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 성장아파트 108동 1003호 (3)
문을 열자 ‘다른 집 냄새’가 확 풍겨왔다.
중년 부부가 옆으로 비켜서자 현수와 화진, 우재석과 혜련이 집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그리고 그 장면을 뒤에서 스태프들이 쭉 촬영을 했다.
대낮에 촬영하는 만큼 무서운 분위기가 바로 연출되지는 않았다.
현수가 EMF 탐지기를 다시 들어 확인해 보았다.
불빛이 3개에서 4개로 왔다갔다 하며 깜빡이고 있었다.
약간의 한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귀신이 눈에 보이지는 않는 상황.
“아무래도 EMF 탐지기는 여기서 못 쓸 것 같습니다.”
이곳에는 여러 전자제품이 가동이 되고있는 것은 물론 촬영 스태프들의 무전기와 무선 마이크 신호까지 혼잡하게 깔려 있다 보니 EMF 탐지기가 불필요하게 계속 작동하고 있었다.
이럴 때에는 괜히 혼란스럽게 탐지기를 켜고 있는 것보다는 끄고 있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짧은 복도가 보이고, 바로 거실이네요. 거실 옆에 화장실과 안방, 그리고 드레스룸과 안방 화장실이 이어져 있고요. 저쪽에 작은 방과 큰 방이 따로 하나씩 있네요. 구석에 부엌과 다용도실이 있고.”
우재석이 곳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심령카메라에도 뭔가 잡히고 있진 않아요.”
화진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 사이, 현수는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무어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었다.
화가 나면서도 굉장히 슬픈.
이상한 기분이었다.
“너. 그거 알지?”
현수 옆으로 수정이 다가와 속삭였다.
“여기 있는 귀신. 지금까지 네가 겪은 거랑은 조금 결이 다른 귀신이야.”
수정의 말에 현수가 걸음을 멈추고 수정을 돌아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너도 직접 보면 느끼겠지만 여기 있는 귀신은 원한의 규모가 큰데- 몰라 아무튼 겪어 봐.”
“무슨 말이 그래.”
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은 우재석과 김봉 PD를 비롯한 모두에게 보였다.
다만 수정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만큼 현수 혼자 떠드는 것처럼 보였다.
“네?”
우재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 아닙니다.”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방 곳곳을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귀신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한 떨기 한기가 현수의 목덜미를 자극하고 있었다.
분명 이 집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의미였다.
‘겁이 많은 귀신?’
현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작은 방을 보았다.
작은 방 끝에는 창문이 하나 나 있었고, 그 너머로 부엌 쪽 다용도실이 보였다.
“저 창문이 뒷베란다와 연결 되는 거죠?”
“네. 뒷베란다에 보일러실하고 세탁기가 있습니다.”
중년 남성이 대답했다.
현수는 그 창문 쪽 벽을 빤히 보았다.
“뭐가 보여요?”
우재석이 물었다.
현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순간이었다.
창문 옆 벽 쪽에서 하얀 아지랑이가 아주 옅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여기! 여기!”
그 모습을 본 화진도 심령카메라로 아지랑이를 포착해 우재석과 혜련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귀신의 흔적입니다.”
화진이 우재석과 함께 심령카메라 화면을 다른 스태프들에게 보여주었다.
“저쪽 벽이 보일러실로 향하죠?”
현수는 바로 부엌으로 돌아서 뒷베란다로 향했다.
그리고 보일러실 문을 벌컥 열었다.
키이이이이익
그러자 보일러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귀신을 발견했다.
현수는 흠칫 놀랐지만 위협적이지 않은 모습에 금세 평상심을 되찾았다.
불에 탄 듯한 옷과 검은 딱지가 가득 붙어있는 얼굴. 쪼글쪼글한 피부.
화상으로 인해 죽은 귀신이 분명했다.
중년 부부가 보았다는 귀신과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여기 귀신이 있어요.”
화진은 심령카메라 화면을 다시 우재석에게 보여주었다.
아주 옅은 하얀 아지랑이의 귀신은 뚜렷한 하얀 형체로, 심령카메라를 통해 포착되었다.
우재석은 신기한 듯 입을 다물고 김PD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너 왜 여기 있어.”
현수가 귀신 앞에 쪼그려 앉으며 물었다.
그러자 귀신은 눈물을 흘리며 현수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울긴 왜 울고 있고.”
현수가 아무리 물어도 귀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확실히 뭔가 이상한데.’
현수가 느끼고 있던 묘한 기분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조심해. 놈의 ‘기분’이 전염되고 있어.”
수정이 옆에서 속삭였다.
‘기분이 전염된다.’
귀신을 접하다 보면 흔하게 겪는 현상이었다.
실제로 퇴마 방송을 하면서 현수도 종종 겪었던 것이었다.
귀신이 가지고 있는 기분이 현수에게까지 그대로 전이되는 것.
화가 난 귀신의 분노에 같이 화가 나고, 슬픈 귀신의 우울감에 현수도 같이 우울해지는.
그러다 보니 실제로 공포 콘텐츠를 하는 스트리머 중 자살 사례가 의외로 많은 편이었다.
귀신의 원한이 그대로 전이가 되기 때문이었다.
현수는 뒤를 돌아 일행들을 보았다.
그들 모두 슬픈 표정으로 촬영에 임하고 있었다.
심지어 귀신을 볼 수 있는 화진조차도 무척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모두 정신 차려요!”
현수가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현장에 있던 모두가 현수에게 이목을 집중시켰다.
철컥
현수가 밀짚인형을 꺼내 들고 솔트샷건을 장전했다.
그러자 보일러실의 귀신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다.
키야아아아아아
화진과 현수가 어깨를 움츠리며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 둘이 왜 그러는지 어리둥절해했다.
사아아아아
이내 잿더미 귀신이 회색 아우라를 흘리기 시작했다.
악귀로 점점 변하고 있는 것이었다.
현수는 기다렸다는 듯 솔트샷건을 쏘았다.
촤아아악-
소금이 철제 보일러에 튀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잿더미 귀신은 벌써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지금 무슨 상황이죠?”
우재석이 물었다.
현수는 이를 악다물고 보일러실 문을 쾅 닫았다.
그러고는 바로 부적을 붙여버렸다.
“대, 대체 무슨 상황이에요?”
우재석이 다시 물었다.
“여기에 불에 타 죽은 귀신이 있어요. 이 두 분이 보신 게 정확히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 화재가 났던 적은 없다는 말씀이시죠?”
“네.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이 동 전체에 불이 난 적은 없대요. 윗집이나 아랫집이나.”
중년 남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왜 불에 탄 귀신이 있는 거죠?”
화진이 김PD와 우재석을 번갈아 보았다.
“시공사 측에서 확인한 그 내용 때문인 거죠?”
우재석이 김PD를 보며 물었다.
그 순간이었다.
쾅 쾅 쾅 쾅
보일러실 문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닫을 때는 아무도 없었는데 안에서 누군가 문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소리는 우재석과 혜련을 포함해 모든 스태프들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이건 귀신 소리가 아니라 ‘문소리’기 때문이었다.
“아니, 왜 이런 소리가.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우재석이 놀라 뒷걸음질 쳤다.
“이 안에 귀신이 있었고 지금 닫은 채로 문에 부적을 붙여놨잖아요. 이건 귀신의 이동을 막는 부적으로 일단 보일러실 안에 가둬둔 겁니다.”
현수가 말했다.
다들 신기한 듯 서로를 보았다.
이것이 편집되었을 때 시청자들이 얼마나 믿을지 알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우재석과 김봉 PD, 그리고 현장 스태프들 모두 기함할 정도로 놀랐다.
그 어떤 조작의 흔적이나 기믹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이 장소와 이 부부는 모두 자신들이 진행한 섭외였다.
“지금 실제 상황입니다. 그 어떤 조작도 없거든요?”
우재석이 흥분한 목소리로 카메라에 대고 말했다.
살짝 오버스러운 느낌이었지만 그 다급함은 고스란히 전달이 되었다.
“귀신을 쫓아내야죠.”
화진이 말했다.
그러자 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악귀 같으면 저희 방법으로 소멸을 시킬 텐데 그런 것 같지 않아요. 이 귀신한테 무슨 사연이 있는지 확실히 알아보고 그 한을 풀어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현수가 말했다.
“컷!”
촬영을 마무리 한 김PD가 수신호를 보내며 소리쳤다.
그러자 스태프와 우재석, 혜련 모두 기지개를 켜며 서로 악수를 나눴다.
“그나저나 저기 보일러실은 저렇게 둘 거예요?”
혜련이 물었다.
중년 부부도 그게 궁금한지 현수를 빤히 보았다.
“음. 일단 보일러실에서 나오진 못할 거예요. 부적을 떼거나 문을 열지 마세요.”
현수의 대답에 중년 여성이 불쑥 끼어들었다.
“오셨으면 확실히 처리를 해주셔야죠! 저걸 저렇게 그냥 둔다고요?”
그녀는 살짝 화가 난 목소리였다.
그러자 현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귀신도 한때 사람이었고, 우리처럼 감정과 기억이 있는 존재들입니다. 무조건 소멸시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에요. 저들의 사연을 듣고 그 한을 풀어주는 게 우선입니다.”
“그래도 귀신이 있는 걸 뻔히 아는데!”
“이것도 인연이에요. 조금만 협조해주시면 다 돌려 받게 되실 거예요.”
현수가 웃으며 말했다.
중년 여성이 뭐라 따지려 했지만 남편이 그녀의 팔을 잡아 당겼다.
“알겠습니다. 오늘 중에 다시 오시나요?”
그의 질문에 현수가 우재석을 보았다.
“네. 최대한 빨리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우재석과 김PD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그리고 방문한 아파트 시공사.
이곳에서 그 귀신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현수는 그 내용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더 커졌다.
김봉 PD는 촬영 전부터 이 ‘사고’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우재석과 혜련, 현수의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해 일부러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던 때.
시공사가 부도를 맞으면서 공사는 중단되었고, 콘크리트만 세워진 상태에서 방치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이곳은 불량 청소년들의 아지트처럼 쓰였는데, 거기서 한 학생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었다.
이후 지금의 시공사가 자금을 대기로 결정을 하면서 아파트가 완공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학생이 사망했던 바로 그 집에 귀신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
그 학생은 가정폭력을 당하다 가출한 15살 소년이었다.
천성이 착한 친구였지만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와 거리를 떠돌게 되는데, 그때 어쩌다 불량 청소년들을 만나게 되어 ‘콘크리트 굴’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그곳에서 불량 청소년들은 담배와 본드, 가스를 흡입하는 등의 불량한 짓들을 하고 있었는데, 이걸 그 학생에게 권했다가 폭발사고로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에 가출했던 그 학생은 원한이 쌓여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게 되어 버렸다.
시공사 사장은 그때 일을 회상하며 눈을 치켜떴다.
“그때 그 학생한테 가스를 권했던 그 친구는 아마 살아있을걸요?”
머리카락이 없는 노년의 시공사 사장은 어깨를 으쓱였다.
“정말입니까?”
“네. 말이 폭발사고지 그냥 그 학생 몸에 불이 붙었던 거예요. 그걸 보고 있던 다른 불량 학생들은 현장에서 바로 도망쳤고요. 제가 알기론 그렇습니다.”
“처벌은 받았나요?”
“네. 화재에 이어서 비명소리가 워낙 크게 나서 주민 신고가 들어갔고, 경찰이 출동했었죠. 그 불량 학생들도 도망치다가 바로 체포되었을 거예요.”
시공사 사장의 대답에 현수와 우재석이 서로를 보았다.
“그 사람을 찾아다 사과를 시키면 한을 풀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현수가 말하자 우재석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