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담로 캠핑장 (5)
“어어-”
현수는 본능적으로 눈앞의 이 악귀가 화진을 데려가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차문을 열려 했다.
하지만 손잡이를 아무리 당겨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창문 틈으로 젖은 머리카락이 엉겨 들어간 것이었다.
덜컥 덜컥
차체가 흔들릴 정도로 세게 문을 열려 했지만 열리지 않았다.
앞 차창 너머 악귀는 씩 미소를 짓더니 몸을 거꾸로 뒤집은 채, 허리를 아치형으로 꺾고 텐트로 기어갔다.
긴 머리카락이 바닥에 슥 쓸려가는 것이 무척 기괴했다.
“화진 님! 세정 님!”
현수가 버럭버럭 소리쳤지만 아무런 소리도 전달되지 않았다.
현수는 이를 악물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대시보드 아래 두었던 비상 탈출용 망치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창문을 거세게 후려쳤다.
꽈직 꽈직
창문이 삽시간에 깨지며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현수는 동시에 악귀를 보았다.
악귀는 어느새 텐트 앞까지 향해 있었다.
현수는 금이 간 창문을 확 밀어젖혀 완전 깨트린 뒤 몸을 빼냈다.
그러고는 텐트를 향해 달려갔다.
펄럭
현수가 텐트를 확 젖히자 자고 있던 세정과 화진의 모습이 보였다.
“헉 헉 헉.”
현수가 숨을 몰아쉬자 언뜻 잠에서 깬 화진이 상체를 일으켰다.
“어? 현수님. 왜요?”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린 현수를 보고 화진이 물었다.
그 사이 세정도 잠에서 깼는지 몸을 일으켰다.
“화진 님. 채널 이름이 뭐죠?”
악귀에 쓰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수가 물었다.
“너도캠핑이요.”
“전 캡틴 퇴마 매니저죠.”
화진과 세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번갈아 대답했다.
현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뒤로 물러났다.
“어휴. 죄송해요.”
현수가 이마를 붙잡고 차를 보았다.
운전석 창문이 완전히 깨져 창문 파편이 곳곳에 튀어있었다.
그리고 머리카락은 온데간데없었다.
“악몽 꾸셨어요?”
화진이 뒤에 나오며 물었다.
“악몽이요? 아, 그런가.”
현수는 혹시 자신이 본 것이 환상이었던 건가 생각했다.
하지만 환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했다.
“악몽이 심할 땐 술 한 잔 더 드시고 자는 것도 좋아요.”
화진이 말했다.
“무슨 일이에요?”
그때 세정도 텐트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며 물었다.
현수가 대답하기 위해 몸을 돌리던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아악
어디선가 젖은 머리카락이 빠르게 기어오더니 화진의 다리를 휘감았다.
“꺄악!”
그러고는 수풀 속으로 거침없이 끌고 가기 시작했다.
파사사사사사
화진은 순식간에 숲속으로 사라졌다.
“화진 님!”
현수가 솔트샷건을 들고 허겁지겁 쫓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세정도 엉겁결에 일어나 부적 봉을 들고 현수의 뒤를 쫓았다.
다다다다다다다다
현수가 바위와 나무뿌리를 성큼성큼 뛰어 넘으며 화진을 쫓았다.
머리카락에 붙잡힌 화진은 마구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머리카락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바닥에 질질 끌리고 있는 그녀의 상체를 따라, 현수는 허벅지가 터져라 더욱 세게 달렸다.
‘역시 저수지 방향이야!’
물속에서 보았던 그 물귀신이 분명했다.
“젠장. 왜 이렇게 빨라!”
현수가 버럭 소리쳤다.
파사사사사사사
“꺄아아아악!”
새벽, 산속에는 화진의 비명소리가 메아리쳤다.
현수는 끌려가는 화진을 쫓아갈 수 없겠다고 판단하고 솔트샷건을 들어 쏘았다.
팡 팡 팡 팡
그러던 중 소금 한 줌이 악귀에 닿았다.
키야아아아악
머리카락이 불리며 악귀가 뒤로 물러났다.
계속 바닥에 끌려 만신창이가 된 화진이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흘렸다.
키기기기기긱!
악귀는 화가 난 듯 짐승처럼 네 발로 땅을 딛은 채 현수를 보았다.
긴 머리카락은 낙엽 하나 묻지 않은 모습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현수는 습관적으로 밀짚인형을 잡으려 허리에 손을 댔다.
하지만 힙색이 차 안에 있었다.
‘아, 젠장!’
급하게 나오느라 배낭과 힙색 모두 놓고 온 것이었다.
주머니에 귀신을 부르는 부적 몇 장만 들어있을 뿐이었다.
키기기기기긱!
악귀가 현수 옆에 있는 나무에 풀쩍 뛰어올라 발을 딛은 뒤, 현수를 덮치려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큭!”
현수가 다급하게 펌프레버를 당겼지만 총구를 돌릴 틈은 없었다.
그 순간이었다.
퍽!
날아오던 악귀가 뭔가에 맞고 뒤로 날아갔다.
부적 봉이었다.
뒤쫓아 온 세정이 부적 봉을 휘둘러 악귀를 맞춘 것이었다.
키기기기기!
악귀는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가 현수와 세정을 노려보았다.
“나, 나이스샷.”
현수가 솔트샷건을 조준하며 말했다.
“소, 손맛이 있네요. 신기하네.”
처음 귀신을 타격해 본 세정이 중얼거렸다.
“저거, 그냥 놔두면 무고한 사람들을 계속 노릴 것 같은데요?”
현수가 말했다.
물론 저수지에 들어가거나, 접근하지 않으면 이 악귀가 타깃을 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앞으로 언제까지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키야아아악!
악귀가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기괴한 비명을 질렀다.
현수는 기다렸다는 듯 악귀에게 방아쇠를 당겼다.
타닷 타닷
하지만 악귀는 장난을 치는 것처럼 소금을 요리조리 피하며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탔다.
이대로는 제대로 붙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젠장.”
현수가 욕을 읊조렸다.
그때, 겨우 상체를 일으킨 화진이 이 광경을 지켜보다 말했다.
“나, 나를 이용해요.”
그녀의 말에 현수가 눈을 크게 뜨고 보았다.
“놈의 타깃이 저잖아요. 제가 미끼가 되면 놈은 속을 거예요.”
화진의 말에 현수는 지금까지 악귀를 쫓아냈던 모든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런 빌어먹을.”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악귀를 풀어놓을 수도 없는 노릇.
현수는 재빨리 화진에게 달려가 가슴에 부적을 붙였다.
귀신과 악귀를 부르는 부적이었다.
화아아아악
부적을 붙이자 사방에서 날뛰고 있던 악귀가 마치 불나방처럼 화진의 몸속에 빙의해 들어갔다.
현수는 바로 부적 위에 액막이 부적을 붙여 악귀가 화진의 몸에서 나오지 못하게 봉인했다.
캬가가가가각
화진의 몸이 뒤틀리며 경련을 일으켰다.
현수는 팥이 없어 솔트샷건의 소금통을 열고는 화진의 입에 들이부었다.
화진이 흰자위를 훤히 드러내며 괴로워했다.
현수는 두 팔로 화진의 입을 틀어막은 채 그녀를 안았다.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던 그녀의 몸이 점점 늘어졌다.
툭
이내 그녀의 팔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악귀가 소멸 되며 기절한 것이었다.
“후.”
현수는 그녀를 안은 채 세정을 보았다.
세정은 현수에게 엄지를 들어보였다.
* * *
다음날 아침.
화진은 눈을 뜨자마자 입에 남아있는 소금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했다.
생수를 입에 들이부으며 온갖 인상을 찌푸렸다.
“괜찮아요?”
현수가 미안한지 다가가 등을 토닥여 주었다.
화진은 손을 내저어 보였다.
자신이 허락한 일이었던 만큼 무어라 할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 ‘파장’인가 뭔가가 맞지 않았나 봐요. 빨리 퇴마가 되던데요.”
세정이 말했다.
“네. 아무래도 물귀신이라 빙의가 목적이 아니고 그냥 다른 사람을 물속으로 끌어들이는 게 목표다 보니까 파장이 맞든 안 맞든 그냥 타깃을 정하면 끌고 들어가는 거였어요.”
“아아. 물귀신은 또 그렇구나.”
“네. 그렇게 파장이 맞지 않는 몸 속에 들어간 상태에서 부적에 소금까지 끼얹으니 견디지 못하고 안에서 타버린 거죠.”
현수가 수정을 보며 말했다.
수정이 설명해준 것들이었다.
“그것도 그거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화진이 말을 이었다.
“안아줄 때 체온이 정신을 차리게 해주기도 했어요. 몸이 막 떨려오고 정신이 혼미한데 절 안아주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녀의 말에 현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화진이 자리에서 툭 일어났다.
“전 아침 촬영을 좀 해야 해서. 준비 좀 도와주실래요?”
그녀가 화제를 바꾸려는 듯 말했다.
“얼굴에 상처가 좀 났는데.”
“괜찮아요.”
일행은 아침 촬영과 함께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 * *
담로 캠핑장에서의 촬영은 나름대로 무난하게 진행이 되었다.
화진의 콘텐츠 역시 기존 스케줄대로 촬영이 되었고, 현수의 생방송도 잘 업로드가 되었다.
아울러 편집 영상과 쇼츠 영상까지 모두 올라가 엄청난 조회 수 몰이에 성공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새벽4시에 일어났던 악귀와의 전투.
그 건은 촬영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너도캠핑 채널에 올라갈 화진의 아침 영상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을 촬영하는데 화진의 얼굴에 반창고와 상처가 있었고, 구독자들의 문의가 이어진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도캠핑 채널을 보는 사람들 중 많은 수는 현수와의 합방을 모르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만나요.’라며 마무리 인사를 한 후 아침 장면으로 컷이 넘어갔는데 얼굴에 상처가 있다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었다.
몇몇 시청자들이 대댓글로 상황 설명을 해주기는 했지만 ‘다른 날 촬영한 브이로그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야 했다.
저녁 촬영과 아침 촬영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날 촬영한 것을 붙인 것 아니냐는 조작 논란이었다.
화진은 이 논란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
퇴마 방송을 하는 현수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알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넘어갈 일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서로의 합방 콘텐츠가 진행이 되며 조회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동거+캠핑+퇴마의 키워드를 모두 확보한 덕분이었다.
물론 현수나 화진을 ‘이성’으로써 기대를 했던 사람들의 실망감은 어쩔 수 없었지만 의외로 그 수는 많지 않았다.
그렇게 각자의 콘텐츠와 합방 콘텐츠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현수의 토요일 생방송에도 화진이 고정 멤버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그 역시 조회 수 몰이에 성공적이었다.
더욱 다채로운 장면이 연출 되면서 시청자들이 몰려들었고, 자연스럽게 매출도 껑충 뛰어 올랐다.
심지어 최대 30만 명에 가까운 시청자 몰이에서 35만 명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울러 현수 채널의 구독자는 110만 명을 넘어섰고, 화진의 채널은 60만 명을 기록했다.
이에 질투심을 가진 것은 다름 아닌 방고리와 하날하날이었다.
고스트 크루 멤버 중 하날하날은 현수와 처음 합방한 스트리머였고, 방고리는 단둘이 퇴마를 간 적도 있는 만큼 친분이 있는 상태기 때문이었다.
반면 과대는 이런 소식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톡방에서도 무어라 코멘트가 전혀 없었고, 라미로브 쪽에 요청을 하는 것도 없었다.
그저 자기 방송만 열심히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질투심은 또 한 번의 ‘해외출장’을 만들어냈다.
방고리가 김창수 과장에게 요청한 것이었다.
김창수 과장의 전화를 받은 현수는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갑작스럽게 해외 일정을 잡자는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방고리님이 이쯤 돼서 한 번 해외 퇴마를 가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어우.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그런데 사실 저희도 조금 그 방향이 좋지 않을까 싶긴 하더라고요. 지금 폴란드하고 일본 촬영했죠? 다른 곳 한 번 더 돌면 해외 시청자들 유입에 더 좋을 것 같고요.]
“그야 그렇겠지만 저희도 저희 일정이 있는데.”
[지금 촬영 일정이 어떻게 되시죠?]
“지금 메일로 공유해 드릴게요.”
[네, 네. 잠시만요. 네, 메일 왔습니다. 음. 그러면 다음 달 초쯤에 가능할까요?]
김창수 과장은 해외 출장을 이미 내정하고 물어보는 듯했다.
통화내용을 함께 듣고 있던 화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 일정에 맞추도록 하겠습니다.”
[네. 갈 장소는 메일로 회신 드렸으니 확인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확인해볼게요.”
현수가 전화를 끊고 메일함을 확인해 보았다.
김창수 과장이 서칭한 퇴마 장소에 대한 정보가 수신되어 있었다.
“프랑스 샹보르 르브레 성?”