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3화
#퇴마 의뢰 (4)
좁은 골목길.
현수와 화진, 그리고 둘을 촬영하는 세정의 주변으로 한기가 강하게 몰아쳤다.
그리고 셋의 앞에 있는 모퉁이로 맹승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한 손에는 벽돌이 들려있었다.
“늬들. 뭐냐?”
맹승태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양 어깨에선 회색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악귀. 당장 그 몸에서 물러나시지.”
현수가 말했다.
“파핫. 그건 뭔 신선한 잡소리야.”
맹승태가 코웃음을 쳤다.
세정은 대화를 나누는 셋을 뒤에서 계속 촬영했다.
흡사 영화 구도 같았다.
세정은 침을 꿀꺽 삼키며 계속 촬영에 집중했다.
“조용히 그 몸에서 나와 도망치면 최소한 소멸되는 건 막을 수 있다. 원한다면 무당을 통해 천도재라도 지내주지.”
“X랄하고 앉았네, 아주 그냥.”
맹승태가 벽돌로 벽을 북북 긁으며 말했다.
그것이 무척 잔인하게 보였다.
그때 수정이 현수와 화진의 뒤에 나타났다.
“오호라. 그때 차 안에서 느껴졌던 게 바로 너구나.”
맹승태가 수정을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순간 수정도 그의 기운에 놀랐는지 뒤로 물러섰다.
“조심해. 보통 놈이 아니야.”
수정이 말했다.
“허태훈보다 세요?”
“그와는 결이 달라.”
“네?”
“허태훈은 자신이 악행을 저지른다는 걸 인지하고 폐건물에 숨어있던 놈이었지만 저 놈은 사람을 때리고 죽이고 하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는 놈이야.”
“뭐라고요?”
화진이 놀라 수정을 보았다.
“허태훈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람을 죽인 놈이지만, 저놈은 사람을 죽이는 것 자체가 목적인 놈이야.”
수정이 말했다.
즉, 허태훈은 자신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혹은 복수를 위해 사람을 쫓아다니지만 저 사람은 아무 목적없이 폭력을 즐긴다는 의미였다.
“어떻게 저런 놈이 사회로 다시 나올 수 있는 거지?”
화진이 부적 봉을 꽉 쥐며 중얼거렸다.
“뭐, 그것까진 모르겠지만 저 정도 기운이라면 구천을 떠돈 지 몇 백 년은 된 악귀일 거야. 본인이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 왜 죽었는지, 어떤 원한을 가졌는지에 대한 아무런 기억도 없이 그저 짐승 같은 본능만 남아 있는 악귀. 이 몸 저 몸에 붙어 몇 세기 동안 산 사람에 기생하는!”
수정이 말했다.
오늘따라 수정의 설명이 길었다.
“자세하게 말씀해주시네요. 직접 알아내기 전까지는 잘 안 알려주시더니.”
“음. 도망치는 게 좋을 것 같거든.”
수정이 대답했다.
“네?”
현수가 놀란 표정으로 수정을 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으아아압!”
맹승태가 현수에게 달려들어 벽돌을 휘둘렀다.
“윽!”
현수가 뒤로 물러서자 벽돌이 담벼락에 ‘꿍’ 부딪쳤다.
손에 꽤 충격이 왔을 테지만, 맹승태는 쉬지 않고 다음 공격을 이어갔다.
팡
현수가 뒤로 물러서며 방아쇠를 당겼다.
촤악
소금이 흩뿌려졌다.
“뭐얏!”
소금에 맞은 맹승태가 뒤로 주춤거렸다.
하지만 의미 있게 맹승태를 물러서게 하지는 못했다.
순간 부적 봉이 맹승태의 흉부를 가격했다.
화진이 찌르기를 한 것이었다.
퍼억-
통증이 강한지 맹승태가 가슴을 움켜쥐며 무릎을 꿇었다.
“우웩!”
그리고 헛구역질을 하자 검은 액체가 쏟아졌다.
사방으로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악귀 덩어리가 나오지는 않았다.
카메라에도 이 모습은 담겼다.
화진이 봉으로 가슴을 찌르자 맹승태가 무릎을 꿇었고, 헛구역질을 했다.
일반 카메라에는 그 장면만 보였지만 심령카메라에는 회색 액체가 쏟아져 나오는 게 포착되었다.
“크아아악!”
맹승태가 다시 현수에게 달려들었다.
덥석
맹승태가 두 손으로 현수의 목을 움켜쥐었다.
“으으으윽!”
엄청나게 강한 악력이 현수의 목을 압박했다.
현수가 두 팔로 밀쳐내려 했지만 도저히 밀리지 않았다.
노인의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이었다.
빠악
순간 화진의 부적 봉이 맹승태를 가격했다.
그제야 맹승태는 뒤로 물러서며 현수를 놓쳤다.
풀썩
현수는 의식을 반쯤 잃어가던 중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콜록 콜록 콜록.”
사래가 들린 것처럼 기침이 격하게 나왔다.
그리고 약간 흐릿해진 시야로 화진과 맹승태의 격전이 보였다.
부웅 부웅 부웅
맹승태가 거칠게 주먹을 휘둘렀다.
화진은 반격을 하기보다 날렵하게 피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이라 봉을 이용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빠악
그러다 봉이 맹승태의 머리를 내려쳤다.
좁은 만큼 횡 공격보다는 세로 공격, 혹은 찌르기가 더 유용했다.
문제는 그만큼 움직임이 예측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 건방진 게!”
맹승태는 주머니에서 접이식 칼을 꺼내더니 화진을 찌르려 들었다.
그러자 화진이 몸을 틀어 칼을 피한 후 봉을 들지 않은 다른 손으로 맹승태의 목덜미를 후려침과 동시에 다리를 걸었다.
꽈당-
그러자 맹승태가 앞으로 격렬하게 고꾸라졌다.
“지금이에요!”
화진이 소리쳤다.
그러자 현수가 엎드려 있는 맹승태의 뒤에 올라타 무릎으로 그의 양쪽 어깨를 짓눌렀다.
“크아아아악!”
맹승태가 몸부림을 치며 소리를 질러댔다.
화진은 부적 봉으로 계속해서 맹승태의 다리를 짓눌렀다.
척 척 척
현수가 그의 등에 부적을 여러 장 붙였다.
“크아아악!”
그러자 맹승태는 더욱 괴로운 듯 소리를 질렀다.
“입에서 악귀를 뽑아내야 하는데!”
현수가 그의 뒤통수를 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지금 몸을 뒤집으려 했다가는 역공을 당할 수 있었다.
그러다 현수는 나름대로 임기응변을 써보기로 했다.
힙색에서 주섬주섬 부적을 꺼내 손에 감은 현수는 마치 토하는 사람의 등을 두드리는 것처럼 강하게 맹승태의 등을 가격했다.
빠악 빠악 빠악
온 힘을 다해 후려치자 그의 입에서 검은 액체가 한 번씩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커걱 커걱-”
그러자 숨이 막힌 지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현수는 쉬지 않고 등을 내리쳤다.
“우오오옥!”
그 순간이었다.
그의 몸이 심하게 들썩이더니 걸쭉하고 검은 덩어리가 그의 얼굴 앞에 철퍽 쏟아져 나왔다.
현수는 그대로 밀짚인형을 꺼내 검은 액체 안에 처박았다.
사아아아아아아아
부적 붙은 밀짚인형은 마치 먹물 먹는 한지처럼 검은 액체를 슥 빨아들였다.
인형에 악귀를 가둔 것이었다.
이내 맹승태도 실신을 했는지 축 늘어졌다.
“다 촬영 됐어요?”
현수가 세정을 보며 물었다.
“네. 그럼요.”
세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OK사인을 보냈다.
* * *
한창 싸움을 하던 도중 119대원들이 도착했고 폭행당한 노숙자들은 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이어 세정이 경찰에게 신고해 맹승태를 현장에서 바로 체포할 수 있었다.
밝혀진 그의 죄목은 상당히 끔찍했다.
그는 거리에서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체포를 당했던 것이다.
그 훼손 정도가 심해 무기징역으로 기소했지만 주취로 인한 심신미약을 주장해서 감형을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현수은 그 혐의를 믿을 수 없었다.
그를 따라다니던 귀신들의 기운을 느껴보자면, 이미 수많은 사람들을 살해해 왔고 출소 후에도 범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현수는 이것에 대해서도 경찰에 전달했다.
당연히 경찰들은 현수의 이야기를 무시했다.
단, 현수의 구독자였던 경찰 중 한 명이 이 이야기를 건너듣고 나름의 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져 기사로 접하게 된 소식이었지만, 맹승태가 저지른 범죄가 무려 19건. 출소 후에 저지른 범죄가 3건이나 되었다.
거기에 노숙자 폭행 건까지 포함하면 4건이나 되었다.
이렇게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 그가 혐의없음 처분을 받았던 건, 노숙자를 제외한 희생자 모두가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범행을 저지른 후 시신들을 전국 각지에 옮겨놓음으로써 범행과 피해자, 그리고 가해자 사이의 모든 연결고리를 흩트려 놓았다.
그리고 공소시효가 끝날 때를 맞추기 위해 일부러 흔적을 남겨 하나의 살인사건만 자신에게 혐의가 오게 세팅을 해둔 것이었다.
심지어 그 순간에도 음주 상태로 진행했다고 주장해 법망을 교묘하게 빗나가는 치밀함도 보여주었다.
이 사실은 맹승태를 추리하고 퇴마하는 과정이 담긴 영상이 업로드 되고 반년이나 지난 후에 밝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건 또 한 번 현수의 채널을 엄청나게 떡상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편집 영상의 마지막 부분.
현수는 맹승태 주변에서 다른 귀신들이 더 있다는 것을 말해주며 더 피해자가 있을 거고 이에 대해 경찰에게 알려줄 것이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영상이 올라온 후, 꽤 논란이 되고 말았다.
노숙자를 공격한 것은 잘못이지만 노인을 저렇게 대한 것은 도덕적이지 않다는 여론이 나온 것이었다.
이에 직접적으로 피 나오게 폭행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라는 반박이 일자 일부 네티즌들은 가짜 조작 쇼를 요란하게 한다며, 다시 조작 여론을 불 피웠다.
생방송이 아닌 녹화 편집 영상이다 보니 괜스레 또 불거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수는 이런 것들 하나하나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경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 되고 추가 피해자들이 공개 되며 현수의 영상이 다시 역주행을 하게 되었다.
뉴스 기사에서 현수를 언급하는 건 물론이고 네티즌들이 엄청나게 검색했고, 조회 수와 댓글이 폭발할 정도였다.
그렇게 현수는 200만 구독자를 가진 스트리머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맹승태의 희생자들이 더 발견되기 전까지 퇴마와 캠핑, 그리고 ‘수요일의 괴담’과 흉가체험을 진행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새 태환도 전역을 해 인사를 왔다.
현수는 한껏 격렬해진 라이브 방송 때문에 태환을 데리고 방송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라미로브에 요청해 댓글 관리하는 서브 매니저를 한 명 더 요청해 태환을 꽂아주었고, 태환은 현수의 스태프로 근무를 하게 되었다.
* * *
200만 스트리머가 된 현수의 일상은 몇 개월이 지나도 늘 똑같았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집에 화진의 짐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분명 사귀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든 방송을 현수의 집 스튜디오에서 진행하고 또 야외 방송도 늘 함께하다 보니 많은 시청자들은 둘이 사귀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니라는 해명을 해도 별 소용이 없었고, 현수와 화진도 딱히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청자들은 본인이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조회 수 몰이에 효과적이었던 둘의 ‘우결’ 분위기도 점점 사그라졌다.
이제는 조회 수 때문이라기보다는 촬영 효율 때문에 동거를 하는 경향이 더 강해져 있었다.
그렇게 계속 일상을 보내던 중, 여러 퇴마 의뢰로 인해 미뤄지던 해외 출장 일정에 대해 김창수 과장이 제안을 해왔다.
[미국 출장 어때요?]
김창수 과장의 첫 질문이었다.
“미국 출장이요?”
[혹시 ‘헌팅스 힐’라는 영화 알아요?]
“음. 아! 그 미국에 있는 시골 정신병원에 있는 악령들 이야기죠? 거기서 살아남는 이야기.”
[네. 하룻밤을 버티면 백만 달러를 주겠다고 하고 폐 정신병원에 사람들을 가둔 영화요. 전에 했던 ‘미드나잇 게임’도 이 영화를 참고했죠.]
“네, 알죠. 알죠.”
[근데 그 영화의 모티프가 된 정신병원이 실제로 있다더라고요.]
김창수 과장의 전화에 현수가 입을 삐쭉 내밀고 수정과 화진을 번갈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