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화
# 샹보르 르브레 성 (1)
이제 제법 날씨가 쌀쌀해져 있었다.
공항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던 현수와 세정, 화진의 앞으로 방고리가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그리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라미로브의 스태프들이 몇 도착했다.
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촬영 스태프들이 더 투입된 것이었다.
“다들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며 악수를 주고받았다.
“해외 출장은 굉장히 위험했던 것 같은데. 이번엔 괜찮겠죠?”
방고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다들 조회 수와 구독자 때문에 따라가기는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날님은 안 오신대요?”
“자긴 귀신 볼 수도 없고, 짐이 될 것 같다고 싫대요. 다음에 괴담 콘텐츠 할 때 불러달래요.”
이어진 방고리의 질문에 화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아 참. 저 장비 업그레이드 좀 했어요.”
방고리가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걸로요?”
“새총, 슬링샷인데 견착하고 쏘는 거 있어요. 석궁 새총 같은 느낌이랄까요. 더 멀리 쏠 수 있죠. 장전도 빠르고.”
방고리가 가방에서 꺼내 조립하려 하자 현수가 말렸다.
공항 앞에서 사람들이 오해할 만한 무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 좋기 때문이었다.
“저도 엊그제 현수님하고 같이 봉을 좀 바꿨어요. 고탄소강으로 만든 접이식 봉이에요.”
화진도 가방 안에 들어있는 봉을 슬쩍 보여주었다.
금속으로 된 봉에 노란색 부적이 코팅되어 붙어있었다.
“제 매니저님은 괜찮은데 다른 스태프 분들이 조금 걱정이네요.”
현수가 라미로브 스태프들을 보며 말했다.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진짜 귀신들 앞에 두면 그렇게 여유롭지 않을 겁니다.”
미드나잇 게임부터 위즈소카 수용소, 노로이노무라, 야담 촬영에서 스태프들이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간과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하날하날하고 과대도 같이 가면 좋을 텐데.”
방고리가 아쉬운 듯 말했다.
“하날하날은 귀신이 안 보이니까 짐이 될 것 같다고 하는 건데 과대는 아예 우리 크루랑 뭘 같이 할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진짜요? 에헤이. 왜 그렇게 까칠한지.”
“지금 자기 콘텐츠로도 120만 구독자를 얻었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현장에 나오고 싶겠어요?”
일행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하며 출국장으로 이동했다.
“라미로브 측에서 저희 출입국 심사에 대해서는 다 이야기 해뒀대요. 저희 가지고 있는 장비들이 위험한 것들이 아니라는 것만 보여주고 들어가면 돼요.”
뒤에서 세정이 핸드폰을 확인하며 말했다.
아무래도 새총과 봉, 솔트샷건 등, 언뜻 장난감처럼 보이지만 흉기일 수도 있기 때문에 당연히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었다.
일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출국장 직원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프랑스 샹보르의 르브레 성.
파리에서 남쪽으로 약 180km 떨어진 샹보르 지역의 고성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었다.
샹보르 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17세기 완공된 샹보르 성이 있었지만 고고학자, 혹은 음모론자들은 르브레 성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이유는 이곳에 등장하는 귀신들 때문이었다.
분명 건물 양식은 샹보르 성과 같은 르네상스 양식이지만 그 안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10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서 유행한 기사, 혹은 백성들의 의복차림이라는 점.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이 건물이 지어진 연도가 못 해도 1000년은 되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실제로 건물의 일부 구역은 탄소측정 결과 1200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파악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주류 역사학자들은 이곳에 대한 연구를 심도 있게 진행하지 않았다.
‘성’이라고는 하지만 규모가 워낙 작은데다가 그 어떤 벽화도, 문헌도 발견되지 않은 곳이라 지역 유지 중 한 명이 별장처럼 지은 것이라 주장했다.
그래서 이곳은 수백 년째 방치되어 있었고, 몇 네티즌들이 흉가 체험을 하러 방문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을 방문한 공포 마니아들 중 귀신을 촬영한 사람은 없었다.
폴터가이스트와 같은 초자연 현상이 포착되기는 했지만 귀신의 짓이라고 특정할 만한 요소는 어디에도 발견된 적이 없는 것이었다.
그런 만큼 이곳에서 현수가 귀신을 발견해 낸다면 세계적인 이슈몰이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김창수 과장은 바로 이 점을 노리는 것이었다.
* * *
현수는 비행기에 앉아 르브레 성에 대해서 한참 동안 자료를 들척여 보았다.
이 성에 대한 역사는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성인 샹보르 성과의 연관점도 찾을 수 없었다.
무조건 현장에 가보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상태였다.
눈이 피로해진 현수가 주변을 보았다.
양옆에는 세정과 화진이 앉아 있었고, 건너편 라인에 방고리와 스태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저마다 휴대용 게임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잠을 자고 있었다.
현수는 이 멤버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눈을 감았다.
* * *
프랑스 오를레앙.
파리 공항에 내린 뒤 차를 타고 오를레앙에 도착한 현수 일행은 세정과 스태프들의 안내에 따라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그리고 모두 모여 바로 일정을 확인했다.
샹보르는 오를레앙에서 차를 타고 50분 정도 이동을 해야 하는 거리였다.
“촬영 시간은 파리 시간으로 오후 5시부터 하죠. 그때가 서울이 딱 자정일 때거든요.”
“시차가 그렇게 되는군요.”
세정의 말에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너무 밤에 촬영을 하면 서울은 아침이니까- 공포가 반감될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서 한 17시부터 촬영을 하는 게 가장 딱 적당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사전조사는 진행이 된 게 없어요. 관리인이 없다는 것 말고는 아는 바도 없고요.”
“구조대나 경찰은요?”
“샹보르 도시 안에 있대요. 신고하면 바로 출동할 거예요.”
일행은 모여앉아 여러 가지 위험과 돌발 상황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하루 오를레앙 근처에서 관광하며 휴식을 취한 뒤, 다음 날 오후에 샹보르를 향해 출발했다.
프랑스의 고속도로를 쭉 내달려 도착한 샹보르는 파리에 비해 낙후되어 있는 시골 느낌이었다.
그러기에 더욱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일행이 탄 렌트카는 쭉 시골길을 가로질러 허름한 성 앞에 도착했다.
3층 정도 되는 베이지색 건물에 하늘로 솟아 있는 초록 지붕들.
그리고 몇 개 지붕 밑으로 단칸방 같은 4층이 하나씩 올라 있었다.
흡사 라푼젤이 갇혀 있는 탑의 꼭대기처럼 창문 하나만 덩그러니 나있는 것이었다.
“내가 살면서 네 덕에 이런 데도 다 와보네.”
수정이 아름다운 성의 풍경에 혀를 내둘렀다.
“살면서-는 아니죠.”
현수도 성을 보며 받아쳤다.
“하여튼 이놈은 진짜.”
수정은 그런 현수가 얄미운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럼 촬영 준비하고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죠.”
현수가 손뼉을 짝 짝 치며 말했다.
그러자 세정과 스태프들이 저마다 장비를 챙겨들기 시작했다.
현수와 화진, 방고리도 가방을 챙기고 장비를 들었다.
“시작합시다.”
현수의 말에 스태프들이 모두의 마이크와 자리를 세팅해 주었다.
그리고 카운트와 함께 바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 기다렸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오늘 라방 왤캐 늦게 함????
- 프랑스 해외 촬영이라고 했음여.
- 프랑스 출장.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고스트 크루 컴백!!!
- 오늘 프랑스 야방이에요.
시청자들의 채팅이 올라왔다.
그리고 동시에 5000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유입되었다.
해외 촬영을 기대하는 시청자들이 확실히 많다는 증거였다.
“안녕하세요. 캡틴 퇴마 박현수입니다. 오늘 촬영도 너도캠핑, 방고리님이 함께 하십니다!”
현수의 인사에 방고리와 화진이 인사를 했다.
“오늘 저희가 들러볼 곳은 프랑스 샹보르에 있는 ‘르브레 성’입니다. 풍경 한 번 보시죠.”
현수의 말에 세정이 카메라를 성 쪽으로 돌려주었다.
해가 지고 있는 하늘과 넓은 평야.
그 위에 우뚝 솟은 작은 고성.
정말 동화 속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 우와 쩐다.....
- 대박ㅋㅋㅋㅋㅋㅋㅋ윈도우 바탕화면임???ㅋㅋㅋㅋㅋㅋ
- 꼬꼬마동산
- ㅋㅋㅋㅋㅋㅋㅋ
- 진짜 아름답다.
- 한번 가보고 싶다.
시청자들이 감탄하는 사이, 현수 일행은 성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에 대해서는 그 어떤 정보도 없습니다. 다만 귀신들이 많이 출몰한다고 하는데요. 목격되는 귀신들은 보통 기사들이나 중세시대 백성 옷을 입은 귀신들이래요.”
현수는 수시로 뒤를 돌아 카메라를 보며 설명을 해주었다.
흡사 다큐멘터리 사회자 같은 모습이었다.
- 신박하닼ㅋㅋㅋㅋㅋ
- 신기하긴 할 듯.
심령카메라로는 귀신의 모습이 명확히 촬영되지는 않았지만 현수가 수시로 묘사를 해주는 만큼 사람들이 제법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내 커다란 대문 앞에 선 일행은 문이 열리나 슬쩍 밀어보았다.
그러자 철창으로 된 녹슨 철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이어 펼쳐진 광경은 잡초가 무성한 마당이었다.
아름답게 꾸며져 있어야 할 정원은 잡초와 나무로 흡사 정글 같았고, 분수대로 보이는 난간과 조각상은 색이 바래 흉측해 보였다.
심지어 물도 말라 넝쿨과 잡초가 분수대 안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곳에서부터 을씨년스러움이 물씬 풍겨왔다.
사아아아아아
분수대 주변으로 하얀 연기가 스쳐 지나는 것이 보였다.
현수가 EMF 탐지기를 들자 세정도 분수대 쪽으로 카메라를 틀었다.
그러자 심령카메라로 하얀 형체가 포착되었다.
- 와! 시작부터.
- 공포게임.
- 공포게임 같음.
- 님들 바이오해리스라는 좀비 공포 게임 앎? 약간 그 배경 같네.
- 아아아아아아 알아 알아
- 바이오해리스 1이랑 2!!!
- 그럼???? 8편하고 비슷하지 않음? 바이오해리스 빌리지.
아무래도 배경이 르네상스 풍의 프랑스 고성이다 보니 많은 공포게임에서 다뤘던 배경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저기. 분수대.”
방고리가 슬링샷을 어깨에 견착하며 말했다.
화진도 봉을 꺼내 길게 조립한 후 자세를 취했다.
“악귀는 아니에요.”
현수는 하얀 연기를 가만히 응시하며 말했다.
사아아아아아
분수대 위의 연기가 걷히자 천사 소년의 조각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날개 달린 천사.
오랜 세월에 변색되어 있었는데 유독 눈 주변만 검게 변해 있었다.
마치 눈물을 흘린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EMF 탐지기는 불빛 4개로 반응하고 있었다.
현수는 탐지기를 한 번 내려다 본 후 성의 저택 현관문을 보았다.
그곳에는 목이 잘린 기사가 창을 든 채 우두커니 서있었다.
현수는 그 기사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저거 뭐죠?”
그때 화진이 분수대 안 쪽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물었다.
모두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분수대 아래를 보았다.
넝쿨과 잡초 사이로 회색의 돌 같은 것이 보였다.
화진이 봉으로 넝쿨을 살짝 치워보았다.
그러자 보인 것은 사람의 백골이었다.
“으헉!”
일행들이 놀라 뒤로 물러섰다.
오직 현수만이 그 백골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옷을 벗고 있는 시신.’
현수는 이곳에서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