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2화
# 운정궁 귀신 (4)
끼히히히힛 끼히히히힛
문 너머로 점점 가까워져 오는 고스트돌의 웃음소리.
그리고 안시문에서 붉은 LED 눈을 번쩍이며 웃는 고스트돌의 웃음소리.
대근문을 넘어온 무언가가 고스트돌을 들고 안시문으로 접근해 온다는 걸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현수와 화진, 세정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꾸우우웅
그때, 안시문이 살짝 흔들리더니 검은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손에 들린 고스트돌은 붉은빛을 번쩍이며 웃고 있었다.
“누, 누구냐!”
화진이 부적 봉을 꽉 쥐며 물었다.
현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모자를 푹 눌러쓴 얼굴.
그의 손에 들린 고스트돌의 붉은빛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안광.
검은색 점퍼와 검은색 바지.
그리고 발밑에 놓여 있는 또 다른 고스트돌.
그의 손과 발에 있는 고스트돌 불빛에 그의 온몸이 붉게 보였다.
“이런 장난감들을 가지고 뭘 하는 거냐?”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자 현수와 화진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바로 허태훈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몸에는 악귀과 완벽하게 들어앉아 있는 상태였고, 그에 따라 고스트돌이 반응한 것이었다.
툭
허태훈이 발밑에 있던 고스트돌을 툭 찼다.
끼히히히힛
붉은 불빛을 번쩍이며 웃는 고스트돌이 현수의 앞으로 굴러왔다.
“요새 잘 나가는 것 같더라고. 스트리머 씨?”
허태훈이 기괴하게 웃으며 손에 들린 고스트돌을 비틀었다.
꽈득
고스트돌의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며 케이블이 늘어져 나왔다.
동시에 붉은 불빛과 웃음소리도 멎어버렸다.
- 뭐야 ㅅㅂ 진짜 허태훈이야???????
- 잘 안 보여
- 허태훈 맞음????
- 현상수배범 허태훈????
-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음?
- 예전에 부산에서 캡틴한테 한 방 맞고 체포 됨.
- 악귀 쓰인 사람임.
시청자들도 흥분한 모습이었다.
“아니, 그 관리인 아저씨가 지키신다고 했는데.”
“누가? 누가 어딜 지켜?”
허태훈이 웃으며 물었다.
순간 현수는 그의 손에 들린 과도를 보았다.
과도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설마?’
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 퇴마사 님. 방송은 잘 보고 있는데, 이번엔 귀신보다 사람이 무섭다는 걸 보여줄게.”
허태훈이 현수에게 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현수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휙 던졌다.
“잠깐! 이거 봐!”
마치 동료들끼리 물건을 전달해주듯 가볍게 던지는 모습에 허태훈이 바로 낚아챘다.
하지만 그건 현수의 페이크였다.
허태훈이 낚아챈 것은 스프링텐션 수류탄이었다.
손으로 받으면서 충격이 가해지자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
빠각-
플라스틱 소리와 함께 팥가루가 사방으로 확 튀었다.
“크악!”
허태훈이 괴로운 듯 얼굴을 감싸며 뒤로 물러섰다.
“도망쳐요!”
현수와 화진, 세정은 안도당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님?
- 신고하고 있어요.
- 운정궁에 허태훈이 나타났다고 말하면 될 듯.
- 경찰 신고 했어요.
- 경찰 ㄱㄱㄱㄱㄱ
시청자들이 대신 신고를 해주었다.
하지만 경찰이 오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상황.
그때까지 현수 일행은 버텨야 했다.
*
콜록 콜록 콜록
안시문 앞에 서서 기침을 하던 허태훈이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현수 일행은 이미 사라져있었다.
“에헤이. 이 새끼들이.”
그는 예상했다는 듯 핸드폰으로 방송을 켰다.
현수의 방송에서는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장면이 그대로 송출이 되었다.
“늬들이 돈을 포기하고 방송을 끌 테냐? 키득.”
그는 방송으로 현수의 위치를 확인하며 걸음을 옮겼다.
한편, 안도당 안에 숨어든 현수와 화진, 세정은 손전등을 끄고 숨을 죽였다.
그 사이에도 방송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직도당에서 보았던 그 귀신들이 갑자기 도망친 게, 우리 때문이 아니라 악귀가 오니까 겁먹고 도망간 것 아닌가 싶네요.”
현수가 마이크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그럼 귀신들은 악귀가 오고 있다는 걸 눈치 챘었다는 거네요?”
“아마도요?”
현수가 수정을 보았다.
“온다.”
수정이 창호 쪽을 보며 중얼거렸다.
쿵
끼걱-
이내 방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 허태훈 방송 보고 쫓아오네.
- 방송 방송ㅋㅋㅋㅋㅋㅋㅋㅋ
- 나 여기 있어요- 라고 소리치고 다니는 격ㅋ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 중 일부는 허태훈이 방송을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예전부터 수시로 올라오던 채팅 아이디 h2918401가 허태훈이라는 소문이 이미 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지금 상황 심각해 보이는데 그만들 웃죠.
- 분파 좀 하셈.
- 분파 뭐임?
- 분위기 파악??
- 말투 ㅈㄴ아재ㅋㅋㅋㅋㅋㅋ
- 지금 그런 거 따질 때냐.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하자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분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현수는 자신의 힙색과 솔트샷건, 수류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뭐 하시려고요?”
화진이 속삭여 물었다.
“경찰들이 오기 전까지 저 놈은 계속 우릴 쫓아올 거예요. 제가 최대한 막아볼 테니까 캠핑님하고 세정님은 여기 나가서 악수문 쪽으로 가세요.”
“악수문? 향로당으로 가는 길이요?”
“네. 안시문, 직도당 쪽은 놈이 온 길이잖아요. 그쪽으로 가는 길에 놈이 있을 거예요. 반대쪽으로 도망쳐야죠.”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위험해요.”
화진이 현수의 옷자락을 잡았다.
“지금은 별수 없어요. 방송은 유지하세요. 증거자료는 최대한 남겨야 하니까.”
현수가 화진과 세정을 보며 말했다.
- 오오오오오올 캡틴 졸 멋있다!!!!
- 방송 초창기 캡틴이 아님.ㅋㅋㅋㅋㅋㅋ 주짓수로 단련된 몸임ㅋㅋㅋㅋㅋ
- 악귀하고 다이다이 뜨는 거 보고 싶은데.
- 다들 분위기 파악 좀 하세요. 연쇄 살인마가 쫓아오고 있는 거라니까????
- 100000 파워챗
- 파이팅
아이러니한 점은, 상황이 급박할수록 후원도 많이 터지는 것이었다.
끼걱 끼걱-
마룻바닥 나무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허태훈은 자신의 발걸음 소리를 죽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현수 일행이 공포에 떠는 걸 즐기는 모양새였다.
“제가 신호를 주면 바로 여기를 나가서 악수문으로 뛰어요.”
현수가 다시 말했다.
화진과 세정은 긴장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끼거억 끼거억-
발걸음 소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이내 창호지로 덧댄 커다란 창호 문 앞으로 언뜻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현수는 자세를 낮추고 있다가 있는 힘을 다해 돌진했다.
콰직-
현수는 창호 문을 부수면서 튀어나와 허태훈에게 태클을 걸었다.
콰앙-
이어 허태훈의 허리를 감싼 채로 복도 쪽 나무 외벽을 부수고 튀어 나갔다.
꽈당-
현수와 허태훈이 서로 껴안은 채 안도당 앞마당에 나뒹굴었다.
둘은 순식간에 흙투성이가 되었다.
“달려요!”
현수가 소리쳤다.
화진과 세정은 현수가 부순 외벽을 넘어 바로 다음 문으로 달려갔다.
세정의 카메라에는 허름한 한옥 앞 흙 마당에서 몸싸움을 하고 있는 현수와 허태훈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 저걸 찍어야지 저걸!
- 그러다 죽으면 님이 책임짐?
- 이걸로 돈 버는 사람 아님??
- 싸패냐 진짜.
시청자들의 분탕을 뒤로 하고, 화진과 세정은 악수문을 지나 향로당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말라버린 작은 연못과 사방이 뚫린 커다란 정자가 놓여있었다.
연회를 위해 마련이 된 곳인 만큼 유유자적한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하지만 잔뜩 쌓인 먼지와 거미줄.
그리고 곳곳에 보이는 귀신의 기운들이 을씨년스러움을 더했다.
텁!
앞마당에 나뒹굴며 땅에 떨어졌던 과도 위로 피투성이의 손이 얹어졌다.
허태훈의 손이었다.
그는 과도를 집어 들고는 현수를 찌르려 했다.
“큭!”
현수가 온 힘을 다해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두 팔이 파르르 떨렸다.
‘이 나이에 이런 힘을 발휘하는 게 말이 돼?’
현수는 허태훈의 얼굴을 보았다.
족히 70세는 넘어 보이는 외모.
깡마른 몸.
힘이 나올 구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근육질에 주짓수까지 훈련하고 있는 현수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힘겨루기를 하면 내가 지겠어!’
현수는 체중을 옆으로 몰며 몸을 틀었다.
쿠당탕
그러자 둘은 다시 한번 뒤엉키더니 자리가 바뀌었다.
허태훈이 현수의 몸 위에 올라앉은 것이다.
“멍청한 녀석! 실전 경험은 전혀 없구나.”
그는 과도를 들고 체중까지 실어 현수를 찌르려 했다.
“큭!”
현수가 두 팔로 허태훈의 손목을 막았다.
하지만 과도는 점점 현수의 얼굴 앞으로 다가왔다.
이내 예리한 칼끝이 현수의 눈앞에까지 왔다.
“악귀에게 죽은 사람은 100% 귀신이 되는 거 알지? 이수정 그년처럼 말이야. 키히힛!”
허태훈이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회색 아우라를 뿜어냈다.
현수는 눈을 돌려 수정을 보았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
현수는 의구심이 들었다.
다른 귀신들은 물건을 떨어트리는 등의 약간의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 수정은 왜 못하는가.
지금 이때, 그녀가 도와주면 상황이 역전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수정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아는지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빠각-
그 순간이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허태훈이 옆으로 나뒹굴었다.
“엇!”
현수가 옆을 보자 화진이 부적 봉을 든 채 서있었다.
달려와 허태훈을 후려친 것이었다.
“멋있는 척 다 하더니 무슨 꼴이에요!”
화진이 현수의 어깨를 붙잡고 일으켰다.
둘은 바로 악수문으로 뛰어갔다.
“이 새끼들이!”
꽤 데미지를 받은 허태훈이 욕을 내뱉으며 일어났다.
부적의 효과가 확실히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쾅!
현수와 화진이 악수문을 넘자마자 닫아버렸다.
그러고는 체중을 실어 문을 밀었다.
쾅! 쾅!
이내 쫓아온 허태훈이 악수문을 힘으로 열려 했다.
현수와 화진은 충격에 뒤로 밀렸다가도 다시 문을 밀어 버텼다.
세정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장면을 촬영했다.
현재 시청자 601918명.
순간 시청자가 60만 명을 넘어섰다.
연쇄 살인마 허태훈이 등장한 이후로 엄청나게 폭증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뉴스 속보 때문이었다.
[속보] 운정궁에 연쇄 살인마 허태훈 나타나.
[속보] 스트리머 캡틴 퇴마 채널에 허태훈 발견해.
[속보] 허태훈 발견 실시간 생방송 중.
허태훈이 생방송에 나타나자마자 인터넷 신문 기자들이 이 소식을 신문사에 송고했고, 뉴스 플랫폼에서는 속보로 꾸려 사람들에게 앱 푸시를 쏜 것이었다.
자신들의 기사 조회 수를 위한 조치였지만 동시에 현수 방송이 또 한 번 떡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쾅 쾅 쾅
문을 열려는 허태훈의 힘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한 현수는 등으로 문을 밀며 수류탄을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악수문의 아래 틈으로 세게 던져 넣었다.
빠각-
수류탄이 터지며 팥가루가 확 퍼졌다.
그러자 쾅쾅-거리던 문소리가 뚝 끊겼다.
현수는 화진의 손을 잡고 바로 세정에게 달려갔다.
“달려요! 달려!”
달려오는 둘을 촬영 중인 세정에게 소리쳤다.
순간 세정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악수문을 가리켰다.
달리던 현수와 화진이 멈춰 뒤를 돌아보았다.
“미치겠네.”
허태훈은 악수문 옆 담장을 훌쩍 넘어 가열하게 내달려오고 있었다.
“저 끈질긴 놈!”
현수가 솔트샷건을 쏘았다.
허태훈은 영화 속 닌자처럼 옆으로 슥 피한 뒤 순식간에 접근해 왔다.
화진이 기다렸다는 듯 봉을 휘둘러 허태훈을 가격했다.
뻐억-
허태훈이 옆으로 날아가 돌로 된 담장에 부딪쳤다.
“다 죽여 버리겠어!”
그는 버럭 소리쳤다.
눈에 보이는 광기와 완력.
도무지 퇴마를 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도망갑시다. 일단 도망가요.”
현수 일행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경찰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뿐이었다.
그때였다.
웨에엥- 웨엥-
경찰 사이렌 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