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 (1)
미국 콜로라도 랭먼트에 위치한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
이곳에 대한 정보는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현수는 라미로브 김창수 과장이 보내온 자료를 수정, 화진과 함께 꼼꼼히 읽어보았다.
프리저브 가문이 1889년 개원한 정신병원.
탈출을 감행하는 환자들이 많다보니 콜로라도 주 깊은 산 속에 위치해 있었다.
사다리가 있다 해도 넘어갈 수 없는 높은 담장과 철조망이 겹겹이 쳐져 있는 천혜의 요새 같았다.
그러던 중 세계1차 대전,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 PTSD가 심하게 와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군인들을 수감하는 곳이 되었고, 이것을 공로로 백악관에서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944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며 공식적으로 운영이 중지되었다.
이후 이곳은 모든 공포 콘텐츠의 모티프가 되었다.
수많은 영화 관계자, 공포 마니아들이 이곳을 다녀간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을 모티프로 한 영화도 제작 중 스태프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이곳을 방문한 마니아들 중 일부도 사망, 혹은 실종이 되면서 ‘론 프리저브의 저주’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여러 정보와 함께 내부 사진들이 함께 수신 되었다.
허름한 내부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프랑스 르브레 성보다 폴란드 위즈소카 수용소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곳곳에 널려 있는 집기들과 가구들.
새하얗게 쳐져 있는 거미줄.
입원실로 보이는 곳들과 사무실.
액자들이 쭉 걸려 있는 긴 복도.
굉장히 음산해 보였다.
“여기 분위기만 봐선 위즈소카 수용소도 씹어 먹겠는데요?”
화진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저게 무슨 소리야?”
뒤에서 함께 보고 있던 수정이 정보 글을 가리켰다.
현수와 화진이 읽다 만 부분이었다.
몇 음모론자들은 1990년대까지 이곳이 운영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 근거는 사무실에 1990년대 컴퓨터들이 놓여 있었다는 것.
하지만 이에 대해서 제대로 밝혀진 바는 없다.
이 소문 이후 음모론자들의 방문이 이어지자 당국에서는 이곳을 폐쇄하였다.
방문을 하고 싶으면 랭먼트 관청에 먼저 신고를 해야 한다.
글귀를 본 현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런 음모가 있는 건 좀 무서운데.”
화진이 중얼거렸다.
“이번엔 누가 같이 가려나. 고스트 크루 단톡방에 한 번 물어볼까요?”
“아. 내가 물어볼게요. 현수 님은 커뮤 탭에 공지 띄우세요.”
현수의 말에 화진이 대답했다.
* * *
청솔 교도소 독방.
죄수복을 입은 허태훈이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혼자 키득거리고 있었다.
“키히힛. 키히히힛.”
그는 현수를 생각하자 재밌다는 듯 괴상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때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그 발걸음 소리는 감옥 복도에 반사되어 더욱 우렁차게 메아리쳤다.
허태훈이 벌떡 일어나 철창으로 달려갔다.
철컹
철창을 붙잡은 허태훈이 고개를 내밀려는 듯 철창 사이로 얼굴을 문댔다.
그때, 간수가 허태훈의 앞에 섰다.
“뒤로 물러서. 그런다고 네가 나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그- 제가 부탁한 건 보셨어요?”
허태훈이 굉장히 정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간수가 곤봉으로 철창을 퉁 쳤다.
“이게 부탁할 게 있고 아닌 게 있지. 내가 왜 네 심부름을 해줘야 하냐?”
간수가 입을 씰룩이며 호통치고는 지나쳐 갔다.
허태훈은 그런 간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 * *
며칠 후.
음식을 받기 위해 식당으로 간 허태훈은 식판을 들고 자리로 이동했다.
그 순간이었다.
“커헉!”
허태훈의 얼굴이 회색빛으로 변하더니 이내 풀썩 쓰러졌다.
까아앙-
스테인리스 식판이 바닥에 떨어지며 음식물이 쏟아졌다.
“사람이 쓰러졌어요!”
죄수들이 소리치자 간수가 달려왔다.
이어 CPR이 실시되었지만 허태훈은 심정지가 오고 말았다.
* * *
아무 연고도 없는 허태훈의 시신은 교도소에 있는 임시 봉안소로 옮겨졌다가 국영 납골당으로 이동 되었다.
이미 사망판정이 난 만큼 감시 간수는 한 명만 붙었다.
그렇게 구급차를 타고 국영 납골당으로 가던 도중이었다.
간수는 얼굴까지 뒤집어 쓴 허태훈의 시신 옆에서 졸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무척 익숙한 모양이었다.
그때, 사망판정까지 난 허태훈의 손이 천천히 들렸다.
그러고는 얼굴을 덮고 있던 천을 천천히 내렸다.
스으으윽
심정지로 회색으로 변했던 그의 낯빛이 천천히 돌아왔다.
번쩍
그리고 눈을 뜨자 회색으로 변한 흰자위가 흉측하게 드러났다.
사아아아아
그러고는 다시 하얀색 흰자위로 돌아왔다.
그 사이, 졸고 있는 간수의 코와 입에서 하얀 입김이 살짝 뿜어져 나왔다.
허태훈은 간수의 얼굴을 빤히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메스를 집어들었다.
푸욱
그는 순식간에 간수의 목을 베었다.
촤아아아아악
그러자 간수의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며 구급차 안을 붉게 물들였다.
우당탕-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자 운전하고 있던 운전사가 조수석의 사수를 보았다.
“무슨 일이야?”
사수가 뒤로 돌아 문을 여는 순간 메스가 사수의 눈을 파고 들어왔다.
“크악!”
사수는 눈에 메스가 박힌 채 조수석에 거꾸로 처박혔다.
조수석은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었다.
“뭐, 뭐, 뭐야!”
운전수가 놀라 뒤를 돌아보자 피칠갑이 된 허태훈이 주먹으로 운전수의 머리를 후려쳤다.
꾸우우웅-
강한 충격과 함께 운전수가 기절해 버렸다.
동시에 운전대가 확 돌아가며 구급차가 옆으로 틀어졌다.
끼이이이익-
관성과 원심력에 못이긴 구급차가 옆으로 전복이 되며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졌다.
차자자자자작-
주황색 불꽃과 함께 전복된 구급차가 멈추었다.
인적이 드문 시골 도로.
주변에 지나고 있는 차량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퉁-
측면으로 전복된 차량의 조수석 문이 열리더니 허태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고는 기절한 운전수를 끄집어내 바닥에 던졌다.
풀썩
바닥에 떨어진 운전수는 충격에 정신이 들었는지 고개를 들었다.
탓
그 사이 허태훈은 차에서 내려 운전수에게 걸어갔다.
“으어? 어, 어, 어! 허태훈!”
운전수가 소리쳤다.
그러자 허태훈은 뒤로 기어가고 물러서고 있는 운전수의 가슴을 발로 짓이기며 그의 핸드폰을 뺏었다.
그러고는 너튜브에 들어가 현수의 채널에 접속했다.
커뮤니티 탭의 공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콜로라도. 랭먼트. 론 프리저브 정신병원.”
허태훈이 씩 미소를 지었다.
“다, 다, 당신. 원하는 게 뭐야.”
“원하는 거?”
허태훈이 운전수를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그의 복부를 깔고 앉았다.
“내가 원하는 게 뭘까?”
허태훈은 키스를 할 것처럼 운전수의 목을 움켜쥐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커걱!”
운전수가 괴로운 듯 몸을 비틀었다.
그 순간이었다.
허태훈의 입에서 걸쭉하고 검은 액체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검은 덩어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고는 운전수의 입으로 쑥 들어갔다.
“커억- 컥!”
운전수는 숨이 막힌 듯 몸을 비틀다가 이내 푹 떨어졌다.
이어 허태훈 역시 흰자위를 드러내며 뒤로 발라당 쓰러졌다.
구급차가 전복된 현장에 침묵이 감돌았다.
이내 운전수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는 언제 목이 졸렸냐는 듯 태연하게 옷매무새를 정리하고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허태훈의 몸을 보았다.
“흥.”
그는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보았다.
[박효종]
[경상북도 청솔군……]
신분증에는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신용카드와 현금들이 들도 보였다.
그는 씩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 * *
인천공항.
현수와 화진, 방고리, 하날하날, 그리고 각 매니저들이 모여 있었다.
다들 살짝 들뜬 모습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 음료수 사왔어요!”
방고리가 스태프와 일행들에게 음료 캔을 건네며 말했다.
“진짜 오랜만에 다같이 움직이네.”
“그러게요.”
방고리와 하날하날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 사이 현수는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었다.
[연쇄살인범 허태훈. 탈옥 중 사망.]
[허태훈. 사망한 채로 발견.]
[청솔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허태훈. 심정지 된 채로 발견.]
온갖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교도소 안에서 죽은 것인지, 탈옥하다 죽은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기사마다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현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현수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박현수 씨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네. OO경찰서 신동아 형사입니다.]
“네, 네.”
허태훈을 수사하며 현수를 참고인 조사 했던 형사였다.
[기사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허태훈이 오늘 오전에 죽었습니다.]
“아. 기사 봤어요.”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는데 교도소에서 심정지가 와서 사망하고, 시신을 옮기는 도중에 사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고였나요?”
현수는 시끄럽게 수다 중인 일행들을 피해 조금 떨어져 걸으며 물었다.
그 모습을 본 화진은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걸 직감했다.
[차가 뒤집어졌는데요. 시신을 이동시키던 간수와 구급대원이 메스에 찔려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메스에 찔려서요? 범인은 허태훈인가요?”
[아뇨. 허태훈도 죽은 채로 발견됐습니다. 다만 구급차를 운전했던 운전사만 실종된 상태입니다.]
“그 사람은 왜-”
[저희도 수사 중에 있습니다. 현장이 하도 이상해서 수사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아아. 네, 알겠습니다.”
[참고인이시라 절차상 전화로 알려드렸습니다.]
“감사합- 아! 혹시 그 실종된 운전사 이름을 알 수 있나요?”
[‘박효종’이라고 합니다. 청솔교도소 관할 소방대원입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수가 전화를 끊었다.
“느낌이 좋지 않지?”
수정이 다가와 물었다.
“보통 불길한 느낌은 맞아떨어지는데.”
현수가 중얼거렸다.
그때, 공항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아! 우리 비행기다! 빨리 가자!”
방고리가 현수에게 손짓을 했다.
현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일행에게 돌아갔다.
허태훈의 사망.
박효종의 실종.
심정지와 교통사고.
메스로 인한 살인사건.
현수는 입술을 매만지며 비행기에 올라탔다.
지금 이 전화를 받았다고 일정을 취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 * *
현수의 옆에 앉은 화진은 바로 허태훈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러자 그녀도 뭔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어떻게 그렇게 된 거죠? 뭔가 이상한데?”
“그렇죠? 무엇보다 이상한 건 실종자예요. 교도소에서 사망판정 받고, 시신 이송 중에 교통사고가 나 사람들이 죽었다면 이해가 되는데- 메스에 찔려 죽은 사람이나 실종된 운전사나. 어째 느낌이……”
현수가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박효종’이라는 사람이 악귀가 돼서 사건을 벌이고 도망친 것 같은 느낌이잖아요.”
현수의 말에 화진이 몸서리를 쳤다.
“설마 허태훈한테 있던 악귀가 거기로 넘어갔나?”
현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러자 뒤에서 듣고 있던 수정이 말했다.
“난 알 수 있어. 허태훈한테 쓰여 있던 악귀. 소멸된 건 아니야. 허태훈이 죽었으니 그 악귀까지 사라지면 나도 성불했겠지. 내 한은 그 놈한테 가있으니까.”
“그러면-”
“-박효종인가 하는 사람한테 그 악귀가 붙었을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이네.”
수정이 나지막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