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6화
# 샹보르 르브레 성 (3)
현재 시청자 400003명.
순간 동시 시청자 40만 명 돌파.
엄청난 숫자였다.
지하에 온데다가 어두운 조명 때문에 화질은 많이 뭉개졌지만, 시청자들은 잔뜩 흥분한 상태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게임, 혹은 영화 속에서나 접하던 고성의 비밀 통로와 지하 감옥을 찾아냈다는 것.
마치 유적 탐사를 하는 것처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감옥 곳곳에 나타난 귀신의 형상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해주고 있었다.
구우우우우웅-
감옥 통로에서는 기괴한 울음소리 같은 것이 메아리쳐 들려왔다.
현수 일행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가며 손전등 불빛을 곳곳에 비쳐보았다.
철창 안에는 해골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심지어 천장에서부터 쇠사슬로 이어진 수갑이 늘어져 있고, 그 수갑에는 사람의 손뼈가 매달려 있기도 했다.
천장에 수갑으로 매달려 있다가 그대로 죽어 부패한 것이었다.
지금은 모두 백골이 되어 뼈가 흩어져 있기 때문에 그리 잔인한 장면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상상해보면 무척 끔찍한 곳이 분명했다.
“저건 고문 도구 같죠?”
방고리가 금속으로 된 가시의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 마녀사냥이라도 했었나?????
- 중세시대 고문도구 들이네요.
- 여기서 뭔 일을 했던 거임ㅋㅋㅋㅋ
채팅이 올라왔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옥을 가로질러 걸었다.
사아아아아
천장에서부터 하얀 아지랑이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감옥 안에 귀신의 모습들이 드러났다.
드레스를 입은 귀신부터 중세시대 내복 같은 옷을 입은 귀신까지.
이들은 모두 해골처럼 눈이 움푹 파여 시커멨고 피부는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리고 고문당할 때 그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
끄아아아악-
사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귀신의 비명이었다.
“지금 들려요? 들리세요?”
방고리가 비명소리에 흠칫 놀라며 카메라에 대고 물었다.
- 뭐가 들림???
- 아무것도 안 들림.
하지만 시청자들은 귀신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다.
귀신을 보고 들을 수 있는 현수 일행만 귀신의 비명소리를 똑똑히 들은 것이었다.
“귀신이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이렇게 소리도 들린다고요?”
화진도 놀란 표정으로 현수를 보았다.
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배낭에서 고스트사운드를 꺼냈다.
그러고는 바로 스피커와 연결해 작동을 시켰다.
“지금 귀신의 비명소리들이 들리고 있거든요? 고스트사운드로는 어떻게 들리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현수가 감옥 복도 가운데에 서서 바로 고스트사운드의 볼륨을 올렸다.
세정은 그런 현수와 장비를 손전등 불빛에 의지한 채 계속 촬영을 진행했다.
구오오오오- 오오오오오-
고스트사운드에서는 동굴의 메아리 같은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들리기 시작했다.
현수와 화진, 방고리는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끼기기기기기긱-
이어 고스트사운드에서는 칠판 긁는 것 같은 불쾌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방고리와 화진이 귀를 틀어막고 미간을 찌푸렸다.
- 볼륨 줄여야지
- 아 이 소리 진짜 극혐
- 오랜만에 이 소리 녹화하네.
- 예전에 고스트사운드에서 들렸던 소리예요.
시청자들 중 몇몇이 고스트사운드 소리를 알아듣고 채팅을 썼다.
덜컹 덜컹 덜컹
철창 안에 있는 고문도구들이 흔들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현수와 방고리, 화진은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끄드드드드득
양옆으로 철창이 쭉 펼쳐져 있는 복도 끝에서 검은 실루엣이 움직였다.
현수는 조심스럽게 손전등을 비쳐보았다.
사아아아아아
손전등 불빛을 비춘 곳에는 회색 아우라를 뿜어내는 악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온몸이 검은 진흙에 묻은 것처럼 걸쭉한 액체를 뒤집어 쓴 악귀였다.
그 악귀는 마치 관절이 모두 꺾인 것처럼 팔다리를 기괴하게 꺾여 있었다.
그 모습은 심령카메라를 통해 시청자들이 볼 수 있었다.
회색 마리오네트가 뒤틀려 있는 것처럼.
“저, 저, 저, 저거 뭐야?”
방고리가 슬링샷을 견착하며 중얼거렸다.
쿵
그 순간이었다.
귀신이 있건 철창 감옥 안에서 악귀의 팔이 불쑥 튀어나왔다.
귀신들이 모두 악귀로 변한 것이었다.
“으엇!”
화진과 방고리, 현수는 철창 안에서 튀어나온 팔에 깜짝 놀라며 등을 맞대고 섰다.
악귀들은 감옥에 갇혀 절규하는 죄수들처럼 팔을 뻗고 비명을 질러댔다.
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 소리는 고스트사운드를 통해 선명하게 전달이 되었다.
동굴소리나 칠판 긁는 소리가 나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었다.
드드드드드드
복도 끝에 선 관절 꺾인 악귀가 비틀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현수는 바로 악귀를 향해 솔트샷건을 쏘았다.
팡!
그러자 소금에 맞은 악귀고 뒤로 쭉 날아가 벽에 ‘철퍽’ 부딪쳤다.
하지만 그 악귀는 이내 다시 몸을 추스르고는 다시 다가왔다.
끼기기기긱
이어 천장에서도 악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에도 역시 해골과 같이 생긴 악귀였다.
다른 벽에서도 악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은 마치 먹잇감을 찾은 맹수처럼 현수 일행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방고리가 악귀를 향해 슬링샷을 쏘았다.
핑-
팥알이 빠르게 날아가 악귀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하지만 이들을 막기에는 턱없이 약한 수준이었다.
“도망쳐요. 일단 물러나야 할 것 같아요.”
현수가 솔트샷건을 쏘며 말했다.
그러자 화진이 고스트사운드를 번쩍 들었고, 방고리부터 반대편 복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다다다다다
일행과 촬영스태프 모두 감옥 복도를 가로질러 달렸다.
세정의 카메라는 도망치는 일행들의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담아냈다.
화면이 흔들리니 화질이 더욱 뭉개졌다.
- 잘 안 보여
-무슨 상황임???
-악귀들이 몰려와서 도망치기 시작함.
-왜 안 싸움???
-설명해주겠지.
시청자들은 상대적으로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그 사이, 반대편 복도로 온 현수 일행은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찾았다.
다다다다다
현수를 필두로, 일행들은 계단을 타고 온 힘을 다해 뛰어 올라갔다.
*
쾅!
양쪽으로 여는 커다란 문을 어깨로 부수고 들어가자 커다란 홀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수와 방고리, 화진, 세정, 그리고 스태프들은 홀에 들어서자마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부가 굉장히 깔끔하게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먼지가 쌓여 있고 색이 바란 장식들이 있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그 형체를 모두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세로로 길게 난 창문으로 비쳐 들어오는 달빛은 을씨년스러우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제 안 쫓아오나?”
방고리가 막 뛰어 올라온 계단을 기웃거리며 중얼거렸다.
악귀의 비명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상태였다.
“문 좀 닫을게요. 혹시 모르니까.”
방고리가 부순 문을 대충 세워 계단을 막은 뒤 말했다.
“저 문이 잠겨 있던 그 현관문인가 봐요.”
화진이 굳게 닫힌 커다란 정문을 가리켰다.
그 옆으로는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을 만한 작은 쪽문이 있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이제 좀 화질이 나아졌네.
-지상으로 올라오니 확실히 선명해짐.
생방송 중인 화면도 지상으로 올라오자 좀 나아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까 악귀들하고 왜 안 싸우고 도망친 거예요?”
채팅을 확인하고 있던 세정이 시청자들을 대신해 물었다.
“처음 보는 악귀의 형태였어요.”
현수가 카메라를 보며 대답했다.
“처음 보는 악귀요?”
“네. 끈적한 검은 액체를 흘리는 악귀인데 온몸에 그걸 치덕치덕 바른 악귀는 처음 봤어요.”
“그 액체가 어떤 액체죠?”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호장리 폐 수영장에서 사백안의 악귀를 봤을 때, 그리고 동원훈련장 안보교육관에서 악귀 무리를 봤을 때 그 액체를 봤어요. 저희를 위협할 만한 악귀들에게서 나타난다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현수가 말했다.
- 끈적한 검은 액체???
-타르 괴물 같은 건가???ㅋㅋㅋㅋ
“아, 네. 맞아요. 약간 타르를 온몸에 바른 것 같은 악귀예요. 그리고 악취도 굉장히 심하고요.”
현수의 말에 화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저도 봤어요. 방금 악귀. 뭔가 무섭게 덤벼들지는 않는데 확실히 위협적이었어요.”
- 그래도 싸워야지.
- 초심 잃었누.
현수와 화진이 채팅을 보며 소통하는 사이, 방고리는 벽을 살펴보았다.
횃불을 꽂아놓을 수 있는 거치대가 곳곳에 박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정문 옆으로 횃불용으로 깎아 놓은 나무 장작들이 쌓여 있었다.
“우리 이거 좀 켜볼까요?”
방고리가 장작을 가리키며 물었다.
*
화르르륵
너도캠핑 화진의 아이템을 이용해 횃불을 만들자 방고리가 그 횃불을 벽 거치대에 꽂아 넣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전기 등불을 켠 것처럼 홀이 밝아졌다.
하지만 어른거리는 횃불의 불빛 때문에 모든 사물이 아주 살짝 흐물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와. 멋있다.”
한층 더 밝아진 내부 풍경에 화진이 혀를 내둘렀다.
한쪽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거대한 계단이 있었다.
계단 옆으로는 여러 개의 조각상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천사와 악마, 혹은 동물과 같은 석고 조각상이었다.
그리고 2층에 올라서자마자 보이는 단상에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상이 놓여있었다.
이 성의 주인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모양이다.
“본격적으로 수색을 해보죠.”
현수는 손전등과 솔트샷건, 그리고 EMF 탐지기를 들고 1층부터 수색을 하기 시작했다.
방고리와 화진은 현수를 따라 이동하며 촬영을 도왔다.
1층에는 커다란 주방과 식탁, 그리고 접견실과 같은 커다란 방과 창고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을 돌아다니는 동안에는 특별히 귀신이나 악귀가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수많은 액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형적인 중세 화풍의 남성과 여성들의 초상화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필기체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소름 끼치는 것은 따로 있었다.
모든 초상화의 눈 부분이 칼로 찢은 듯 지저분하게 벗겨져 있다는 점이었다.
“제가 불어는 잘 모르지만 똑같은 단어들이 적힌 게 많아요. 이게 이름이라면, 다 식구들이었나 봐요.”
화진이 액자 밑에 쓰인 단어를 보며 말했다.
모두 같은 성을 쓸 것이기 때문이었다.
“맞아. 다 식구였어.”
수정이 뒤에서 뒷짐을 지고 말했다.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죠?”
현수가 수정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수정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미 봤잖아. 감금. 고문. 살인.”
수정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현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 명목 없이요?”
“명목이 있었을 수 있지.”
수정이 대답했다.
“잠깐 여기 좀 와주실래요?”
그때 방고리가 외쳤다.
현수는 화진과 함께 바로 그의 옆으로 다가가 보았다.
그는 벽난로가 있는 벽면 앞에 서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왜요?”
벽난로 위로는 거대한 그림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 그림은 교과서에서도 본 적이 있는 화풍의 삽화였다.
“어- 이거 설마.”
현수 일행은 눈을 비비고 다시 그림을 유심히 보았다.
부리가 길게 늘어진 탈을 쓰고 검은 모자에 검은 코트를 입은 사람이 붉은 악마들 사이에 서 있는 그림이었다.
악마들은 괴로운 듯 불길 속에서 팔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마치 검은 코트의 탈을 쓴 남자가 악마들을 불길에 던진 뒤 지켜보고 있는 듯한 구도였다.
“저 탈에 복장. 중세시대 ‘흑사병 의사’들 복장 아니에요?”
화진이 현수를 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