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만 스트리머 퇴마사-131화 (131/227)

제131화

# 운정궁 귀신 (3)

현수는 부서진 창호 너머 대근문을 보았다.

하얀 소복에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여자 귀신이 서있었다.

미디어 속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처녀귀신’의 모습이었다.

저렇게 전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처음이었다.

“어머.”

화진도 처녀귀신을 보고는 놀란 듯 중얼거렸다.

그 사이 세정이 처녀귀신 쪽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 저거 하얀 거 뭐예요??

- 귀신이에요.

- 귀신귀신쉬기니귀시니귀신귀신

- 귀신이요.

- 오늘도 뭔가 더 선명해 보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때 악귀 선명히 촬영된 이후로 우리가 괜히 선명하게 보는 걸 수도 있음.

시청자들도 이제 귀신의 형체를 어느 정도는 구분을 할 수 있었다.

색상만으로 악귀와 귀신을 구분하는 것이 아닌, 실루엣을 보고 인체 형상을 떠올릴 수 있는 수준인 것이었다.

- 150만 구독자 축하합니다.

- 150만 구독 축하!!!!

- 방금 돌파했어요!!!!!

- 오오오오오 우리 캡틴님 150만 돌파 축하!!!ㅋㅋㅋㅋㅋㅋㅋ

- ㅋㅊㅋㅊㅋㅊㅋㅊㅋㅊㅋㅊㅋㅊㅋㅊㅋ

그때였다.

세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캡틴님. 지금 구독자 150만 넘었대요.”

그녀의 말에 현수가 깜짝 놀라 세정을 보았다.

프랑스 촬영 이후 130만, 140만을 갓 넘어가는 것을 확인하긴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150만 명을 넘기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귀신을 코앞에 둔 생방송 중에 150만 명 돌파라니.

현수는 여기에 코멘트를 해줘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여전히 대근문에 귀신이 있는 상황.

- 르브레 성 클립하고 그 악귀 제대로 찍힌 거 영상. 개떡상함ㅋㅋㅋㅋㅋㅋㅋㅋ

- 악귀 그 영상은 진짜 역대급이었음.

- 그거 엄청 떡상했어요.

시청자들도 감정이입을 했는지 흥분해서 거들었다.

운정궁 촬영을 마무리한 후 확인을 해보고서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르브레 성에서의 촬영이 나름대로 구독자 수 증가의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생방송 당시, 50만 명에 가까운 ‘순간 시청자’를 기록하긴 했지만 ‘지속 시청자 수’는 다른 영상에 비해 다소 짧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50만 명의 시청자 수는 계속 유지가 되었다.

한 마디로 짧게 스치듯 들어왔던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전 세계 너튜브 이용자들 중 많은 사람들의 시청 기록에 현수의 르브레 성 방문 촬영 영상이 남게 되었고, 그것은 곧 알고리즘 작동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높은 조회 수를 보이고 있던 현수의 다른 영상들을 비롯해 르브레 성의 영상 편집본과 쇼츠 영상.

무엇보다 악귀가 선명하게 촬영된 바로 그 쇼츠 영상이 주목을 받으면서 수천만에 이르는 조회 수를 한 번에 기록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구독자 상승으로 이어졌다.

라미로브에서는 해외 시청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현수의 모든 영상에 자막 작업을 진행했고, 생방송이든 편집영상이든 쇼츠든, 외국인들이 보기에도 굉장히 편리했다.

많은 외국인들이 현수 영상에 열광했고, 영상 댓글에는 각 나라의 언어들이 엄청나게 많이 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이러한 현상이 빠른 시간 내로 구독자를 10만 명 이상 모집하게 된 요소가 되었다.

“150만 구독자 감사드립니다. 어우. 이 정도 숫자면 구독자 수 카운트 생방송을 해야 하는데 지금 현장에 있으니 이렇게-”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말하다 부서진 창호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으악!”

대근문 앞에 서있던 귀신이 창호 앞까지 와있었다.

깜짝 놀란 현수가 뒤로 물러나다 뭔가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꽈당-

나무 바닥에 넘어지면서 옆에 있던 협탁이 부서졌다.

“큭!”

화진이 부적 봉을 높이 들자 귀신은 가만히 선 모습으로 물러났다.

세정의 카메라는 현수와 화진, 그리고 귀신이 사라진 창호를 번갈아 촬영했다.

“괜찮아요?”

화진이 현수를 일으키며 물었다.

“아, 네. 문턱에 걸렸네요.”

현수가 바닥을 가리켰다.

방문 밑에 난 문턱이 발목까지 올라와 있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최고의 리액션이었닼ㅋㅋㅋㅋㅋㅋ

- 150만 리액션으로 충분하넼ㅋㅋㅋㅋㅋㅋㅋ

정작 이것이 시청자들은 더 만족해하고 있었다.

“여기 피나요.”

화진이 현수의 팔꿈치를 보며 말했다.

넘어지면서 긁혔는지 붉은 피가 주륵 흘러나고 있었다.

“잠시만요.”

세정이 자신의 가방을 뒤적이더니 반창고와 붕대를 꺼냈다.

현수가 쳐다보자 세정이 엄지를 들었다.

“이런 방송 현장 스태프인데 응급처치 도구 정도는 가지고 있죠.”

그녀의 말에 현수도 미소를 지어주었다.

“가만있어 봐요.”

화진이 현수의 팔에 응급처치를 해 주었다.

현수는 정신을 집중해 반창고를 붙이고 붕대를 감고 있는 화진을 빤히 보았다.

“왜요?”

“아, 아니에요.”

현수는 손사래를 치며 이동할 준비를 했다.

*

직도당 앞마당에 선 현수와 화진은 카메라 앞에 나란히 섰다.

“이 내부를 살펴봤을 때엔 크게 특이한 점은 없었습니다. 귀신이나 악귀가 서려 있는 물건이 있는 것 같지 않았고요. 다만 대청마루 아래에 귀신이 보였다는 점이 조금 특이하네요.”

현수가 직도당을 가리키며 말했다.

“대청마루 아래 귀신이 나올 수가 있나요?”

화진이 물었다.

“어디서든 귀신이 나올 수는 있죠.”

현수는 옷의 먼지를 털며 쪼그려 앉아 직도당의 마루 아래를 보았다.

아까 보았던 마루 밑 귀신이 현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기. 저기요.”

현수가 세정을 보고 마루 밑을 가리켰다.

이에 세정과 세정의 카메라, 화진 모두 쪼그려 앉아 마루 밑을 촬영했다.

엎드려서 현수 일행을 빤히 보고 있는 귀신.

하얀 피부에 시커먼 눈. 보라색 입술. 회색 머리카락.

악귀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소름끼치는 외모였다.

“얼굴과 덩치로 봤을 땐 한 10살? 11살쯤 되어 보여요.”

현수가 마루 밑을 보며 중얼거렸다.

- 보인다 보여!!!!

- 엎드려서 턱 괴고 있는 건가??

- 턱 괴고 있는 것 같진 않은데??????

- 그럼 어떤 자세로 있는 거임??

시청자들은 마루 밑에 보이는 하얀 형체를 보며 서로 토론을 했다.

“저희가 엎드려서 만화책 볼 때 하는 자세 있죠? 지금 그 자세로 있습니다.”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말해준 뒤 다시 대청마루 밑을 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파바바바바밧

마루 밑 귀신이 마치 포복하는 군인처럼 기어오기 시작했다.

“으앗!”

현수와 화진이 모두 놀라 뒤로 넘어졌다.

세정 역시 뒤로 넘어졌지만 카메라는 그대로 마루 밑을 향하고 있었다.

격렬하게 흔들리는 화면 앞으로 귀신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장면은 굉장히 긴박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이 되었다.

생방송 송출용 카메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앞에 있는 현수와 화진이 뒤로 넘어지고, 세정의 카메라도 요란하게 흔들리는 바로 이 장면.

생방송 송출 화면 하단에 나오는 심령카메라 화면은 새하얀 귀신의 형체를 정확히 포착했다.

심지어 카메라에 얼굴을 들이밀며 반투명 이목구비가 정확히 잡힌 것이었다.

르브레 성에서 촬영 되었던 악귀보다도 조금 더 선명한 느낌이었다.

- 와 씨 깜짝이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봤음? 봤음? 봤음?

- ㅓㅜㅑ.....

-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대환장파티네

시청자들의 격앙된 반응과 함께 파워챗 후원도 연이어 터져 올라왔다.

“후아.”

현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귀신이 기어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귀신은 옆쪽 안시문을 그대로 통과해 지나갔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죠.”

현수가 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우. 여기는 위협적인 귀신은 없는데 사람을 엄청 놀라게 하네요.”

화진도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아마 저희를 보고 놀란 것 같습니다.”

현수가 안시문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네?”

“어린 아이나 동물이나 벌레들 보면 갑작스러운 뭔가가 다가오면 놀라서 파르르 도망치잖아요.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아. 저 귀신 분들을 동물이나 벌레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

현수가 화진에게 말하다 카메라를 보고 손사래를 쳤다.

- 나락갈 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나

- 락

- 나

- 락

- ㅋㅋㅋㅋㅋ무슨 맥락인지 이해합니다.ㅋㅋㅋㅋㅋ

“이동하죠.”

현수가 솔트샷건을 쥐어 들었다.

앞으로는 놀라게 하면 쫓아내겠다는 것이었다.

“네.”

화진이 현수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세정은 언제나처럼 이 둘의 뒷모습을 촬영했다.

*

현재 시청자 수 210977명.

채팅이 얼마나 빨리 올라오는지 파워챗이 아니면 제대로 읽지도 못할 수준이었다.

그래서인가 짤짤이처럼 1000원짜리 파워챗이 쉬지 않고 터졌다.

그렇다보니 1000원짜리 파워챗의 텍스트를 읽기에도 너무 빨리 지나가 버리는 상황이 되었다.

어차피 야외 현장 방송 중에는 채팅에 일일이 반응을 해주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중요한 요청사항이나 정보는 확인해야 했다.

세정은 아무래도 조용한 곳에서 채팅을 확인하는 서브 매니저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우우웅-

그 사이 현수가 안시문을 활짝 열었다.

“이 문은 안시문이에요. 여기 있는 건물이 ‘안도당’인데요. 이 운정궁에 머물렀던 분들이 실제 기거하고 생활하셨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당도 이 안에 있고요.”

현수는 손전등으로 안도당을 슥 비췄다.

조금 전 도망친 직도당 마루 밑 귀신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스멀스멀 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올라오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도 귀신이 머물고 있음은 분명했다.

다만 어떤 귀신일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했다.

현수는 안시문에도 고스트돌을 하나 놓은 뒤 안도당으로 천천히 접근했다.

확실히 직도당에 비해 훨씬 넓은 규모였다.

현수 일행은 조심스럽게 안도당으로 들어가 방을 하나하나 수색을 해나갔다.

전체적인 풍경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살림과 집기라고 할 것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인데다가 관리인에 의해 출입까지 완벽하게 통제되어 있던 지라 먼지와 거미줄, 부식된 나무 구조물을 제외하면 확인할 것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촬영은 제법 심심하게 진행이 되었다.

직도당에서 현수를 놀라게 했던 귀신을 이외에는 그렇다 할 임팩트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세정은 이런 상황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얀 아지랑이들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지만 정작 귀신들을 나타나지 않는 상황.

EMF 탐지기로도 다섯 개 불빛이 모두 들어왔지만 한기만 흘릴 뿐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끼히히히히히히힛-

멀리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방금 온 직도당 방향이었다.

“무슨 소리죠?”

화진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세정도 고개를 갸웃하며 방금 지나온 안시문과 현수, 화진을 번갈아 촬영했다.

“고스트돌 소리예요.”

현수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까 그 처녀귀신인가요?”

화진이 물었다.

“글쎄요. 거기에 자기를 인지하는 인형이 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또 거길 지나갈까요?”

현수가 되물었다.

화진과 세정은 심각한 표정으로 안시문 쪽을 보았다.

끼히히히힛

그 순간, 방금 현수가 놓은 안시문의 고스트돌이 붉은 눈을 번쩍이며 웃기 시작했다.

대근문의 고스트돌을 울린 무언가가 안시문까지 접근해오는 것이었다.

현수와 화진이 각자 장비를 들고 비장하게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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