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5화
# 성장아파트 108동 1003호 (2)
“이 가격에 이런 매물 안 나와요.”
공인중개사가 집을 보러 온 중년 부부를 안내하며 말했다.
이들은 모든 짐이 빠져 텅텅 빈 집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결로는 안 생기죠?”
“네. 전 주인이 샤시를 좋은 걸로 해놔서 결로는 안 생겨요.”
“흠.”
둘은 베란다와 창문의 창틀을 손가락으로 슥 확인했다.
“이전에 사시던 분이 짐을 빨리 뺐나 봐요.”
“네. 다른 집 이사 일정하고 조율을 하느라고 좀 빨리 뺐어요. 너무 고민하지 않으시는 게 좋아요. 지금 다른 분들도 여기 매물 좋다고 난리거든요.”
“그래요?”
“그럼요. 급매 치고도 가격이 상당히 저렴한데요.”
공인중개사는 능숙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그 사이 중년 남자는 베란다로 나가 바깥 경치를 보았다.
탁 트인 것이 전망도 나쁘지 않았다.
“뷰도 좋네요. 이런 데 그렇게 싸게 나오다니.”
“주인 분이 급하게 빠지시는 건데 뭐 다른 이유가 있나요.”
공인중개사가 능청스럽게 답했다.
“여보. 그냥 여기 계약하지?”
뷰에 만족한 중년 남자가 돌아서며 말했다.
그때, 방 쪽에서 검은 그림자가 슥 지나는 것이 보였다.
“어? 여기 안에 누가 또 있나요?”
중년 남자가 방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아뇨. 사람은 없는데요?”
공인중개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사아아아
가구가 없어서인가, 괜스레 느껴지는 찬 공기에 사람들은 어깨를 움츠렸다.
중년 남자는 방으로 불쑥 들어가 안을 보았다.
하지만 역시 아무도 없었다.
“이상하다. 분명 뭔가 본 것 같은데.”
중년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상하게 쎄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런 기분 때문에 몇억 원짜리 집 계약을 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집에 들어갔을 때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그는 몰랐다.
* * *
이사 오고 첫날.
외식을 한 뒤 간단히 짐을 정리하고 각자 방에서 잠을 청했다.
그때, 막내딸도 친구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스르르 잠에 들고 있었다.
달각
그때 방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살짝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막내딸은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방문을 보았다.
굳게 닫혀 있어야 할 방문이 열려 있었다.
“아, 뭐야. 오빠야?”
막내딸은 귀찮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확 열어보았지만 불 꺼진 집 안만 보일 뿐,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아, 뭐야. 진짜 짜증 나게.”
막내딸이 문을 닫고 다시 침대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침대 앞에 시커먼 무언가가 우두커니 서있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170cm에서 180cm 정도 되어 보이는 건장한 실루엣이었다.
“꺄아아악!”
막내딸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어 중년 부부와 고3 아들이 막내딸의 방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방 안에는 딸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막내딸은 자신이 본 것을 계속 이야기 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되레 이사 올 때 검은 실루엣을 보았던 중년 남자만이 뭔가 찝찝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 * *
고3 아들의 모의고사 전날.
시험을 앞두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던 아들은 졸린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러다 물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의 노란 불빛이 부엌을 환히 비췄다.
아들은 냉장고 문이 열린 채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는 다시 집어넣었다.
“후.”
잠이 좀 깼는지 냉장고 문을 닫은 아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보았다.
무언가 인기척을 느낀 것이었다.
하지만 어두운 집 안에서는 다른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아들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때였다.
열린 방문 틈으로 새어나오는 형광등 불빛이 살짝 그림자 지는 것이 보였다.
“음?”
이 시간에 누군가 방에 들어갈 리가 없다고 판단한 아들이 천천히 방 앞으로 다가갔다.
그 순간이었다.
열린 방문으로 검은 사람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막내딸이 봤던 것보다 더 선명한 모습이었다.
반쯤 불타 사라진 옷가지.
타서 몇 가닥 안 남은 머리카락.
재와 살점이 뒤엉킨 듯 징그러울 정도로 지저분한 검은 피부.
시뻘건 눈.
아들은 소리를 지르는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때 그 시커먼 귀신이 대뜸 아들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풀썩
아들이 쓰러져 넘어지자마자 귀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 *
남편은 출근을 하고, 아이들은 학교를 간 시각.
아이들이 자꾸 귀신을 봤다고 이야기 하는 통에 중년 여성은 기가 약해져서 그런가 하고 보약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녀는 친한 친구와 통화로 보약을 알아보며 무심히 걸레질을 했다.
쿵 끼잉-
그때 안방에서 나무 소리가 들렸다.
중년 여성은 전화를 끊고 안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방의 장롱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아유. 이사를 하면서 장롱을 바꿀 걸 그랬나.”
중년 여성은 중얼거리며 장롱에 다가가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돌아서 방을 나가려 했다.
끼이잉-
그때 다시 장롱문이 열렸다.
방문 앞에 선 중년 여성은 장롱을 빤히 바라보다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다가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돌아서자마자 다시 문이 열렸다.
“뭐가 걸렸나.”
중년 여성이 장롱을 활짝 열어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이불에 걸터앉아 있는 검은 피부의 귀신이었다.
“꺄아아아악!”
중년 여성은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 * *
식구들이 모두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에 중년 남성은 자신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 구석구석을 뒤져보고 깨끗이 청소를 했다.
그리고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십자가를 곳곳에 놓아 귀신을 쫓아내려 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쓸모없는 짓이었다.
스르르 잠에 든 중년 남성의 머리 위로 검은 피부의 귀신이 나타났다.
인기척에 잠에서 깬 중년 남성은 이 귀신의 피부와 외모를 정확히 볼 수 있었다.
피부가 검은 것은, 흑인이 아니라 불에 완전히 타 쪼그라들었던 것.
고기가 탄 것과 같은 형상이었다.
그리고 눈도 징그러울 정도로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중년 남성은 최대한 이성을 찾으려 정신을 집중시켰다.
귀신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커걱! 커걱!”
중년 남성은 경련을 일으키며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때, 옆에서 소리를 들은 중년 여성이 번뜩 잠에서 깨 남편을 흔들었다.
이내 귀신은 소멸되었고, 남편은 숨을 쉴 수 있었다.
* * *
이후로도 식구마다 귀신에 대한 목격담이 자꾸 늘어만 갔다.
이에 중년 여성은 집을 소개해준 공인중개사에 쫓아가 항의를 했다.
하지만 공인중개사는 귀신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웃 주민들 역시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기는 했지만 그렇게 크게 시끄러웠던 적은 없다는 말을 했다.
공인중개사는 자신의 이득과 처벌 회피 때문에, 이웃 주민들은 동네 이미지와 집값 때문에 솔직히 말해주기를 피하는 분위기였다.
중년 부부는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구마사제와 무당, 스님들을 번갈아 부르면서 처리를 하려 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성공했다고 말한 후 돌아갔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들이 퇴마를 하고 간 바로 그날 밤에도 귀신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집을 내놓을까 생각을 했지만 현실적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집을 내놓고 팔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며 익숙해지는 듯했지만 가족 구성원 모두 살이 급격하게 빠지고 있었다.
귀신을 보지 않는다 하더라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자꾸 몸이 피곤에 찌드는 것이었다.
병원에 가도 뚜렷한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 * *
이야기를 들은 우재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현수를 보았다.
“가족들 살이 빠지고 잠을 못 자는 건 귀신이 기를 뺏어가고 있어서야.”
수정이 말했다.
그러자 현수가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말을 풀어갔다.
“가족들의 건강이 안 좋아지고 피곤한 건 귀신이 기운을 뺏어가서 그렇습니다.”
“그 이야기는 무당도 하더라고요.”
중년 부부는 더 이상 무당, 퇴마사의 이야기를 믿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했다.
“불에 탄 모습이었다고요?”
“네.”
“그렇다면 죽었을 때 그 모습이 그대로 투영이 되고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이 아파트에서 화재 사건이 났었나요?”
“들은 적은 없어요.”
중년 부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 번 집을 확인해 봐야겠네요.”
현수가 우재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우재석은 마무리 멘트를 하며 PD에게 사인을 주었다.
“컷! 오케이!”
김PD가 소리치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경직되어 있던 스태프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음 촬영장소로 이동을 좀 해볼까요?”
조연출이 중년 부부에게 다가가 말했다.
그 사이 우재석은 현수와 화진을 챙겼다.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 같아요. 멘트도 부드럽고.”
“하하. 감사합니다.”
이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모든 장비들을 철수시킨 후 성장아파트 단지로 다시 이동했다.
* * *
성장아파트 108동 1003호
하늘색 현관문이 보이는 가운데 카메라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동 호수는 노출되지 않게 모자이크 처리할 거니까 걱정 마시고. 그럼 멘트 시작할게요. 지금부터 원테이크로 쭉 뽑을 겁니다.”
김PD가 손가락으로 OK사인을 하고 말했다.
우재석이 고개를 끄덕인 후 숨을 크게 들이켰다.
“네! 지금 저희는 제보자분들이 고통을 호소하시고 계신 자택 앞에 나와 있습니다. 음. 이 앞에서부터 약간 오한? 같은 것이 느껴지는데요. 어떤가요, 박현수 씨?”
우재석의 말에 현수는 EMF 탐지기를 꺼내들었다.
“이건 귀신의 기운을 탐지할 수 있는 EMF 탐지기인데요. 전자기파를 탐지하는 용도로 나왔는데 심령 현상도 포착할 수 있다고 해서 많은 공포 콘텐츠 스트리머분들이 애용하고 있습니다. 보시면 지금 불이 세 개 정도 올라가죠.”
현수가 LED 불빛을 가리켰다.
“세 개 정도면 귀신이 있다는 건가요?”
“귀신이 있을 수도 있고, 주변에 있는 핸드폰이나 카메라의 전자기파일 수도 있는데요. 산이나 폐가에서는 전자기파가 감지될 일이 없으니 세 개 정도면 귀신의 징조로 보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바로 판단할 수는 없죠.”
현수는 EMF 탐지를 든 채로 현관문을 보았다.
이곳에서는 그 어떤 귀신도, 귀신의 기운도 보이지 않았다.
한 마디로 지금 탐지기에 잡힌 불빛은 귀신의 기운이 아니라 전자기파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화진이 심령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이건 캡틴 퇴마 박현수 님께서 일전에 저한테 빌려주신 심령카메라 어플인데요. 이걸로 한 번 볼게요.”
화진 역시 문 쪽에 귀신의 기운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연출의 흥미를 위해 일부러 심령카메라를 가동시켜 문을 촬영했다.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포착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귀신을 찾아갈 거고요.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겠습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중년 부부는 문의 잠금을 푼 뒤 활짝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