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화
# 샹보르 르브레 성 (5)
현재 시청자 수 510974명.
너튜브 실시간 모니터링 방송팀과 라미로브 관계자들은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채널에서 50만 명이 넘는 생방송 시청자를 기록하다니.
이는 라미로브 창설 이래 단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물론 배경도 프랑스고, 외국인들의 시청률이 높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들 입장에서 외국어로 방영되고 있는 영상에 불만을 표하는 채팅이 계속 올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시청자들은 계속 유입되고 있었고, 일부 시청자는 고글 번역기까지 틀어놓고 영상을 보았다.
파워챗 후원 역시 역대급을 이루고 있었다.
웬만한 중견기업급 스트리머들의 한 달 치 수익이 단 한 번의 방송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는 국내 시청자들의 후원도 후원이지만, 환율차이가 나는 다른 외국인들의 후원이 줄을 이루는 원인도 있었다.
이에 라미로브 김창수 과장은 다른 직원의 호출을 받고 잠자리에서 비척비척 일어나 실시간 방송을 확인해야 했다.
급하게 문자로 들어온 보고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창수 과장에 눈에 들어온 숫자는 시청자 50만 명.
외국어와 한국어가 수시로 올라오는 채팅.
이어 흡사 채팅처럼 쉬지 않고 올라오는 파워챗 후원 알림.
철컥
동시에 솔트샷건과 슬링샷을 장전하는 현수와 방고리.
부적 봉을 들고 전투 자세를 취하는 너도캠핑 화진.
투박한 인테리어의 방.
- 현재까지 후원금 5억 돌파했어요.
한참 핸드폰으로 방송을 보고 있는 김창수 과장에게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마, 마, 맙소사.”
그는 놀란 표정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 * *
“결국 여기서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거네요.”
화진이 말했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다 추론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아요. 저 흑사병 의사 악귀들이 왜 우리를 쫓는지는 몰라도 강한 한기로 봤을 땐 적의를 품고 있는 건 분명해요.”
현수가 말하자 옆에서 수정이 거들었다.
“너희들도 흑사병에 걸려 있다고 보는 거야. 아니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사람들이 흑사병 환자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잡아서 죽여야 한다고 여기는 거고.”
수정의 말에 방고리와 화진이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웬일로 미주알고주알 다 말씀해주신대요?”
현수가 수정을 보며 물었다.
“진짜 네가 위험해 보여서 말이야.”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고 대답했다.
그리고 아주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그녀가 말을 이었다.
“네가 선택을 하고 거기에 책임을 질 때까지 아무 말 안 하는 대원칙이 있기는 했는데 말이야. 어차피 여기서 뭔가 더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없어 보이고. 탈출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여기 있는 귀신이나 악귀하고는 이야기 해봤어요?”
“아무리 말 걸어도 대답 안 해. 무슨 표정인지도 알 수가 있어야지. 저 부리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수정이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일단 이 성을 탈출하고 나서, 그러고 다음을 계획해봅시다.”
현수가 닫힌 문 앞에 딱 서서 말했다.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현수를 보았다.
“하나, 둘, 셋!”
현수가 카운트를 센 뒤 문을 발로 찼다.
콰아아앙
그러자마자 부리 마스크를 쓴 악귀가 얼굴을 대뜸 밀어 넣었다.
팡
현수는 기다렸다는 듯 방아쇠를 당겼다.
사아아아아아
악귀가 뒤로 흩어졌다.
이어 다른 쪽에서 다른 흑사병 의사 악귀가 덤벼들었다.
방고리가 쏜 팥알이 악귀의 이마를 뚫고 지나갔다.
동시에 화진의 부적 봉이 악귀들을 공격하자 주변에 몰려오던 악귀들이 흩어져 벽과 천장으로 도망쳤다.
이들은 바로 계단을 향해 내달렸다.
다다다다다다
뒤에서 흑사병 의사 악귀들이 모습을 갖추더니 마구 쫓아왔다.
세정은 도망가면서도 현수와 뒤쪽을 번갈아 촬영하는 프로 정신을 보여주었다.
“캡틴님!”
맨 뒤에 있는 화진이 소리쳤다.
그러자 현수는 품에 걸쳐 놓았던 스프링텐션 수류탄을 던져주었다.
탁
수류탄을 받은 화진이 바로 쫓아오는 악귀들을 향해 던졌다.
퍽
팥가루가 퍼지며 악귀들이 다시 흩어졌다.
그 사이, 일행들은 2층을 지나 1층에 도달하는 데에 도착했다.
현수가 바로 정문으로 달려가 열어보았다.
덜컹 덜컹
역시 문이 잠겨 있었다.
사아아아아
눈보라가 몰아치는 정도의 강렬한 한기와 함께 흑사병 의사 악귀들이 사방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비켜 봐요.”
화진이 품에서 손도끼를 꺼내더니 문고리를 내리찍었다.
퍼석
문고리 주변이 부서졌지만 열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밖에서 쇠사슬과 자물쇠로 잠가놓은 것이 보였다.
밖에서도 따지 못했던 바로 그 자물쇠였다.
둘이 여기서 문과 씨름하는 사이, 방고리는 정문 옆에 있던 쪽문을 열어보았다.
덜컹 덜컹
하지만 이 문도 열리지 않았다.
현수와 화진이 달려가 힘으로 밀어붙여 보았다.
하지만 밖에서 뭔가 걸려 있는 듯했다.
“저, 저기요!”
세정이 뒤에서 외쳤다.
일행이 돌아보자, 흑사병 의사 악귀들이 코앞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다들 코 막아요!”
현수가 외친 뒤 바로 발밑에 스프링텐션 수류탄을 던졌다.
빠각
플라스틱 깨지는 소리와 함께 팥가루가 확 퍼져나갔다.
악귀들이 다시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 역시도 심령카메라를 통해 송출이 되었다.
회색 형체가 다가오다가 현수의 행동에 뒤로 휙 물러나는 모습이었다.
- 이제는 조작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 이 정도 퍼포먼스가 가능한 조작이 어디 있어.
- 시청자들도 이제 어느 정도는 믿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심령카메라 화면에서 보이는 형체들이 실제 카메라 촬영 화면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으니 이걸 연기라 보기에도, CG라 보기에도 설명이 안 되는 것이었다.
화아아아아
모든 악귀들이 거리를 두고 물러난 사이, 현수는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다시 열었다.
화아아아아
안에서 시큼한 냄새와 함께 찬바람이 피어 올라왔다.
끼기기기기긱
지하 감옥으로 가는 문이 열리자마자 흑사병 의사 악귀들의 태도가 이상해졌다.
고개를 고장난 시계처럼 기괴하게 꺾으며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었다.
현수 일행은 눈을 크게 뜨고 그들을 지켜보았다.
심령카메라 역시 처음으로 상당히 근접한 거리에서 흑사병 의사 악귀들을 촬영해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지금까지 촬영된 그 어떤 악귀보다 선명했다.
흑사병 의사들의 부리 마스크를 쓴 회색 형체들.
고개를 기괴하게 비틀고 있는 것까지 모두 담겼다.
물론 약간은 반투명한 형체였지만 그 윤곽은 제법 선명하게 포착되었다.
“내려가죠.”
현수가 앞장서서 지하로 내려갔다.
일행들은 현수를 따라 내려가며 수시로 뒤를 돌아보았다.
흑사병 의사 악귀들은 더 쫓아오지 않았다.
*
- 캡틴퇴마 채널에서 악령 포착함.
- 너희 봄????? 악귀 포착됨.
- 실시간! 악귀 촬영됨.
- 귀신이 실제로 있었누?????
- 대박. 악령 찍힘.
- 합성ㄴㄴ 조작ㄴㄴ 실제 악귀 포착
커뮤니티 인방 갤러리에는 현수의 방금 영상 스크린샷이 등록되었다.
그리고 구독자들로 보이는 네티즌들의 설명 글도 있었다.
- 심령카메라로 촬영할 때 흰색은 그냥 귀신, 회색은 악귀인데 굉장히 근접한 곳에서 악귀 촬영됨. 자세히 보면 윤곽이 그대로 드러남. ㅅㅂ 이래도 캡틴 퇴마 조작이라 할 거임??
인터넷 여론도 조작에 대한 이야기가 확실히 줄어드는 추세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정작 위험해지는 것은 현수였다.
다시 지하 감옥에 도착한 현수 일행은 긴장한 표정으로 복도를 보았다.
검은 액체를 온몸에 치덕치덕 바른 악귀들이 감옥 안팎에서 나타났던 이 복도.
이곳을 가로질러야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검은 액체에 휘감긴 악귀를 만나면 보통 도망가기에 바빴다.
호장리 수영장에서도, 안보교육관에서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들을 뚫고 지나가야 했다.
현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고오오오오옹-
우우우우우웅-
사방에서 이상한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현수는 주변을 예민하게 살피면서 솔트샷건에 소금을 채웠다.
“이 시큼한 냄새는 대체 뭐죠? 불쾌하게 시큼한 냄새네.”
방고리가 잔뜩 긴장한 자세로 물었다.
확실히 현수가 지금까지 느꼈던 검은 액체의 냄새와는 약간 달랐다.
전에는 뭔가 썩은 냄새 같았다면 지금은 그 냄새에 식초 같은 향이 곁들어져 있었다.
조금 더 불쾌한 느낌이었다.
덜그럭
그때 어두운 감옥 안에서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뭐야!”
방고리가 깜짝 놀라 손전등을 비쳐보았다.
데구르르르
안에서 해골 머리가 천천히 굴러갔다.
누군가 앞으로 굴린 것 같았다.
방고리는 천천히 손전등을 올려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검은 액체에 뒤덮인 악귀가 방고리에게 확 달려들었다.
화악-
순식간에 공격 당한 방고리가 뒤로 날아가 반대편 철창에 부딪혔다.
악귀와의 첫 번째 물리적 충돌이었다.
그 모습은 방송에도 송출되었다.
어두운 가운데 방고리의 몸이 혼자 뒤로 쭉 날아가 버리는 것처럼 촬영된 것이었다.
- 헐!!!!!!!
-뭐임?????
-낚싯줄로 당겼나????
-계속 뒤에서 찍고 있었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함.
채팅도 격렬하게 올라왔다.
“괜찮아요?”
현수와 화진이 다가가 쓰러진 방고리를 챙겨주었다.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악
찬바람과 함께 방고리의 발목을 잡았다.
“으아아악!”
방고리가 마구 허우적거리며 감옥 통로 깊숙한 곳으로 질질 끌려갔다.
현수와 화진이 방고리를 쫓아갔고, 세정과 스태프는 그가 떨어트린 슬링샷을 주워들고 바로 쫓았다.
다다다다다다
지하 감옥은 생각보다 넓었다.
미로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 일행이 없이 왔다면 영락없이 길을 잃을 판이었다.
“방고리님!”
현수가 구석에 쓰러져 있는 방고리를 발견했다.
“아. 아아.”
방고리가 이마를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
악귀에 쓰인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괜찮아요?”
“저는 괜찮은데 다른 분들은-”
방고리가 화진과 스태프들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여기-”
한편, 화진은 방고리가 쓰러져 있던 곳을 손전등으로 비췄다.
“맙소사.”
이곳에는 수많은 해골 머리들이 산처럼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중세풍의 투구들도 한 곳에 지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사람들의 목을 베어 이곳에 모아둔 것이었다.
현수는 순간 자신을 비밀통로로 안내한, 머리 없는 기사를 떠올렸다.
‘이걸 발견하기를 바랐던 건가.’
본능적으로 그가 주고자 했던 메시지가 뭔지 알 수 있었다.
“이게 다 뭐야.”
방고리는 이런 해골 사이에 자기가 넘어져 있었다는 것에 놀랐는지 몸을 털었다.
“우리를 비밀통로로 안내한 귀신이 있었는데 그 귀신이 바로 여길 찾길 바랐던 것 같아요.”
현수가 마이크에 대고 말한 뒤 투구를 살짝 뒤집어 보았다.
플레이트로 된 투구는 무척 육중했고 녹이 슬어 지저분했다.
모양으로 보았을 때 그 목 없는 귀신이 입고 있던 갑옷과 매칭이 될 것 같았다.
그때 투구 밑에 깔려 있는 종이를 발견했다.
무척 오래된 고문서 같았다.
그곳에는 휘갈겨 쓴 듯한 중세 프랑스어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끼기기기기긱
그때 어디선가 악귀 소리가 들려왔다.
현수는 바로 문서를 챙긴 뒤 비밀통로로 향했다.
“이런 데에서 뭘 함부로 가져가면 안 된다며요! 심지어 그게 무슨 ‘명부’ 같은 거면 어떡하려고.”
방고리가 물었다.
“우릴 안내한 귀신은 이걸 찾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일단 나가죠.”
현수가 돌아서 외친 후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