없어 보입니다. 계속 이동하죠.”
현수의 손짓에 일행들 모두 나갈 준비를 했다.
끼익 끼익
뚜벅 뚜벅 뚜벅
일행들이 오두막을 나가는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모두가 밖으로 나간 뒤, 현수는 마지막에 남아 집 안을 슥 둘러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창문 구석에 사백안을 가진 악귀의 한쪽 눈과 머리가 슬쩍 비췄다.
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동양인 귀신인지, 서양인 귀신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기괴한 모습이었다.
사아아아아아
악귀는 바로 모습을 감추었다.
현수는 확실히 악귀가 쫓기 시작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문제는 사라진 도끼였다.
물건이 떨어지거나 살짝 이동한 것이 아니라 사라졌다는 건 악귀나 귀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악귀에 쓰였든 아니든 ‘산 사람’이 가져갔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것이 ‘박효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현수는 솔트샷건을 꺼내든 뒤 밖으로 나갔다.
* * *
숲은 어느새 어둠으로 가득 채워졌다.
일행들 모두 가지고 있는 모든 손전등과 조명을 밝혀야 했다.
어두운 숲속에서의 조명은 확실히 음산함을 더욱 자아냈다.
현수 일행은 계속 멘트를 하며 숲속을 헤치고 걸어갔다.
오두막에서 나온 지 불과 30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계속 비슷한 풍경이 나오고 있어서인지 몇 시간은 걸은 것 같은 기분들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브렛이 ‘쉿’하며 자세를 낮췄다.
일행들이 깜짝 놀라 그를 따라 자세를 낮췄다.
“조용히 해요.”
그가 영어로 말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총기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쳤다.
“무슨 일이에요?”
하날하날이 속삭여 물었다.
하지만 현수도 당장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귀신이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르르르르르
그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현수 일행과 브렛, 제이슨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조명이 돌아가자 보인 것은 거대한 덩치의 미국 흑곰이었다.
“오- 마이 갓.”
방고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TV에서나 보던 바로 그 곰을 야생에서, 그것도 아무런 울타리나 방어시설 없이 마주한 것이었다.
“움직이지 마요. 달린다고 도망칠 수 있는 놈이 아닙니다.”
제이슨도 이 흑곰에 대해 아는지 낮게 말했다.
그르르르르
흑곰은 먹이를 탐색하듯 기웃거리며 한 걸음씩 다가왔다.
브렛은 그런 흑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천천히 총구를 들었다.
“한 방에 죽이지 못하면 위험해. 내가 총을 쏘면 제이슨, 당신도 바로 놈의 머리를 노려.”
“알았어.”
둘이 영어로 대화했다.
쿵-
흑곰이 다시 한 걸음 다가왔다.
타아아아아아앙-
브렛이 총을 쏘았다.
우렁찬 샷건의 총성이 밤하늘 짙게 깔린 거대한 숲 가운데 울려 퍼졌다.
퍼드드득-
근처에 있던 새들이 모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두두두두두두
곰이 거세게 돌진해 왔다.
어디에 총을 맞았는지, 잘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우지끈
꽈드득
나무를 부러뜨리면서 돌진한 곰이 팔을 번쩍 들었다.
순간 제이슨이 곰을 향해 마구 방아쇠를 쏘았다.
탕 탕 탕 탕 탕!
매그넘 리볼버의 웅장한 총성이 강력하게 퍼져 나갔다.
분명 모든 탄환이 곰에게 적중한 것 같았다.
하지만 곰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
곰이 맨 앞에 있는 브렛을 내려치려는 순간, 그의 샷건에서 불이 뿜어져 나왔다.
타아아아아앙-
탄환은 그대로 흑곰의 턱밑을 파고 들어갔다.
촤아아아악-
동시에 흑곰의 머리가 폭발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고오오오오-
곰은 팔을 든 채로 몇 초 서 있다가 뒤로 넘어졌다.
꾸우우웅
육중하고 둔탁한 소리가 숲에 울렸다.
“우, 우와.”
하날하날과 방고리가 기겁을 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캠핑에 익숙한 화진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백패킹을 많이 다니고 별별 야생동물들과 마주쳤어도 실제 야생 곰과 마주치기는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팅-
브렛이 샷건을 재장전하며 말했다.
“곰은 개보다 6배 이상 후각이 좋아요. 이놈 가족들이 피 냄새를 맡으면 여기로 올 겁니다. 빨리 이동합시다.”
그의 말에 일행들은 바로 재정비를 하고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 * *
몇 분 후.
나무 사이로 거대한 건축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최신식 건물은 아니었지만 근대 느낌이 물씬 나는 것이 굉장히 견고해 보였다.
높은 울타리와 차량용 대문.
그 옆에 있는 출입문과 관리사무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세정은 그곳의 풍경을 파노라마처럼 쭉 촬영했다.
“저기가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입니다.”
브렛과 제이슨이 현수를 보며 말했다.
“네. 그런 것 같네요.”
대문 한 쪽에 높이 솟아 있는 독수리 조각과 실루엣처럼 시커먼 건물의 외관.
굉장히 강한 손전등 불빛의 건물의 외벽이 언뜻 보였다.
군데군데 넝쿨이 올라와 있는 것이 무척 흉물스러웠다.
“접근해 보겠습니다.”
현수 일행이 대문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양옆으로 열리는 철제 대문의 중앙에는 조각상으로 보이는 독수리와 비슷하게 생긴 조류가 양각되어 있었다.
그마저도 녹이 슬어 무척 흉물스러웠다.
“완전 잠겨 있어요.”
그 커다란 철문은 녹이 슬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그 사이 브렛과 제이슨은 옆 관리사무소를 기웃거렸다.
이 관리사무소를 통하면 대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 같았다.
“여기서 대문 안과 밖을 동시에 감시하는 구조네요.”
제이슨의 말에 방고리가 손전등으로 관리사무소 안을 비췄다.
책상과 서류들이 놓여 있었다.
“이쪽으로 들어가 보죠.”
그의 말에 현수는 대문을 뒤로 하고 관리사무소 문을 열어보았다.
하지만 이 문 역시 굳게 잠겨 있었다.
“문 딸 수 있어요?”
현수가 묻자 화진이 쪼그려 앉아 문고리를 보았다.
역시 열쇠구멍 안에까지 녹이 들어차 도구로 따는 것은 불가능했다.
“안 돼요. 이거 철문이라 힘으로도 못 열겠는데.”
화진이 뒤로 물러섰다.
“비켜요.”
순간 브렛이 샷건의 개머리판을 번쩍 들었다.
“에?”
현수가 돌아보는 순간 브렛이 개머리판으로 관리사무소 유리창을 깼다.
와장창-
오래된 유리조각이 힘없이 바닥으로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